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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게가공선의 출판사 잇북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잃을 것은 쇠사슬 뿐이고 얻는 것은 전 세계다. 라고 외쳤던 카를 맑스의 저서 "공산당 선언"의 일부를 생각케하는 문학이었습니다. 이책의 저자 고바야시 다키지가 게가공선을 집필할 당시 일본제국은 1925년 치안유지법을 제정하여 외부로는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법률을 만들었지만 실상은 사회주의자를 탄압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법은 좀 더 확장하여 조선해방을 꿈꾸던 독립투쟁열사들을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악용됩니다. (대한민국은 1919년 3월 1일 3.1운동 이후 소련에서 사회주의가 보급되기 시작하여 의열단을 포함하여 일부에서 사회주의 노선으로 확장이 되던 시기였습니다.) 이 책의 저자 고바야시 다키지 역시 은행원이었으나 이 책을 집필하면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그는 일본공산당에 입당하게 됩니다. 지금은 일본에 야당으로 자리잡고 있는 일본공산당입니다만 그 당시에는 불법단체로 규정이 되어있어 후에 저자는 일본제국에 체포되었으며 결국 옥사하게 됩니다. 따뜻하고 포근하리만큼 편한 직장이었던 은행원을 그만두게 만들었고 결국은 옥사하게까지 만들었던 게 가공선을 저자는 도대체 왜? 집필하였을까요. 저는 그런 의문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책은 사실 상당히 얇았습니다. 그리고 읽는 데는 30분남짓 걸렸습니다만 이 내용을 다시끔 곱씹는 데는 두어시간이 걸릴 만큼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엄청 큰 책이었습니다. "통조림 속의 게보다 더 못한 삶 그것이 게 가공선의 노동자다." 라는 단 한줄의 요약으로 이 책을 결론짓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게통조림은 적어도 게통조림 그 본연의 가치를 존중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상품은 선주와 선장 그리고 감독관마저 그 본연의 가치를 위해 자신의 의무(?)를 묵묵히 수행합니다. 여기서 가장 악랄하게 평가될 사람은 아마 감독관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를 억압하며 착취합니다. 그리고 현대 노동환경에서는 전혀 상상조차 못할 가혹한 노동시간을 노동자에게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노동자들은 사람이하의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질병과 최악의 환경이 그들을 더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노동자 중 일부는 질병에 요절하고 최악의 환경에서 인재라고 불릴 수 있는 사고로 고국의 땅을 밟지 못하고 수장되었습니다. "흩어진 노동자는 모래에 불과하지만 단결한 노동자는 강철과도 같다." 이 책에서 결국 게가공선의 노동자는 억압과 착취에 굴복하지 않고 결국 태업으로 맞서기 시작합니다. 태업은 하나의 저항수단에 불과했지만 그 태업은 점점 노동자의 결집을 예고하는 전조였습니다. 노동자가 하나하나 뭉치기 시작하였고 결국 그 단결은 파업으로 분노가 표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동자의 분노는 그들을 착취하고 억압하였던 감독관에게 항의하여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얻어내는 것으로 귀결되는가 했습니다. 그리고 게 가공선을 호위하던 구축함의 존재는 국가는 노동자의 편을 들어줄 것으로 노동자는 판단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으로 오판이라는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호위함은 주동자를 체포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국가는 국민은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당시 게 가공선의 선주 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집단으로 표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는 억압에 강요를 거부하고 다시 단결하기에 이릅니다. 강철같은 의지는 결국 해방으로 나가는 길목에 서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들은 게 가공선에서 자유를 쟁취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습니다. 이 책에서 결론을 조금 빨리 내린 것같은 느낌이 드는 점이 아쉬운 점이었습니다만 이 당시 사회분위기를 미루어보아 이 책은 하나의 거센 파동을 일으키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당시에는 자본주의의 정점이라고 일컫는 은행의 직원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한 느낌을 많이 받겠습니다만 읽으면서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주는 글로 저에게는 느껴졌었습니다. 게 가공선이 집필되던 시기는 불과 100년채 되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과거였습니다만 지금과 비교하면 상상조차 안될 정도로 느껴질 만큼 괴리를 많이 느끼게 해준 글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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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내용은 간단하다. 게를 잡아 그 자리에서 바로 통조림으로 만들 수 있는 설비를 갖춘 게 가공선 '핫코 호'가 주 무대다. 첫 문장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로 시작된다.
