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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인생] 마흔을 위한,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우석훈식 우격다짐
"[1인분 인생] 마흔을 위한,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우석훈식 우격다짐" 내용보기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온다던 서른 살을 훌쩍 넘겼다. 지금껏 '청춘', '젊음' 등의 단어에 익숙했다면, 이젠 '마흔', '중년', '마무리' 등의 단어가 눈에 박힌다. 그래서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등의 책에 눈길이 갔나보다. 최근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 교수가 40~50대를 위한 책을 준비한다고 한다. 제목이 <결리니까 중년이다>(가제). 빵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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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온다던 서른 살을 훌쩍 넘겼다. 지금껏 '청춘', '젊음' 등의 단어에 익숙했다면, 이젠 '마흔', '중년', '마무리' 등의 단어가 눈에 박힌다. 그래서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등의 책에 눈길이 갔나보다. 최근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 교수가 40~50대를 위한 책을 준비한다고 한다. 제목이 <결리니까 중년이다>(가제). 빵 터졌다. 지금껏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20~30대 청춘들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바야흐로 중년을 위한 위로, 공감 메시지도 필요할 터.

 

<결리니까 중년이다>가 어떤 내용으로 정리될 지 모르겠으나, 김정운 님의 <남자의 물건> 같은 가십성 에세이도 좋지만, 서른 중반 혹은 마흔 즈음의 중년이라면 감히 우석훈의 <1인분 인생>을 권하고 싶다.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우석훈의 액션大로망'이란 부제가 붙었다. '대한민국 전국구 빨갱이', 'C급 좌파', '나꼽살의 우띨'로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는 우석훈 님이 이번엔 작정하고 마흔 전후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에세이를 남겼다. 엄청나게 재미있다.

 

2011년을 비루하게 살아가는 한국의 40대가 가지고 있는 일상성, 그리고 그들의 문화적 측면에 관한 얘기, 그런 걸 좀 써보고 싶다는 게 이번 수필집을 준비할 때의 처음 생각이었다. '젊은 오빠'가 아닌 '40대 아저씨', 그게 내 삶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얘기했더니, 막 쉰을 넘은 선배 왈, "야, 너 엘리베이터에서 꼬마가 '할아버지'라 부를 때의 당혹감을 아냐?" -P76 

 

한국의 40대는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비루하게 사는 중이다. 그러나 그 비루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 좀 유머를 찾고, 명랑을 회복하자, 그런 얘기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략) 40대 남자는, 한국에서 문화적으로 없는 존재에 가깝다. 그들의 얘기를 무대 정면에 올리고 싶었다. 니들이 잘해야, 이 나라가 안 망한다, 친구! -P77

 

그렇다. 경제대장정 시리즈를 따라가며 그의 통찰력 있는 경제 진단과 대안에 늘 공감했었다. 생태경제학이란 생소한 개념을 통해 왜 지난 10년 동안 우리의 삶은 이렇듯 힘들었을까?에 대한 나름의 답을 얻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400여 개에 달하는 골프장 건립,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부자 감세 정책, 한미 FTA(어제부터 발효됐다. 미치겠다.), 4대강 사업과 인천공항 및 KTX 민영화 사업 등 온갖 토건논리와 모피아들의 이전투구 속에 우리 삶은 피폐해졌다. 바야흐로 명박시대, 미친 시대를 살고 있다.

 

<1인분 인생>이 값지게 다가오는 이유는, 경제학 혹은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숫자 놀음, 뻔한 얘기가 없어서 좋다. 구어체의 경쾌한 글쓰기, 쪼잔할 정도로 자신의 삶을 내보이는 솔직함까지... 우석훈 님의 말처럼 모든 자기계발서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라는 만고불변의 주제로 모아진다. '이런 얘기를 또 한 다면 난 소주병으로 머리를 한 대 때려주겠다'라고 말하는 우띨. 뻔한 얘기는 절대 하지 않겠다,란 다짐이 제대로 보여지는 책이 바로 <1인분 인생>이다.

 

서두부터 그의 상전(?)이신 야옹구가 나온다. 먹이만 주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는 싫다 한다. 주인의 손을 할퀴기도 하는, 야성을 품은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우석훈 님. '어쩜 일상 자체가 C급일까?'란 생각이 절로 든다. 유학 시절 그가 배운 것은 '가난을 견디는 법'이었고, 태권도 사범인 아내에게 맞는 게 너무 아프다고 너스레를 떤다. 자식 교육에 무심타법으로, 중학교만 졸업하면 혼자 기차를 타고 여행을 보내라 등의 메시지는 아주 좋다.  

 

낯을 많이 가리고, 데모를 하더라도 뒤에 물러서 있길 좋아하는 그. 줄곧 '빨갱이'로 낙인 찍힌 채 지난한 30~40대를 살고 있는 우석훈 님. 그럼에도 그가 들려주는 일상, 삶의 모습은 행복해보인다. 스스로 '보람'을 찾을 줄 아는 듬직한 멘토로 다가온다. 10년 동안 대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단 1명의 박사도 배출하지 못한(시대적 환경 때문에) 자괴감에 몸서리를 치는 지라, 누군가의 멘토나 스승으로 남고 싶진 않다고는 하지만... 

 

삶, 그것은 복잡미묘하며 행복은 기기묘묘한 것이다. 삶, 그것은 승진에 실패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부여되는 것이 아니고, 행복 역시 그렇다. 삶은 우리 모두에게 내려진 것이고 행복 또한 단계적이 아닌 언제 어디서든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이해했거나 적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우리들의 다음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P246

 

남들과 다른,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불편하지 않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 사회 환경 속에서 우린 너무나 획일화된 교조주의에 빠져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석훈과 같은 좌파,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건 아닐까? 가령 '꿈'에 대한 그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꿈 같은 걸 만들어놓고 자기 플레이만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꿈을 키운다고 하면서 정작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마음을 나누는 감수성과 공감 능력 같은 것을 죽이는 셈인지도 모른다. (중략) 중고등학생에게 국가가 나서서 꿈을 꾸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이번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눈높이를 낮추라고 한다. 그 다음에는, 정몽준 같은 기업가가 나서서 말한다. 창업의 꿈을 가지라고.

 

욕망을 투사시켜 꿈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놓은 허상, 이게 잘못 설정되거나 지나치게 강렬해지면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긴 로봇과 같아진다. 경제 근본주의가 어른들의 욕망의 창에 투영되어 10대들에게 적용되면 그건 "꿈을 가지라"는 악마의 재생산 방정식 같이 될 위험성이 있다.

강요된 꿈, 그건 많은 사람을 결국은 불행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내려 놓을수록 더 많이 찬다"는 자연의 이치가 사람의 이치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P335~336

 

내가 보기에 우석훈 님은 낙관적인 자유주의자다. '마흔을 지칭하는 불혹이라는 말은, 흔들림 없다는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혹시는 없다', 즉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결정되어버렸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직도 모르는 뭔가가 문득 튀어나와서 신데렐라 같은 스토리가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그런 삶이 마흔이라고 했던 것 아닐까?' 마흔에 대한 그의 관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내 마음 한 켠이 무거워온다.

 

그래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을 때' 왔던 서른엔 그래도 '혹시?'라는 나름의 기대가 있었다. 허나 마흔 즈음 우리 생은 '그럼 그렇지. 혹시는 없어!'라고 체념하게 되는 나이는 아닐까? 한 C급 좌파의 에세이가 이토록 가슴을 후벼파는 이유는 왜일까? '순리대로, 순서대로, 단계적으로' 행복과 보람은 내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은 건 아닐까?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는 욕망 덩어리이므로)은 책에 대한 그의 말이다.

 

길게 보면, 책 읽는 좌파들의 세상, 책 만드는 에디터들의 세상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관리하는 사서들의 세상이 내가 눈감기 전에 한 번은 펼쳐질 것이다. (중략)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은 물론이고 지금 차세대 지도자로 일컬어지는 안철수, 조국, 박경철, 박원순은 대표적인 열성 독서가들이다. '나꼼수'로 김어준의 시대를 열어 제친 김어준 역시 독서 내공이 진짜 만만치 않다. ...

 

투기적 경제의 시대가 끝나면 진짜 경쟁의 시대가 온다. 그 경쟁은 지난 10년간에 골프장에서 했던 남성 사냥꾼들의 경쟁과는 좀 다른 양상을 보일 듯싶다. 안철수, 박경철, 조국.... 전부 골프장과는 어울리지도 않고, 책방이나 도서관 같은 데랑 더 잘 어울리는 새 시대의 지도자들 아닌가?

 

책 죽어라고 보는 상사들의 시대, 그런 시대가 한국에도 한 번은 올 것 같다. 아무래도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기는 그런 매력적인 시대가 우리에게 펼쳐지는 것 아닐까? 골프 치거나 룸살롱 접대 외에는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한나라당 떨거지들이 진화론적으로 곤란해지는 순간, 우리는 보편적 상식의 시대로 조금씩 나아갈 것이다. -P295~296

 

명랑 전도사, 우석훈 님이 말하는 경제학으로 이 책의 감상을 마무리한다. "내가 한국의 경제학자들에게 가지고 있는 불만 중 하나가 사람들 삶을 너무 안 본다는 점이다. 경제학 책에는, 한국인의 삶이라는 게 없다. 경제학이라는 걸 복잡하게 생각한 적도 있지만, 몇 년 전부터는 나도 생각이 좀 단순해졌다. 국민들 밥 굶기지 않고, 점심은 집에 와서 먹을 수 있게 해주고, 뭐 그런 거 아닐까?"

 

또 하나 자살 충동이 생길 때 이렇게 생각해보자. "근데 명박보다 먼저 죽는 거, 그건 억울하지 않은가?'



t******2 2012.03.16. 신고 공감 9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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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꿈꾸는 안빈낙도의 꿈이 이뤄지길
"그가 꿈꾸는 안빈낙도의 꿈이 이뤄지길" 내용보기
조건을 제시하고 답을 내는 “~라면 ~하겠네”라는 느낌이 있을 수 있다. 내 경우에도 몇 번 있었는데 가령 중국 공산 혁명의 성지 징강산(井崗山)에서는 “이 정도 자연이라면 빨치산해도 되겠네”라는 경우가 있다. 지앙시성에 있는 징강산은 남부 고산지역의 중간에 있는데 난창이나 창사 등 대도시와의 거리도 만만치 않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큰 고개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내
"그가 꿈꾸는 안빈낙도의 꿈이 이뤄지길" 내용보기

조건을 제시하고 답을 내는 “~라면 ~하겠네라는 느낌이 있을 수 있다. 내 경우에도 몇 번 있었는데 가령 중국 공산 혁명의 성지 징강산(井崗山)에서는 이 정도 자연이라면 빨치산해도 되겠네라는 경우가 있다. 지앙시성에 있는 징강산은 남부 고산지역의 중간에 있는데 난창이나 창사 등 대도시와의 거리도 만만치 않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큰 고개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내가 처음 그곳에 갔던 때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좀 추운 봄의 느낌 정도였으니 자연조건으로 하면 최고였다. 빨치산하면 지리산 속이나 헤매는 것으로 생각하던 우리에게 징강산은 천국처럼 보였다. 물론 머잖아 대장정에 올라야하는 처지였지만, 어떻든 징강산은 뭘 꾸려보기 좋은 낙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느낌이라면 파업도 해볼만 하겠네라는 것이다. 바로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MBC 파업콘서트 팟캐스트를 보면서 그랬다. 김어준 등 나꼼수팀과 공지영 등 많은 이들이 찾아와서 응원해주는 파업이라면 힘이 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그저 옆에서 보는 이의 가정일 뿐이다.

 

자신들보다 수배에 달하는 병력과 전력으로 포위작전을 펼칠 수 있는 국민당과 경찰, 검찰등 사법권력과 합작해 자신을 잘라버릴 수 있는 정치권력과 맞서는 것은 결코 가정 따위로 생각할 수 있는 처연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업콘서트에서 나는 가장 흥미로운 것을 봤다. 바로 김미화씨와 남편이 같이하는 공연이었다. 나름대로 신난한 삶을 살았던 그녀 부부가 엮어내는 재즈 등의 공연은 정말 낭만과 해학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인생의 예시같았다. 이번에 읽은 책의 저자 우석훈도 이 낭만과 해학을 말하고 싶어한다.

 

니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역경을 걷는 것이 선이다는 말은 지극히 아름답다. 더욱이 그 역경이 편안함 대신에 스스로 선택한 역경이라면 더 말할 나위없다. 그리고 실제로 김미화와 더불어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나는 꼽사리다를 만드는 우석훈, 선대인 같은 이들이다.

 

우석훈의 ‘1인분 인생’(상상너머 간)은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의 조금 처연한 고백이자 생활지침을 적은 책이다. 대기업 산하 연구소와 공기업의 중간간부로 인정받는 생활, 자리를 마친 후 일본의 지원 요청 받을 만큼 인정받았던 국제기구의 분과장까지 했던 그가 그 스스로의 저작인 ‘88만원 세대와 비슷한 처지로 내려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터인데 결국 그는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만나고 있다. 이 책은 그 삶의 행복한(?) 푸념 같을 것을 담은 책이다.

