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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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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필요해서 집어 들었다. 한국은행조사부 자료가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 필요해서.1969년 서울 청계천 판자촌 일대, 마장동, 숭인동, 창신동, 현저동, 하월곡동의 인류학 보고서다. 당시 이렇게 촘촘하게 판자촌 일상을 적어둔 자료가 드물어서 매우 귀한 자료다.1969년 농촌 이주 연구를 하던 하버드대학교 브란트 박사가 서울에 9개월 간 체류하면서 판자촌 일대를 조사했다.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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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필요해서 집어 들었다. 한국은행조사부 자료가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 필요해서.

1969년 서울 청계천 판자촌 일대, 마장동, 숭인동, 창신동, 현저동, 하월곡동의 인류학 보고서다. 당시 이렇게 촘촘하게 판자촌 일상을 적어둔 자료가 드물어서 매우 귀한 자료다.

1969년 농촌 이주 연구를 하던 하버드대학교 브란트 박사가 서울에 9개월 간 체류하면서 판자촌 일대를 조사했다. 함께 연구를 수행하던 당시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생과 사회사업 조사자가 하숙생 신분으로 거주하면서 매일 일지를 썼다. 미국에 영어 번역이 되었던 최협의 마장동 조사 일지(한국어본 분실)가 다시 한국말로 번역 되어 생자료로 그대로 실렸다.

농촌이주자가 대부분. 호남 출신이 많았고 그들은 '연줄'을 잡고 올라와 판자촌에 자리를 잡았다. 1960년대 중반에 호남에 극심한 가뭄 이후에 이촌 현상에 가속도가 붙었다. 농촌 문제와 도시 문제가 바짝 붙어 있다.

서울의 판자촌 생활이 농촌생활보다 나을 것도 없었지만 끊임없는
이출 요인에 중요한 질문을 던져준다. 빈농 이주도 많았지만 중농 이상의 이주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게다가 서울의 판자촌 생활이 농촌 생활보다 더욱 축소되고 불결한 면도 있음에도)

브란트 박사는 매스미디어(라디오)와 외부 자극(친구, 친척, 군대경험 등) 을 통한 도시 생활(소비 생활)에 대한 대상만족(vicarious satisfiaction)의 문제를 당시에 제기했다.

이촌향도의 문제를 너무 경제적 맥락에서만 해석했을 때 연구에 빈약함이 있을 것이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지 않는 아주 복잡한 존재니까 말이다.

여하튼 숫자를 좀 적어둔다.

1969년 당시 마장동 일기에는

15세 미숙련, 미성년자 소년 노동자의 월급이 3,000원 (근무 일수가 나오지 않지만 아마 격일 휴무가 아니었을까.), 미숙련 여성 성인 노동자 월급 4,000원. 
도로공사자 인부의 일당이 370원, 미장 기술자 일당 800원. 목재공장 노동자 한 달 30,000원, 리어카 한 대가 7,000원, 
부모님 제사 비용 한 번 지낼 때마다 3~4,000원.
갑자기 병에 걸린 아기가 병원에 갔을 때 병원비가 6,000원 (그러나 사정사정을 해서 2,000원으로 깎았으나 다음날 사망). 천변에 탯줄이 안 끊긴 태아들이 종종 버려짐.

숭인동(창신동 포함) 일기에는

숭인동 봉제공장 미스강(경력 4년) 봉급 7,000원(15시간 근무), 미숙련 여성 노동자 옥이와 순자 월급 4,000원, 매달 방세가 1,500원.

야경비(당시 세금을 이런 식으로 통반장이 걷어감) 매달 20원(세입자는 10원), 배달 물값 15원 (배달 하지 않으면 2원)

권투경기 있는 날 텔레비전 시청료 어른 10원 어린이 5원. 평소엔 어른 5원 아이들은 2원

생선장수 :

생선 1마리 10원, 12마리에는 100원, 80마리 한 상자 도매값 400원에서 500원.

a****6 2017.10.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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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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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적어도 한 번은 청계천을 찾는다. 지난해에도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던 11월 등 축제 관람을 위해 청계천을 거닐었다. 곳곳이 연인이어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어려움이 많았던, 하지만 청계천이 처음부터 젊은이들이 낭만을 노래하고 직장인들이 도심 속 여유를 찾아 방문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중이던 시절에 청계천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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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적어도 한 번은 청계천을 찾는다. 지난해에도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던 11월 등 축제 관람을 위해 청계천을 거닐었다. 곳곳이 연인이어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어려움이 많았던, 하지만 청계천이 처음부터 젊은이들이 낭만을 노래하고 직장인들이 도심 속 여유를 찾아 방문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중이던 시절에 청계천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 전에는 흉물스럽던 고가도로가 존재했었다. 지금은 ‘흉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청계천이 복개되던 1977년 무렵으로 돌아간다면 복개는 피할 수 없는 선택과도 같았다. 서울 한복판에 즐비했던 판자촌은 나날이 발전하는 국가 경제와 영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청계천이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이었더라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필이면 서울, 그것도 중심부여서 정부는 어떻게 해서라도 청계천을 변화시키고자 힘썼다.

