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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한문장에 반해 책을 샀다. 그 문장은 바로 이것
"환상은 인간을 불행하게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테마다. 현실에 눈을 뜬 인간만이 결국은 행복해 질 수 있다. 나는 환상을 사람들에게 파는 장사를 하는 인간으로서 더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이 책을 쓴 사람은 '공각기동대' '이노센스'라는 유명한 애니메이션을 감독했던 오시이 마모루다. 요근래 상영되었던 김지운 감독의 '인랑' 각본의 원작 각본가이기도 하다.(일본에서 제작했던 '인랑' 감독은 맡지 못했다-제작사에서 맡기지 않았다는데 작품에 대한 이견이 있었나보다)
이 책은 저자가 애니메이션 감독이기 때문에 영화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 등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을 말하고 있다.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오랜 세월동안 한 분야에만 종사하고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만이 가지고 있을 법한 깊은 삶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아까의 문장에 아래 문장을 덧붙여야 그가 역설하는 "현실론"이 완성된다.
"내가 만들어내는 환상은 찰나의 한순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지 모른다. 그것은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의 작은 불꽃 속에서 발견한 덧없는 온기에 불과하다. 소녀가 마지막에 죽는 것처럼, 내가 만들어내는 환상이 관객의 인생을 완벽하게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는 없다. 인생이란 그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장만으로 이 책을 읽는 가치는 있다. 현실에 발을 딛고, 현실을 제대로 자각해야만 환상은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 않은 환상은 무쓸모라는 사실을 우리는 대면하지 않으려고 한다. 현실을 피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환상은 무가치하다는 것을 그는 역설한다. 환상이 지상의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현실의 씁쓸한 진실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 현실을 날마다 매순간마다 자각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일반사람의 생각일 것이다
그가 언급하는 철학이라고 할 만한 내용 중 효용가치가 있는 것이 꽤 있다. 어느 곳에, 어떤 일을 하던지 자기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누가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가야 하는거라면서 최소한 3년 이상 그 일을 하고 난 다음에 그만두라고 한다. 오시이 마모루감독은 전봇대에 붙어있던 다쓰노코프로(일본애니메이션 제작회사)의 구인공고를 보고 우연히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때 그가 다른 업계의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면 전혀 다른 인생을 보냈을지도 모른다고 맡은 일을 계속 하면서 회사 안에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게 관건이라고 한다.
취미와 일에 대한 그의 철학도 유용하다. (애니메이터의 경우)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일로 그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좋아서 그림을 그릴 때는 자신이 원하는 걸 그리면 되지만, 일로 할 때는 다른 사람의 주문에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린 도안에 맞춰 그린는 것이다. '3초 반 동안 이렇게 움직이게 해'라는 상사의 주문에 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오더에 맞추는 것은 일의 기본이다."
취미와 일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어찌 되었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명령에 따른 것이든 하고 싶은 일이든 행복할 것이고, 취미는 취미일때만 행복하니 다른 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취미활동을 하라는 각각의 의견에 대해 나는 50대 50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철학에서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가 살아가는 나라(일본), 연령, 그의 오랜 경력 등 약간의 보수성을 고려해야 할 것 같음에도 조금은 거슬렸다. 그가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이 하는 일에서 목표하는 최대(또는 최선)의 결과만 나올 수 있다면 그의 도덕적 일탈, 불륜, 거짓말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공각기동대도 이노센스도 인랑도, 한국판 인랑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접한 그의 인생론은 어떤 건 내게 맞고 어떤 건 맞지 않았다.(옮다 옳지 않다를 판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기도 해서) 그래도 효용적인 측면에서 참고할 만한 말이 많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에세이가 실용서가 되어버리는 남다른 체험을 갖게 해준 책이다.
어찌 되었든 절대적으로 나에게 딱 맞춤한 책이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