 

그러다보니 이 책의 주인공과 독자들의 거리는 좀 멀다. 사실 이태백, 삼팔육, 사오정이 넘치는 시대에 좋은 직장은 물론이고 교수자리에도 별 관심이 없고, 마흔 넘었다고 책 쓰는 것도 놓고 싶다는 저자가 어떻게 가까울 수 있을까.

 

하지만 필자가 쓴 난 사람이 태어나서 하루에 세 끼 밥 먹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거란 생각을 30대 중반에 했던 것 같다. 뭔가를 쥐려고 하면, 아쉬움이 더 많아진다는 걸 그때 깨달은 것이다. 그 대신, 내려놓으면, 잡초들이 피워내는 들꽃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고양이의 재롱 같은 게 더 살갑게 느껴진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210페이지)는 말에서 정답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사실 필자와 나는 비슷한 나이다. ‘완득이에도 나왔던 김상호 같은 배우에 공감하고, 책을 한바가지 사서 나와 외제차를 타는 이들(+지식 소유)에게 뭔지 부러움을 느끼는 비슷한 사람이다. 물론 차이가 있다면 나는 아직 1인분 인생의 지극한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정도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가 이 책에서 호언하듯이 책쓰는 일을 접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 가장 큰 걸림돌은 그가 생각하듯 이 나라의 정치가 나름대로 상식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줄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가 꿈구는 안빈낙도의 꿈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사실 그래야 나도 씨부렁거리지 않고 살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YES마니아 : 로얄 c*****i 2012.03.05. 신고 공감 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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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 그 선택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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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떨어져 주말부부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한 몸 건사하는 게 무척이나 힘들다는 걸 새삼 느낀다.  딴에는 학창시절의 자취 경험도 있고 하니 무에 그리 힘들겠는가 싶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그게 생각처럼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다.   군것질이나 분식으로 주린 배를 채웠던 그때와는 식성도 많이 달라졌고, 교복과 츄리닝만 있으면 못 갈 데가 없었던 학생 신분과 누군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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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떨어져 주말부부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한 몸 건사하는 게 무척이나 힘들다는 걸 새삼 느낀다.  딴에는 학창시절의 자취 경험도 있고 하니 무에 그리 힘들겠는가 싶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그게 생각처럼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다.   군것질이나 분식으로 주린 배를 채웠던 그때와는 식성도 많이 달라졌고, 교복과 츄리닝만 있으면 못 갈 데가 없었던 학생 신분과 누군가의 시선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회사원의 신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무엇보다 그때의 나에 비해(인정하기는 싫지만) 체력적으로 많이 약해졌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제 목숨 하나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요, 그 누군가의 도움에 감사할 줄 아는 자세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어줍잖게 사업이랍시고 시작했을 때, 직원들과 영업을 나갈 기회가 많았었다.  블라인드 제조업을 했던지라 소비자는 가정주부가 태반이었고, 내가 사업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블라인드가 뭔지도 모르는 주부들도 많았다.  어렵게 설명을 하여 간신히 이해를 시키는 나와는 달리 고등학교만 졸업한 직원들은 너무도 쉽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일단 얘기를 트고 나면 대뜸 너나들이를 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곁에서 지켜보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마치 우연히 만난 십년지기인 줄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경험도 없이 시작한 사업에서 쓴 맛을 본 후 나는 뒤늦은 나이에 평범한 회사원으로 복귀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일종의 특권의식, 또는 시쳇말로 먹물근성에 물들어 있었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지방 발령을 받고 혼자 떨어져 생활하면서 숙소 주변의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게 된 것도 사업을 하던 당시와 지금껏 살아오면서 부지불식간에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에 대한 죄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한다.

 

숫기가 없는 나는 처음부터 너나들이를 하며 친한 척하는 사람들에겐 왠지 거리감을 느낀다.  아니, 그렇게 느꼈었다.  그만큼 친한 사이가 못 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자기 자신을 발가벗겨 보여주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그것이 진정 그 사람의 속마음인지 아닌지 믿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었다.  어느 자리, 어떤 경우에서건 깍듯이 예의를 차리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허물없이 함부로 대하는 행동을 못 하도록 의도적으로 차단했었다. 

 

그러나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부모님들과 허물없이 지내면서부터 그들의 넋두리도 싫은 표정 하나없이 들어줄 수 있고, 늦은 시각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도 웃으며 문을 열어줄 수 있게 되었다.  플라스틱 바가지에 볼품없이 담아온 방울 토마토도 그 자리에서 거리낌없이 입에 넣을 수 있는 내공을 쌓았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와 나는 생면부지의 남남이지만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고 느꼈다.  경제학을 전공한 것도 그렇고, 전공과 다르게 비경제적으로 사는 것도 그렇고, 평범함 속에서 안빈낙도하는 것도 그렇고, 당장 시급하지도 않은 공부로 세월을 대충 뭉개는 것도 그랬다.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화려했던 이력을 뒤로 하고 99% 비주류의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저자의 일상을 담고 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 사람들에게는 그의 말이 어쩌면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먹고 살만 하니까 그러는 거라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먹고 사는 문제를 빼고는 다른 어떤 것에도 눈길조차 줄 수 없게 만든 현 상황의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한순간 부딪쳐야 하는 산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이 아름다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실체가 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산을 넘을 방법만이라도 찾아보자는 간절한 호소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살면서 사랑할 것도 많고, 보살필 것도 많다.  마흔을 넘어선 나의 친구들에게, 이제 우리는 슬슬 내려놓을 준비를 하면서 비우는 것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래야 진짜로 사랑할 것들이 보이게 될 것 같다."  (P.357)

 

내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만 있다면 꼭 한 번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지가 언젠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시퍼렇게 살아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수구꼴통이니 좌빨이니 하는 말들은 이제 듣기도 싫고 보면 볼수록 신물이 난다.  정치를 직업으로 선택한 정치꾼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들은 그렇게 편을 갈라 무슨 득이 있다고 그렇게 하는 것인지...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얼마나 다채롭고 다이내믹하게 흘러가는 것인가.  그런 점에서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백 번이라도 감사의 인사를 해야 옳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오직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본다.

 

"누군가 내게 정색을 하며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한다면", 이런 얘기를 또 한다면 난 소주병으로 머리를 한 대 때려주겠다.  큰 걸 보다가 우리는 너무 쉽게 작은 것의 함정에 빠진다.  마케팅사회, 자기계발서의 덫에 걸리면 '원하는 것'에 영혼을 파는 아주 이상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간절하게 원하는 것, 그게 바로 악마가 바쁠 때 대신 보내는, '자기계발서'라는 악마의 대리인이 내뱉는 첫 번째 속삭임이 아닐까 싶다."  (P.318)

 

나는 이 책을 가스통을 들고 설쳐대는 극단적 우파들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의 조국에서 추방된 후에도 조국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았던 솔제니친을 존경한다면 우리는 한번쯤 그의 말을 음미해야 한다.  1978년 미 하버드대학 연설에서도 그는 "러시아는 서구의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와도 화합할 수 없는 독특한 문명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역사와 전통을 고려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정한 우파라면, 그리고 사기꾼이 아닌 진정한 애국자라면 솔제니친과 같은 소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는 좌파든, 우파든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지 않겠나.  나의 바람은 그런 조국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주류사회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비주류의 저잣거리로 내려온 저자의 선택은, 그것이 그의 자발적 의사결정이었든, 등 떠밀려서였든, 그의 가치관에 비춰 보았을 때 최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취해진 일련의 결과물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그의 가치관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념의 색안경은 벗어 던져야 하지 않을까?  우파이면서 좌파 인사의 책을 읽는다고 하여 자신의 신념이 더럽혀지고, 파랭이가 갑자기 빨갱이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야만 최소한 좌,우의 균형을 갖춘 1인분의 인생을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야 우리는 지금과 같은 정치 괴물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

이달의 사락 s*****l 2012.04.19. 신고 공감 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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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만큼의 알찬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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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이후 이 작가의 책을 사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후속작에서 큰 재미를 보재 못했던 경험들이 이상한 독서결벽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팔리는 책의 작가'에게는 어김없이 출판사의 기획이 적용되리라는 의심이 작용하기도 했다. 그게 잘된 기획이면 다행인데, 작가의 이름 덕 보자는 게 대부분이어서 얇아진 지갑에게 미안했던 적이 많다. 그런데 이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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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이후 이 작가의 책을 사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후속작에서 큰 재미를 보재 못했던 경험들이 이상한 독서결벽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팔리는 책의 작가'에게는 어김없이 출판사의 기획이 적용되리라는 의심이 작용하기도 했다. 그게 잘된 기획이면 다행인데, 작가의 이름 덕 보자는 게 대부분이어서 얇아진 지갑에게 미안했던 적이 많다. 그런데 이번에 <1인분 인생>에게, 우석훈 씨에게 투자를 좀 했다. 투자 대비 수익은... 괜찮은 편이다.

나보다 앞서 리뷰를 쓴 분의 글을 읽으면서 솔직히 기가 죽었다. 첫 리뷰를 쓰신 분에게 전하고 싶다. 앞으로 1빠로 리뷰 올리면서 그렇게 글을 잘 쓰시면 다른 사람 리뷰 쓰기가 참 부담스럽다고... 책을 낸 출판사 관계자가 올린 글이라면... 전략 실패!! (리뷰 달기 부담된다.)

 

저자의 3단 변신 과정이 흥미로웠다. 잘나가는 경제 관료에서 무직이나 다름없는 전업작가로, 다시 해적방송(?) 진행자로 변신하는 과정은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내는 과정이면서 한편으로 무기력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저자의 디테일하고 섬세한 시선이 어쩌면 무기력해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동시에 삶의 비밀을 알아가는 사람에게 '1인분'이란 거의 천문학적 수치만큼이나 도달하기 힘든 크기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저자가 이 책에서 형이상학적 썰을 풀고 있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말기를. 경제학자답게 저자는 대단히 현실적인 일상의 1인분들을 짚어나간다. 나름 자질구레한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자부하던 나조차도 포착하지 못한 부분에 저자의 시선이 닿아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솔직히 좀 놀라웠다. 한때 국제협상 테이블에서 거시경제를 논했을 법한 저자가 현미경 같은 관찰력으로 보여주는 초미시경제의 세계를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다. 물리학을 깊게 파고들면 철학자가 된다는데, 경제학을 깊게 파고들면 시인이 되나 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나는 꼽사리다>에서 깐죽거리던(?) 우석훈의 모습을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딱 소시민의 눈높이로 세상을 말하고 내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공감이 가고, 그래서 계속 읽게 된다. 그리고 딱 1인분 용량만큼의 가르침을 준다.

1인분... 무시하지 말라. 지금 우리는 1인분을 차지하기가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끝으로, 강추!!!!

m********0 2012.03.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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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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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키득거렸다. 전작 <문화로 먹고 살기>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를 엿볼수 있었다. 그의 작은 기억들을 모은 글인데 실명을 언급해서 살짝 긴장감이 있긴 하다. 우파 부모님 밑에서 좌파의 삶을 산 그의 험난한 여정을 보여 준다.   태권도 사범인 아내와 고양이와 살고 있는 그에 대해서 궁금하시다면 읽어 봐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이정도의 책을 읽어 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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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키득거렸다. 전작 <문화로 먹고 살기>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를 엿볼수 있었다. 그의 작은 기억들을 모은 글인데 실명을 언급해서 살짝 긴장감이 있긴 하다. 우파 부모님 밑에서 좌파의 삶을 산 그의 험난한 여정을 보여 준다.

 

태권도 사범인 아내와 고양이와 살고 있는 그에 대해서 궁금하시다면 읽어 봐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이정도의 책을 읽어 내는 것도 엄청난 노력의 결과이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고통인 적도 있는데 어느 순간을 넘어서고부터는 책을 읽는 것이 재미있다. 글을 쓰는 건 더 허접하지만 책을 한권 읽어 낼 때의 뿌듯함에 가끔 내가 대견스러울 때가 있다.

 

글을 잘 쓰는 우석훈도 공부할 때 울면서 책을 읽은 적이 있다는 부분에서 상당한 위안을 받았다. 그가 현대에서 근무할 때 현대가의 집사로 있던 사람의 책상에 매일 2권씩 올라 가는 것을 보고 그가 자극을 받았다는 부분. 그 사람을 이기려면 더 많은 책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고 한다.

 

그의 다른 책들을 찾아가며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과 박경철에 살짝 관심이 간다.

 

 

y******y 2012.03.14.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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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지 않는 고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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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C급 경제학자라 말하는 우석훈 선생. 그의 글로 그동안 배운 게 참 많은 나 역시 C급 기자인 것인가!^^ 뭐, 전혀 억울한 마음은 없다. 지금과 같은 후안무치의 시대의 과연 A급을 자처하는 ‘1등급 인간들’에게 그리 배울 것이나 존경할 만한 점들이 없기 때문이다.   책은 에세이다. 그가 살아온 과정, 느껴온 과정, 사랑해온 것들, 싫어하는 것들 그리고 생각하고 추구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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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C급 경제학자라 말하는 우석훈 선생. 그의 글로 그동안 배운 게 참 많은 나 역시 C급 기자인 것인가!^^ 뭐, 전혀 억울한 마음은 없다. 지금과 같은 후안무치의 시대의 과연 A급을 자처하는 ‘1등급 인간들’에게 그리 배울 것이나 존경할 만한 점들이 없기 때문이다.

