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장의 사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라고 2명이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이다. 인계인수 기간도 아닌데 어찌하여 한 기관에 2명의 위원장이라는 해괴한 일이 발생했을까. 기관장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우려는 정부 탓이다. 정부는 출범하고 나서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해임했다. 그런 뒤 오광수 씨를 3년 임기의 새로운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김정헌 위원장이 법원으로부터 해임이 무효라는 판결과 자신에 대한 해임 효력을 정지시키는 결정을 받았다. 그래서 위원회를 대표하고 사무처를 통괄할 위원장이 2명이 되었다. 2명 모두에게 몹쓸 노릇이지만 김정헌 위원장은 잘못을 바로잡는 데 물러섬이 없었다. 김정헌 위원장은 해임 기간에 집중적으로 마을을 찾아 나섰다. 마을에 대한 관심은 그 이전부터였다. 작은 마을 연구소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예마네)’를 만들고 마을에 관한 일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처음 한 일은 마을을 답사하면서 공부하는 것이었다. 주로 아는 예술가들이나 지인들이 사는 마을을 답사했다. “답사를 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마을은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을은 여전히 힘들긴 해도 죽거나 죽어 가고 있지 않았다. 마을은 여전히 주민들이 살아 있고 살아가고 있었다. 책은 바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예술가 덕분에 풍요로워진 마을들에 대한 답사 기록이다. 나는 모든 희망의 싹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믿는다. 또 소외된 변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믿는다. 그곳은 바로 사회의 최소 단위인 마을이다. 구성원들의 공동의 이익, 공동선을 실현하는 문화 사회를 우리는 공동체라고 부른다. 물론 국가같이 큰 단위의 사회들도 공동체를 표방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공동체의 개념은 마을 같은 하부의 작은 단위를 지칭한다. 이것은 무수한 법과 제도들에 의해서 삶의 권리와 의무가 타율적으로 정해진 사회가 아니라 그 단위의 구성원들에 의해 자치 자립의 의지가 실현 가능한 사회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공동체 사회는 작은 단위에서 구성원들의 상호 간 소통이 가능한 기반 위에 성립한다. 여기에 가장 알맞은 공동체가 바로 우리의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11쪽) 농고 출신이고 집안 대대로 농사일의 내력을 가진 홍일선 시인이 귀촌하여 3천 평 유기농 농사를 짓는 여주 점동면 도리 늘향골, 이은홍 신혜원 작가가 들꽃을 나누며 마을 사람들과 친해진 제천 덕산면 신현리, 김지연 사진가가 오래된 정미소를 조금씩 보수해서 박물관으로 운영하는 전북 진안 백운면 등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이들 마을은 여전히 예술가와 주민들이 화학적으로 결합한 느낌은 안 든다. 그리고 답사 기간이 짧아 충분히 취재하지 못했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서정홍 시인이 귀농한 합천 가회면과 서정홍 시인 덕분에 생긴 가회면의 귀농촌은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리고 예술가와 주민들이 가장 잘 어울려 사는 곳은 전주시 재뜸마을 같았다. 채성태와 문화공간 싹 덕분이다. 이들은 주민을 중심에 넣고 생각하고 활동했다. 채성태는 1997년부터 재뜸마을에 살면서 마을 주민들과 고락을 함께 나누려 하고 자기의 작업도 동네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생활 도구들과 쓰레기들을 이용했다. 그러면서 이 마을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청소년 문제에 직접 부딪쳐 나갔다. 그러면서 청소년 문제를 중심으로 한 마을의 문제들을 가지고 주민들에게 편지를 썼다. 주민들이 처음에는 광고 전단지인 줄 알고 버리더니 그 안에 동네와 자식들 이야기가 나오니까 차츰 읽기 시작했다. 소통이 시작된 것이다. 이와 같이 채성태와 문화공간 싹의 구성원들은 모든 활동을 계획하거나 실천할 때 늘 ‘주민’들을 사고의 중심에 놓았다.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마을 공동체’ 분위기가 살아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