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생 때였나 왜인지 모르게 끌려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중간까지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신나고 밝고 가벼운 소설을 위주로 읽었던 때라 그런지 책이 가지고있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에 흥미를 잃어 버리지 않았나 싶다. 니나가 가진 회의적인 성격이 꼭 나를 비추는 것 같아서 어른이 되 지금 다시 읽으니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삶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니나의 삶의 한가운데를 통해서 조금은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나름의 경각심도 가질수 있었던 것 같다. |
|
니나를 알게되어서 다행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니나의 행동을 쫓고 그러면서 끄덕이고 곱씹고. 비록 3자의 시선이기에 동감할 수 없는 부분이 몇 있었지만요. 10년 전의 내가 이 책을 접했다면, 10년 후에 접했다면 하는 생각과 함께 책을 덮었다, 열었다 하며 읽었습니다. 다 읽고 생각한건, 니나를 알게 된 후의 내 삶이 크게 변하진 않았겠지만, 그래서 언제의 내가 읽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겠지만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것처럼, 이 책을 읽는 누군가에게 공감을 전해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늘여놓는 것은 참 의미없지만 책을 통해 이야기 나누는건 후회도 허무함도 남기지 않잖아요. 니나는 존재로서 위로를 주는 캐릭터입니다. |
|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니나를 닮고 싶다고 느꼈다. 니나는 삶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험하며 부딪히고 어떤 절망의 상황에 빠져도 운명에 순응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갔다. 완전한 삶을 살았다. 반면 슈타인은 모험을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잃지도 얻지도 못하는 삶을 살아간 사람이다. 아마 그런 태도 때문에 니나를 17년간이나 사랑했지만 니나를 잃지도 얻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게 아닐까. 슈타인은 니나의 삶을 사랑했다. 그리고 평범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갔던 니나의 언니는 니나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삶에 질투심을 느꼈다. 왜 그럴까? 겉으로 보기엔 매번 꼬이고 힘든 삶을 선택하는 것 같은 니나를 왜 사람들은 사랑하고 부러워했을까? 그리고 이 소설이 니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 그건 아마도 있는 힘껏 적극적으로 사는 삶을 많은 사람들은 원하고 동경하지만 용기가 없기때문에 결국 슈타인과 같은 삶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때때로 모험을 원하지만 안락함을 잃는 것이 두려워 결국 주저하고 만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인생이 편안하게 펼쳐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 모험하지 못한 결핍은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서 니나의 삶에 열광하고 동경했으리라. 이 책을 읽는 내내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떠올랐다. 니나와 슈타인, 또는 니나와 언니와의 관계는 프라두와 그레고리우스를 떠올리게 했다. 현실에 안주하며 어떤 자극도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레고리우스가 격정적인 삶을 살았던 프라두를 알게됨으로써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그렸던 '리스본행 야간열차'.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삶의 이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하게 하는 소설인데, 두 소설의 공통점은 결국 용기의 문제인 것 같다. 모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지 않겠지만 얻는 것도 없다. 그리고 그 모험에는 용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왠지모르게 힘이 났다. 그래, 두려워할 것은 없어. 그저 용기를 갖고 부딪히며 살아가면 어떤 것은 잃을지 몰라도 결국에 얻는 것은 반드시 있다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 좋은 소설을 만났다. 앞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용기가 없어지고 두려워질때면 니나를 떠올려야겠다. 두고두고 간직할 소설이다. p67 언니는 언니의 삶이 너무 조용해서 불만스러운 것뿐이야. 나는 내 삶이 너무나 불안정해서 불만이야. 우리는 참 이상하지. 우리 인간들은 말이야. p68 그는 낮이나 밤이나 삶을 꽉 채워서 일을 하고 있었고, 거기다가 그의 삶에 활력소가 되는 사랑이 있었어. 내 생각에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계속해서 생기에 차 있을 때야. 그리고 마치 미친 자가 자기의 고정관념에 몰두하듯이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을 때야.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고양이 발걸음처럼 사는 법을 배우게 되지. 점점 조용하게, 점점 더 절대성은 없어지지. 이것은 또 늙어가기 시작한다는 징조야. 의욕이 없어지면 늙기 시작하는 거야. p75 내 인생에는 전혀 방해물이 없었다. 상처도 없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은 잘되어 왔다. 분명히. 그러나 또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아무것도. 나는 자기 배를 항구에 매어둔 상인과 같다. 배를 내보내야 돈을 벌어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배를 바다에 내보내는 것은 위험했으며, 나는 본래 모험에 적합한 인간이 아니었다.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남자가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p77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있는 이런저런 인물과 자기가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있잖아? 다른 책을 읽으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이고, 끝없이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거야. p78 언니는 자신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게 아닐까? 언니는 인생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고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잖아? 모든 것이 잘됐고 언니 자신도 그렇잖아. 나는 언니에 대해 탄복하고 있는데.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너라는 생각이 들어. 너는 네 안에 있는 자아들 중의 하나에다 너를 고정시키지 않았잖아. 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내 삶을 봐! 어느 곳에도 분명한 선이 그어 있지 않아. p110 내 인생에 곁길은 없었다. 하루하루가 규칙적으로 지나갈 뿐이었다. 