 

책은 에세이다. 그가 살아온 과정, 느껴온 과정, 사랑해온 것들, 싫어하는 것들 그리고 생각하고 추구했던 신념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스스로 말도 잘 하지 못하고, 글도 재미있게 쓰지 못한다고 겸손을 떠셨는데, 내가 보기엔 겸손도 지나치면 재수 없다. 그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재미지게 쓴다.

 

그는 경제학자다. 경제학자는 세상을 돈을 중심으로 바라본다. 그 역시 마찬가지라 말한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세상이 돈만으로 구성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일상성을 구성하는 많은 동기들이 꼭 돈이나 경제적 이유인 것만은 아니라고 믿고 산다. 아울러 선진국이 되면, 사람들의 행위의 절반 정도는 돈이 설명하지만 나머지 절반 혹은 그 이상은 돈과는 상관없는, 보람이나 가치 혹은 미학적이거나 예술적 이유로 더 많이 설명된다고 믿는다. 동감이다.

 

그는 소위 남들이 보기에 잘나가는 위치에 올랐을 때 가장 불행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이른 바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일 때 가장 외로웠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은 채, 평범하지만 열심히 정직하게 땀흘리며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당연하지. 그걸 꼭 마흔이 넘어서야 아셨나.

 

그의 표현대로라면 우리 가카 - ‘이 희한한 사나이는 반도에 사는 우리 모두를, 좌파든 우파든, 진보든 보수든, 좀 너저분하게 만들어버렸다 - 덕분에, 우리 모두가 조금은 정신줄을 놓았고, 또 놓고 살고 있다. 그가 상징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추악한 욕망이 그대로 바로 우리들 자신이었음을 알아차렸을 때의 그 낭패감. 우리는 모두 그런 낭패감 속에 5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는 유쾌하다. 정말 유쾌할 수 없는 세상에도 그 유쾌함을 놓지 말자고 말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노력하자고 말한다. 그러면 비로소 정말 행복해진다고.

 

내가 보기에 그는 상당히 까칠한 사람이다. 글 마다 동감되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그렇다. 그는 매우 까칠한 양반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천사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의 등에 칼을 내리꽂는 인간들이 미쳐 날뛰는 세상에서, 까칠하지만 강자를 위해 굴종하지 않고, 이웃들과 함께 상식을 믿으며, 불의와 몰상식에 짜증을 내는 이들은 아름답다. 암암.

 

돈이 모든 것의 우선이 되면 세상은 정말 간단하다. 하지만 그만큼 정말 재미없을 것이다. 말이 재미없는 것이지, 지옥과 같은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점점 천국과 멀어져 보이는 이유다. 지옥에서 도덕과 가치와 상식과 아름다움은 개에게도 주지 않을 것 아닌가.

 

이 모든 일들이 오직 위대한 가카 때문이라고 핑계댈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MB와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 더 대놓고 본능을 발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을 뿐이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지.

 

그의 글들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발랄하다. 확실히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고, 예술을 사랑하시다보니 글까지 젊다. 부럽다. 난 내 글이 어이없게 늙었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하지만 재기발랄함 속에 감추어진 날카로움, 해박한 지식, 유연한 발상과 확고한 신념, 똑바로 땅에 뿌리박은 철학은 숨길 수 없다. 역시 그동안 그가 고민해온 시간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그의 글은 솔직하다. 욕먹을 인간들은 욕하고, 반대는 칭찬한다. 자신도 잘난 게 없음을 밝힌다. 잘난 척 할 때는 좀 하는 것 같다만.^^ 하지만 전혀 거부감이 없다. 무엇보다 키득거리며 읽다가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때론 ‘아, 쪽팔려…. 나도 이런 적이 있지’하며 반성까지 유도한다.

 

오랜만에 아주 즐겁게 책장을 넘긴 것 같다. 특히 이런 에세이를 경건함이 아닌 발랄함으로 읽는 것은 참 오랜만이다. 유쾌한 독서는 언제나 감사할 따름.

 

최근 한미FTA에 대한 책을 낸 것으로 안다. 참 부지런한 양반인 것은 인정해야 겠다. 《나는 꼽사리다》하랴, 강연하랴, 글쓰랴. 역시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C급 경제학자가 살아가기는 힘든 것인가.

 

앞으로도 그를 응원한다. 지인 중 그를 개인적으로 몇 번 알게 되었다는 이는, “글과 그 사람의 행동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며 약간의 비판을 가했지만, 뭐 상관없다. 윤리 교과서 쓴 양반들이 하나같이 윤리적이고, 종교서적 쓰는 양반들이 모두 성자는 절대! 아니니까. 다만 그의 글을 통해 내가 반성하고 내가 웃고 내가 즐거우면 된다. 그 사람이 정말 몰지각하고 불의한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들통나겠지. 뭐,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는 고양이를 사랑한다. 매우. 그리고 고양이의 야성을 사랑한다. 그 길들여지지 않음을 사랑한다. 그가 지식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 역시 고양이와 같다. 길들여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지식인들이 ‘한 조각씩 던져주는 고기조각에 길들어져 사는 강아지보다는 언제나 야성으로 남는 고양이에게 배워야 한다’는 주장엔 100% 공감이다.

 

책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난 고양이였나, 강아지였나. 고기 조각 하나에 가슴 설레는 멍청한 강아지는 아니었을까.(물론 애완동물로써 강아지를 절대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강아지 귀엽다!) 지식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절대 바보로 살고 싶지는 않은, 나는 정말 바보로 살고 있지는 않나.

 

그의 글을 가끔은 벼락같이 명심하며 살아야겠다. ‘Eye of The Tiger’까지는 안 되더라도, 야성을 잃지는 말자~! 잘 읽었다.

 

“성대를 끊고, 손발톱을 다 끊어도 고기조각만 때맞춰 던져주면 꼬리를 살랑살랑거리는 강아지를 바라보면 나는 화가 난다. 속에서 불같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고양이는 길드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그런 고양이가 좋다. 강아지 같이 살기 보다는 다소 모자라고, 때론 불쌍한 고양이 편이 더 좋다.”

 

YES마니아 : 로얄 w*******7 2012.07.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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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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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국내 경제, 정치, 사회상에 대한 진단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측면에서 가장 주목받는 두 명이 있다. 한명은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의 폐해를 지적하며 사민주의 복지국가로의 미래를 제시하는 장하준 교수와 다른 한명은 IMF이후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암울한 미래에 신음하는 20대의 모습을 비정규직 평균 급여 119만원에 20대 평균급여에 해당하는 73%를 곱한 금액인 88만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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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의 국내 경제, 정치, 사회상에 대한 진단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측면에서 가장 주목받는 두 명이 있다. 한명은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의 폐해를 지적하며 사민주의 복지국가로의 미래를 제시하는 장하준 교수와 다른 한명은 IMF이후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암울한 미래에 신음하는 20대의 모습을 비정규직 평균 급여 119만원에 20대 평균급여에 해당하는 73%를 곱한 금액인 88만원으로 묘사한 <88만원 세대>를 펴내 관심을 받기 시작한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이다.


 특히 우석훈 교수의 경우 해외 유학후 국내 대기업 소속 연구원에도 있었으며 정부 조직에 속해 각종 정책의 입안을 직접 컨트롤 하거나 간전접으로 관여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펙트럼을 가졌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관직에서 떠나 속칭 '저잣거리'로 표현되는 일반인들의 삶 속에서 바라보는 <1인분 인생>이라는 에세이 집을 펴냈다. <88만원 세대>가 20대를 촛점으로 펴냈다면 <1인분 인생>은 군사독재에서 민간 정부로 정권이양기를 거치는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젊은 시절을 보냈던 40대의 현재 자화상과 불안심리로 점철된 성장통을 함께 하는 책이다.


 '부자되세요'라는 CF가 선풍적인 관심을 끌 정도로 돈이 모든 것을 우선하는 경제적 이기주의의 심화는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에게 심어줬고 이로 인해 한미FTA가 발효되면서 농민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는 주장에도 자신만은 영향 받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외면하는 악마 같은 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무한경쟁 속에 40대는 끊임없이 생존경쟁에 내몰리면서 경제적 가치만이 우선시 되었던 세태를 비판하며 응당 누려야 할 가치들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시간을 주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역할이지 장점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천민자본주의적인 발상이 어느덧 현 MB정부라는 괴물을 탄생시켰고 그들의 전횡하에 4년 동안 신음했던 우리들이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라도 자기 하나 건사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1인분 인생을 우리는 충분히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각박한 사회 구조적 문제가 우릴 목 죄이기만 해도 말이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측면에서 지나쳐 왔던 부분을 깊은 울림으로 표현하는 이 책은 쉽게 읽히 지만 읽고 나서의 여운은 쉽사리 걷혀 지지 않는, 짙은 잔상을 남긴다.


일주일에 3번은 업무상 술을 마시고 퇴근하는 내겐 잠들어 있는 두 딸들의 쑥쑥 커가는 키를 보면 대견스럽다가도 당혹스럽기만 하다... '내가 얘들을 정말 잘 키우는 걸까? 아내에게 모든 걸 맡겨 버리고 쥐꼬리만한 돈만 벌어오는 것으로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말이다. 각박한 생존경쟁을 핑계로 가정과 그간 나와 맺어 왔던 수많은 지인들과의 인간관계를 태만히 하는 내 자신의 1인분 인생은 시급한 재활이 필요할 것임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n*****r 2012.03.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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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인생 -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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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일간지 캠페인을 통해 명사들이 자녀들의 작은 결혼식을 약속하는 캠페인을 본적이 있다.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사람들 먼저 허례허식을 줄이는 결혼식 문화를 만드는데 앞장서겠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흔히 부자들은 자본가라서 더 자본주의적으로 살아가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끼리의 공동체 혹은 전통적 유대관계, 이렇게 살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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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일간지 캠페인을 통해 명사들이 자녀들의 작은 결혼식을 약속하는 캠페인을 본적이 있다.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사람들 먼저 허례허식을 줄이는 결혼식 문화를 만드는데 앞장서겠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흔히 부자들은 자본가라서 더 자본주의적으로 살아가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끼리의 공동체 혹은 전통적 유대관계, 이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은 듯 싶다. 없는 사람들은 10원이라도 더 깎기 위해 상인적 관계에 집중하고, 부자들은 최소한 자기들끼리는 완전히 호혜와 환대의 공동체다. (후략)'

 

양극화로 인한 소득 불평등 심화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위 캠페인을 보며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당장 대다수의 부모들이 그동안 지출했던 축의/부의금을 떠올리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지 않을까. 저자는 결혼식 혼수에서부터 장례식 부조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으로 증여의 매커니즘이 동작하는 사회라 이야기한다.

 

1인분 인생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이 붙어있는 이 책은 자칭 타칭 좌파 경제학자로 불리는 우석훈씨의 수필이다. 저자의 와이프와 고양이 이야기에서부터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자살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는 MB보다 먼저 죽는게 억울하지 않느냐며 말리기도 하고 보람이 사라진 자리를 보람상조가 채우고 있는것 아니냐는 농담을 던지며 지금 즐겁지 못한 사람이 언젠가는 즐거울 수 있을것 같으냐며 당장의 실천을 독려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얼마나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살고있는지, 사회를 돌아보며 살고 있는지를 물어보게 만드는 부분이 많았다.

 

부부싸움을 했다하면 문을 그냥 열어줄래 부수고 들어갈까라는 말이 오가고 팔로 막았다 싶더라도 피멍이 드는 태권도 공인 4단의 아내와 함께 사는 것까지 부러울 정도로 생활이, 그리고 생각이 부럽게 느껴졌던 책이었다. 오히려 이런 책을 읽고 남기는 감상에 나의 생각이 더 녹아들어가 있어야 할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살짝 부끄러워졌을 정도로. 마지막으로 요즘 다시 술자리가 늘어가는 나에게 와닿는 문구가 있어 다시 옮겨적어본다.