짧은 소설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조금 있으면 출간 90년이 된다. 소설이 출간 된 후 세상은 놀라울 만큼 변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설 속 상황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데 아마 읽다 보면 소설 속 내용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화가날수도 있다. 무덤 속 코바야시 타끼지가 얼마나 기가 막혀할까.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 소설이라는 [게 가공선]. 그간 프롤레타리아에 대해서는 들어본적은 있지만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는데. 소설을 만나고 나서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이를 이해함으로 과거 공산당이 왜 그렇게 매력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왔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 가공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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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민주주의의 대변인과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아마도 존재의 이유가 이 책 "게 가공선"은 일본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부패와 부작용에 대한 현실의 일본의 북방 오츠크해 연안 러시아와 맞붙은 지역 캄차카반도에서 게를 잡아 통조림을 게 가공선의 노동자들은 선원이 아니다. 선원이 아닌 사람들이 선원이 되어 어부로의 기본과 정상을 무척이나 밝히고 좋아하는 일본인이라는 생각이 그들의 기업을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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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가공선>은 1929년 출간될 소설로, 동아시아 자본주의 태동기의 일본의 현주소를 고발하고 있다. 저자는 이 소설을 출간하면서 주변의 위협과 출간금지로 인해 , 마지막 인생은 불행한 삶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출간 금지가 되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며, 9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소설이 가지는 가치는 유효하다.그가 생각한 자본주으 시스템 안에 나타나느 착취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소수의 자본가가 만든 시스템은 다수의 노동자를 옥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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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공부를 잘하고 싶어한다. 40대가 된 지금도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시험을 위한 공부로 머리가 늘 아팠던것 같다. 학창시절이 지나고 직장인이 되면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줄만 알았는데 이거는 밥벌이와 관련된 시험을 위해 학창시절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를 해야할 때가 생기곤 했다. 이렇게 공부에 대해 머리만 아프게 생각할게 아니라 공부방법에 대한 책을 우선 많이 읽어보자는 마음에 공부법에 대한 책을 여러권 읽게 되었다. 공부법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공부를 잘하게 되리란 심산으로 책을 읽은것은 아니다. 다만 요즘 자기 개발서 못지 않게 공부법에 대한 책도 많이 서점에 보이길레 늦었지만 공부법에 대한 것을 배워보자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많은 공부법에 관한 책들이 서울대 합격생들이 직접 경험한 공부법에 대해 쓴 것이 었는데 이 책은 현직 수학학원 원장이자 강사가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며 깨달은 공부법을 기술한 책이었다. 어떻게 보면 수험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혼자 경험한 공부법 보다 좀 더 객관적인 방법이나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이력은 약간 독특하다. 현직 수학학원 강사이지만, 수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고, 처음부터 학원강사를 한것도 아니며 삼성전자에 입사해서 5년을 다니다가 스스로 퇴사를 하고 3년만에 학원가에서 억대연봉을 받는 강사로 자리를 잡은 실력있는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 현직 학원강사가 가르쳐주는 공부법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다른 공부법의 책과는 어떤 점이 달랐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다른 공부법 책과 마찬가지로 공부방법에 관한 내용은 비슷했다. 예습복습을 하되 복습에 중점을 두고 틀린 문제를 중점적으로 두번 세번 반복해서 풀어본다는 것, 공부계획을 꼭 세우고 오답노트를 반드시 만들것을 권하고 있다. 이 정도의 내용은 다른 책과 비슷하다.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고 공부를 잘하는 비법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다른 공부법에 관한 책 열권, 백권을 읽어도 이 틀은 벗아나지 못하리라 확신한다. 현직강사로서 이제 이 책에 다른 내용을 찾아봤다. 저자가 자신있게 이 책을 쓴 이유는 단지 공부법에 관한 것만 알려주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었다. 저자가 직접 대기업 문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도전을 위해 피나는 노력의 결과를 보여준 것은 자신의 뛰어남을 과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노력은 무엇이든 이룰수 있다는 경험을 학생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저자는 마음이 따뜻한 인간미가 있는 사람 같았다. 책의 내용에 대학때 농촌봉사를 갔다가 학원도 없는 시골에서 간호사의 꿈을 가진 여학생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주기위해 많은 참고서를 직접 보낸 내용이 저자의 인간미를 엿볼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책에 많이 등장하는 내용도 긍정적인 마인드와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그것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강조하는 부분이 많이 보인다. 이 책의 에필로그 마지막에 저자는 이 한줄로 책을 마무리했다. "평범한 노력으로는 절대로 비범한 결과를 이룰수 없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말이 또 있을까? 공부법은 이 책이 아니더라도 거의 비슷하다. 