지금은 인위적이나마 물이 흐르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청계천이 한때 사람들의 보금자리였음을 뒤늦게 기억해본다. 그렇다면 그 때 그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람을 가장 먼저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특정한 정책 등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어쩌면 사람을 배제했기에 청계천 복개가 그토록 쉬웠던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은 흥미로운 시간 여행을 나에게 허락했다. 1969년 저자는 하버드 대학 인류학 연구자였던 브란드 박사의 조교로 청계천을 찾았다. 당시 그가 행한 것은 참여관찰이었다. 마장동 22통의 한 판잣집에 방을 얻어 일정기간 동안 살면서 같은 공간에 거주하는 이들을 관찰하고 직접 대화를 나누며 기록으로 남겼다. 따라서 기록 속에는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고, 그들의 삶 세세한 부분이 담겼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판잣집에 기거하는 이들의 대다수는 타 지역에서 서울로 이주해온 경우에 해당했다. 도시화가 격렬히 진행되고 있던 시점에서 서울은 모든 꿈을 이룰 수 있는 환상적인 공간처럼 비추어졌을 터. 자신들보다 먼저 서울로 이주했던 이들이 보여주곤 했던 금의환향은 변화하는 삶에 대한 그들의 욕구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가 않았다. 좁고 짧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열악한 집들이 즐비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변소 앞에는 아침이면 긴 줄이 생성되었다. 농사를 짓다 도시로 올라온 이들에게 마땅한 일자리가 주어질 리 만무했다. 시골에서는 제법 공부를 했으며 재산을 가졌던 이들도 판잣집에 몸을 들인 후로부터는 그저 그런 인생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도시가 농촌보다 낫다는 평을 아끼지 않았다. 대부분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지 않겠노란 응답을 했고, 돌아가겠다 말을 한 이들도 일단은 도시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농촌에 정착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도시는 농촌보다 빈부의 격차가 컸다. 그로 인한 좌절도 물론 컸겠지만, 자신보다 월등히 잘 사는 사람들의 삶은 자신도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다. 그리고 도시는 농촌보다 확실히 활기찬 곳이었다. 비록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는 데엔 어려움이 있었지만, 번 돈을 사용할 만한 곳을 찾는 데엔 어려움이 없었다.

판자촌은 일종의 회색지대였다. 농촌 사람들이 옮겨온 탓에 아직은 정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어려움을 당하면 사람들은 십시일반 모금을 벌였다. 시시콜콜 제 살아가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도 잦아 서로의 삶에 대한 비밀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들은 도시민의 냉정함도 받아들였다. 고향에서라면 쌀집 바로 옆에 쌀집을 개업하는 일은 차마 못했을 것인데,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뭔들 못하겠느냐는 사고에 익숙한 그들은 금기를 어겼다. 또한 너무 깊이 관여했다가는 자신에게 화가 미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곱씹기라도 했던 건지, 관심을 가지는 듯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외면했다. 일종의 과도기적 단계에 고착되어 버린 풍경. 정부에서 힘을 가해 복개하지 않았더라면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삶을 통해 그들은 도시와 농촌 양자의 문화를 아우르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정부는 과거에는 그토록 외면하고 억눌렀던 판자촌의 기억도 복원하려 들었다. 궁핍한 삶은 현재의 번영을 부각시키는 데에 이용할 수 있는 좋은 소재였다. 의도에 따라 청계천 판자촌엔 각종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입혀졌다. 그렇지만 판자촌은 ‘무능하고 게으르고 더럽고 병들고 범죄에 찌든’ 공간이 결코 아니었고, 그 곳의 삶 역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놀라울 만큼 정상적’이었다.

하나의 문제를 평가함에 있어 언제나 우린 타자의 시선을 고수해왔다. 청계천 문제도 마찬가지여서, 정비해야만 하는 곳이라는 관점을 강력히 피력해왔고, 그에 따라 지금까지의 도시계획이 전개되어 왔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더 이상 청계천에는 판자촌이 존재치 않는다. 30년도 더 되는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렸기에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부정과 그리움만으로는 청계천이라는 공간에 대한 복원은 이룰 수 없다. 사람이 빠지면 모든 이야기는 공허하기 마련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불안을 가지고 있던 보통사람들의 목소리야말로 청계천 판자촌 복원을 완성시킬 수 있는 열쇠라 하겠다. 