 

'우리는 우리가 가졌던 대부분의 시간을 술마시면서 보냈고, 술마시면서 생겼던 오해를 다음 날 또 술을 마시면서 풀고, 그러고 나서는 또 기분 좋다고 술마시고, 그리하여 정작 중요한 일들은 아예 까먹거나 혹은 취중에 생긴 각자의 이해대로 생각하고, 그 오해를 풀기 위해 또 술을 마시고, 또 진짜 중요한 것은 까먹고.'



b******o 2012.10.06.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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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마흔 즈음의 일기장 (1인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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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우석훈(존칭은 생략한다)은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꼽사리다'에 출연했고 파리10대학을 나온 경제학자였다. '나는 꼽사리다'를 통해 우석훈을 처음 알게 되었고 (알고 보니 예전에 읽은 '88만원 세대'의 저자였다) 거기서 '젊은이들에게 과일을 줘야 한다', '보험 들 필요 없다' 등의 발언이 신선했다. '1인분 인생' 역시 '나는 꼽사라다'에서 처음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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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우석훈(존칭은 생략한다)은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꼽사리다'에 출연했고 파리10대학을 나온 경제학자였다. '나는 꼽사리다'를 통해 우석훈을 처음 알게 되었고 (알고 보니 예전에 읽은 '88만원 세대'의 저자였다) 거기서 '젊은이들에게 과일을 줘야 한다', '보험 들 필요 없다' 등의 발언이 신선했다. '1인분 인생' 역시 '나는 꼽사라다'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독서동호회 '주경야독'에서 내 차례가 되었기에 이 책을 선정했다.


이 책은 우석훈 부부가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면서 쥐를 잡는 고양이를 들여오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 이후로 (단편적인) 우석훈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우석훈 이라는 사람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고 왜 그랬어야만 했는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지 등을 알게 된다(조각퍼즐을 맞추다보면). 이 책을 통해서 어떤 강렬한 무엇을 얻으려고 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어떤 저자는, 또는 어떤 독자는 책을 통해서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거나 전달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책과는 거리가 멀다.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이 책을 읽다보면 인간 우석훈에 대한 한 편의 잔잔한 소설을 읽을 수 있다.


나는 파리대학을(파리에 있는 다른 대학일 수도 있다) 나온 다른 한 사람을 안다. 그는 홍세화다.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을 통해 그가 프랑스에 망명하여 파리의 대학에 다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우석훈과 홍세화가 연결된다(둘 다 파리에 있는 대학에 다녔으므로). 그렇다면 홍세화씨처럼 우석훈도 일종의 프랑스 망명이었을까? 그건 아닌 것 같지만 그와 비슷했으리라 짐작한다. 


우석훈은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나서 전또깡(이 책에 나온 표현 그대로) 정권을 그대로 체험했고 명박 정권을 체험중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빨갱이' (아마 뼛속까지) 라고 얘기한다. 그는 파리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그것도 우수하게). 그리고 현대그룹에 입사했고, 공기업에 다니기도 했고(그가 움직일 수 있는 예산이 조 단위 였다고 한다), 청와대와도 같이 일했다고 한다(이 책에 은근히 자기자랑이 널려있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그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원했다면) 부와 권력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그 높은 곳에서 내려왔다고 한다(그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이 결정을 보통 사람들은 '넝쿨 채 굴러온 호박을 내쳤다'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보통 한국 사람들과 다르게, 양심을 저버리면서까지 나쁜 짓을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려놓으니 편하고 좋단다. 그가 보통 한국 사람과 다른 것은 (다른 사람이 주입한 게 아닌) 그만의 생각과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대기업과 공무원으로 있으면서 그 조직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했을 것이다. 그건 아마 '골프장'과 '룸싸롱'으로 간단 요약될 것이고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아마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 먹을까? 파란약 먹을까? 와 같은 네오의 고민이었을 것 같다. 그는 숨길 수 없는 '빨갱이'였고 빨간약을 먹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난 이 책의 초반에, 더 많은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기 위해서 높은 곳에 있다가 낮은 곳으로 내려왔다는 저자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내가 아는 우석훈은 C급 경제학자(A급은 이론을 만들고, B급은 이론을 수정하고, C급은 이론을 적용하는)일 뿐이지, 정치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 사람 정치하려 했나?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후에 내가 짐작한 것은, 이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럴 것 같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 높은 곳에 있었다면 평범한 사람들, 중고등학생, 어린이들을 만나기 힘들었을 거라며 그는 낮은 곳으로 내려온 것을 좋아한다. 하긴, 아무리 돈과 권력이 좋다지만,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들과 골프장 가고 룸싸롱 가는 건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 그리고 또 그가 밝혔지만 그는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택한 생존 방법은 새로운 것들을 자주 접하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그는 고인 물에서 지낼 수 없도록 습관이 몸에 베었고 불편한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깨는' 얘기들이 나온다. 자식을 혼자서 여행을 보내라, '꿈' 같은 거 가지지 않아도 좋다, 자기 계발서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등의 얘기들이다. 우석훈 자신도 경제학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고 한다. 그는 예전에도 지금도 뭐가 되고 싶은 게 없다고 한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하루하루 즐겁고 보람있게 살면 되는 거지 굳이 누구처럼 되고 싶다 는 생각은 없다. 이 책에 꿈이라는 욕망은 자본주의와 궁합이 맞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는 그 자신을 본받으라는 말은 너무 부끄러워서 못하겠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그가 이루어놓은 것은 별로 없다는 걸 알았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은 책을 쓴 것 같지만 그가 쓰고 싶었던 '아프리카 경제학' 관련 책이나 생태경제학 같은 책은 아직 못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몸담고 있던 조직들 역시 별볼일 없는 듯 하다. 어찌보면 '도피'라는 글자를 붙여도 될 듯 하다. 그는 40이 넘으면 은퇴하려던 결정을 명박 정권이 끝난 이후로 연기했다. 어찌보면 소심하고 가진 것 별로 없고 리더쉽도 그저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매력있다. 그는 그 사람이 (잘 나갈 때가 아닌) 어려울 때 만나서 소주한잔 하며 위로해준다고 한다(그 사람이 행복할 때는 잊겠지만). 그는 보답을 바라고 무엇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그는 전세계 어린이들의 입맛을 만족할 만한 음식 조리법을 알고 있다!


이 책은 어찌보면 우석훈, 그의 일기장이다. 그는 이제 40이 넘어서는 시점에서 과거의 그 자신을 정리하고, 내려놓을 건 내려놓는다, 그리고 앞으로의 20년을 가늠해본다. 이 책을 쓴 시점은 2012년인 듯 하다. 그는 이 책에서 '천지개벽할 정도의 뭔가가 있기 전에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힘들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현재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었다(천지개벽할 정도의 뭔가가 있었나 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명박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는다. 나 역시 명박 정권은 부끄러운 역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명박 정권은 다른 별나라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습 그 자체이다(혹시 이게 룸싸롱과 골프장으로 요약되는 한국의 시스템과 관련있나?).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고 의외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꿈, 욕심, 그리고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행복할 수 있다(또는 행복해도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 게 되었다. 우석훈 역시 드러나게 무엇을 이룬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그가 좋다. 그냥 그 자체만으로, 스스로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이 온전한 그 자신의 일인분 인생이 아닐까. 부와 명예와 꿈과 욕망, 이런 것들을 이루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가 정작 더 중요한 것들을 잃을 수 있으니.


피곤한데 늦은 밤에 책을 읽거나 리뷰를 쓰는 짓은 이제 그만 해야겠다(거의 안하고 있지만).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 후에 멀쩡할 때 책읽고 영화보고 리뷰써야겠다. 그게 더 온전한 내 인생이다.


나는 이 책에서 두 가지 (뜻하지 않는) 보물을 발견했다. 하나는 다른 나라 가족을 초대했을 때(한국 포함) 내놓을 요리와 디저트 레시피(요리법)이다. 아이들의 입맛을 맞추는 것이 핵심 포인트였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잘 먹으면 엄마가 기분좋아하고 그 모습을 보는 아빠도 기분좋아진단다. 다른 하나는 고양이가 잘 먹게 하는 간단한 방법과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왜 떠나는지 떠나지 말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이다(그는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워봤단다). 혹여나 내 남은 생애에 외국인 가족을 초대할 일이 있거나, 고양이를 키울 일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공자는 마흔을 불혹 不惑이라고 불렀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고.


아닐 불, 혹시 불.

혹시 나는 잘될지도 몰라.

그럴 일이 마흔이 되면 없어지는 것.

그게 내가 마흔이 되면서 이해한 불혹이다.


혹시라도 로또에 당첨되는 일,

혹시라도 기가 막히게 기쁜 일이 생겨날 일,

혹시라도 내가 고아라고 밝혀질 일,

혹시라도 내가 노벨상을 타는 일,

혹시라도 내가 50년짜리 경제 시뮬레이션 모델을 개발하는 일,

그런게 없어지는 것.

그게 내개 혼 불혹이다.


오늘도 혹시는 없이,

띵한 머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여전히 명박 시대다.


혹시는 없다.


(70쪽)


 누구를 만나는가, 누구와 우정을 나누는가, 그런 게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생각과 삶 그리고 영혼을 무게를 결정한다. 그건 진짜 맞는 말이다. 대체적으로 마흔쯤에 사람은 누구와 생의 후반부를 같이 지낼 것인가, 한 번은 그런 것을 결정하게 된다. '네트워크 사회'라고 사람들이 설레발치는 얘기들은 사실 중세시대, 귀족들의 끼리끼리 놀이의 현대판에 다름 아니다. (26~27쪽)


한 번쯤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시라. 골프 같이 치는 사람들, 술 같이 마시는 사람들,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같은 사람들 혹은 동창과 동기들, 그렇게만 구성되어 있다면 좀 문제가 있는 거다. 지나치게 힘을 숭상하는 것이고, 비판을 듣는 귀를 닫고 있는 것이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다. (28쪽)


인생은 길다.

그 나머지 시간을 허무하게 안방 도련님처럼 지내고 싶지 않다면 늘 낮은 곳으로, 늘 낯선 곳으로, 그런 마음과 자세로 주변을 구성하는 것이 좋다. 낮은 것은 사회를 위한 것이고, 낯선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래야 늙어가는 인생이 허무하지 않은 여행의 연속과 같아질 수 있다.

사람은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거울처럼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성찰이 가능한 존재다.

너무 비슷한 사람들끼리 '덩더쿵 덩더쿵', 그렇게 보내다가는 어느 날 문득 한나라당 할아버지들처럼 바뀌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랄지도 모른다. (28쪽)


자신이 소비하는 것 혹은 걸치는 것으로부터 사회적 비푸를 빌리는 사람들의 삶은, 개개인으로 들어가서 보면 엉망진창인 경우가 더 많다. 원체 자본주의 사회는 이런 경향이 있지만, 2000년대 이후로 '마케팅 사회'라고 불릴 만큼 유통 자본의 힘이 커지고, 독과점 경향이 강해지면서 마케팅이 한 사회의 움직임을 규정할 정도로 특징적인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그 경향이 더 심하게 나타났다. 자신이 타고 다니는 차나, 자신이 걸치고 있는 옷이 자신의 피부라고 믿게 된다면...... 정신적으로도 황폐해질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황폐해진다. (31쪽)


그래서 자신의 소비가 만들어주는 사회적 피부가 자신의 존재 의미이자 동시에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핸리 데이빛 소로우의 '월든'이라는 책을 권해드리고 싶다. (31쪽)


우리는 때때로 애국자이고, 때때로 민족주의자이며, 때때로 효자이거나, 때때로 불효자이기도 하다. 또, 우리는 때때로 자식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지독한 극성 부모이거나, 때때로 자식의 결정권을 박탈하는 청소년 학대자이기도 하고. 그리고 때때로 지름신의 강림에 따라 뭔가를 구매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그런 것에 잠 못 이루기도 하는 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어떤 것 중 하나가 자신의 영혼을 온전히 가져가서, 완벽하게 자신의 피부가 된다면, 그에게 삶은 매우 고단하고 피곤한 날들의 연속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덕 유아적 퇴행 현상을 겪게 될 것이다. (32쪽)


프랭크 허버트의 기념비적인 SF소설 '듄(Dune)'에서는 악머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악마란 자신의 기억 안에 있는 어떤 특정한 존재가 자신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 종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무엇인가 혹은 어떤 사상이 자신을 100퍼센트 설명할 수 있게 되면, 그게 바로 악마라는 얘기다.

 인간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을 시작하면서 더욱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때때로 사악하고, 때때로 고결하고, 때때로 순진하며, 대체적으로는 생각을 귀찮아하는 존재가 아니든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24시간 내내 악마의 속성만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24시간 내내 순수함만 가지고 있지도 못한다. 그러나 어느 한 극단에 사로잡히면 악마가 되거나 미치거나, 그러다 보면 주위 사람들이 너무너무 피곤해해서 같이 있는 걸 꺼려할 것이고, 결국 그는 외롭게 고립된다. 삶이 원래 그런 것이다. (32~33쪽)


나이 마흔, 단순함과 복잡함이 교차하는 순간이 오는 듯하다.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은 의외로 별 거 아니라는, 마치 뭔가 깨달음의 마음이 한편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단순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의외로 복잡하게 느껴져서 세상은 역시 어렵다고, 다시 마음 한편이 무겁다. 그런 게 교차하는 게 나이 마흔이 아닐까 싶다. 철석같이 자신의 피부로 사용하고 있던 조직에서는 슬슬 나가라고 하고, 그렇다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국가대표팀을 응원한다고 해서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닌 듯싶고. (33쪽)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고, 무엇이 나의 피부인가? 그 질문을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답은 없다. 그러나 그 질문을 그냥 피하려고 한다면...... 20년이 지나. 이제 새로 무엇인가를 하는 게 아주 어려운 예순 즈음에 그 질문과 다시 마주할 수밖에.

