|
The Hypnotist(한국어 번역본 제목: 최면전문의)는 알렉산데르 안도릴(Alexander Ahndoril)과 알렉산드라 코엘료 안도릴(Alexandra Coelho Ahndoril) 부부의 필명으로 알려진 라슈 케플레르의 유나 린나 경감 시리즈 데뷔작이다. 이 소설은 2011년 타임 선정 베스트 소설 10에 들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소설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2월의 어느 날 스웨덴의 툼바에서 가족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생겼다. 죽은걸 로만 보였던 피해자 유세프는 극적으로 살아나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유나 린나 경감은 유세프가 범인에 관한 정보를 줄수있을것이라는 확신에서 정신과 의사 에릭 바르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에릭은 유세프에게 최면을 걸지만 최면에 빠진 유세프가 “like fire, just like fire”라는 말을 외치며 자신이 가족을 죽인 장면을 재현하는데...
라슈 케플레르(Lars Kepler)의 최면전문의를 읽을때 주목해볼만한 점을 두 가지로 요약해본다.
첫째로, 이 소설의 주인공 유나 린나 경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그는 최고의 검거율을 자랑하는 형사로 동료들로부터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다. 툼바에서 벌어진 사건이 도박 빚과 관련된 사건으로 여기고 지역 경찰에 수사를 맡기려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과는 반대로 유나 린나는 특유의 직관으로 이 사건에는 눈에 보이는 것 보다는 훨씬 큰 배후가 있으며 국립 범죄 수사국이 이 사건을 수사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독자들은 국립 범죄 수사국의 책임자 카를로스의 승인으로 툼바 사건을 맡게 된 린나 경감의 활약상을 기대할수밖에 없는데 공교롭게도 소설이 진행될수록 오히려 에릭의 장인 케네트(전직 형사)가 등장하면서 린나 경감으로 향하던 시선이 케네트에게 집중되는 듯 한 인상을 주게 된다. 그래서 아마도 일부 독자들은 소설의 초기부분에서 묘사된 불독과도 같은 끈질긴 린나 경감의 캐릭터가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둘째로, 말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끔찍한 사건의 묘사와 최면전문의가 등장하는 독특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진행감이 그다지 빠르지 않고 읽는 독자들에 따라서 지루함을 줄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원서는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고 한국어 번역본 또한 두 권으로 이루어질 정도로 가볍게 읽을 만한 소설은 아니다. 어쩌면 일반적인 미스터리 문학의 두 배 정도의 분량을 가진 두꺼운 소설이 시종일관 독자들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흡인력과 흥미를 준다는 게 애당초 쉽지 않은 과제였던 게 분명하다. 마치 한국에서도 소개된바 있는 글래스키 상 수상작가 루슬룬드-헬스트럼의 작품들(비스트, 쓰리 세컨즈)처럼 최면전문의 역시 작품성이나 소재에서 분명 흥미를 줄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소설의 전개 중간 중간에 옆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을 주고 별로 색다른 게 없는 주인공 캐릭터로 인해서 다른 미스터리 소설과의 차별성을 크게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단점이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최면전문의는 헤닝 만켈, 요 네스뵈, 카린 포숨,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루슬룬드-헬스트럼, 카밀라 레크베리와 같은 북유럽 추리소설의 매니아층에게만은 어필할만한 흥미로운 소재와 짜임새를 가진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지나치게 긴 분량과 중간 중간 독자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소설의 전개로 인해서 미국 언론에서 광고하는 것과는 달리 라슈 케플레르가 스티그 라르손(북유럽 미스터리 소설의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밀레니엄’의 저자)의 뒤를 이를 차세대 주자가 되기에는 2% 부족하다고 봐야 될 것 같다. |
|
영화나 소설 속에서 '최면'이라는 것을 가끔씩 접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면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 최면이란 과연 무엇일까?
라슈 케플레르의 2009년 작품 <최면전문의>에 등장하는 최면전문의는 최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린다.
"최면은 연상과 명상이 결합된, 변화된 의식 상태를 가리킬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최면전문의의 이야기를 좀더 쉽게 풀어보면 이렇다. 최면에 빠진 사람은 아주 깊게 이완이 된 상태고 거의 잠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깨어있다.
최면 상태일때 뇌는 특별한 방식으로 동작한다. 평소에 잘 쓰지 않던 뇌의 부분들이 갑자기 활성화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뇌의 특정 부분에 저장된 기억이 갑자기 살아날 수도 있는 것이다.
보통 범죄소설이나 영화에서 목격자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최면을 사용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의식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던 기억이 최면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일가족 살해사건
<최면전문의>에서도 잔인한 살인사건의 수사를 위해서 최면이 사용된다. 스웨덴의 한 가정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한 남성을 운동장 탈의실에서 칼로 난도질해서 죽였다. 범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교사의 집에까지 찾아왔다.
집에서 그 교사의 부인과 딸 역시 칼을 사용해서 살해했다. 유일하게 교사의 어린 아들 유세프가 살아남았는데 그도 온몸에 자상을 입고 많은 피를 흘린 상태라서 제대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형사들은 당연히 유세프에게 질문을 하려고 한다. 유일한 목격자인 유세프에게서 쓸만한 정보를 얻는다면 살인사건의 수사는 그만큼 쉬워질 것이다. 수사팀의 유나 경감은 여기서 최면을 제안한다. 유세프에게 최면을 걸어서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기억을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유나는 스웨덴의 최면전문가인 정신과 의사 에릭 마리아 바르크에게 최면을 부탁한다. 에릭은 최면전문가이지만 과거의 어떤 일로 인해서 더이상 최면을 하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한 적이 있었다.