이달의 사락 q*****2 2012.09.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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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청계천,숭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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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미국의 인류학 학생이 와서 청계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조사한다. 글구 미국에 돌아가 이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인류학 교수가 된다. 이 내용은 당시 조사알바를 하던 학생이 세월이 지나가 그 기억을 찾아, 원고를 모아 책을 냈다.   내용은 매일매일 의 청계천, 숭인동에 살던 서민들의 생활을 기록했다.. 약간의 사진, 일본인,한국인이 찍은...과 함께.   청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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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미국의 인류학 학생이 와서 청계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조사한다.

글구 미국에 돌아가 이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인류학 교수가 된다.

이 내용은 당시 조사알바를 하던 학생이 세월이 지나가 그 기억을 찾아, 원고를 모아 책을 냈다.

 

내용은 매일매일 의 청계천, 숭인동에 살던 서민들의 생활을 기록했다..

약간의 사진, 일본인,한국인이 찍은...과 함께.

 

청계천  무허가 판자촌에 살던 대부분은 사람은 지방에서 상경해서,

청소부,목수,미용사, 작은 가게,좀약판매,채소장수,생선장수 등을 하며 살아 간다.

막걸리집과 화재로 집이 불타기도 하고, 상이군인...

 

막 70년대 6/25이후 막 경제성장이 시작될려던 찰라. 가발과 봉재,합판,수산물수출이 전부이던 시절..

당시의 생활상과 물가수준으로 짐작할 수 있다.

목수는 하루 700원 벌고 좀약팔면 300원, 배추 띄어다 팔면 500원 등등..

장씨,양씨..

 지금은 판자촌이 철거 되면서  봉천동,상계동등으로

흩어졌다..

당시 생활상을 차분히 짐작하게 한다.

당시 생활상은

 

YES마니아 : 로얄 d******3 2012.08.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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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관찰일기와 내 삶글 (판자촌 일기, 청계천 4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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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68   이웃 관찰일기와 내 삶글― 판자촌 일기, 청계천 40년 전 최협 엮음 눈빛 펴냄, 2012.2.18.     최협 님이 엮은 인문책 《판자촌 일기, 청계천 40년 전》(눈빛,2012)을 읽습니다. 마흔 해 앞서 최협 님이 대학생이던 때에 서울 청계천 둘레 쪽방에서 지내면서 이곳 사람들을 지켜보고 만난 이야기를 갈무리하여 엮은 책입니다. 이 책에는 최협 님을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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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68

 


이웃 관찰일기와 내 삶글
― 판자촌 일기, 청계천 40년 전
 최협 엮음
 눈빛 펴냄, 2012.2.18.

 


  최협 님이 엮은 인문책 《판자촌 일기, 청계천 40년 전》(눈빛,2012)을 읽습니다. 마흔 해 앞서 최협 님이 대학생이던 때에 서울 청계천 둘레 쪽방에서 지내면서 이곳 사람들을 지켜보고 만난 이야기를 갈무리하여 엮은 책입니다. 이 책에는 최협 님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청계천 둘레에서 판자촌 사람들과 어깨동무하던 발자취를 살필 수 있습니다. 다만, 최협 님이나 다른 조사자들은 ‘주민’은 아닙니다. ‘조사자’일 뿐입니다. 마을사람과 섞이기는 하되 마을사람처럼 일하지는 않습니다. 마을사람과 한 곳에서 먹고 자지만, 마을사람처럼 이곳에 뿌리를 내리지는 않습니다.


.. 1960년대에 10여 년 남짓 마장교 아래 청계천변에 머물며 생활을 꾸려 갔던 사람들의 삶과 그 모습은 우리의 기억에서 갑작스레 잘려져 나갔다. 그 결과 조국 근대화의 찬가가 울려퍼지던 당시 한국 사회의 그늘진 구석에서 힘겹게 살아갔던 이들의 자취나 흔적을 우리는 영영 다시 볼 수가 없게 되었다 … 오늘날 판자촌 주민에게 의욕을 불어넣는 새 이상의 모델은 자수성가로 성공한 비즈니스맨이다. 바꿔 말하면 판자촌민은 새 개인주의적 물질주의적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 도약적으로 전진하는 것 같으며, 적어도 전통의 쇠사슬을 벗어 버리는 데는 여타의 도시 주민보다 빠른 것 같다 ..  (19, 174쪽)


  《판자촌 일기》는 판자촌에서 함께 지내며 지켜본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웃들 삶을 지켜본 이야기도 ‘살아가는 이야기’라 할 테지만, 스스로 이곳에서 생계를 꾸리지는 않는 만큼 ‘내 이야기’는 없습니다. 모두 ‘다른 사람 이야기’입니다. 이곳으로 들어와서 이곳에서 생계와 살림을 꾸려야 하는 사람들 하루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적바림한 이야기입니다.


