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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친일과 망각》 2018 펴냄
"뉴스타파 《친일과 망각》 2018 펴냄" 내용보기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에서 펴낸 책 《친일과 망각》을 읽었다.  책은 2016년에 나왔다가 2018년 얼마전에 개정증보판을 펴냈다.  읽으면서 처음에는 마음이 편하지 만은 않았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친일파의 세력에 대해서, 때로는 안개속에 있던 그 실체에 대해서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분노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하도 분노해서 지칠 때 즈음 어떤 지적인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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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에서 펴낸 책 친일과 망각을 읽었다.

 

책은 2016년에 나왔다가 2018년 얼마전에 개정증보판을 펴냈다.

 

읽으면서 처음에는 마음이 편하지 만은 않았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친일파의 세력에 대해서, 때로는 안개속에 있던 그 실체에 대해서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분노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하도 분노해서 지칠 때 즈음 어떤 지적인 감각이 찾아왔다.

내가 이렇게 분노하고 있는 것도 독립운동을 해주신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1948년으로 돌아갔다. 해방이 되고 조국이 독립된 지 3.

많은 분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마침내 제정 헌법이 제정되었다. 이 때 법을 통해서 일제강점기 때 친일을 한 세력을 처벌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이는 「반민특위」의 결성으로 열매를 맺었다.

 

그동안 반민특위에 대해서 관심만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반민특위가 너무도 허탈하게 해체되었음에 다시 통탄해야 했다.

 

반민특위가 해체된 것은 그냥 된 게 아니었다. 정권을 잡고 있는 이승만 정부, 친일파 세력들의 연합, 반민특위를 돕는 사람들에 대한 암살 위협 등이 합작해서 정교하게 이루어졌음을 알았다.

 

19496월에 반민특위는 1년이 채 안되어 해체되었다.

그리고 626일 백범 김구가 안두희의 총격에 저격을 당했다.

 

현대사의 참극인 한국전쟁이 3년후에 휴전으로 끝났다. 그렇지만 이후에 독재정권이 한국을 지배했다. 박정희가 권력을 잡으면서 군부 독재는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그러는 20여년 사이에 친일파들은 그 세력을 넓혀갔다.

정치권, 경제계, 교육계, 언론계의 주류에는 독버섯처럼 친일파가 득세해 갔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기득권을 획득하고, 권력과 영향력을 갖게 된 그들은 한국 사회의 엘리트와 지배층을 독점하게 되고 말았다.

 

친일과 망각2009년에 나온 친일인명사전을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해 간다.

친일인명사전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시민사회단체와 학계가 치열하게 조사를 해서 펴낸 작업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친일파를 규명하게 세상에 알리는 작업은 숱한 난관에 부딛혔다.

친일파의 후손들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그저 수수방관하지만은 않았다.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교묘하게 자신의 선대 (주로 아버지, 할아버지)의 친일 행각을 은폐하고자 했다.

 

친일파라고 밝혀지면 극구 부인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저런 논리로 궤변을 펼치면서 친일파를 옹호하는 모습을 책을 통해 접하면서 씁쓸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10대 궤변은 친일파 후손들의 논리를 잘 요약했다.

 

첫 번째는 색깔론이다. 친일파 숙청은 북한의 단골주장이었으며 따라서 친일을 청산하라는 요구는 빨갱이들의 전술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공과론이다. 비록 친일은 했지만 다른 공이 많으니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는 공범론. 그 때 친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는 논리다.

kbs 이사장 이인호는 내 조부가 친일파면 그 때 중산층은 다 친일파라고 했다.

 

네번째는 망각론. 이미 지난 일인데 그만 잊자는 아주 단순하지만 무식한 말이다.

나머지 궤변으로는 친일 청산은 연좌제에 해당한다등이 있었다.

 

   

친일인명사전. 그리고 친일파를 밝혀내어 단죄하는 것.

이는 데스노트처럼 단순하게 과거의 사람을 「디스」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친일과 망각》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고, 이는 독재정권을 만드는 뿌리를 제공했다고.

 

이 책을 통해서 가장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이 부분이었다.

독재라는 반민주사회와 친일파 청산의 실패가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다 역사 말이다.

 

또한 두 번째 깨달음은 이거였다.

나는 독립운동을 자세하게 아는 것에 관심이 있는데, 이 작업을 위해서도 친일파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라는 것.

 

친일의 역사를 아는 것은 그 반대, 항일의 역사를 아는 것과 밀접하게 이어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승만의 이름을 안다. 그렇다면 김상덕 이란 이름은 얼마나 알까.

부끄럽게도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김상덕은 반민특위의 위원장이었다. 김상덕은 일제강점기 때 상해 임시정부에 참여해 국무위원을 역임했다.

해방되고 혼란한 조국에서 목숨을 위협받는 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제로 친일 세력들은 깡패를 고용해서 김상덕 위원장을 납치, 살해하려는 계획까지 세웠음이 밝혀졌다.

 

김상덕은 이후에 한국전쟁 때 당시 북한군에 의해서 납북됐다.

 

이 분의 아들 김정륙씨의 현재의 모습을 뉴스타파가 취재한 이야기가 뒷부분에 나온다.

김정륙 씨는 어렸을 때 중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 때에 아버지의 모습과 이후의 삶에 대해서 나오는 데 정말 안타까워서 눈물이 났다.

김상덕은 한 평생을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고 해방된 조국에서도 친일파 청산을 위해서 끝까지 일했다.

 

그러다가 납북되었고 그 이유만으로 그의 아들은 연좌제로 또 일평생을 고통받고 사셨다.

김상덕의 딸, 정륙 씨의 여동생은 가난으로 영양실조로 죽었다.

김정륙 씨는 연좌제라는 잔인한 짓으로 변변한 직업은 가질 수 조차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라나 사회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성숙한 마음으로 취재진을 대하는 모습이 정말 마음이 미어졌다.

 

이 분은 한 케이스로 상징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숱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직접적으로 수난을 당하셨고, 또는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삶을 사셨다.

 

얼마전에 박서양 독립운동가의 책을 읽고서 후손이 궁금해져서 검색해 본 적이 있다.

후손들은 칠레로 이민을 가서 살고 계셨다. 위키피디아는 단 몇 줄 만이 나왔지만, 그 행간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과 감내가 있을까 숙연했었다.

 

친일파로 으시대며 살아온 세력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선조를 독립운동가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독립운동의 내용과 운동가들을 폄하하면서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그런 비열한 짓을 하는 건 그렇다쳐도,

수십년 동안 친일파를 규명하지 못한 우리들이 참혹할 만치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가는 잊혀진 분들을 발굴해야 한다. 리고 합당한 예우를 해드려야 한다.

 

한편으로 다른 흐름으로는 친일의 치욕스런 역사도 명명백백히 밝혀야한다.

 

이는 자유로운 한국에 사는 우리들의 임무라는 걸

이 책 한권이 일깨워 주었다.

