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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의 어떤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의 어떤 사람'이다." 내용보기
루이지 피란델로의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을 읽다.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그러나 한 번은 읽고 넘어가야 할 책이다. 물질문명에 집착하고 치부(致富)에 부심하는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다. 더구나 경제가 인간을 지배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기 해체의 시도로 어느 날 주인공 모스카르다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기의 코
"우리는 모두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의 어떤 사람'이다." 내용보기
루이지 피란델로의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을 읽다.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그러나 한 번은 읽고 넘어가야 할 책이다. 물질문명에 집착하고 치부(致富)에 부심하는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다. 더구나 경제가 인간을 지배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기 해체의 시도로 어느 날 주인공 모스카르다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기의 코가 오른쪽으로 약간 비뚤어 졌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기의 코가 비뚤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코를 흉보며 살아온 자기를 뒤돌아보며, 내가 생각해온 나는 진정 나인가, 그리고 아내가 본 내가 진정 나인가, 아니 여러 사람들이 본 나들 중에 진정 나는 있는가. 모든 사람들이 나를 각자의 눈으로 본다. 따라서 나는 여러 사람들이 보는 여러 명의 나일 수도 있다. 진정 나를 볼 수 있을까. 나를 찾는 모험은 시작된다. 남들이 보는 나를 하나하나 파괴하기 시작한다(진정한 내가 아니므로). 남들에게 보이는 고리대금업자(나의 직업)를 파괴하기 위하여 은행 예금을 모두 인출하고 아내의 나 - 젠제(아내가 나를 부르는 애칭)를 파괴하기 위하여 아내를 구타한다. 그리고 아내는 떠났고, 아내의 친구 안나 로사를 만난다. 안나 로사의 권총 오발로 다친 안나를 보살피면서 가까워지며 유혹 받는다. 그러나 모스카르다는 안나가 보는 안나의 모습들을 부정한다. 안나의 사진들을 보면서 살아 있는 안나는 이미 사진 속에 존재하지 않으며, 안나가 생각하는 안나는 없다. 모든 사람들이 안나를 보는 각도에 따라 수많은 안나가 있을 뿐이며, 진짜 안나는 찾을 길이 없다. 안나 자신도 자신을 찾지 못할 것이다라고 설명하는 순간, 그녀도 똑같이 자기 분열증세를 보인다. 그리고 그녀는 권총으로 모스카르다를 쏜다. 법정에서 사면 받는다. 어쩌면 주인공은 미치광이로 처분되거나 고의적으로 안나를 살해하거나 치근덕거리는 치한으로 구속되거나, 안나는 살인 행위로 인하여 구속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정직한 방법 - 자기 의도대로 브루조아를 파괴하는데 성공한다. 모스카르다는 은행의 모든 돈을 인출해 구민원(救民院)에 희사한다. 소유물 모두 헌납한 것이다. 나의 본질을 찾기 위하여. 인간들은 모두 각자의 눈으로 사물을 본다. 각각의 안경 수만큼 사물은 다양하다. 따라서 나는 있으면서 없으며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고 또 죽는 것이다. 자연처럼 사는 것. 오늘은 나무가 되고, 내일은 책이 되고…. 인간 존재는 유일하지 않으므로 소유에 집착하지 말라. 읽기를 끝내면 숙고(熟考)하게 하는 책이다. 소설 속에 철학이 녹아 있다. 미흡하다면 해설을 좀더 구체적으로 철학적 사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x*****k 2002.11.20.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 내용보기
살아가는 게 버겁다. 소박하고 순수하던 고대의 풍습은 시간의 바람 속에서 먼지가 되고 훗날 그 먼지들을 모아 새로운 성(城)을 쌓지만 그 성은 우리가 지어, 들어가지 못한 채 버림당하는 곳으로 남겨진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선량한 우리, 아벨에게서 왔지만 그가 가졌던 양들은 이제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고 그 몇 천년 동안 푸른 언덕이며 깊은 호수며 그 곳을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 내용보기



살아가는 게 버겁다. 소박하고 순수하던 고대의 풍습은 시간의 바람 속에서 먼지가 되고 훗날 그 먼지들을 모아 새로운 성(城)을 쌓지만 그 성은 우리가 지어, 들어가지 못한 채 버림당하는 곳으로 남겨진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선량한 우리, 아벨에게서 왔지만 그가 가졌던 양들은 이제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고 그 몇 천년 동안 푸른 언덕이며 깊은 호수며 그 곳을 가득 메우고 있던 새와 물고기들은 몇 미터의 높이로 쌓인 먼지들의 먹이가 되어버렸다. 아,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모스카르다. 그는 거울을 보면서 그 거울 속에 누군가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가 아닌, 낯선 이방인. '나를 보여지게 할 수는 있지만 나를 볼 수 없는' 어떤 이방인.

그 순간 책을 읽던 나도 책을 덮고 거울 앞으로 간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본다. 그런데 과연 거울 속의 나는 나일까. 나란 도대체 무얼까? 나, I, Je, 我, ... ...

진지한 학문과 예술은 참된 어떤 것을 찾아가면서 거짓되고 허상인 것들을 폭로하고 비판한다. 그러다가, 아뿔싸! 거짓과 허상의 중심에 '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현대인에게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제 나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없다. 나란 없는 자(nobody).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은 아주 사소한 계기.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서서 나는 누구이고 내 인생은 무엇이고 ... ... 이런 자질구레하고 매우 일상적이지만, 때때로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있어 극히 치명적인 질문으로 인해 고통받는 한 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한 주제인 '주체의 분열'이란 실제로는 모더니즘의 것이다. 그건 현대(Modern)의 학문과 예술이 19세기말부터 의문시해온 어떤 근본적인 반성과 관련되어 있다. 모스카르다의 정신 나간 듯한 말투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치명적인 자화상과 마주한다. 나를 찾기 위해서 방황하고 노력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고립당하는 우리 자신들과.

'주체의 분열'이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모더니즘적 방식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분열 이후'다. 우리는 진정한 나를 찾아가기 위해서 무수한 위험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지만 과연 우리는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가능할까?

"그것은 묘비명, 즉 이름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죽은 자들에게 편리한 것이다.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인생은 이름을 모른다. 이 나무는 새로 난 나뭇잎이 흔들릴 때 호흡한다. 나는 나무다. 나무이자 구름이다. 내일은 책이나 바람이 된다. 다시 말해 내가 읽는 책. 내가 마시는 바람이 된다. 그 모든 것이 외부에서 방랑한다."(240쪽)

덧붙임 : 자신의 삶을 후기 구조주의자들에게 의지하기 말기를 바란다. 그들의 뛰어난 재능은 우리에게 어떤 실마리를 가르쳐주기는 하지만, 그들은 실패한 자들임을.

YES마니아 : 골드 s***s 2011.05.1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