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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스톱 한 번 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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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화투에 대한 기억이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오래된 일이지만 화투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몇 가지는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상갓집에서의 기억이다. 지금은 많이들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상갓집에 가면 밤을 세워 화투를 쳤다. 상주를 위로하며 밤을 세우는데, 마땅히 할 일이 없는지라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화투를 쳤던 기억이 있다. 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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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화투에 대한 기억이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오래된 일이지만 화투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몇 가지는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상갓집에서의 기억이다. 지금은 많이들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상갓집에 가면 밤을 세워 화투를 쳤다. 상주를 위로하며 밤을 세우는데, 마땅히 할 일이 없는지라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화투를 쳤던 기억이 있다. 또 하나의 기억이라면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의 일이다. 명절 다음날이면 모든 부서원이 부서장 집에 모이는 것은 불문율이었다. 음식을 먹고 나면 자연스레 화투를 쳤다. 지금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예전에는 그랬다. 그러던 것이 외환위기 이후 살며시 사라진 것 같다. 이렇듯 화투는 우리가 일상생활을 해나가면서 없어서는 안될 도구이기도 했다.

 

  이 책 [화투, 꽃들의 전쟁]은 이런 화투의 유래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화투는 구한말 일본에서 전래된 이래 서민의 놀이기구인 동시에 대표적인 도박 도구로 오랜 세월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지금껏 전해오지만 일본에서는 패전 이후 타파되어야 할 구습으로 인식되어 외면 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화투인 하나후다(화찰 花札)는 귀족들의 전통적인 짝 맞추기 놀이와 서양의 카드가 만나 탄생했다. 예로부터 일본에는 그림과 글을 써서 짝을 맞추는 놀이가 존재했다고 한다. 조개의 짝을 찾아 맞추거나, 일본의 전통 시인 우타를 두 장에 나누어 적고 이를 찾아 맞추거나, 숙어나 속담을 그림과 맞추는 놀이가 그것이었다. 그러다 16세기 포르투갈 상인들로부터 서양 카드가 전해지며 간편한 휴대성으로 인해 각광을 받으며 전국으로 퍼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포르투갈 카드의 문양이 사용되었지만 점차 일본풍으로 변형된 카드(카르타라 불림)가 제작되었다. 이런 카르타는17세기들어 일반 서민에게까지 확대되면서 도박성을 띠기 시작했고, 도박의 폐해가 잇따르자 17세기말 카르타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19세기들어 일본의 고전과 화조풍월이 합쳐진 하나아와세카르타가 등장했다. 서양의 카드가 4x12매로 구성된 것에 비해 하나아와세카르타는 12x4매의 형태로 변형되었으며 사용된 소재가 하나후다와 유사하여 이를 하나후다의 전형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19세기 중반 메이지유신이 이루어지면서 구습타파라는 미명아래 하나후다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지만, 19세기말 해금되면서 국민 놀이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러다 하치하치형 하나후다의 (여기서 하치하치란 88점을 먼저 내는 쪽이 이기는 놀이방법에서 유래) 등장으로 도안 및 놀이 방법이 통일되었다. 우타 대신 각각의 달을 상징하는 그림이 들어가면서 문학성이 상실되고 놀이의 측면이 강화되었다고 한다. 하나후다에는 계절을 나타내는 초목과 동물이 12달 각각에 4장씩 배치되어 있다. 이들 소재는 일본 칙찬화가집인 [고금화가집]에 근거하여 선정되었고, 도안에 긴 종이를 덧붙인 적단과 청단은 단가형 시문학인 와카의 평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일본에서는 닌텐도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지만 (닌텐도는 원래 하나후다를 제작 판매하던 회사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대표적인 놀이문화로 각광받는 화투는 19세기 중후반 일본에서 조선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청일전쟁을 계기로 대량의 일본인들이 유입되면서 조선인에게도 하나후다를 판매하였을 것이다. 그러다 러일전쟁이후 일본은 하나후다를 조선에 수출하기 시작했고 이후 조선에서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선에 전래되면서 문양이나 달의 순서에도 차이가 났는데 대표적인 것이 글자의 표기라고 한다. 하나후다와는 달리 20짜리 패에 광()이라는 글자가, 그리고 청단과 홍단 글씨가 쓰인 것이다. 11월의 오동과 12월의 버드나무는 일본과 서로 뒤바뀌었으며, 8월의 20짜리 패의 산에 일본은 가을의 상징인 갈대가 그려져 있지만 우리의 그것에는 단순히 검게 칠해져 있다.

 

  조선에서 하나후다는 한자발음인 화찰(花札)이 아닌 화투(花鬪)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조선에서 화투는 화투라는 단어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투전의 대용품, 즉 도박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단순한 놀이라기보다는 승부수를 띠우는 도박 냄새가 짙었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지역에 전해오는 화투타령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화투타령은 하나후다를 나름대로 한국의 놀이로 정착시키고 노래로까지 발전시킨 결과이지만, 동시에 투전과 같은 놀이로만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화투놀이 중 하나인 짓고 땡은 투전의 짚고 땅에서 유래되었으며, ‘섯다에서 사용하는 땡, 가보, 따라지 등의 용어도 투전에서 사용된 용어라고 한다. 1900년대 초 신문에 화투로 인한 재산 탕진 등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당시 화투가 상류층의 노름에 이용되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1910년 이후 대중에게 널리 유포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화투는 그림, 순서, 놀이방법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고스톱, 짓고 땡, 민화투, 월남 뽕, 나이롱 뽕, 가보잡기, 섯다, 육백 등 시대에 따라 새로운 놀이방법이 생겨나고, 또 동일한 놀이내에서도 다양한 놀이규칙이 만들어지면서 화투는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잡았다. 저자는 이를 두고 놀이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볼 때, 화투는 일본에서 만들어졌으나 한국에서 재해석되어 유행한 한국의 문화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식민의 잔재로만 알고 있었던 화투. 그것의 유래와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온 역사를 알아가면서 기분이 묘 해진다. 재해석된 우리의 문화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가기도 하지만 조금은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인지 모르겠다.

k*****1 2018.09.15.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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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 꽃들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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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의 관한 내용 사실 일제 강점기때 들여온 그래서 더욱 말도 많고 탈도 많은그래도 화투의 유래 화투에 대해 아는 것은 재미있는 공부가 된다생각보다 더 깊고 많은 것을 담아서 집에 있는 화투 꺼내서 같이 읽어보면재미있는 책이다 무엇이 그렇게 화투에 빠지게 하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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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의 관한 내용 사실 일제 강점기때 들여온 그래서 더욱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래도 화투의 유래 화투에 대해 아는 것은 재미있는 공부가 된다

생각보다 더 깊고 많은 것을 담아서 집에 있는 화투 꺼내서 같이 읽어보면

재미있는 책이다 무엇이 그렇게 화투에 빠지게 하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s****o 2026.04.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