 

일독을 추천하는 책

친일과 망각이다.

 

 

 

 

 

 

 

 

YES마니아 : 로얄 b********5 2018.09.01. 신고 공감 33 댓글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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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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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망각 김용진, 박중석, 심인보 다람/2018.8.15.   요즘 기울어진 운동장 이야기를 자주 듣고 한다. 우리에게 운동장은 언제부터 기울어진 것일까?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이 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린 사람들의 자손들은 대대로 가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데, 나라를 팔아먹고 그들 편에 서서 같은 민족을 착취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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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망각

김용진, 박중석, 심인보

다람/2018.8.15.

 

요즘 기울어진 운동장 이야기를 자주 듣고 한다. 우리에게 운동장은 언제부터 기울어진 것일까?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이 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린 사람들의 자손들은 대대로 가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데, 나라를 팔아먹고 그들 편에 서서 같은 민족을 착취하는데 앞장서 떵떵거리던 이들과 그 후손들이 계속해서 잘살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이다. 지난 두 차례 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위원회가 활동했지만 미흡한 성과를 거뒀다. 기득권층을 이루고 있는 반민족적 행보를 보인자들과 그들 후손의 방해와 비협조로 아직까지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늦었지만 짚고 넘어가자는 의미에서 뉴스타파에서는 친일의 망각을 펴냈다. 저자 김용진은 1987년 말 KBS 기자가 돼 7개 정권하에서 관영과 공영을 오가는 풍상을 겪다. 2013년 뉴스타파 대표를 맡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로, 저서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이 있다. 공저자 박중석은 뉴스타파 기자. KBS 탐사보도팀 기자. ‘한국방송기자대상’, ‘임종국상등 여러 수상경력이 있다. 또 다른 공저자 심인보는 KBS 기자에서 2015년 뉴스타파로 자리를 옮겨 친일과 망각, 조세도피처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고, 2016년 파나마 페이퍼스, 이건희 성매매 사건을 보도 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을 고르라면 많은 이들이 통일된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한 것해방직후 친일부역 기회주의 세력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을 떠올린다. 친일의 망각99% 시민을 위한 비영리, 비당파, 독립 언론기관인 뉴스타파가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후손들의 실태를 조사 분석한 사실을 엮은 책이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확정 발표한 친일파 1,006명을 기준으로 그 후손들을 추적해 모두 1,177명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들의 학력, 직업, 거주지, 재산 등을 탐사해 인구사회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광복 70주년 특별기회 친일과 망각시리즈를 모두 4(201586, 10, 12, 14)에 걸쳐 방송했다. 5부로 구성된 디지털 스토리도 스페셜 웹페이(http://815.newstapa.org/#/)를 통해 선보였다. 그리고 자료를 엮어서 출간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이 친일 문제와 반민족 문제를 이해하고, 과거 청산을 넘어 과거를 극복해 나가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저자들의 공통된 소원이다.

 

“19473, 미군정 하의 남조선과도입법회의는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조례안을 상정해 7월에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법은 미군정이 인준을 거부해 사장되고 말았다.(p.29)” 1948922반민족행위 처벌법공포를 전후해 서울 시내와 국회엔 친일파청산을 주장하는 자는 빨갱이라는 내용이 빠라를 일제히 살포하여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1949년 초여름, 극우반공정국과 백색테러 공포가 남한 사회를 뒤덮은 가운데 이승만 정부는 집요하게 반민족행위처벌법개정공작을 시도했다. 결국 76일 공소시효를 19498월 말까지로 대폭 단축하는 개정안이 통과된다. 그리고 대통령의 방해로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이후 정치권에 반대하는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서 제재를 가하는 일은 일상화 되었다.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43월 제정됐고, 이 법률에 근거해 2005년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우이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2009년 말 활동을 종료할 때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모두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명단과 그들의 친일행위를 확정 공개했다. 2005년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고, 이듬해 역시 대통령 직속 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설립됐다. 이 위원회가 4년간 조사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160여명이었고, 이들에게서 국고로 환수한 재산은 여의도 면적의 1.3배가량인 천여만 제곱미터에 달했다.(p.41)” 이것이 2차 반민특위 출범과 활동 내용이다. 이 조사를 통하여 친일파 후손들 가운데 상당수가 우리 사회의 최상위 계층에서 활약하는 잘 나가는사람들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의 비율이 높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지금의 위치에 올라가는 데는 선대로부터 받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자산들이 결정적인 밑거름이 됐다. 그 자산들은 대부분 그들의 선대가 나라를 팔고 종족을 배반한 대가로 획득한 것이다. ‘훌륭하신할아버지 덕에 지금의 지위를 획득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그 할아버지를 친일파라고 비난하는 자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반역사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친일 후손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정치인이 박근혜와 김무성이리고 할 수 있다.

 