나 자신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의무들은 무미건조한 습관이 되었다. p151 우리는 착하면서 동시에 악하고, 영웅적이면서 비겁하고, 인색하면서 관대하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밀접하게 서로 붙어있다는 것, 그리고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한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행위를 하도록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말야. p169 사실은 생이 그녀에게 부과한 모든 과제를 자신이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였다. 하나의 난관을 극복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과연 불행할까? p200 니나는 나와 사는 것에 만족할 것인가? 그녀의 용기, 정신, 본질은 넓은 무대가 필요하다. 그녀의 눈이 여기저기 찾아 헤매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말인가. 니나는 결혼에 안 어울리는 여자 같다. p233 처음으로 나는 슬픔도 재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p294 나는 불확실한 것, 정열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니나의 생에 비하면 내 생이 얼마만큼 왜소한지를 알았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p298 운명은 운명이며 인생의 중요한 일들은 당사자들의 머리 너머에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p326 젊은이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군. 행동은 너무 조금하는 대신. p327 진정한 결혼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네. 체념만 있을 뿐이지. 아니야, 자네 말은 옳지 않네.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아니 우리를 능가할 수 있는 여자들도 있네. p329 나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속죄나 참회를 할 생각은 없어요. 잘못이 없는 사람도 있나요?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나는 자유 없이 살 수 없어요. p349 나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해요. 그러나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은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삶을 비켜갔어요. 한번도 모험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도 못했고 잃지도 않았어요. 당신의 인생은 마치 일요일을 망쳐버리는 재미없고 어려운 학교 숙제 같아요. p351 저는 남들을 따라서 사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살고 있어요. 당신도 살기 위해 한번쯤은 그 고상한 조심성을 방기해도 결코 해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
|
한 달에 한권씩 고전을 읽자는 목표로 처음 구매한 책이에요 수많은 시리즈 중에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어 고민 없이 삶의 한가운데라는 책을 구매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고 자기 자신과 게임을 할 수 있어.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있는 이런저런 인물과 자기가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있잖아? 다른 책을 읽으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이고, 끝없이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거야.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보여. 어느 것도 진정한 자아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백 개의 자아를 다 합친 것이 진정한 자아인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게 미정이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천천히 읽으면서 완독하기 좋은 책 인것 같습니다. |
|
민음사 세계문학시리즈 17번째 책 <삶의 한가운데> 이 책이 출판된 이후로 '니나 신드롬'이 일었다고 하는데, 왜 '니나 신드롬'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다. 그녀는 자유를 박탈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시대적 배경속에서도 선과 악에 대한 그녀만의 천부적인 재능으로 인하여 그녀의 운명에 자기 자신을 내던진 한 여자의 삶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꽤 독특한 구성방식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니나라는 여자가 슈타인 박사의 편지에 의해 간접적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통찰해본 자기 자신과 그녀에 대한 고찰은 니나 자신보다도 그가 그녀를 더 많이 알고 있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나의 가치를 이렇게나 깊게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것도 인생에 있어서 큰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니나 그녀 자신은 그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 듯했지만.. 그와 그녀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어쩌면 그것이 그 두사람의 인연이었던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꼭 누군가와 함께해야만 하는것은 아니니까.. 슈타인의 말대로 그녀는 결혼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일수도 있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성이 자유로운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녀는 약속을 잘 지키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다. 슈타인은 그녀를 붙잡아 둘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니나에게 있기보다는 슈타인 자신에게 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므로.. 그의 순애보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궁금한데, 그것은 그가 말했던대로 니나에게 향해있다라기보다는 니나에게 있는 생명에게 향해있는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생명을 느끼지 못한 삶을 살았으므로 생명을 원했던 것이다. 생명감. 살아있다는 느낌.. 사랑이 그런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로에게서 나에게 없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서로에게서 갖길 원하는 마음. |
|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 문학을 멀리 한지 오랜 세월이지만 그래도 나름 문학적 소양을 길러보고자 민음사 세계문학에 도전하고 있는데요. 제목 그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사랑과 좌절, 생에 대한 여러가지 의미를 생각하게 해 주는 소설입니다. 저도 제 삶의 한가운데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어요. 사실 여느 다른 소설처럼 슥슥 페이지가 넘어가는 건 아니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읽었네요. |
|
그(슈타인)처럼 생각만하고 도전할 용기 없이 살 것인가? 그녀(니나)처럼 뭐든지 도전하며 살 것인가?