저자 말대로 남에게 자신있게 자신의 피나는 노력을 자랑할 정도의 과정이 하나도 없다면 인생에서 이룰수 있는 성취도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느낄수 있었다. 공부는 힘들다. 하지만 힘들지 않다면 성취감 역시 느낄수 없다. 이 책의 저자가 그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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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바야시 다키지라는 옛날 일본사람이 게 가공선이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노동현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서 금지도서가 되고 그것도 모잘라 일본경찰에 붙잡혀 고문중에 죽음까지 이른 저자라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기전에 저자의 짧은 이력에서 본 내용이다.. 옛날에 일본도 우리나라의 과거처럼 글쓰는 자유부터 표현의 자유등 모든 것이 탄압받던 시절이라는 것을 이 짧은 이력에서 알수 있듯이 이 책은 노동자의 고통과 현실을 아무 꺼리낌 없이 표현한 책이라고 일단 얘기하고 시작할까 한다. 이 책의 제목인 게 가공선은 말 그대로 바다에 나가서 직접 게를 잡아서 배에서 직접 통조림까지 제작해서 완제품을 만드는 바다위의 공장을 말한다고 한다. 모든작업이 바다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항해법과 노동법 어느것 하나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현장의 사각지대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폭력과 협박이 가진자들에는 마치 의 합법처럼 행하여 지기 때문에 최하의 작업 환경과 작업여견을 보여준다. 숙식과 피복 등 모든것이 최하의 조건을 주어지고 그것도 모자라 폭력과 폭언과 심지어는 가금과 살인까지 모든것이 가진자의 마음대로 행해지는 자신들이 그곳에서 마치 법인 것처럼 행동하는 아마 지금의 노동자들이 읽어도 분노할 만큼의 악질 고용주의 모습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 과거와 현재의 고용을 볼수 있는데 과거는 고용주가 눈에 보이도록 폭력과 압력을 행사했다면 현재는 조금만 상황이 좋아졌을뿐(이것도 약간의 법이라는 테두리때문에) 대리인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눈에 보이지 않도록 폭력과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갑질 고용주는 시간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수 있다. 오너와 고용주가 상생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현재의 노동사회인데 이런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갈길이 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고용주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를 갈취하는 행위를 하는것은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사회가 되지 않는 것이 이런 세상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라고 생각한다. 고용주가 갑인 세상이 아닌 노동자가 갑인 세상이 되는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이런 갑과 을이라는 존재가 있는한 아마도 서로간에 상생은 힘들지 않나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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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가공선 소설[마션]을 읽으며 절대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조만간 현실이 될 것 같다. 미국 사막 어느 곳에서 생존훈련을 하고 있다는 뉴스도 나오는 걸 보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다. 우리 인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며 생존해 왔기에.... 고바야시 다키지소설 [게 가공선]을 읽으며 문득 든 생각이다. 설마 이런 삶의 현장이 있었을까? 의문을 가지는 요즈음 젊은 세대들도 있을 수 있기에, 세상의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있다고 여기는 지금 과연 오늘의 노동현실은 그 시절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아니 달라져 있기는 한 걸까? 민주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 잘 자리 잡고 있다는 지금 언론에서는 연일 황제노조라고 비난을 하는 지금 현재의 노동현장, 노동자의 권리는 잘 지켜지고 있는가? 변변한 자기 땅 한뙈기조차 없는, 힘겹게 겨우 개간한 땅조차 자본가에게 빼앗긴 채 어쩔 수 없어 거리로 내몰린 농민, 배우고 싶어도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하고 일터로 내몰린 아이들 결국 이들이 갈 수 밖에 없는 곳이 ‘게 가공선’인 것이다. 돈 벌수 있다는 달콤한 말에 현혹되었던 현혹되지 않았던 그들에게 선택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없는 자들에게는 편안하고 안락한 노동현장은 주어지지 않는 법이다. ‘게 가공선’ 안의 작업 현실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항해법과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끊임없이 가해지는 폭력과 협박은 국가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그들의 생명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과거의 일로 치부해버리기엔 오늘 대한민국의 노동현실을 돌아보면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구의역 19살 하청 노동자의 죽음 그 외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죽음이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임을 잘 알 수 있다. 아주 오래전에 발간되었던 책이 다시금 독자들이 찾고 있는 것은 오늘의 삶이 결코 녹녹하지 않음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다 읽고 나면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짓누를 것이다. ‘우리에겐 우리말고는 같은 편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