에릭은 유나의 제안을 받고 갈등 끝에 최면요법을 사용하기로 한다. 침대에 누운채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소년 유세프는 최면 상태로 들어가고, 범행현장에서 자신이 보고 행동했던 일들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한다. 소년의 이야기는 살인사건의 수사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놓는다.
최면의 부정적 요소
최면을 통해서 숨겨진 어떤 기억을 불러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꼭 당사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최면에 빠진 사람은 최면을 건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려가게 된다. 최면에 빠진다는 것은 곧 정신적으로 무방비상태가 된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작품 속에서 에릭은 예전에 한번 최면문제로 고발당한 적이 있었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최면을 통해서 치료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발생했다. 고발한 사람은 에릭이 자신을 실험용 동물처럼 취급했고, 깊은 최면 상태에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정신적으로 학대했다고 주장한다.
감춰진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과거의 특정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끄집어 낸다면 또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최면에 빠지는 것도 타인에게 최면을 거는 것도 모두 다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
|
주인공은 3명이라고 볼 수 잇다. 정신과의사,최면전문가 에릭과 부인 시모네. 그리구 살인범을 추적하는 금발의 경감, 유나. 처음에 유나라서 여자인줄 알앗는 데 남자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가족집단 살인사건이 일어 나는 데 중동계 이민자 집에서 아들만 살아 남는다. 근데 아들도 수없이 찔리고 난자당한 상태. 근데 따로 사는 딸은 살아잇고. 범인을 잡기위해 큰딸을 살리기 위해 에릭을 통해 15살 소년, 유세프를 최면을 걸어 추궁하니 자신이 가족을 살해햇다고 증언하는 데 큰 딸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근데 몸이 엉망인 유세프가 간호사를 죽이고 병원을 탈출한다. 그 와중에 에릭아들 혈우병 유대계 베냐민이 유괴되고 에릭과 유나는 유세프를 유괴범으로 생각하지만, 에릭은 도중에 과거 싸이코 여환자 에바 블라우를 떠올리는 데...
낯설은 스웨덴 소설, 전에 한 두편 봣엇는 데 하나는 엉터리, 하나는 괜찮았다. 유세프의 근친상간 요구, 가족 난자 살인사건 일단 배경은 grotesque 하다.
예기와 전개는 균형을 잡아가며 서서히 흘러가고 시모네와 주변이야기는 형평을 맞춘다. 시종일관 긴장감이 살아 잇다. 구성도 탄탄하다. 바로 직전 제프리 디버같은 엉터리에 질렷다가 , 상하권 한 800페이지가 되는 데 엉터리 제프리 디버나 넬슨 드밀같은 군더더기는 거의 없다. 지루함이 없다. 두 사람 은 좀 배워라..
처음엔 좀 어렵다. 스웨덴사람 이름 신경쓰느라. 글구 번역에 좀 어색한 부분이 군데군데 느껴진다. 그러나 재미잇다...
|
|
노르웨이 설원에서 눈사람을 만들어 놀다가 옆 동네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겨 북유럽 투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스릴러는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라슈 케플레르의 <최면전문의>라는 스릴러입니다. 2011 <월스트리트 저널> 선정 10대 미스터리 소설, 2011 <타임> 선정 10대 소설이라는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면서 모국인 스웨덴에서 라세 할스트림 감독이 영화로 제작 중이라고 하는군요. 어느 겨울날에 스웨덴의 한 일가족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참극이 발생합니다. 유일한 생존자인 아들 유세프는 쇼크 상태에 빠져 있는데다 범인이 아직 생존해 있는유세프의 누나를 찾아갈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스웨덴 국립 범죄 수사국의 유나 린나 경감은 소년으로부터 범인에 대한 단서를 포착하고자 증언을 청취하기 위한 시도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과거 불미스런 일로 최면을 중단했던 정신과 전문의 에릭 마리아 바르크를 불러 소년에게 최면을 걸어줄 것을 요청하지만 그는 더 이상 최면을 거는 것에 주저합니다. 결국 유나 경감의 설득으로 유세프에게 최면을 걸게 됩니다. 하지만 유세프가 최면 도중 자신이 가족을 모두 살해했다는 진술을 한 후에 병원을 탈출하고 에릭의 아들 베냐민이 납치당하면서 수사는 일대 혼란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최면 전문의>는 연상과 명상이 결합된, 변화된 의식 상태를 가리킬 다름이라는 에릭의 최면에 대한 정의처럼 읽는 이로 하여금 계속해서 마법주문을 연상시키는 최면 유도로 사건 속으로 들어가 구경하게 하는 독특한 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간 스릴러에서 부분적으로 도입되었던 최면 기법을 전면에 내세워 납치된 아들을 찾고자 하는 에릭 부부의 필사적인 수색을 통해서 드러난 추악한 진실로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것이죠. “과거는 결코 죽지 않았고, 심지어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다”는 인용구처럼 사건해결의 열쇠는 에릭이 10년 전에 겪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쥐게 됩니다. 그 와중에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고민과 원하는 바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덮어버리려는 점에 대해 반발하게 되고, 무절제한 사생활로 빚어진 갈등으로 등을 돌려버리는 부부의 모습에서 한 가정에 불어 닥친 붕괴와 파탄을 불안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가정의 화합에는 아이가 중심이며, 갈등을 봉합하는 실과 바늘도 아이에게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현재와 과거의 기억들을 넘나들며 납치극을 해결해나가는 전개과정이 북유럽의 서늘한 냉기처럼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빠른 속도감으로 마지막 결말을 궁금케 하는 북유럽 스릴러의 저력! <최면 전문의>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분권 대신 내용을 압축해 보여주었더라면 긴장의 밀도는 더욱 촘촘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