...

 혹 마음의 여유가 되면, 누구도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이유도 논리도 없이 찾아오는, 존재의 물음에 관한 영화,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제7의 봉인]을 보면 좋을 것 같다. 스물두 살 때에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관에서 졸았다. 서른 살 때에는, 그래도 좀 즐기면서 봤다. 마흔이 넘어 다시 보니, 이제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십자군에서 돌아오던 어느 중년 기사의 고뇌'. 그게 우리들이 한 번씩 만나게 되는 질문일 것이다. 과연 우리의 사회적 피부는 무엇일까? (34쪽)


 그 시절, 나는 돈도 없었고, 늘 배가 고팠다. 집을 나오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그때 난 내가 하고 싶은 게 진짜로 무엇인지, 독서실에서 의자를 붙여놓고 쪽잠을 자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었다. 나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게 아마 내가 최초로 찾은 답이었던 것 같다.

 중고등학생 자녈르 둔 학부모들에게, 그래서 내가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바로 자식을 스무 살에 독립시킬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36쪽)


탈무드의 말이 맞다.

"고기를 잡아주는 게 아니라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줘라."

 그러나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고기를 쥐어주려고만 한다. 내 몫의 고기가 있다는 생각이 자식을 부패하게 만들고, 불의로 이끈다는 생각은 전혀 고려치 않는다. "불의에 타협하지 말라" 고는 못가르칠망정 자기 자식을 '시대의 불의'로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10년이 지나 우리가 명박 시대를 아주 어두웠던 과거로 회상하게 될 때, 그 어둠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20대에 독립하는 청춘이 많아지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동거하는 대학생과 청춘들이 많아지면 우리가 잘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부모 없으면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청춘이 많다는 건, 그게 바로 사회가 망해가고 있고, 망할 것이라는 증거 아닌가?

 스스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은, 사교육이나 학원이 할 수 없는 부모만의 고유역할이자 책임이다.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 질문이야말로 독립한 상황에서 처음 맛보는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순간이 와야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야말로 자기 내면의 욕망을 알게 된다. 그전에 자기가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은, 지독할 정도로 잔인한 현실 앞에 서면 다 거짓말이 된다. (37~38쪽)


 자신이 전기 작가라고 생각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면, 정말 재밌다. 한국은행 총재를 생각해보자. 역대 한국은행 총재 중에 위인전이나 전기가 필요할 정도로 ㄱ그적인 사람이 있을까?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선일보] 편집국장들은? 음.... (중략)

 그리고 눈을 좌파로 돌려보자. 우리와 같이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 중에, 중고등학생들에게 이 사람의 삶은 꼭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모르겠다(다만 인민노련이라는 조직은 그것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꼭 알았으면 하는 대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이라는 책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진짜 동기다).

 내가 살았던 이 시대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다. 어디 한국 같이 이런 기가 막힌 소재를 또 찾을 수가 있으랴!

 또한 전기를 쓰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들을 스스로 갖추어가는 것, 그게 나쁘지는 않은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진짜 좋은 점은, 돈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51쪽)


 살아온 삶이 그래서인지, 내 주변은 정확히 좌파 인사 절반, 우파 인사 절반 그렇게 딱 나뉘어져 구성되어 있다. 상공회의소나 전경련에는 직장 시절 생사의 길을 같이 넘었던 오래된 지인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과 하는 얘기들 대부분은 나의 부모님도 이해하지 못하는 얘기고, 아마 동감시키기도 어려운 얘기들일 것이다(여전히 부모님과는 정치적 견해를 나누긴 어렵지만, 평생 한나라당 찍었던 아버지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나를 위해 노회찬에게 투표한 정도가 얘기할 수 있는 경계선이 된 것 같다). (67쪽)


 "Dans La Vie Quotidien", 이런 불어 표현을 난 아주 좋아하는데, 하루하루의 일상성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도 그렇게 일상성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한국의 학자들은, 글만 읽어보면 꼭 한국에 안 사는 사람들 같다. 마치 뉴욕 시민이나 시카고 시민이 쓴 것 같다. 글 안에, 우리의 삶이 전혀 없다. 오히려 영국에 있는 장하준이 쓴 책에 우리의 일상성이 더 많이 녹아 있는, 이 비루한 현실을 어쩌면 좋을까? 그런 게 내가 늘 하는 고민이다. 어쨌든 한국에서 사회과학이라는 형식에 일상성을 담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 같다. (75~76쪽)


 나는 좋은 사회는 '필승카드'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혹 그런 게 존재한다면, 다른 장치에 의해서 균형을 이루게 되어, 결국 기댓값이 어느 정도는 평준화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프랑스는 귀족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공공연하게 5퍼센트가 나머지 95퍼센트를 끌고 가는 사회라고 내부에서 얘기한다. 프랑스가 평등주의적이라는 말은,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개뻥이다. 그러나 그 5퍼센트가 제대로 못 했다고 생각되는 경우, 상층부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은 대단하다. 그냥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루이 16세를 단 한 표의 차이로 유죄판결 내리고 길로틴에서 목을 댕강 잘랐던 그 전통처럼, 언제든 혁명은 재발할 수 있다. (83쪽)


"넌 배부르니? 난 배고픈데."

 이 한 문장이 파리의 여인들을 베르사이유로 향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행진이 루이 14세 이후로 황금기를 구가했던, 그리고 실제로도 상당한 개혁정치를 했던, 그 부르봉 왕조를 종식시켰다. 배루르다고 함부로 행동했다가는 엄청난 세금을 때려 맞게 되거나 사회적 맹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귀족들의 교육은 더욱 엄격하다. 접시에 남은 약간의 소스도 빵으로 찍어서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도록 그들의 에티켓이 형성된 것은, "난 배부르지 않아"라는것을 보이기 위한 장치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넌 배부르나?"

 이 질문은 치명적인 질문이다. 적어도 프랑스 사회에서는. 배루르다고 대답했다가는 언제 단두대에 올라갈지도 모르는 긴장감 팽팽한 사회. 프랑스가 평화와 낭만의 국가라고? 개뻥이다. 피와피를 통한 균형. 그게 프랑스라는 국가를 움직이는 실체다. 독일 나치에게 협력했던 부역분자 '골라보collabo'에 대한 처리만 봐도 그들은 정말 지독할 정도였다. (84쪽)


 한국은 오랫동안 필승카드가 존재했다. 왜정시대에는 '1고', '2고'라고 불리던 경기고와 경복고 같은 필승카드가 있었고, 박정희에서 전또깡의 새대에는 해사, 공사가 아닌 꼭 '육사'여야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어는 서울대 법대의 전성시대가 잠깐 펼쳐지기도 했다. 그 필승카드들 중 최상위였던 경기고는 대통령 한 번 배출하지 못해서 한이 되었다고들 한다. 이회창이 대선에 출마해 떨어졌을 때, 그때 경기고의 실력과 한계를 보았다고들 얘기한다(정운찬 그리고 그와 정치적으로는 대척점에 서 있는 노회찬, 이런 사람들이 경기고 출신이다).

 한국에서 경기고, 육사, 서울대 법대, 이런 것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런 특혜를 상쇄하는 균형 조건을 찾아내지 못한, 제도의 미성숙 같은 것에 관련 있지 않을가? 그들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지만, 그에 비해서 내놓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회가 준만큼 사회에 돌려준다', 이것이 귀족 사회를 지탱하는 제도적 균형조건인데, 우리는 그걸 만들지 못했다. 의무와 책임 없이도 권리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사회이다 보니 그러니 누구든 '프레스티지'를 가질 수 있는 곳으로 진군할 수밖에. (84~85쪽)


 돌아보면,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의 삶을 산다는 건, 이제는 아주 익숙해져서 몸에 딱 맞는 옷처럼 느껴지는 핸디캡을 안고 살아가는 일이다. 물론 그래봐야 정말 핸디캡이 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는 중무장에 해당되고, 그래도 최소한 내 한 몸 서 있을 공간을 부비적거리면서 만들어내는, 딱 거기까지는 그런대로 걸어온 것 같다. 그러나 때때로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칠 정도로 '마이너의 마이너'라는 것이 사실 고되기는 하다.


...


 몇 년 전에 책 작업을 하면서 한국에서 누가 가장 힘들까에 대해 간단하게 핸디캡 조건을 상정해본 적이 있다.


20대 * 여성 * 지방거주자 * 고졸 * 장애인


느낌이 오는가? 여기에 조건 하나를 더 추가해보자.


20대 * 여성 * 지방거주자 * 고졸 * 장애인 * 농민 (89쪽)


 실제로 모델을 이렇게 설정해놓고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찾아나서서 몇 명은 직접 만났고, 몇 명은 삶에 대한 크로키 같은 것들을 만들어보았다.

 참, 기이하게도 이런 기가 막힌 핸디캡들을 달고 있는 여성 농민들이 오히려 대체적으로 행복하고 건강하다(이게 내가 농업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 결정적 계기 중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89~90 쪽)


 현실은 어떤지 잘 몰랐지만, 나는 그 '비주류의 비주류'라는 표현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래서인지 비주류를 그냥 내 삶으로 받아들였다. 난 주류가 되려고 했던 적도, 주류가 되려고 생각한 적도 없다. (92~93쪽)


 단순하게 보면, 혁명이나 정권교체 혹은 개혁과 같은 것들은 사람으로 치면 '주류'를 교체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배세력이나 주류를 교체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교체를 하다 보면 또 다른 흐름이 나올 수 있고, 최소한 진화의 속도는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93쪽)


 난데없이 비주류와 주류 얘기가 생각난 건 소설가 박범신 때문이다. 나중에 명박 정권의 '문화 5적' 같은 걸 누군가가 정리한다면 그 안에 들어갈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렇게 권력이 좋더냐,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명박의 당당함이 과연 어디에서 나오나 늘 궁금했는데, 저렇게 손들고서 나 좀 시켜달라는 사람이 많으니...... (93쪽)


 서른 살을 넘기며 내가 손에 쥔 원칙은, 수입은 노동소득으로만 올린다는 거다. 증권, 부동산, 이런 것은 일절 하지 않고, 커미션 같은 것에도 절대로 손대지 않겠다는 생각을 서른 살 되면서 했다. 물론 회사에 있거나 정부에 있으면, 어떤 주식이 금방 올라갈 건지 알게 되는 경우가 좀 있다. 토건쟁이들이 알면 눈 뒤집힐 정도의 개발에 대한 고급 정보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업예정지가 어디인지, 어느 아파트에 시설 좋은 인프라가 주변에 깔리게 되는지, 내가 제일 먼저 알게 되니 말이다. 그런 순간이 몇 번 내 삶에도 찾아왔었지만, 노동소득 외에는 소득을 올리지 않는다는 작은 원칙으로 그냥 살았다. 위험이 없으면 큰 소득도 없지만, 그렇게 살면 씀씀이도 커지지 않는다.


 가늘고 길게......

 쉽게 온 것은, 쉽게 사라지는 법이다. 쉽게 오는 것을 찾아서 삶을 부평초처럼 낭비하다 보면, 결국 자기 영혼이 투전판 한가운데를 헤매고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여지를 만드는 것. 그게 물질적으로는 개인을 행복하게 해주진 않아도, 마음만은 풍성하게 해준다. 그러면 딱 굶고 살 것 같지만, 살아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하루에 세 끼 밥 들어가면, 그 이상 뭐 바랄 게 있을까? (98~99쪽)


 내가 마흔이 되면서 생각한 건,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을 시간이라는 거다. 옛날 나이로 치면, 마흔이면 해볼 만큼 해보고 누릴 만큼 누린 나이다. 이제부터는 내려놓기 시작해야, 나머지 삶이 즐거워질 수 있고 평온해질 수 있다는 게 내 믿음이다.

 진리라는 게 돈의 법칙이나 권력의 법칙과는 다르다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려놓으면 내려놓을수록, 진리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 이게 삶의 오묘함이다. (104쪽)


[조선일보]가 매번 맞는 것은 아니지만, 비록 틀렸다고 하더라도 [조선일보]가 그렇게 말했으니, 그것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이런 자기실현명제의 현실화를 알고 있는 셈이다. 좀 점잖게 표현하면, 이걸 우리 사회에서는 '의제설정능력'이라고 부른다. [조선일보]가 비록 해석에 있어서 틀렸거나 정의롭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예 혼자 다른 생각을 해서 고립되는 것보다는 낫다, 그런 게 [조선일보] 루틴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틀린 걸 알아도 같이 틀리면 절대로 한국에서 따돌림 당하는 일은 없다, 그런 집단행동 중 하나가 [조선일보] 루틴인 셈이다. 딴에는 그렇다. 한나라당에 입당하기도, 그렇다고 대형 교회의 외피를 빌리기도 힘든 사람들이, 단번에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의견 그룹에 포함되는 방법이 바로 [조선일보]를 읽고, [조선일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그게 [조선일보]가 자랑하는 열독률의 경제사회적 배경이기도 할 것이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조선일보]는 소위 주류 사회로 열려진 가장 저렴하고도 쉬운 길이다. 저렴, 이보다 더 저렴할 수는 없다. 신문만 보면 자전거도 준다는 거 아니냐? (109~110쪽)


 세계 최대의 에너지회사였던 엔론, 한때 투자은행의 패러다임을 이끌었던 리만 브러더스, 이런 회사 모두 신자유주의가 강력했던 미국에서 분식회계 문제로, 파생상품 발행으로 파산한 회사들이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 적어도 지난 10년 동안 벌어지지 않았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하고, 부패해도 좋은 나라가 동치어는 아닌데 말이다.