상훈 기록은 대란민국의 굴곡진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훈장의 종류는 모두 12개다. 국민훈장, 보국훈장, 체육훈장, 건국훈장 등등. 하지만 민주라는 명칭의 훈장은 없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 분야에 공적을 세워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는 국민훈장에도 민주라는 문구는 없다. 대한민구 상훈법에도 민주를 찾아볼 수 없다. 서훈의 기록에도 이한열과 박종철 등 민주주의에 목숨을 바친 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훈장은 친일과 독재 세력에게 관대했고, 민주 인사들에게 인색했다. 대한민국 훈장은 이제 민주주의로,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p.223)” 대표적인 인물이 악질 친일경찰의 대명사 노덕술이다. 수많은 독립 운동가를 체포하고 고문했던 그는 일제로부터 훈 8등 서보장까지 받은 인물이다. 노덕술은 해방 조국에서도 반민특위 활동을 적극 방해하는 등 반민족 행위를 지속했다. 이승만은 그에게 무려 3개의 훈장을 줬다. 노덕술은 1950년과 51, 533차례 무공훈장을 받는다. 소속기관은 육군본부 헌병사령부였다. 일제 헌병으로 역시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신상묵도 모두 8개의 대한민국 훈장을 받는다. 모두 17명의 경찰이 37건의 대한민국 훈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이승만은 자기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친일반민족자들에게 많은 훈장을 남발한 대표적인 대통령이 되었으며, 나아가 우리민족에 죄를 지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 역시 일본군 장교로 임관하며 혈서로 충성을 맹세한 그가,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 많은 친일파와 그 후손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협력 없이 지배 없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조선인 앞잡이들의 협력이 없었다면 일제의 식민 지배도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이항녕은 해방 이후의 여생 동안 계속 강조했다. 안타까운 것은 해방 이후 친일반민족행위자 본인이 직접 일제에 협력한 행위에 대해 공개 사죄한 경우는 이항녕이 거의 유일하다는 사실이다.(p.231)” 일제 때 하동군수와 창녕군수를 지낸 이항녕은 해방 이후 수시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공개 사죄했는데, 1977년 낸 자신의 수필집 낙엽의 자화상이 그 대표적이다. 이 외에 뉴스타파의 요청에 응해 선대의 친일행적을 카메라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한 후손은 3명이었다.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김경근 목사, 홍영표 의원이다. 해방 후 70년이 지나도록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한 사람이 이렇게 적은 것은 이 땅에서 친일청산이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화해는 잘못을 솔직히 시인할 때 시작된다.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는 친일 청산의 문제는 지금도 유효하고 우리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견지해 나아가야 할 가치를 재정립하는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우리사회 윤리의 문제이자 규범에 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민규명위가 결정한 친일파 명단 1,006명 가운데 203명의 후손 1,177명을 찾아냈다. 이들은 대부분 일제로부터 귀족작위를 받은 수작자와 중추원 참의를 지낸 핵심 친일파의 후손이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연락을 했던 것은 이 가운데 350명이었다. 이메일로 접촉했던 278명 가운데 20명 정도가 답변을 보내왔고, 전화통화로는 38명 중 10명 남짓이었으며, 25명의 경우 자택과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역시 10명 정도만 만날 수 있었다.(p.288) 누군가 되묻지 않으면 잊히고 마는 게 기억이다. 기억은 늘 부정확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뒤틀리고 변조된다. 우리는 친일문제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기억하려 노력했는가?(p.295)” 친일 청산의 문제는 우리 사회 규범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30(사료관 건립)에는 정부는 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보존, 활용하기 위해 사료관 건립을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반민규명위가 활동을 접은 지 8년이 되도록 친일반민족행위 관련 사료관이나 역사관은 건립되지 않고 있다. 반민규명위와 친일재산조사위는 없어졌지만, 특별법은 폐지되지 않았고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상설기구의 설치는 어렵지 않다. 민족정신 및 시민의식을 바로 세우기 위해 앞으로 정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정치권력의 비호와 친일세력의 저항으로 인해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는 정의가 부정되고 가치가 전도된, 뒤틀린 역사의 길을 밟아왔다.(p.303)” 더 이상 정치적인 이유로 역사의 정의를 세우는 작업이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 친일 청산과 과거 극복의 과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현실의 문제를 교육을 통해 널리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 땅에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가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달의 사락 k******4 2023.09.10. 신고 공감 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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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의 역사, 과연 잊어도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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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그럴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과 실제 그렇다는 것을 보고, 읽는 것은 다르다.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방 이후, 독재 시대를 거쳐 민주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후손들이 계속 부와 명예,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것 말이다. <뉴스타파>가 6년 전에 시리즈로 보도했던 “친일과 망각”이라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책으로 읽으면서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가 뼈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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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그럴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과 실제 그렇다는 것을 보고, 읽는 것은 다르다.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방 이후, 독재 시대를 거쳐 민주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후손들이 계속 부와 명예,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것 말이다. <뉴스타파6년 전에 시리즈로 보도했던 친일과 망각이라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책으로 읽으면서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가 뼈아프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반민특위의 실패에서 비롯되어 계속해서 이어진 친일 청산 실패의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친일파의 후손들은 선대의 친일 행적으로 혜택을 받고 지금의 위치에 오르는 데 도움을 받은 것이 분명함에도 대부분 그런 친일 행적을 부인하거나 궤변을 늘어놓는다. 친일이 아니었다거나, 혹은 친일이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거나, 그 당시 누구나 그랬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인식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에 대한 폄훼로 이어지기도 한다(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대충 살아서 가난하다는 한 만화가에 대한 뉴스가 나올 때 정말 자괴감이 들었었다. 그걸 처벌할 수 없다는 뉴스는 허탈하기도 했다). 물론 조상의 행적에 대해서 후손을 대신 처벌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인식은 하고, 사과를 하는 것이 국가 공동체에 대해 그토록 큰 해를 입힌 이들의 후손으로서 마땅한 도리가 아닌가 싶다.

 

해방된 지 8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이렇게 친일 청산 얘기를 하는 걸 오래 지난 일이라고, 아직도냐고, 혹은 국민 통합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 지난 수십 년의 역사를 반성부터 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책에서 말하듯 외세가 상수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정리가 이뤄지지 못한다면 언제고 다시 그렇게 외세 편에서 서서 조국과 민족을 배반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질지도 모른다. 친일의 역사, 그냥 쉽게 잊어버려도 되는 게 아니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n*****m 2022.07.24.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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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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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망각김용진, 박중석, 심인보다람/2018.8.15.sanbaram   요즘 기울어진 운동장 이야기를 자주 듣고 한다. 우리에게 운동장은 언제부터 기울어진 것일까?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이 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린 사람들의 자손들은 대대로 가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데, 나라를 팔아먹고 그들 편에 서서 같은 민족을 착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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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망각

김용진, 박중석, 심인보

다람/2018.8.15.

sanbaram

 

요즘 기울어진 운동장 이야기를 자주 듣고 한다. 우리에게 운동장은 언제부터 기울어진 것일까?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이 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린 사람들의 자손들은 대대로 가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데, 나라를 팔아먹고 그들 편에 서서 같은 민족을 착취하는데 앞장서 떵떵거리던 이들과 그 후손들이 계속해서 잘살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이다. 지난 두 차례 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위원회가 활동했지만 미흡한 성과를 거뒀다. 기득권층을 이루고 있는 반민족적 행보를 보인자들과 그들 후손의 방해와 비협조로 아직까지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늦었지만 짚고 넘어가자는 의미에서 뉴스타파에서는 친일의 망각을 펴냈다. 저자 김용진은 1987년 말 KBS 기자가 돼 7개 정권하에서 관영과 공영을 오가는 풍상을 겪다. 2013년 뉴스타파 대표를 맡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로, 저서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이 있다. 공저자 박중석은 뉴스타파 기자. KBS 탐사보도팀 기자. ‘한국방송기자대상’, ‘임종국상등 여러 수상경력이 있다. 또 다른 공저자 심인보는 KBS 기자에서 2015년 뉴스타파로 자리를 옮겨 친일과 망각, 조세도피처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고, 2016년 파나마 페이퍼스, 이건희 성매매 사건을 보도 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을 고르라면 많은 이들이 통일된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한 것해방직후 친일부역 기회주의 세력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을 떠올린다. 친일의 망각99% 시민을 위한 비영리, 비당파, 독립 언론기관인 뉴스타파가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후손들의 실태를 조사 분석한 사실을 엮은 책이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확정 발표한 친일파 1,006명을 기준으로 그 후손들을 추적해 모두 1,177명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들의 학력, 직업, 거주지, 재산 등을 탐사해 인구사회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광복 70주년 특별기회 친일과 망각시리즈를 모두 4(201586, 10, 12, 14)에 걸쳐 방송했다. 5부로 구성된 디지털 스토리도 스페셜 웹페이(http://815.newstapa.org/#/)를 통해 선보였다. 그리고 자료를 엮어서 출간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이 친일 문제와 반민족 문제를 이해하고, 과거 청산을 넘어 과거를 극복해 나가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저자들의 공통된 소원이다.