|
|
니나가 매력적인 인물인 건 분명하다.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축축하고 촘촘하게 짜여진 회색빛 그물, 운명이라는 그물에 얽혀 무겁게, 색채없이 살아가는 우리나, 화자이자 니나의 언니인 '나'나 18년간이나 니나 곁을 맴돌았던 슈타인 박사의 삶을 보자면 더욱 그렇다. 니나의 삶은 다채롭고 충동적이며 표정이 가득하다. 그것은 회색빛깔 우리의 삶과 너무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니나라는 인물은 삶을 피할 생각이 없다. 생이 그녀에게 고통을 줄지라도 그것을 끝까지 경험해내고야 만다. 그것도 삶의 일부라는 것이다. 니나는 자살을 기도하고 의식을 잃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생의 눈부심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녀에게는 죽음마저도 삶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나 독자로서 나는 니나에게 완전히 공감하지 못한다. 심연에서는 어떤 거부감마저 느껴진다. 슈타인 박사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버리고 영국으로 떠난다? 두 아이의 아빠이자 독자로서 그것은 삶을 회피하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의미없는 결혼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던 니나가 마지막에가서는 왜 그를 사랑해서 다급하게 찾아오는 남자를 피하고 서둘러 영국으로 떠나는가. 니나와 이뤄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도 번번이 도망쳐버리고 18년간이나 질질 끌어온 슈타인 박사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삶의 한가운데 이런 게 있는 거라면 독자는 그 가운데를 피하고 싶다. |
|
[...안고 가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영리하고, 예민하고, 질투심 많은 헬레네가 언제부터 환자를 오빠 차로 옮겼죠? 하고 차갑게 물었다.] 이 책의 번역및 편집 상태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따옴표가 없어서 서술과 대사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인쇄상으론 글씨체가 구분되어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북으론 똑같이 표시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게다가 '~듯한 느낌을 가졌다'라니, 인터넷 아마추어 번역가조차 피해갈 표현입니다. 좀더 치사하게 따져보겠습니다. 저 문장의 앞은 어떤 여자와의 첫만남에 관한 긴 내용이고, 그 여자에 대해 화자가 받은 인상을 줄곧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런 탓에 '영리하고 예민하고 질투심 많다'는 묘사의 대상이 그 여자가 아닌 제 3자, 헬레네라는 사실을 몇 박자 뒤늦게야 알게 됩니다. '질투심이 많은 게 헬레네라고? 헬레네가 누군데? 썸녀나 간호사인가? 아 오빠라고... 여동생이었어?' 이따위의 정보 지연이 다중적으로 중첩되며 독서 내내 끊임없이 일어나 두통을 선사합니다. 게다가! 이건 '헬레네'라는 인물의 작중 첫 등장입니다. 이 공간 안에 서술자와 여자 말고 제 3자가 있었다는 사실도 이 대목에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죠. 어려운 소설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읽기 어려운 건 번역 상태가 이런 탓입니다. 끝까지 읽은 뒤에 내용 별점은 상승할지 모르겠으나, 구성점수는 최악으로 두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