 마치 암 덩어리가 점점 자라서 신체의 일부처럼 자리를 잡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신자유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짜 경제 근본주의도 아닌, 자신의 자식은 미국 사람을 만들겠다는 지배층과 [조선일보] 루틴파들이 묘하게 결합되면서, 정말 기묘한 사회가 만들어졌다.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정의와는 무관하며, 부자들에게만 너무너무 편한 그런 사회 말이다. (111쪽)


 정보라는 게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오탕크의 돌'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미래를 보여주지만, 정보는 불완전하다. 결국 믿고 싶은 대로 보게 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게 된다. 세상의 비밀을 먼저 알고 있다는 게, 정보가 가지는 함정이다. 증권가나 공무원들의 세계 역시 뭔가 그들끼리는 많이 알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세상 사람들 다 아는 걸 자기들만 모르는 경우도 많이 있다. (115쪽)


 열심히 출근하고, 일 열심히 하면 잘산다?

 그런 일은 통계적으로 전혀 관찰되지 않는다. 취리히에 있는 어느 공장에 가본 적이 있는데, 12시에 노동자들이 전부 나오더라. 집에 가서 점심 먹어야 한다고. 노르웨이는 더 환상적이다. 학교 선생이든 공장 노동자든 아침밥은 집에서 먹고, 점심도 집에서 먹고, 저녁도 다들 집에 가서, 왕창 먹는다. 집에서 점심밥 먹지 않는,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 도대체 왜 그러고 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단 얘기를 종종 한다.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이런 나라들이 아주 못살이야 하는데, 1인당 국민소득이 6만 달러가 넘는다. 집에서 점심밥 먹는 걸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런 나라들의 또 다른 대표적인 특징은, 아주 잘 논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람들 노는 게 우리 식으로 보면, 노는 것도 아닌 아주 재미없는 일들이긴 하지만.

(138~139쪽)


경제학자로 오래 살다보면, 한쪽에는 100억 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나래비를 서 있고, 또 한쪽에서는 정말 내일 하루는 뭘 먹어야 하나 걱정하는 가련한 청춘들이 나래비를 서 있다. 그 사이에서 난 어디에 눈을 맞추어야 할지, 누구를 분석대상으로 삼아야 할지, 그런 고민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오면, '가난한 시절을 견디는 법'이란 얘기들을 듣던 그런 학생 시절의 추억들이 다시 생각나기도 하고.

 어쩌면 학자에게 가난은 실체가 아니라, 가낭으로 부터 생겨나는 초조함이 그 실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 (148쪽)


 자, 우린 이 과정을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아주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그래도 사람에게는 양심이라는 게 있고, 본성이라는 게 있는데, 이기주의자로만 살아가는 게 과연 옳은 거인가?, 인간이라면 그런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정말로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 사람으로는, 우리는 '이명박'이라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지독할 정도로 이기주의만 남은 인간의 표본을, 그래서 겉과 속이 모두 같은(난 그런 거짓 없는 인간이 궁금했는데, 살아생전 한 번은 본 셈이다). 그의 양심은, 우리의 양심과는 좀 다르게 생긴 것 같다. (150쪽)


 민주당이 재집권하면 세상이 좀 좋아지고, 경제가 살아날까? 최소한 이명박과 그의 후계자를 더 이상 9시 뉴스 시작하지마자 보지 않아도 되는 좋은 순간은 온다. 그게 50퍼센트 가까운 분당투표를 승리로 이루어낸 진짜 행위의 동기 아닌가? 그냥 싫은 거. 이건 돈이나 이익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이성과 합리성 이전에 정서적인 문제이자 원초적인 것이다. 어쩌면 더 말초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부르면서 고양이 놀이하고, 그렇게 말초적으로 그를 혐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돈? 경제적 이익? 지역발전? 그딴 거 아니다. 그냥 그가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 강렬한 증오, 그걸 대체할 감정이 뭐가 있을 수 있겠나? 증오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얼마나 강렬한 힘인지, 한나라당은 그걸 절감하게 될 거다. (151쪽)


 'just exchange', 즉 뭔가 교환하고 나서 나 손해 봤어, 이렇게 누군가가 다시 물러달라고 하지 않는 것, 그게 정당한 교환이다. 만약 누군가 손해 봤다고 생각하면 다시 물러달라고 할테니까. 그때에는 부당한 교환이 발생한 것이다.

 맑스가 착취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한 것은, 다른 모든 상품은 등가로 교환되는데, 노동만은 부등가로 교환되기 때문이다. 즉, 노동의 가치보다 월급의 가치가 더 적다 그러면 그 차이만큼이 착취다라는 얘기다. (154쪽)


 욕심을 절제하기로 마음먹으면, 조선시대 선비들이 흔히 그랬던 것처럼 '가늘고 길게' 전략을 선택하게 된다. 안 쓰고, 안 먹고. 이런 사람들의 눈에 피눈물이 나고, 투기를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게 되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정의롭지 않은 경제이다. 불행히도 한국의 지난 10년이 그랬다. 서울을 기준으로 2001~2002년 사이의 어디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은행에서 돈 빌려서 집을 산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는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부유해졌다. 물론 아직도 집을 정리 안 하고 부동산 불패를 믿었다면, 이제 세상은 공평해진다. 2003년 이후에 자기 돈이 절반이 안 되었는데도, 운행 끼고 집 산 사람은 앞으로 아마 좀 어려워질 것이다. (162~163쪽)


 내가 한국에서 동거를 강조하게 된 이유는, 혼수라는 매우 독특한 제도를 오랫동안 관찰해왔기 때문이다. 혼수는 실패한 결혼의 첫 단추이자, 토건 한국을 지탱하는 은밀한 제도 중의 하나다.

 남자는 집을 구하고, 여자는 그 안을 채우고. 재산세 상속과 같은 부의 세대 간 이전과 남녀 차별의 출발점 등 하여간 우리가 마초의 탄생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얘기가 바로 이 혼수에서 시작된다. 그러면 혼수를 없애면 되지 않느냐? 말이 쉽지, 이건 모든 관행과의 단절이 필요하다. (168쪽)


사랑, 그 교환되지 않는 것. 그것도 교환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는가? 취집, 그 마음은 알겠지만 교환은 가치와 빈도수의 문제, 그 마음이 너무 쓸쓸해 보인다. 우리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사랑하여 행복하였노라, 이런 경구가 이 시대에는 그냥 동동 떠다닌다. (172쪽)


 딱 봐서 자신이 최고급 내부 정보를 확보할 수 있거나, 아니면 그런 거 없더라도 초일류급 정보를 분석할 자신이 없다면, 유가증권 거래는 안 하는 게 좋다. 아무리 안전장치를 높인다고 하더라도, 경제는 짧게는 3 ~ 5년, 길게는 15년 정도에 한 번씩 오는 사이클이 있다. 그걸 다 피해갈 기술적 방법은 없다. 일반인은 조금씩 먹고 한 번에 다 털리고, 고수는 한 번에 다 먹고, 조금씩 손해 보면서 즐기는 게 이 시장의 역사적 속성이다. 자신은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차라리 로또를 사시라. 로또는 적어도 신용거래가 없으니까.


...


 아담 스미스가 한 얘기 중에 지금도 정말 맞는 게 하나 있다.

 자연 이자율이 있어서 사회적으로는 평균 수익률에 모든 분야가 수렴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정말 자본주의 아니라 자본주의 할아버지에서도, 금과옥조이다.

 내가 하면 다르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게 경제학자로서 내가 유가증권을 대하는 기본 자세다. 난 내 판단을 믿지 않는다(아쉽게도 이런 멋진 얘기는 케인즈가 이미 옛날에 해버렸다). (179쪽)


 유럽 우파들은 자기 자식들을 철저하게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하고 기른다. 한국 우파는? 양아치로 키우고, 무슨 일 생기면 엄마부터 찾는 쪼다로 키운다. 한국 우파들이 자기 자식교육을 철저히 했다면, 한국의 미래가 더 어두울 수도 있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은 도저히 지도자가 될 수 없는 방식으로 자기 자식들을 키운다. 길게 보면 한국이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래서  그렇다.

 남아당자강 vs 남아엄마강, 엄마가 강하게 만들어준 자식이 리더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는 조직의 리더는커녕, 좋은 가장도 못될 것이다. (183쪽)


 "아, 나는 나의 본성이 시키는 대로, 마음껏 욕망을 채우면서 이기적으로 한평생을 잘 살아왔어. 그러므로 내 삶은 아주 보람 있는 삶이었지." 죽기 전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모르겠다. "아, 나는 나의 욕망이 내 삶에서 잘 충족될 수 있도록 나의 마시멜로를 아주 아껴가면서, 결국 내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었던, 아주 보람 찬 인생을 살았어, 나는 행복해." 이렇게 생각할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보람을 느낄 수 없는 삶을 산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다.

 돈이 보람을 줄까? 미안하게도 돈은 보람과 같은 그런 고급 감정을 주지는 않는다. 두 손 가득히 돈을 쥔 사람이 "돈은 허무하다"는 걸 결국 배우는 게 세상의 이치다. 보람은 느낄 수 있는 게 행복이라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대한민국은 지난 10년 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191쪽)


 내가 가장 순수했던 순간을 회상하고 싶을 때, 나는 내가 처음 집회에 나가던 순간의 심정을 떠올리곤 한다. 내가 나만을 위해서 살지 않았다는 걸 생각할 때마다, 가끔씩 돌아가보는 그 첫 순간들.

 먹고사는 것, 그게 삶의 전부는 아니다. (197쪽)


 어쨌든 겉으로는 영광을 누리고, 속으로는 공부나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서 매우 바빴던 그 시절. 그때가 내 삶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정서적으로도 가장 힘들었던 때였다. 약간 과정해서 얘기하자면, 해대 시절에 우울증이 생겼고, 공직에 있을 때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203쪽)


 자기가 하지 않ㅇ느 잘못으로 자기 삶의 문제를 찾으려는 건, 답 안나오는 일이고 결국 우울증으로 빠져들고 만다.

 자살은 왜 해? 재밌게 놀기도 바쁘구만!

 이 상태에 내가 다다르기까지 학위니 학벌이니, 그런 건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다. 아, 그게 소망교회에 같이 다니던 명박 때문이었군, 그걸 안 다음, 우울증과 자학이 씻은 듯이 사라졌고, 내 주변 사람들이 춤추라면 춤추고, 기타 치고 노래하라면 하고, 잘은 못해도 다른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난 악착같이 명랑하게 살아남아서, 명박보다 오래 살 거거든.

 가끔 자살충동이나 우울한 생각이 들 때, 한 번쯤 증오의 힘으로라도 버텨보시기 바란다.


 출세, 그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일까?

 쥐어도 더 쥐어야 마음이 풀리는 그런 성공지향적이고 출세지향적인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저승으로 떠날 때 싸들고 가는 것도 아닌데, 뭔가를 자꾸 쌓아야 성미가 풀리는 그런 사람들이...... 난 사람이 태어나서 하루에 세 끼 밥 먹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거란 생각을 30대 중반에 했던 것 같다. 뭔가를 쥐려고 하면, 아쉬움이 더 많아진다는 걸 그때 깨달은 것이다. 그 대신 내려놓으면, 잡초들이 피워내는 들꽃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고양이의 재롱 같은 게 더 살갑게 느껴진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210쪽)


지금 우리는 "양심을 버리지 않으면 굶어죽는다"는 날강도 같은 얘기가 삶의 지혜로 둔갑한, 미친 시대를 지나고 있다. 그게 내가 알고있는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에게도 강요되는 경제교육이다. 양심을 버리고 돈을 택하라는 것, 그게 교육이냐? 우리는 자신의 양심과 정치적 신념을 버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풍요로워지는 게 아니라 더 보편적으로 가난해지는 길을 가고 있다.

  마이너를 루저로 몰아붙이고 세 끼 밥 입에 넣는 것도 고달프게 만드는 게, 한국 지배층의 통치술이다. 부자를 꿈꾸고, 메이저를 동경하게 하는 통치술은 아주 고전적이지만, 일단 이렇게 사람들이 움직이기만 하면 아주 효율적이다. '닥치고 경제'의 명박 시대는 그렇게 해서 열린 것이 아닌가? 모두가 메이저 전략을 택하면 돈 버는 건 럭셔리 브랜드와 사교육 시장밖에 없는데 말이다. (211~212쪽)


좌파든 우파든, 생태주의든 페미니즘이든, 대학을 가든 안 가든, 회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자신의 성격과 양심 그리고 선택에 의해서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고, 마이너의 마이너가 되어도 입에 세 끼 밥 들어가는 데에 어려움이 없는 나라, 그게 우리들이 만들어가야 할 경제다.