  요즈음에도 골목동네에서 방 한 칸 얻어, 골목동네 사람들 삶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이야기를 적바림하는 대학생이나 조사자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새는 중앙정부에서 ‘생활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을 붙여 새로운 인문지리학을 갈무리해서 책으로 선보이기도 합니다. 아파트로 바꾸려는 골목동네에 마지막까지 남아서 지내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거나 이들이 남긴 살림살이를 몇 가지 건사해서 전시회도 마련하고 박물관을 짓기도 해요.


  여러모로 뜻이 있다고 느끼지만, 어느 모로 보면 아쉽습니다. 재개발을 해서 아파트를 짓더라도, 골목동네 한쪽을 그대로 두면 굳이 박물관 새 건물을 안 지어도 됩니다. 골목집 몇 채를 그대로 두면 고스란히 박물관입니다. 골목집을 손질해서 ‘민박’이나 ‘여행자 숙소’로 삼을 수 있습니다. 골목집을 고쳐서 ‘마을도서관’으로 꾸밀 수 있습니다.


.. 장씨의 부인은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둑방의 마장동 판자촌은 서울에 있지만 실제로는 서울이 아니다. 시골보다 좋은 점이 하나도 없고, 만일 시골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사람이 아주 많다는 점이다. 자동차가 많아 좋은 점도 있지만 교통사고의 위험도 더 많고, 공기가 너무 나쁘다. 그래서 서울이 싫다.” 그녀는 또한 “나는 아직까지 창경원도 가 보지 못했다. 나는 서울의 중심가도 한번 가 보고 싶고, 좋은 곳을 다니며 구경을 하고 싶은데 아직 그렇게 하지 못했다. 돈이 없으니 구경을 다닐 형편이 되지 못하고, 그저 한숨만 나온다.” … 할머니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농사에 비하면 쉽고 재미있다고 한다. 할머니는 “농촌에서는 일은 힘든데 임금은 너무 낮다. 그래서인지 서울에 와 보니 모든 사람들이 농촌에서 올라와 있더라”는 말을 했다 ..  (52, 67쪽)


  풀로 지붕을 삼는 시골집을 몇 채 놓고서 ‘민속촌’을 꾸미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골집을 고스란히 살리는 민속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시골집을 모조리 없애고 나서 한참 뒤에야 ‘사진이나 자료 몇 가지를 바탕’으로 새롭게 짓기 일쑤입니다. 무엇보다, 풀로 지붕을 삼는 시골집이 예쁘게 있는 동안에 이 시골집이 ‘문화’이거나 ‘역사’이거나 ‘예술’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골목집도 이와 같아요. 가난한 사람이 모인 동네이건 아니건, 골목집을 문화나 역사나 예술로 제대로 느낀 이들이 거의 없어요. 예나 이제나 ‘철거 대상’으로 삼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도시 미관’을 망가뜨린다고 여깁니다.


  민속촌이 따로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모든 시골집이 ‘민속마을’이요 ‘전통마을’이니까요. 박물관을 따로 세울 까닭이 없습니다. 모든 골목집이 ‘박물관’입니다.


  한국사람이 즐겁게 마실을 하는 유럽 나라를 떠올립니다. 따로 으리으리하게 지어야 박물관이 아니에요. 여느 사람이 살아가는 여느 집이 바로 박물관 구실을 합니다. 수수한 집들이 쉰 해, 백 해, 이백 해, 오백 해를 흐릅니다. 고치거나 손질하거나 새로 지으면서 아기자기한 마을을 이룹니다.


