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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나게 읽었다는 애인과는 달리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아 되짚어보는 문장들이 많았다. 더 확실하게 잘 알고 싶어지는 책이었고,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한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 접하지 못했던 책은 계속해서 물음표가 떴다. 반면 익숙한 책이나 작가들의 등장은 매우 흥미로웠다. 책을 읽으면서 혹은 읽은 뒤에도 생각해볼 수 없었던 점들을 잘 지적해주는 책이다. 읽지 않으면 몰랐을 것들이었다. * 흥미롭다고 했는데,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역시 나는 아직 멀었구나 통곡하며 읽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조금 대충 읽었다.. 반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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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은 2017년 2월 총 10회에 걸쳐 진행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라는 제목의 강연을 글로 엮은 책이다. 권보드래, 심진경, 이혜령, 이진경, 김미정, 류진희, 김은하, 허윤, 조서연, 오혜진, 장영은, 강지윤, 정미지 등 열세 명의 학자, 연구자, 평론가 등이 참여했다. 논문 수준의 어려운 글도 다수 포함되어 있고 그만큼 내용이 전문적이고 깊이가 있다. 장영은은 '배운 여자의 탄생과 존재 증명의 글쓰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근대 여성지식인의 자기서사와 그 정치적 가능성을 논한다. 버틀러에 따르면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근대 여성지식인들은 극소수의 여성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학습의 기회와 자기 표현의 장을 이용해 자기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그 때까지 한국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던 독특한 여성상, 인간상을 확립했다. 이는 남성 작가들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자아상을 확립하고 존재를 증명한 것과 다르지 않은 과정이지만, 남성 작가는 그들이 그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정받고 더러는 칭송받은 반면, 여성 작가는 그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 받거나 대개는 무시되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젠더 교란이 나타났던 시기다. 전쟁에 나갔던 많은 남성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상해를 입었고, 여성들이 아버지와 남편, 아들을 대신해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서며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바뀌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젠더 규범의 흔들림은 여성국극, 여장남자와 같은 현상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195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던 여성국극단은 여성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을 연기해 많은 여성팬들을 사로잡았다(이는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타카라즈카 극단이 현재까지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과 같다). 당시의 분위기는 염상섭과 손창섭의 소설에 잘 나타난다. 염상섭이 결혼을 지연시키거나 거부하는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젠더 교란이 벌어지는 사회상을 보여줬다면, 손창섭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젠더관과 이성애 중심주의를 무너뜨리는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달라진 사회상을 드러냈다. 1950년대에 남성 우월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가부장제에 의문을 던지는 문학 작품(그것도 한국 남성 작가가 쓴)이 있었다니 매우 놀랍다. 오늘날의 한국 현대문학을 이끄는 세 여성 작가에 관한 글도 실려 있다. 정유정 작가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여성 작가의 문체 같지 않은 힘', '여성작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여성적 수다를 찾아보기 어렵다.' 같은 평을 듣는데 대체 이는 칭찬인가 비난인가. 이런 말들은 여성 작가가 범접하기 힘든 남성 작가의 문체, 남성 작가의 문학이 따로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기에 부당하고 불편하다. 정유정은 정유정 자신의 문체로 정유정 자신의 문학 세계를 만들고 있을 뿐이므로,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카테고리로 재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82년생 김지영>으로 한국 페미니즘 열풍에 불을 지핀 조남주 작가와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으로 남녀 불문하고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최은영 작가에 관한 글도 있다. 떠날 사람 다 떠난 한국문학의 가장 충실한 독자로 남아 있는 20~30대 여성들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이들은 동시대 일본 문학과 서구 문학의 주 독자층이며, 책 외에도 영화, 연극, 뮤지컬 등을 열정적으로 소비한다. 팬픽, 웹툰, 웹소설 같은 비주류 서사 양식도 적극적으로 소비한다. 아이돌 팬픽 등으로 남성 동성애 문화를 접한 이들에게 성소수자 문화는 낯설지 않으며, 소수자 인권 문제의 연장 선상에서 페미니즘 또한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이들이 열심히 부수고 있는 한국 문학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할지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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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현대 문학에서 아리송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읽을 수 있었고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던 지점들이 확연히 선명해졌다
너어-무 좋아서 신나게 읽었다
* 이런 점에서 [무진기행]을 젠더적 관점에서 읽을 때 느끼는 문제성은 단순히 이 작품에 여성 희생양이 등장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뒤틀린 자기 고백이 '여성 훼손'에 대해 남성들이 드러내는 저항감의 '한계치'로서 제시됐다는 데 있다. 문학작품이 궁극적으로 소수자를 대변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소설이 타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할 수밖에 없는 장이라고 할 때, 타자는 단지 주체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소설에서 타자는 주체에게 충격을 주고, 주체를 위협하며, 주체를 변화의 지점까지 몰아간다. '주체'의 이야기에서 '타자'가 배경으로 붙박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독자를 무력감으로 이끈다. 약한 것에 민감하고 그것을 자기동일성 안으로 회수해 나르시시즘적인 고착에 빠지는 것은 폭력적인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동시에 상황을 바꿀 의지는 없는 수동성에 함몰되는 모순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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