 

“19473, 미군정 하의 남조선과도입법회의는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조례안을 상정해 7월에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법은 미군정이 인준을 거부해 사장되고 말았다.(p.29)” 1948922반민족행위 처벌법공포를 전후해 서울 시내와 국회엔 친일파청산을 주장하는 자는 빨갱이라는 내용이 빠라를 일제히 살포하여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1949년 초여름, 극우반공정국과 백색테러 공포가 남한 사회를 뒤덮은 가운데 이승만 정부는 집요하게 반민족행위처벌법개정공작을 시도했다. 결국 76일 공소시효를 19498월 말까지로 대폭 단축하는 개정안이 통과된다. 그리고 대통령의 방해로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이후 정치권에 반대하는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서 제재를 가하는 일은 일상화 되었다.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43월 제정됐고, 이 법률에 근거해 2005년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우이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2009년 말 활동을 종료할 때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모두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명단과 그들의 친일행위를 확정 공개했다. 2005년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고, 이듬해 역시 대통령 직속 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설립됐다. 이 위원회가 4년간 조사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160여명이었고, 이들에게서 국고로 환수한 재산은 여의도 면적의 1.3배가량인 천여만 제곱미터에 달했다.(p.41)” 이것이 2차 반민특위 출범과 활동 내용이다. 이 조사를 통하여 친일파 후손들 가운데 상당수가 우리 사회의 최상위 계층에서 활약하는 잘 나가는사람들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의 비율이 높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지금의 위치에 올라가는 데는 선대로부터 받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자산들이 결정적인 밑거름이 됐다. 그 자산들은 대부분 그들의 선대가 나라를 팔고 종족을 배반한 대가로 획득한 것이다. ‘훌륭하신할아버지 덕에 지금의 지위를 획득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그 할아버지를 친일파라고 비난하는 자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반역사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친일 후손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정치인이 박근혜와 김무성이리고 할 수 있다.

 

상훈 기록은 대란민국의 굴곡진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훈장의 종류는 모두 12개다. 국민훈장, 보국훈장, 체육훈장, 건국훈장 등등. 하지만 민주라는 명칭의 훈장은 없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 분야에 공적을 세워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는 국민훈장에도 민주라는 문구는 없다. 대한민구 상훈법에도 민주를 찾아볼 수 없다. 서훈의 기록에도 이한열과 박종철 등 민주주의에 목숨을 바친 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훈장은 친일과 독재 세력에게 관대했고, 민주 인사들에게 인색했다. 대한민국 훈장은 이제 민주주의로,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p.223)” 대표적인 인물이 악질 친일경찰의 대명사 노덕술이다. 수많은 독립 운동가를 체포하고 고문했던 그는 일제로부터 훈 8등 서보장까지 받은 인물이다. 노덕술은 해방 조국에서도 반민특위 활동을 적극 방해하는 등 반민족 행위를 지속했다. 이승만은 그에게 무려 3개의 훈장을 줬다. 노덕술은 1950년과 51, 533차례 무공훈장을 받는다. 소속기관은 육군본부 헌병사령부였다. 일제 헌병으로 역시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신상묵도 모두 8개의 대한민국 훈장을 받는다. 모두 17명의 경찰이 37건의 대한민국 훈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이승만은 자기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친일반민족자들에게 많은 훈장을 남발한 대표적인 대통령이 되었으며, 나아가 우리민족에 죄를 지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 역시 일본군 장교로 임관하며 혈서로 충성을 맹세한 그가,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 많은 친일파와 그 후손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협력 없이 지배 없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조선인 앞잡이들의 협력이 없었다면 일제의 식민 지배도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이항녕은 해방 이후의 여생 동안 계속 강조했다. 안타까운 것은 해방 이후 친일반민족행위자 본인이 직접 일제에 협력한 행위에 대해 공개 사죄한 경우는 이항녕이 거의 유일하다는 사실이다.(p.231)” 일제 때 하동군수와 창녕군수를 지낸 이항녕은 해방 이후 수시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공개 사죄했는데, 1977년 낸 자신의 수필집 낙엽의 자화상이 그 대표적이다. 이 외에 뉴스타파의 요청에 응해 선대의 친일행적을 카메라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한 후손은 3명이었다.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김경근 목사, 홍영표 의원이다. 해방 후 70년이 지나도록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한 사람이 이렇게 적은 것은 이 땅에서 친일청산이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화해는 잘못을 솔직히 시인할 때 시작된다.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는 친일 청산의 문제는 지금도 유효하고 우리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견지해 나아가야 할 가치를 재정립하는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우리사회 윤리의 문제이자 규범에 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민규명위가 결정한 친일파 명단 1,006명 가운데 203명의 후손 1,177명을 찾아냈다. 이들은 대부분 일제로부터 귀족작위를 받은 수작자와 중추원 참의를 지낸 핵심 친일파의 후손이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연락을 했던 것은 이 가운데 350명이었다. 이메일로 접촉했던 278명 가운데 20명 정도가 답변을 보내왔고, 전화통화로는 38명 중 10명 남짓이었으며, 25명의 경우 자택과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역시 10명 정도만 만날 수 있었다.(p.288) 누군가 되묻지 않으면 잊히고 마는 게 기억이다. 기억은 늘 부정확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뒤틀리고 변조된다. 우리는 친일문제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기억하려 노력했는가?(p.295)” 친일 청산의 문제는 우리 사회 규범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30(사료관 건립)에는 정부는 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보존, 활용하기 위해 사료관 건립을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반민규명위가 활동을 접은 지 8년이 되도록 친일반민족행위 관련 사료관이나 역사관은 건립되지 않고 있다. 반민규명위와 친일재산조사위는 없어졌지만, 특별법은 폐지되지 않았고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상설기구의 설치는 어렵지 않다. 민족정신 및 시민의식을 바로 세우기 위해 앞으로 정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정치권력의 비호와 친일세력의 저항으로 인해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는 정의가 부정되고 가치가 전도된, 뒤틀린 역사의 길을 밟아왔다.(p.303)” 더 이상 정치적인 이유로 역사의 정의를 세우는 작업이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 친일 청산과 과거 극복의 과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현실의 문제를 교육을 통해 널리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 땅에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가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달의 사락 k******4 2018.09.02. 신고 공감 5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친일과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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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을 고르라면 많은 이들이 ‘통일된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한 것’과 ‘해방직후 친일부역 기회주의 세력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을 떠올린다. <친일의 망각>은 99% 시민을 위한 비영리, 비당파, 독립 언론기관인 뉴스타파가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후손들의 실태를 조사 분석한 사실을 엮은 책이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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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을 고르라면 많은 이들이 통일된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한 것해방직후 친일부역 기회주의 세력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을 떠올린다. 친일의 망각99% 시민을 위한 비영리, 비당파, 독립 언론기관인 뉴스타파가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후손들의 실태를 조사 분석한 사실을 엮은 책이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확정 발표한 친일파 1,006명을 기준으로 그 후손들을 추적해 모두 1,177명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들의 학력, 직업, 거주지, 재산 등을 탐사해 인구사회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광복 70주년 특별기회 친일과 망각시리즈를 모두 4(201586, 10, 12, 14)에 걸쳐 방송했다. 5부로 구성된 디지털 스토리도 스페셜 웹페이(http://815.newstapa.org/#/)를 통해 선보였다. 그리고 자료를 엮어서 출간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이 친일 문제와 반민족 문제를 이해하고, 과거 청산을 넘어 과거를 극복해 나가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저자들의 공통된 소원이다.