.. 서울시에 속한 이곳이지만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는 집이 있다. 시내에서는 몇 년 동안 살아도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이사 온 사람이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오는 풍습이 있어 쉽게 사귈 수 있다. 서로 협력하는 일은 시골처럼 잘되지는 않으나 서울 깍쟁이처럼 인색하지도 않다 … 주민들 중에는 장씨와 이공엽 씨의 반대파가 몇몇 있는 것 같다. 제일 반대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시 당국과 손을 잡고 일을 하고 있는 각 동의 통장과 반장들일 것이다 … 이곳 주민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할머니도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고 약을 써서 고치는 것이 아니라 감기 정도면 아스피린을 먹을 줄 아는데 아무 때라도 병원에 갈 줄은 모르고 있다 ..  (83∼84, 133, 139쪽)


  오늘 짓는 아파트는 서른 해 뒤에 생활문화나 생활역사로 남을까 궁금합니다. 오늘 짓는 공장과 발전소는 쉰 해 뒤에 사회문화나 사회역사로 남을까 궁금합니다. 아마 백 해나 이백 해 뒤에는 4대강사업이나 ‘수도물 청계천’도 문화나 역사 대접을 받겠지요. 밀양에 송전탑을 밀어붙이는 모습도 삼백 해나 오백 해 뒤에는 오늘 우리 사회나 역사를 읽는 이야기로 삼을 테지요.


  일제강점기부터 얼마 앞서까지 ‘구비문학’을 모은다면서 적잖은 학자들이 시골과 골목을 돌아다녔습니다. 머지않아 구비문학을 더는 모을 수 없을 텐데, 구비문학을 모으지 못하면, 앞으로는 어떤 ‘여느 사람 이야기’를 모으려 할까요. 연속극을 보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추억을 구비문학으로 모으려 할까요. 자가용을 몰고 외국여행 다닌 사람들이 들려주는 경험을 구비문학으로 모으려 할까요.

 


  삶이 있기에 이야기가 있어 구비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자료를 모아 인문학을 이룹니다. 권력이나 이름이나 돈하고는 멀리 떨어졌으나, 이웃끼리 오순도순 아끼고 사랑하는 삶이 있어서 이야기가 샘솟았습니다. 책으로 엮든 논문으로 묶든, 삶이 있을 때에 이야기가 있어,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무언가 만들 수 있습니다. 인류학을 하든 인문학을 하든, 여느 사람들이 스스로 씩씩하고 꿋꿋하게 일구는 하루가 있을 때에, 이 하루를 발판으로 무언가 꾸밀 수 있습니다.


.. 내가 살고 있던 현저동 막바지의 집들은 대개가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서 서기도 어려운 낮은 지붕에 콜타르를 바른 단칸방이었다. 입구 바로 안에는 약간 마루를 낮춘 작은 부엌이 있고, 주실은 2∼3평의 온돌방이다. 판잣집은 가파른 비탈을 깎아낸 좁은 평지에 반쯤 허리를 걸치고 반은 1.5미터 내지 4.5미터 높이의 축대 위에 버티고 있다. 같은 평면 위에 정확히 들어앉은 집은 하나도 없고, 위태위태한 지름길이 바탈을 끼고 직로처럼 상하종행으로 퍼져나갔다 … 우리는 “나는 좀더 잘살고 싶다”는 말을 거듭해서 들었다. 이것은 농촌 지방민의 불만을 표시하는 하나의 보편적인 설명이다 ..  (158∼159, 163쪽)


  《판자촌 일기》처럼 ‘관찰일기’를 써도 인류학이나 인문학을 할 수 있습니다. 《판자촌 일기》는 1970년대 첫머리 서울 청계천 언저리 삶자락을 잘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학자들이 이렇게 관찰일기를 쓰지 말고, 스스로 삶을 일구면서 ‘삶일기’를 써 보면 어떠랴 싶어요.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구경하면서 관찰일기를 쓰는 일은 좀 그만두고, 스스로 삶을 새롭게 지으면서 날마다 꾸준히 삶일기를 쓰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를테면, 소로우 님이 쓴 《월든》처럼, 스스로 삶을 누리고 짓고 일구고 가꾸는 모습을 차근차근 적바림하면 어떨까 싶어요. 시튼 님도 이녁 삶을 스스로 갈무리했어요.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 님도 스스로 알래스카에서 살아가면서 이녁 이야기를 손수 갈무리했습니다.


  학자들이 ‘이웃 아닌 구경꾼’으로서 구경하는 관찰일기를 쓰기보다는, 마을사람 스스로 마을살이를 쓸 수 있도록 이끌고, 학자는 학자대로 이녁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쓸 때에 서로 아름다우면서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인문책 《판자촌 일기》로 1970년대 첫머리 서울 청계천 언저리를 살필 수 있기는 하지만, 참말 청계천 사람들 목소리는 아닙니다. 청계천 사람들 눈높이나 삶자리에서 들여다본 이야기는 아닙니다. 앞으로는 ‘내가 어디에 서는 사람인가’를 돌아보면서 ‘내가 선 곳을 아끼고 사랑하는 삶’을 이야기 한 타래로 일구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빌어요. 4347.1.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이달의 사락 h*******e 2014.01.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