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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를 보면서,읽은 책들은 체크하고,읽고 싶은 책을 고른다. 불현듯,'칼리굴라' 가 눈에 들어왔다. 카뮈의 책을 한동안 집중적으로 구입할 때 <칼리굴라>도 구입했나 보다. 그런데 생각처럼 읽혀지지 않았던 모양이다.다시 펼쳐 본 '칼리쿨라'가 희곡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으니까.두 작품이 실려 있지만,우선 '칼리굴라' 만 읽어 보는 걸로^^
귀족들이 모여 부재중인 황제를 걱정하는 것 같지만 실은 황제가 벌인 짓에 대한 성토가 한창인 모습으로 시작된다.
새로운 황제를 뽑을수도 있다는 귀족들의 수다..를 보면서 각하에게 '칼리굴라'를 권한 이유가 보였다.그러나 섣부른 판단이었음도 고백해야겠다. '칼리굴라'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오하고 복잡하다.왜냐하면 '부조리'에 관한 주제를 다룬 희곡이니까... 귀족들에게 황제가 내린 벌만 보고 있노라면 솔직히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 갈 것만 같다.그러나 칼리굴라가 행하는 행동은 정도를 아는 리더가 아닌, 권력을 휘두를수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최고점에 가 있다. 그럼에도 황제에게조금더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면,귀족에게는 없고,황제에게는,사랑과 부끄러움이란..그러니까 생각하고자 하는 이성이 있었다는 것.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연인(이것이 그런데 또 근친상간이라...) 을 잃어 불행한 것이 아니라,그 슬픔이 짧다는 것에 가장 근본적인 회의가 찾아오고 말았다."행복에 상처를 입은 칼리굴라는 천사인 동시에 괴물이 되어 미쳐 날뛴다."/268쪽(역자) 전체 줄거리만 놓고 보면 생각이 복잡해 진다. <<이방인>>에서 뫼르소가살인을 하게 되는 이유가 쉬이 납득될수 없는 것처럼, 황제가 귀족들에게 행하는 짓은 박수를 치고 싶지만,그는 천사이기도 하지만 괴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두렵다. 귀족들의 대화는 그야말로 지금 시대 가진자들의 행태를 그대로 보고 있는 것 같아 그냥 실소가 나왔다.폭군에 대한 정의가 칼리굴라 로 인해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경계해야 하는 것인지..가 또 물음표다. 각하..입장에서 작품을 읽게 된다면,권력과 통치에 대해 배우게 될까..싶은데,평범한 독자의 시선으로 보자면,행복한 인간의 비극에 열광했던 카뮈의 시선으로 읽고 싶은 마음이 컸다.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 탓에 오히려 행복할 수 없었던 칼리굴라의 광기...광기와 열정 사이에 놓인 부조리함을 보여 주고 싶었던 건지도...모르겠다.(<<오해>>는 다음에 읽어 보기로~~^^)
고대 로마 3대 황제 칼리굴라..에서 소재를 가져 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그가 근위대 장교에게 암살된 명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것이,작가가에는 상상력이 되었을 터.낭비와 증여로 재정을 파탄하고 독단적인 정치를 강행하여 비난 받았다고 하니..암살 당 할(?)이유는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희곡은 반대로 칼리굴라 보다 귀족들에 대한 풍자가 더 깊게 보인다.어쩌면 읽는 독자가,가진자들에 대한 역겨움을 가진 탓에 그렇게 읽혀진 것일수도 있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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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굴라는 폭군이 아니다.
이건 단지 칼리굴라를 위한 까뮈의 변명이 아니다.
전쟁으로 수없이 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 것도 서민들은 멀리있는 미치광이 칼리굴라보다
분별없는 미치광이보다 이념있는 영웅이 더 무섭다. 그게 바로 폭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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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이다. 사실 예전에 읽기는 했는데 별 기억이 없다가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깊이 생각하게 됐다.
난 까뮈의 다소 반사회적이고 비딱한 태도가 마음에 든다. 극단적인 면도 있지만 통쾌함을 가져다 준다. 네로 황제를 연상시키는 칼리굴라는 선악의 판단,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오해>편은 잘 짜여진 연극이다. 불쌍하게 죽은 오빠보다 난 여동생에 더 감정이입이 된다. 떠나지 못한 자의 표상이라고 할까. 얼마전 읽은 앨리스 먼로의 소설에서도 비슷한 인물이 나온다. 어머니 곁을 지키느라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 언니가 그렇다. 자유롭게 떠나 행복하게 사는 오빠와 달리 여동생은 어머니 곁을 지키며 늘 바다건너 세상을 동경한다. 그리고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이제 곧 행복해지리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도 신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오빠에게 향해 있었다. 그녀의 희생이 보상받지 못하는 순간이다. 인생이란 이런 것일지도.
자기가 원하는 바를 찾아서 과감하게 떠날 필요가 있다. 설령 남은 나약한 가족을 외면하는 결과가 되더라도 말이다. 희생적인 존재는 여자의 운명인 건가. 그런 운명은 또 다시 되물림되고 불행도 같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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