 

“19473, 미군정 하의 남조선과도입법회의는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조례안을 상정해 7월에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법은 미군정이 인준을 거부해 사장되고 말았다.(p.29)” 1948922반민족행위 처벌법공포를 전후해 서울 시내와 국회엔 친일파청산을 주장하는 자는 빨갱이라는 내용이 빠라를 일제히 살포하여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1949년 초여름, 극우반공정국과 백색테러 공포가 남한 사회를 뒤덮은 가운데 이승만 정부는 집요하게 반민족행위처벌법개정공작을 시도했다. 결국 76일 공소시효를 19498월 말까지로 대폭 단축하는 개정안이 통과된다. 그리고 대통령의 방해로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이후 정치권에 반대하는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서 제재를 가하는 일은 일상화 되었다.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43월 제정됐고, 이 법률에 근거해 2005년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우이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2009년 말 활동을 종료할 때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모두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명단과 그들의 친일행위를 확정 공개했다. 2005년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고, 이듬해 역시 대통령 직속 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설립됐다. 이 위원회가 4년간 조사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160여명이었고, 이들에게서 국고로 환수한 재산은 여의도 면적의 1.3배가량인 천여만 제곱미터에 달했다.(p.41)” 이것이 2차 반민특위 출범과 활동 내용이다. 이 조사를 통하여 친일파 후손들 가운데 상당수가 우리 사회의 최상위 계층에서 활약하는 잘 나가는사람들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의 비율이 높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지금의 위치에 올라가는 데는 선대로부터 받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자산들이 결정적인 밑거름이 됐다. 그 자산들은 대부분 그들의 선대가 나라를 팔고 종족을 배반한 대가로 획득한 것이다. ‘훌륭하신할아버지 덕에 지금의 지위를 획득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그 할아버지를 친일파라고 비난하는 자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반역사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친일 후손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정치인이 박근혜와 김무성이리고 할 수 있다.

 

이달의 사락 k******4 2018.10.2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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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 외] 친일과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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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망각』은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을 통해서 만난 책이다. 예스24에서는 서평을 원하는 독자에게 이 책에 대한 기대평을 요구했고, 나는 이런 댓글을 남겼다.​지금까지 읽은 책이 수천 권, 리뷰를 쓴 책만 1500권 정도 될 것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고른다면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이었지요. 이광수, 최남선, 김동인, 유진오, 서정주, 주요한 등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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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망각은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을 통해서 만난 책이다. 예스24에서는 서평을 원하는 독자에게 이 책에 대한 기대평을 요구했고, 나는 이런 댓글을 남겼다.


지금까지 읽은 책이 수천 권,

리뷰를 쓴 책만 1500권 정도 될 것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고른다면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이었지요.

 

이광수, 최남선, 김동인, 유진오, 서정주, 주요한 등

교과서에 나오는 시인과 작가 상당수가

친일 문학가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고 놀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이 여전히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문단의 어른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놀랐습니다.

 

친일도 문제지만,

그 행위를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은 더 큰 문제겠지요.

하기는 일본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쓴 사람이

18년 동안 권좌에 있었고,

그것도 부족해서 그 딸이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을

눈뜨고 지켜보아야 했던 슬픈 나라기는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리뷰가 써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대열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고요.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은 댓글 그대로였다. 이 책을 꼭 만나고 싶었고, 정말 열심히 읽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펼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아쉬움 속에 책장을 넘기면서 미안한 마음으로 리뷰를 작성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꼭 만나고 싶었던 책이었고, 열심히 읽은 뒤에 내 생각을 정성껏 담고 싶었다. 더구나 8.15 광복과 8.29 경술국치가 함께 있는 8월이 아닌가. 책을 받았을 때는 의욕이 넘쳤으나 날은 더웠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밀려 있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기한을 어겼고, 기억력이 무디다 보니 읽은 내용마저 잊기가 다반사였다. 좋은 책을 만든 지은이들과 출판사에 죄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둘째, 읽는 내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이 분한 것이 아니고, 친일파가 출현한 것에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파사현정(破邪顯正),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었다. 을사오적이나 그들의 후손 중에 민중의 심판을 받은 이들은 한 명도 없고, 해방된 조국에서도 친일 역적에 대한 응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쓰고 군인이 된 자와 가족이 어떻게 살았고 살고 있는지는 많은 국민이 알고 있지 않나? 일제의 주구가 되어 일본을 칭송하던 신문들은 지금도 족벌언론이 되어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그들의 후손들 중에 더러운 조상의 죄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참회한 사람은 다섯 손가락 내외에 불과하다니 이럴 수가 있겠는가 

 

셋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반성을 모르는 친일 세력에 대한 응징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최소한 객관적이고 공식적으로 친일파로 공인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각급 학교 교과서에 반드시 소개하고, 중학교 이상에서는 매년 1회 이상은 정기고사에서 출제했으면 좋겠다. 이런 유형의 문제가 어떨까 

올바른 평가와 기록도 중요하지만, 자라는 학생들에게 친일 역적들의 죄상을 확실하게 알려줌으로써 다시는 매국노들이 등장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종북좌익에 대해 생각하는 이상으로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들에게도 분노했으면 좋겠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친일 청산을 제대로 못한 우리의 현실로 인해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학생 이상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중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y******3 2018.09.17.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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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 외, 『친일과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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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기억과 망각 사이- 김용진 외, 『친일과 망각』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였다. 광복(光復)은 빛이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일을 사람들은 빛이 돌아온 상황으로 표현한 셈이다. 광복된 지 70년이 넘은 현재 우리는 과연 빛이 회복된 사회를 살고 있을까? 『친일과 망각』(다람, 2018)에서 지은이들은 친일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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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기억과 망각 사이

- 김용진 외, 『친일과 망각』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였다. 광복(光復)은 빛이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일을 사람들은 빛이 돌아온 상황으로 표현한 셈이다. 광복된 지 70년이 넘은 현재 우리는 과연 빛이 회복된 사회를 살고 있을까? 『친일과 망각』(다람, 2018)에서 지은이들은 친일파들이 여전히 건재한 한국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친일파는 민족을 배신한 사람들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유지되고 있으면 모를까, 일제가 패망한 지 70년이 넘었는데도 우리 사회는 왜 아직도 친일파 청산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일파들은 처벌받기는커녕 이승만 정부에 다시 등용되어 한국 정부의 핵심 요직을 차지했다. 1948년 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어 친일파 처벌을 위한 법적 단서를 마련하기도 했지만, 친일파 인물들을 받아들인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를 주도한 국회의원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친일 문제를 이념 문제로 흐림으로써 친일파들이 빠져나갈 길을 마련한 것이다.