 이명박을 지지하는 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는 사람, 그것도 그 사람의 정치적 선택이라서 뭐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런 사람만이 취업에 지장이 없고, 승진에 걱정이 없고, 경제적 윤택함이 약속된 한국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가 없다. (212쪽)


 아, 추가적으로 내가 지키는 게 한 가지 더 있다. 어려울 때의 아픔과 고통은 나누어지지만, 어려움이 지난 후의 즐거움과 화려함은 나누어지지 않는 법이다. 단체든 회사든 어려운 시절이 지나고 나면, 나도 그곳을 떠난다. 즐거움까지 같이 나누려고 하면, 결국 인간의 본성을 보게 된다. 인간의 밑바닥까지 너무 보지 않는 것이 관계에 있어서 더 좋은 것 같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선하지도 않고, 절대적으로 알하지도 않다. 조건에 따라서, 누구나 신처럼 고괴하기도 하지만 또 언제든 악마로 돌변할 수도 있다. 어려움을 같이 나누었다고 나중에 즐거움도 같이 나누자고 하면, 악마의 얼굴을 조우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인간의 내면을 너무 깊이 알려 하면 다친다.......


...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때에는 그가 어려울 때 만나기를.

 그러면 비록 반쪽일 뿐이지만, 그의 선한 구석을 볼 수 있다. 그가 다시 재기에 성공하면, 그의 반쪽의 선한 모습을 보았던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기를 권해드린다. 나머지 반쪽의 교만하고 오만한 모습을 보고 실망하게 될테니까. (217쪽)


 1990년대부터 등을 대고 살았던, 시민단체 초기부터 같이 움직였던 활동가들도 이제 하나둘씩 마흔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사람이 마흔을 넘어서면 이제 변할 것들은 그렇게 많지 않고, 자신보다는 식구들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게 사람 살아가는 이치 아닐까 싶다. 내게도 밥은 먹고 다니나, 어디에서 한대잠은 자지 않나, 차비라도 있나, 이렇게 끊임없이 걱정되고 챙겨 봐줘야 하는 사람들이 한무더기인 셈이다.

 활동가로 마흔이 넘는다는 것은, 그가 세계를 걱정하고 국가를 챙기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돌보지 않아 누군가가 챙겨줘야 하는 그런 삶을 산다는 것과 같은 일이다. (229쪽)


 어려움을 나누는 것, 나는 그게 '연대 정신'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즐거움을 나누는 것은, '부패'의 시작이다. 부패하고 싶지 않다면 성공한 친구를 다시는 찾아가지 말고, 예전에 도와주었던 사람에게 다시는 공치사를 들으려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부패할 가능성도 적어지고, 머쓱하게 "차나 한잔 하고 가라"는 소리도 듣지 않아도 된다. (236쪽)


혁신은 단절적이고, 우연적이고, 파편적인 현상에서 비롯된다. 행복이 단계적으로 온다고?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승진하면 행복해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이제부터 사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승진할 데가 없다는 사실이다. 편의점 알바나 기업 비정규직에서 무슨 승진을 하라는 거냐? 영원한 수평이동 그리고 나이가 먹을수록 체력이 점점 더 떨어지면서 더 열악한 노동력으로 전락할 뿐. 그런데도 승진하면 될 거 아니냐고 외치는 지도자들...... 그들은 국민들의 고통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2010년대 민중의 아픔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245쪽)


 한국에서는 평균적 삶을 더 이상 단계론적으로 행복을 찾아갈 수도 없고, 지난 세기 IMF 경제위기와 함께 잃어버린 그 실낙원은 더이상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우리의 다음 대통령이 되는 게, 우리 모두를 위해서 좋다.

 승진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들의 지도자가 되어서는(겪어봐서 잘 알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의 삶이 불행해지고, 비루해지면, 국민경제 역시 남루해진다. (245~246쪽)


 앞으로 다시는 사람들과 스승과 제자라는 형식의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한다. 이건 나 정도 되는 작은 그릇의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운 관계다. 열심히 몇 년간 공부를 한 제자가 박사가 되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내가 학위를 줄 수도 없고, 어디론가 다른 대학원을 찾아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던 그 상황, 그건 내게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괴로움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 사람들과는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이런 관계로 만나지 않고 그 누구를 막론하고 파트너라는 수평적 상태로 만나려고 한다. 내가 누구에게도 머리 숙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누구도 내 앞에서 머리 숙여야 하는 상황을 절대로 만들고 싶지 않다. 우린 누구에게도 머리 숙일 필요가 없고, 그래서 누구도 자신에게 머리 숙이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게 내가 15년간의 대학 강사생활을 그만두면서, 지금껏 이런저런 이유로 맺고 있던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를 해소하면서, 가슴속에 새겨두게 된 작은 경구이다. (249~250쪽)


 우리 집에는 승진, 취직, 출세, 그런 개념이 아예 없다. 집안의 대화 내용이라는 것도 다른 집과는 아주 다르게 최근의 환경운동연합 소식, 최근의 녹색연합 소식, 최근의 생협 소식, 주로 그런 내용들이다 올해는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 중인데, 벌써 아이 중학교 문제 가지고 논쟁을 벌인다. 나는 중학교 나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고, 아내는 중학교는 졸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두 가지 설이 팽팽하게 맞서지만 하여간 아내와 내가 동의하는 시점은, 열다섯 살이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열다섯 살 때부터는 하고 살 수 있어야 행복한 삶일 거라는 게 아내와 내가 동의하는 바다. (272쪽)


 결혼하기 전에 아내와 짧은 기간 동거를 했었는데 아내가 짐을 싸서 집에서 나오던 날, 그날이 지금 우리 집이 시작된 첫날이다. 그 동거로부터, 우리는 해방되었다.

 결혼할 때 혼수니 예단이니, 이런 건 일절 없었다. 아내가 자기 혼수라고 주장하는,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는 배불뚝이 TV, 그게 전부였다. 요즘 우린 그놈을 침실에 놓고 주로 영화를 보고 있다.

 사회가 '예의'라고 만들어놓은 것들. 우리 집에는 일절 없다. 남들 다하는 것, 그런 것은 절대 안 한다. 그 대신 얘기를 많이 하고, 영화를 같이 많이 보고, 책을 함께 읽고, 여행을 자주 다닌다.

 좋은 남편이 되는 법에 대해서는, 조금은 이해를 할 것 같다. (273쪽)


 생각해보니 나는 아끼는 그분에게 누님이라고 별로 불러드리지도 못하고, 보통은 선배라고 불렀던 것 같다. 그 일제시대의 잔재나 다름없는 쓰레기 같은 용어를, 높인 격이라고 불렀던 셈이니..... 아쉬움이 남는다. 선배에게 나는 누님이라고 잘 부르지도 못했고, 더군다나 누이라고 불러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275쪽)


 어느 정도 성인이 되면 주변 상황과 주변 조건, 즉 기본적인 세팅은 끝난다. 그 안에 있으면 잘되든, 못되든,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비슷한 얘기를 하고 그리고 결국은 비슷한 얘기로 서로를 위로하다가 끝이 난다. 학자에게는, 그야말로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반복되는 요소들을 최대한 버려야 조금이라도 뭔가 이해하는 첫길이 열리는 것 아닌가?

 나에게는 이질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최대의 질문이었다. 한국은 동질성이 아주 강한 사회이고, 유사한 사람들끼지 자체 세력화를 하는, 자기진화적 메카니즘이 동질성으로 향하는 전형적인 시스템에 가깝니다. 최소한 왜정시대 이후,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고 또 그렇게 자라난 것 같다.

 나는 내가 머리가 좋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고, 특히 암기력에는 아주 치를 떨면서 살아왔다. 기계로 치면, 내 머리는 메모리가 너무 약하고 장기기억장치라고는 불량품에 해당하는 그런 육체와도 같다. 이런 내가 학자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질성을 장착하는 것이라는 게 15년 전에 처음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 9월부터 연세대학교의 창문 하나 없는 연구실에서 혼자 조용히 생각해보면서 찾은 나름의 답이다(아! 그 연구실은, 연구실로서는 최고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것을 일깨워주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279~280쪽)


 자기계발서는 영어로는 'Self-Help'라고 한다. 누군가 도와줄 수 없으니 스스로를 도와야 하는 상황에서 참고하는 책이라는 으미다. 자기계발서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문장과 "잘하면"이라는 기술적 제약 조건이 하나 붙는 걸 들 수 있다. 자기계발서와 재테크책의 기본 구조는 거의 대동소이하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돈이면 경제경영서고, 간절히 원하는 것이 권력이나 힘 같은 것이면 자기계발서로 분류된다. 그리고 대개는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가? 그런 질문들로 시작된다. (314쪽)


 이청준 선생이 말하지 않았던가. "살아서 동상을 세우지 말라." 가끔은 굶더라도 대체로 입에 세 끼 밥이 들어오고, 남들한테 갚지 못할 빚을 남기지 않고 가는 삶, 그런 거면 충분치 않을까 싶다. 때때로 작은 소망이 생기는 거야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 간절히 원하는 것을 만들지 않는 삶, 그런 삶을 40대가 되면서 배운 것 같다. 소소한 물건에 대한 집착까지 내려놓으며 말이다(하지만 미학적 취미까지 몸에서 다 떼어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누군가 내게 정색을 하며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한다면", 이런 얘기를 또 한다면 난 소주병으로 머리를 한 대 때려주겠다.

 큰 걸 보다가 우리는 너무 쉽게 작은 것의 함정에 빠진다. 마케팅 사회, 자기계발서의 덫에 걸리면 '원하는 것'에 영혼을 파는 아주 이상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간절하게 원하는 것, 그게 바로 악마가 바쁠 때 대신 보내는, '자기계발서'라는 악마의 대리인이 내뱉는 첫 번째 속삭임이 아닐까 싶다. (318쪽)


 1960년대 후반, 진공관으로 만든 TV가 한국에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나는 내가 태어난 그해 아폴로호가 달에 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진공관 흑백 TV를 샀던 수십만 명 중의 한 명인, 교사 부모님을 두었기 때문에 아주 어려서붙 TV를 보고 자라난 최초의 TV 세대였다. (324쪽)


 삶의 기본은 의식주이고,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다. 지금 한국은 최상위 일부를 제외하면, 의식주 자체가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그 편하지 않은 의식주 조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악화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보다 나이가 어린 세대들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데,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경제성장을 하고 경제발전으르 한 것일까? 그리고 진짜 경제적 발전을 하기는 한 것일까? (324~325쪽)


 나는 전두환 때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학교가 끝나면 3시경에 오후반이 끝난 초등학생들과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 얘기를 내가 하면 경기고 나온 할아버지들이, 자신들도 3시에 집에 돌아왔다고 하면서 전차를 타고 돌아오며 즐거웠던 10대 시절의 얘기를 풀어놓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또 이렇게 쏘아붙여준다.

 "그런데 왜 지금은 3시에 고등학생들이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세상을 만드셨어요?"

 고등학생들이 3시에 집에 돌아와서 책을 읽거나 혼자서 공부하거나 아니면 그냥 놀거나, 과외를 해서 자신의 학비를 마련했던 1960년대에서 1980년대, 한국 경제가 튼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힘은 그렇게 놀았던 고등학교 시절의 자유와 그리고 대학 강의는 아예 들어가지 않아도 되던 그런 자율적 분위기ㅣ에서 만들어진 것 아닌가? 정량적 지표로 잡히지는 않지만, 정성적 지표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325쪽)


 지금 40대들은 자신이 번 모든 돈을 아파트와 사교육에 쏟아 붓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해서 망하는 건 자신의 선택이지만, 위험한 건 그것이 자신들의 2세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죽이고 있다는 점이고, 인권이라는 눈으로 보면 청소년 학대의 주범이라는 점이다. 자신들은 3시에 학교가 끝나 집에 돌아갈 수 있었고, 학점 같은 건 신경쓰지도 않고 자유를 만끽하며 연애하고 독서할 수 있었던 삶을 살았는데, 왜 자신의 2세에게는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는가? (326쪽)


 40대 아빠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자신의 딸과 언제 마지막으로 진짜 대화를 했고, 자신의 자녀는 언제 아빠에게서 마음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지? 돈으로 뭔가 보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돈이 해결해주는 건 생각보다 적다.

 우리의 2세들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고 대화가 필요하다. 학원에 바치는 돈, 그건 사랑도 아니고 정성도 아니고 암것도 아니다. 그냥 청소년 학대, 자식 학대다. (327쪽)


 마흔 살에 은퇴를 하겠다는 생각은, 스무 살에 했다. 그때는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삶의 의미도 잘 모르고, TV만 틀면 대머리 전또깡이 나오고, 뭐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나트륨 등을 밝힌 성산대교를 술 먹고 건너는 걸 참 좋아했는데, 다리 위에 서면 갑자기 센치해지면서, "난 왜 살아?"