 

70년이 지난 시간 속에서 친일은 이제 망각의 그늘 속으로 묻혀가고 있다. 친일파 자손은 떵떵거리며 살지만, 독립군 자손은 3대가 망한다는 소문이 한국사회를 우울하게 감돌고 있다. 하긴 소문이 아니다. 이 책에 드러나듯 친일파 후손들은 조상 덕으로 여전히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은이들 말마따나 조상들이 저지른 죄를 그 후손들에게 적용하는 건 옳지 않다. 친일파가 죄를 지은 것이지 친일파 후손이 죄를 지은 것은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친일을 한 인사들은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 무덤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을 살리지 않은 한 그들에게 죄를 묻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죄를 물을 사람이 죽었는데도 지은이들은 왜 친일파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일까? 친일 문제는 단순히 민족반역에 대한 죄를 묻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한 나라의 가치 규범을 묻는 문제와 직결된다. 민족을 배신한 사람들이 해방 이후에도 떵떵거리며 사는 나라를 우리는 과연 마음속 깊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친일파 자손들은 할아버지는 애국자였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역사 왜곡이다. 집안 문제라는 말로 정당화될 수도 없다. 할아버지가 애국자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자손들은 자신이 현재 누리는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할아버지가 친일을 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증거를 대면 겉면으로 속면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공과(功過)를 구분해서 역사적 인물을 평가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 ‘할아버지가 친일파면 그 시대 중산층은 모두 친일파라고외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친일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새삼 알게 된다. 지은이들이 조사한 1177명의 친일파 후손 가운데 카메라 앞에서 공적으로 조상들이 저지른 친일을 사과한 사람들은 단 3명이었다. 익명으로 사과를 한 후손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후손들은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발을 뺐다. 이미 지난 일을 들추어내는 정치적 의도를 묻는 이들도 있었다. 정치인 김무성이 대표적이다. 그는 아버지 김용주의 친일 경력이 드러나자 친일을 문제 삼는 이들을 좌파로 몰았다.

 

한국전쟁은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친일파라는 흔적을 지우는 기회로 적극 활용했다. 이들은 한국전쟁에서 전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무더기 훈장을 받는다. 대표적인 인물이 악질 친일경찰의 대명사 노덕술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고 고문했던 그는 일제로부터 훈8등 서보장까지 받은 인물이다.

노덕술은 해방 조국에서도 반민특위 활동을 적극 방해하는 등 반민족 행위를 지속했다. 이승만은 그에게 무려 3개의 훈장을 줬다. 노덕술은 1950년과 51, 533차례 무공훈장을 받는다. 소속기관은 육군본부 헌병사령부였다. 악질 친일파인 그가 대한민국 훈장을 받은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노덕술은 일제로부터 훈8등 서보장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지만, 해방 후 대한민국 훈장을 받은 사실은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215~216)

    

친일 문제를 이념 문제로 돌리는 방식은 친일파를 비호하는 세력이 주로 써먹던 행태였다. 일제 강점기에 악질 경찰로 이름을 알렸던 노덕술은 해방 후에도 살아남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빨갱이를 타도한 공로를 인정받은 그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친일 경력을 강력한 반공정신으로 은폐한 셈이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이승만 정권은 이런 친일파를 비호했다. 훈장으로 이승만은 친일파 세력을 얻었고, 친일파는 신분 안정을 도모했다. 친일 문제를 좌파 논리로 몰아붙이는 현상은 이리 보면 참으로 뿌리가 깊다. 돌려 말하면 친일 문제에 부담을 느끼는 권력자들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많다는 것이 된다. 지은이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대상 1177명 가운데 소위 명문대학을 나온 친일파 후손들은 30%가 넘었다. 27%가 외국 유학을 갔다 왔다고 한다.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친일파 후손들은 사회 기득권 세력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많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에 비해 독립군 자손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이 책 5장에서 지은이들은 심산 김창숙 선생의 후손들이 해방 조국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한다. 첫째 아들 김환기는 아버지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고문 후유증으로 죽었다. 불과 19살이었다. 둘째 김찬기 또한 독립운동을 했는데, 임시정부가 있던 중경으로 망명하던 도중 사망했다. 31살의 젊은 나이였다. 셋째 김형기는 해방 이후까지 살아남았지만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해 좋은 직업을 얻지 못했다. 말년의 김창숙 선생이 친일파 이명세에게 성균관대학교 총장직에서 축출당한 이후, 그는 자동차 운전사를 하며 아버지를 모셨다. 당시 세상 사람들이 심산 아들이 운전사 노릇이나 한다며 비웃었다고 한다. 유명 대학을 나와 유학까지 떠난 친일파 자손들과 비교해 보라.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소문이 나돈 것도 결국은 이런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하겠다.

 

세상 잘 만난(?) 친일파들이 일제 때는 일본 천황에 충성을 하고, 해방 이후에는 독재 권력을 충성을 하며 보신(保身)하는 사이, 친일 청산을 외치던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그들에게 내밀려 역사의 그늘 속으로 내쫓겼다. 이승만과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들은 친일파를 이용하여 독재 권력을 공고히 하려고 하였다. 악질 경찰인 노덕술은 이승만 정부에서 3번이나 무공훈장을 받았고, 독립군을 법으로 처벌한 판사는 해방 이후 대법관 자리에까지 올랐다. 대한민국 정부가 주는 훈장도 받았다. 지은이들 말마따나 훈장은 국가와 민족에게 헌신한 이들에게 바치는 최고의 영예다.”(223) 노덕술에게 국가와 민족은 한국일까, 일본일까? 독립군에게 유죄를 선언한 판사들은 과연 자신들이 살아온 삶을 한때라도 뉘우치기나 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대법관까지 오를 정도라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다. 윤리니, 가치니 하는 것을 무시하고 어떻게든 성공만 하면 된다는 사회분위기 밑바탕에는 친일을 하고도 출세한 사람들이 이야기가 암암리에 깔려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 우리가 친일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친일파 후손들을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친일 문제는 단순히 과거를 청산하는 문제로 제한되지 않는다. 친일 문제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이어진다. 만약 남한 사회에서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사회를 살고 있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꾸만 친일파를 청산했다면이라는 가정을 한다. 그만큼 친일 문제는 한국사회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지은이들은 말한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정치권력의 비호와 친일세력의 저항으로 인해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303)라고. 청산되어야 할 일이 청산되지 않으면 그것은 고스란히 후손들이 짊어질 몫이 된다. 해방 후에 곧바로 친일 청산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지금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이 일에 매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부정으로 얼룩진 과거=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이 얼마나 소중한지 친일 문제는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인 한홍구는 검찰이나 경찰 등 권력 기관에서 친일파가 만들어 놓은 구조가 어떻게 전수되고 어떻게 연결되어 지금까지 이르렀는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302)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친일파가 만들어놓은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겉으로는 일제로부터 벗어났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일제 식민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국가에 공을 세운 사람들이 잠든 현충원에도 훈장을 받은 친일파들이 묻혀 있으니 달리 말해 무엇 하겠는가? 지은이들은 진정한 화해를 위한 첫걸음으로 이 책을 내놓았다고 이야기한다. ‘진정한 화해는 기억할 것은 기억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기억할 것을 망각한 채로 화해를 얘기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친일 문제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살 미래의 가치가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사람이 떵떵거리며 사는 사회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불과 몇 년 전에도 우리는 일제 식민지 경험을 긍정하는 이론이 국정 역사 교과서에 반영되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왜곡된 역사인식을 담은 국정 역사 교과서는 폐지되었다. 학술회의장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외친 한국 역사학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한 개인이 저지른 일탈 행위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친일 문제를 이념 문제로 호도하는 사람들은 식민지 경험에서 한국 근대화의 길을 찾는다. 이리 보면 한국의 근대화는 친일 인사들을 등용한 정권의 업적이 되어버린다. 친일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역사 왜곡은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친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후손들에게는 늘 부담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겪는 이 고통을 뒷날 이 땅을 살 사람들에게 또 다시 물려주고 싶은가?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o*****s 2018.09.0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바른 역사에서 바른 정신이 나올 수 있다! 친일, 잊지 말자!
"바른 역사에서 바른 정신이 나올 수 있다! 친일, 잊지 말자!" 내용보기
올해 읽은 책 중 최고의 책입니다. 사실 부끄럽습니다. 역사를 좋아하며, 평소 역사를 단순히 좋아하고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닌 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바른 사람이 된다는 생각을 항상 했는데, 초판이 나올 때는 읽지 못했습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이 책이 2016년에 출간되었을 때, 회사 업무가 바빠서 또 개인적으로 회사 연수원에서 3개월을 있으면서 매체를 접할 수 없던 힘들
"바른 역사에서 바른 정신이 나올 수 있다! 친일, 잊지 말자!" 내용보기

올해 읽은 책 중 최고의 책입니다. 사실 부끄럽습니다.

역사를 좋아하며, 평소 역사를 단순히 좋아하고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닌 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바른 사람이 된다는 생각을 항상 했는데,

초판이 나올 때는 읽지 못했습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이 책이 2016년에 출간되었을 때, 회사 업무가 바빠서

또 개인적으로 회사 연수원에서 3개월을 있으면서 매체를 접할 수 없던 힘들고 바쁘던 시기라...독서를 멈춘 시기였습니다.

 

이 책의 초판은 그 후 신문기사 등을 통해 다이제스트만 한 번 대충 보고 친일파들을 고발한 흔한 책이겠거니...나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란 생각으로 넘겨버렸음을 반성합니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며, 이 분들이 제작하신 방송 영상도 유튜브를 통해 찾아봤습니다. 더욱 많이 읽혀야 할 책이며, 절대 책을 빌려주지 않는데 주변 친구,동료들에게 빌려주고 읽기를 권하겠습니다.

 

책 표지는 친일(親日)과 망각(妄却)이 한자로 심플하게 적혀 있는데 깨끗한 표지이기는 한데, 무언가...그 시대 친일파들 사진도 싣고 반대되는 독립운동가들 사진도 넣어서 좀 더 이슈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제 3판도 만들어 주시고, 그때는 디자인을 이슈성 있게 해주시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려봅니다.

 

저자들은 뉴스타파의 기자들입니다. 뉴스타파는 99% 시민을 위한 비영리, 비당파, 독립언론기관입니다. 우리 사회와 언론에서 반드시 짚어야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외면하는 사실을 취재 보도하는 우리 사회에 너무 필요한 언론사지만,

네이버에서 하루에도 수십만건의 기사와 글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광고의 힘'이 약한 언론이라 묻히고 마는...역설적인 그 언론...

 

개정증보판 말머리에 저자들을 찾아준 고등학생들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바로 그 이유입니다. 이런 책이 계속 만들어져야 하며, 계속 사람들이 읽고, 알고, 말하게 해야 하는 이유를 저자들이 머리말에 적어주셨습니다.

 

'역사는 과거의 산물이 아닌 미래의 기억'

이라는 저자들의 이야기를 떠나서 우리가 사는 현재가 곧 바로 과거의 연속이기 때문이고, 흔히 '헬조선'이다, '공정함을 잃은 한국', '조선시대보다 더한 신분제사회', '금수저,은수저'의 수저론이 나오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렇게 흘러가는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말은 어리석을 수도 있지만 '만약' 우리 제헌국회에서 '반민특위'활동이 제대로 이뤄져서 그 때 친일파들이 숙청되거나 적어도 공직에 진출하지 못하고, 반성하고 살아갔더라면...저자들이 말한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 등 총탄에 맞아 서거하거나 감옥을 간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을텐데...라는 말도 가슴에 와닿지만...

 

그보다 더 크게 오늘날 우리 청년들이 '10억 주면 감옥에도 갈 수 있다' '더 큰돈을 주면 나라도 팔 수 있다' 같은 그런 질문에 당당하게 정답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됐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건 왜 일까요?

친일파들이 입법, 행정, 사법, 학계, 예술계를 모두 호령하면서 그들이 필요한 이데올로기를 가르쳤고, 상황이 어렵더라도 정의롭고 정직해야 한다가 아닌,

너희도 우리가 있는 세상에 오고 싶지? 그럼 덜 바르게 살더라도 우리를 따라해 같은 그런 이데올로기는 생기지 않았을텐데...

친일했어도, 친일의 후손이라도 강남 부자로 돈만 많으면 이전의 지배층보다 더 호화롭고 잘 살 수 있고, 사회지도층처럼 행동 할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은 안 됐을텐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단재 선생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1993년 집권한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 또한 보수 우파의 집권 속에 흐지부지 됐고, 그 뒤 2000년대 들어 집권한 노무현 정권에서 구시대의 잔재를 깨트리는 새 시대를 여는 맏형이 되고 싶다는 의지에 친일 등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는 과정을 시작했으나, 세월의 흐름속에 또 일제 후손들이 이미 사회 요소요소, 각지에서 사회지도층이 되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큰 세력이 되어 조직적인 반격을 가해왔기 때문에 이 또한 절반의 성공에 그칩니다.

 

보수 우파에서 국부로 받들여 모셔야 한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철저한 반민특위 활동 저지, 자신의 정권 연장을 위해 친일파들과 타협하고, 오히려 그들을 중용했던 1940년대 어느 날 부터 우리나라는 잘못된 첫 단추를 꿰고 있었던 것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결국 끝까지 모든 단추가 틀리듯이...지금의 우리 현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첫 단추를 언젠가는 다시 제대로 꿰야 한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흔히 나는 원래 벼슬하던 사람이었고, 크게 협력하지 않았다. 지금 주장하는대로라면 직접적 독립운동가 말고는 모두 친일파다라는 주장...