 그런 질문들이 매번 들었다. (353쪽)


 은퇴하면 뭐 할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보는데 그게 나름 재밌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생각해본 것 중에서 제일 재밌을 것 같은 일은, 우리밀을 조금 키우고, 그걸로 소주를 내리는 거다. 30도에서 35도 정도 되는 내린 소주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내 입에 제일 잘 맞는 술의 도수니까.

 물론 술을 잘 만들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내 입맛에 괜찮다고 생각이 들면 어지간한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서 만원 내외의 유기농 우리밀로 만든 35도짜리 소주, 그건 한번 해볼 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354쪽)


 꼭 글을 쓰거나 학문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소소한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보람 있는 일도 많을 것 같다. 좀 멋있게 이걸 표현하기 위해서 앞의 20년은 부모를 위해서, 뒤의 20년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그리고 남은 20년은 자연에 맡기고. 이런 표현을 생각해본 적도 있는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그건 다 개뻥이다.

 어쨌든 은퇴할 날 받아놓고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의도한 건 아닌데 확실히 좋은 점 한 가지는 있다. 평생을 걸쳐 이루어야 할 금자탑 혹은 나만의 작품, 이런 생각을 하면서 괜히 무거워졌던 마음이나 뭔가를 움켜쥐려고 하는 욕구 같은 것이 사라지게 된다. 어차피 잠시 있다 떠날 것, 그러니 맘도 가벼워진다(그것만큼 몸도 가벼워지면 좋겠지만, 배에 살이 자꾸 늘어가는 것마저 피할 수는 없다). (355쪽)


 은퇴를 결심하면서 제일 아쉬웠던 것은, 한국이 발전한다는 것은 언젠가 합법적으로 공산당을 만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얘기하면서, 언젠가 우리 손으로 사민주의 정동도 만들고, 녹색당도 만들고, 그러고 나서 죽기 전에 공산당을 꼭 만들자, 그렇게 친구들과 했던 그 다짐이다. 시방 우리는, 합법적인 공산당을 만들 만한 힘도 없고, 우리들의 정성을 모두모두 모아서 이 어처구니없는 명방의 시대를 겨우겨우 종료시킨 정도? (356쪽)


 옛말에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고 했다.

 열 지갑이 없으니 입이라도 다무는 수밖에.

 마은히 넘어서 돌아보니, 염치는 줄고, 뻔뻔함은 늘게 된다. 지하철에서 아줌마들이 자리 날 때 용감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엔 한참 웃었었는데, 지금 보니 마흔이 딱 그런 나이다. (356~357쪽)


 웃겨 죽는 줄 알았다. 당연하다. 고양이는 새끼를 낳으면 어미는 도망가기 마련이다.

 간단하다. 고양이의 인식 세계에서 '밥을 준다'는 개념은 아예 없다 그냥 그 시간에 규칙적으로 먹이가 생긴다라는 인식밖에는 없다.

 고양이는 보토오 세 마리에서 네 마리 정도 새끼를 낳는데, 젖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어미고양이는 계산을 시작한다.

 자기가 먹던 먹이를 네 마리가 먹을 수 있을까?

 고양이 먹이느라고 필요도 없는 밥을 하는 우리 집 두 노인네가 설마 새끼들 밥을 안 줄라고.

 그러나 고양이는 개보다는 훨씬 야생에 가깝다. 그걸 이해시켜야 하는데, 어미고양이에게 밥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기가 매일 먹던 밥을 네 마리가 나누어 먹으면, 당연히 모자라지...... 고양이에게는 주인 개념이 없다. 개는 가출하지 않는다. 주겠지, 주인인데...... 불행이도 고양이에게는 이 주인 개념이 없다.

 젖이 떨어질 때쯤 어미고양이는 가출을 한다. 새끼니까 두 마리 정도는 먹을 수 있겠지...... 가정 강한 놈을 데리고 고양이는 가출을 한다. 남은 두 마리를 살리기 위한 끔찍한 모성이다.

 그래서 이 의리 없는 어미는 키워준 공도 모르고 도망갈 뿐더라, 제일 예쁜 놈을 데리고 나간다. 왜냐하면 어미가 보기에는 그놈이 제일 튼실해서 사냥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쥐가 많이 있다면 어미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모자라면 사냥을 하면 되니까. 그러나 이제 서울에 쥐는 별로 없다. 우리 집에도 식구들이 줄면서 쥐도 줄었다...... 두 노인네가 먹어야 얼마나 먹는다고, 쥐까지 키우겠는가.

 그러니까 어미까지 키우고 싶다면, 새끼를 낳은 다음에 밥을 많이 줘야 한다.

 "괜찮아...... 너까지 키울 수 있어...... 밥, 밥은 많이 있으니까 고민하지 마."

 물론 강아지를 키울 때에도 고민은 있다. 개는 새끼를 낳을 때 누가 보면 새끼를 물어 죽인다. 슬픈 모정이다. 빼앗기거나 남한테 죽느니 내가 안락사 시키는 게 낫다...... 이건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고양이가 자기 생태계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365~366쪽)


<단어>

1) 쇼비니스트: 국가를 피부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종종 극단적 쇼비니스트가 되거나, 국가와 개인이 분리되는 지점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국가의 번영과 개인의 행복이 기계적으로 일치하지 않아도, 그냥 국가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즉, 미처 자신만의 피부를 만들어내지 못한 사람은 국가에게서 자신의 희로애락을 찾는다. (30~31쪽)

2) 적자

 최근 들어 이공계 살리기와 함께 인문학 살리기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 참 덧없다는 생각이 때때로 든다. 한국에서는 의대와 상대, 딱 두 가지가 학부의 '적자'가 된 것 같다. 거기에 맞추어서 10대들은 벌써 자신의 유형을 스스로 선택하거나 아니면 주위의 강요로 선택당하거나. (56~57쪽)

3) 레토릭

 그래서 난 마흔이 되던 그 시절, 그동안 익숙했던 레토릭을 많이 버렸다. 입만 열면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이나 사적 소유, 사유제, 화폐의 법칙, 그런 얘기들을 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는데 그런 레토릭부터 버렸다.

 뭐를 다시 채울 수 있을지는 잘 몰랐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정답은 다르더라도 같이 나눌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면 어쩌면 이 모든 게 위선이거나 현학일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그때 많이 했던 것 같다. 다수 편에 서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같이 대화하거나 최소한 고민하는 이유에 대한 공감이라도 구할 수 있는, 조금은 더 보편적인 얘기를 해야 식구들하고도 얘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던 것이다. (67~68쪽)

4) 말 본새사르코지를 가끔 이명박과 비교하곤 하는데, 가끔 말 본새 없이 하는 것만 빼면 택도 없다. (139쪽)

5) 문사철

문사철이야 전향한다고 해도 별 볼일 없지만 순수경제학은, 전향을 하면 그래도 먹고살기는 한다. (145쪽)

6) 바담풍

  "가난을 잘 참아야 한다"라고 배우고 나도 또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후배들이나 후학들한테는 그렇게 얘기한 적은 없는 것 같다. 큰 부를 구할 필요는 없지만, 식구들한테 세 끼 밥은 먹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 아니면 최소한 자신의 몸을 지킬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식으로 말하고 다녔다. 그야말로 바담풍이다. (147쪽)

7) sexual traffic

 내가 다음으로 궁금했던 것은, 그렇다면 연애는? 결혼은 안 하더라도, 연애는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섹스는? 역시, 결혼이나 동거는 하지 않더라도 섹스는 늘어날 수 있다. 'sexual traffic'이라는 개념으로 실제 혼외정사를 측정하는 연구들이 가끔 있다. 좀 무식한 방식이지만, 주말에 신촌 지역에 있는 모텔 몇 군데를 샘플로 정해서 같이 들어가는 남녀의 수치를 세고, 그걸로 원단위를 만들어서 전체 지역 모텔 숫자를 곱하는 연구가 1990년대에 있었다고 전설 같은 얘기로 전해지기도 한다. (171쪽)

8) 와스프(WASP)

미국 중산층 남성들을 표현하는 말로 '와스프(WASP)'라는 말이 있는데, 백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의 조합을 뜻한다. 그야말로 [심슨가족]에 나오는 호머 심슨의 이미지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면 순수 백인 혈통임을 얘기하는, 블루 아이 유전형까지. (210쪽)

9) 스와로브스키

(겨우 유리조각을 그렇게 돈 주고 사냐 싶지만 스와로브스키는 여성들이 자신을 위해서 사는 장신구라는 특징이 있다. 금이나 다른 보석과는 달리, 스와로브스키는 살 때에는 비싸지만, 세공을 다시 할 수가 없어서 환금성이 제일 떨어지는 물건이기도 하다) (269쪽)


k***5 2015.02.2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1인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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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첫 수필집인『1인분 인생』은 경제와 정치, 문화와 생태의 영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주제, 날카로운 시선, 유머와 발상의 전환, 따뜻한 감성 등 그의 글이 품고 있는 매력이 무엇인지 또 그의 생각 뿌리와 스타일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가 가장 잘 드러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고장난 대한민국의 현실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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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첫 수필집인『1인분 인생』은 경제와 정치, 문화와 생태의 영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주제, 날카로운 시선, 유머와 발상의 전환, 따뜻한 감성 등 그의 글이 품고 있는 매력이 무엇인지 또 그의 생각 뿌리와 스타일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가 가장 잘 드러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고장난 대한민국의 현실과 불만족스러운 삶을 바꿀 수 있는 법을 딱딱하고 어려운 학문적 이야기가 아닌 일상의 주제와 명랑 감성체의 언어로 쉽고 재밌게 써내려갔다.

1인분 인생이라니 참으로 재미난 인생 주제인 듯 하면서도, 자기다운 삶에 대한 고백을 담은 책이기에 그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경제학자답게 돈에 능통할 것 같지만 그는 돈이 아니라 사람을, 보람과 가치에 주목한다.

우석훈은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었다가 그러다가 증권 관련업을 잠시 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기단린 함격 결과가 나온 바람에 바로 그만 두기는 했었지만 그는 가끔씩 주식을 한다고 말한다. 그덕에 <88만원 세대>를 집필을 했었 때 경제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대기업 소속 경제학자도 해봤고, 정부 소속 경제학가도 해봤고, 시민단체의 정책실장으로 집회현장에 앉아 있는 경제학자도 해봤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유명해지기도 했고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는 못했단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유명해지기도 했고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는 못했단다. 무언가 된 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1인분 인생도 온전히 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이제껏 발견하지 못했던 일상의 모습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단다.

그래서 인지 그는 이 책에 그의 인생을 돌이켜보는 글들도 담겨져 있다. 그가 40대를 바라 보면서 몇 년간을 돌이켜 봄녀서 써내려 간 글들이라고 본다.

그래서일까 글들에는 몇 년전의 대선 이야기부터 현재의 이야기들 까지 빠지지않고 쓰여져 있다.

왜 그리도 정치에 불만이 많은 건지 읽는 페이지 마다'***정권'라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을 한다.

일상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답게 그는 다양한 영역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고민을 읊조린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일하는 한국 사람에 대한 단상이다.

프랑스의 공공기관은 아침 10시에 문을 열고 12시에는 칼 같이 점심시간, 그리고 오후 2시에 문을 다시 열고 4시면 닫는단다.

스위스 상점들 대부분은 5시면 문을 닫고, 공장 사람들은 전부 집에 가서 점심을 먹는단다. 온 국민이 아침에 대충 출근해서, 점심은 집에 와서 먹고, 저녁 때 칼퇴근하는 나라도 있는데 한국은 왜 이 모양인지 야근도 밥 먹듯이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이러한 차이는 분석해보면 부동산 버블 문제 등 복잡한 요인들이 있으리라.

그는 자신을 C급 경제학자라 말한다. 왜그런 걸까 왜 그러한 본인을 C급 경제학자라고 일컫는지를 생각해봤다. 책을 읽다가 보면은 "고진감래"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는 대학을 나오면서 혼자 자립을 해왔다. 그러면서 프랑스 유학까지 스스로가 해내갔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에도 '장례식장 문 열어주기'를 비롯해 갖은 잡일을 전전했던 만큼 고생스런 젊은 시기를 보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그런 젊은 날의 고생을 거쳐 그는 유엔기후협약 정책분과의장이 돼 국제협상 전문가로 이름을 휘날렸다. '현대'라는 그룹에서 대단한 입지로 그를 영입했다.

그는 좋은 기업들의 고진감래를 거절하고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살아간다. 그는 나라가 즐겁지 못하면 1인분 인생도 즐겁지 못할거라고 말하고 있다. 요즘 들어서 난 한가지 단어를 배웠다. 그건 다름아닌 배금이다. 배금주의라는 말은 들어 봤는지…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숭배한다는 뜻에서 나온다. 돈이 경제를 지배한다. 하지만 돈이 생활까지 지배할 수 없다고 본다.

 

이달의 사락 m*****5 2012.05.1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