하지만 우리 제헌국회와 저자는 분명히 말합니다. "악질적인 군수보다 선량한 도지사의 죄가 크다"  

그렇습니다. "사회지도층은 다양한 혜택과 사회적인 존경을 누리는 대신 더 큰 도덕적인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최소한 열정적으로 저항하지는 않더라도 소극적인 저항 또는 최소한 협력하지는 않았어야 했던 것입니다.

 

'육체가 속박된 노예는 적어도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정신마저 뺏기면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37P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정치인, 현직 사회 지도층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서 말하지 않더라도...우리 사회는 이미 이들이 항변하는 친일 10대 궤변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비정상적 사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회적인 문제, 도덕이 무너진 원인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47P

1. 색깔론, 친일 청산을 주장하는 사람은 빨갱이다...머 이 이야기는 적어도 오늘은 할 필요가 없을 미친 이야기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 것입니다.

2. 공과론, 비록 친일했으나 다른 공이 많으니까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는 말...그 사람의 공(?)은 물론 인정해줘야 하지만 그것이 공-과=+의 공식이 성립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사람의 공만큼 과 또한 분명 짚고 넘어가고 철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3. 공범론, 그 때 친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고요?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처절하게 노력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 분들의 노력 때문이라도 우리는 친일에 대한 정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난주 제 고향인 안동에 다녀왔습니다. 집안에서 독립유공자만 수십명이 나온 학봉 김성일 가문, 임청각의 석주 이상룡 가문까지 가지 않더라도 수많은 이름없는 무명 병사들, 그들보다 덜배운,가난한 사람들이 만주에서 러시아에서 독립군으로 쓰러져갔습니다.

4. 망각론, 이미 지나간 일인데 그만 잊자. 자신들의 뛰어난 조상, 할아버지는 수백년 전 조상이라도 떳떳하게 이야기하면서...지금도 이야기하고 칭송하면서 집안에 있는 친일파만 쏙 빼고 이야기 한다? 그것은 망각이 아니고, 선택적 기억장애입니다. 

친일청산이 연좌제에 속한다...네,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죠. 우리는 프랑스,독일처럼 정확한 역사 청산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진실한 사과, 반성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끝나지 않아야 할 잘못입니다.

 

저자들은 철저한 취재로 현직 국회의원, 공직자들의 현재...

특히 친일 후손들이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인 서울대,연세대, 고려대를 가는 비율이 일반인의 45배를 넘는 현실,

친일파들이 남겨준 재산으로 전국 각지의 수많은 부동산과 서울지역의 저택을 소유한 사회 지도층이 오늘날 우리 국회의원들, 장차관, 교수님들이다.

 

그런 그들이 과거사 정리가 나올 때마다 당연히 조직적이며, 끈질긴 저항을 할 수 있었음은 당연하리라.

 

 독립운동가이며, 후에 성균관대 총장을 지내다 친일파 이명세 등에 쫓겨 나와 힘들게 말년을 보낸 심산 김창숙 선생은 아들 2형제는 독립운동 중에 잃고, 막내는 자신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게 만들었다.

심산이 막내아들에게 써 준 시가 가슴을 때렸다.

 

 '내 아들이 차를 끈다고 세상 사람 모두가 비웃고 조롱하네

 다시 그 아비를 비방하여 거짓꾸밈, 잘하게

 비웃고 헐뜯은들 무엇을 상심하랴, 편안한 마음으로 생업에 종사하라

 가정의 생계를 돌보는 일 없ㄷ면 하루아침에 당장에 망하고 말 것이라

 옛적에 연암공은 전을 지어 기렸다.

 예덕선생을 너희들 조금도 슬퍼하지마라

 천한 직업 그것이 바로 천직이니라

 

 심산은 그의 아들에게 바른 이름, 당당함을 물려줬을 수는 있지만 그는 후손들에게 결국 친일파 밑에서 일하고 재산적, 금전적으로 심지어 요즘은 명예적(그들의 현재 사회적 지위가 높으니까) 종속당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런 현실이 바로 잡아져야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도 총과 칼을 들고, 또는 정신으로,

문화로 국난에 어려움에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멀리 가지 않고, 교통사고나 주변에 어려움에 눈감는 사람이 아닌 서로 도와주고, 선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착하게 살면 결국 복받고 성공한다는 역사적 선례를 남겼다면 말이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남을 속이지 않고, 해로운 일을 하지 않고 모두가 바른 생활을 할 수 있는 도덕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역사'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망각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사회 정설처럼 말하는 이 말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 이 말이 너무 가슴 아프다. 

 많은 사회지도층이 '우리 할아버지는 친일이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었다' '왜 이제와서 그러느냐'고 할 때

 現 민주당의 원내대표인 홍영표 의원의 반성과 사과가 눈에 들어온다.

 

 '부끄러움을 아는 후손, 용서를 구하는 후손으로 사는 것이 그나마 죄를 갚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독립운동한다고 쫓겨다니면서 자식들 교육을 제대로 시켰겠습니까, 재산을 물려줬겠습니까, 그래서 제대로 된 나라라면 그분들에 대해 국가가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292~293P

 

 그렇다. 우리는 그분들을 잊지 않아야 하고, 또 친일행위를 친일 행동을 한 당시의 사회 지도층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보다는 경제가 우선이야, 안보가 우선이야 라는 말로 애써 망각하고 있지 않은가?

 

 해방 이후 우리는 제대로 된 역사적 정리를 하지 못했다. 이로써 뒤틀린 역사의 가치가 전도된, 뒤틀린 역사의 길을 밟아왔다. -------------------303P

 

 이제부터라도 바로 하면 된다. 이런 책을 많이 발간하고, 많이 읽고 잊지 않으면 된다.

그렇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우리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지금 모든것을 내놓으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적어도 진실하고 진솔된 사과, 그것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친일로 누리는 지금의 이익을 사회 어두운 곳에 조금씩 나누어 준다면 더 할 나위 없겠다.

 

벌써 4년전이다. 요즘 무슨 아파트 광고로 한창 사용되는데,,,

샹하이 출장중에 샹하이 임시정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출장 가는 지하철 노선에 있어

점심을 20분만에 후딱 먹고 이동 중에 20분 정도 짬을 냈다.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 곳...그 곳을 보며 너무 가슴 아팠다.

우리는 친일도, 독립을 위한 열정도 모두 망각하고 있지 않은가...

아직 100년이 채 안된 역사다.

우리 할아버지의 역사다. 잊지 말고, 기억하자. 그리고 행동하자.

 

 

 

좋은 책을 알게 해준 예스 24에 감사드리며, 이런 책을 만들어 주신 저자 3분의 기자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d*****2 2018.09.01.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