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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소설을 읽고 이 책의 작가에게 매료되었는데, 이 작가가 다른 이름으로 책을 썼다고 해 바로 구매 후 읽어보았다. (내가 읽었던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 이름은 파스칼 메르시어였다.) 90쪽도 안 안되는 얇디 얇은 책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 내용이 매우 묵직했다. 나는 '교양인'을 단순히 점잖은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설명하는 '교양인'을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작가는 첫 챕터에서 '교양이란 무엇인가'로 수업을 하듯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 챕터에서 설명하는 '비율적 관계'나 '정확함에 대한 의식', '감정 교육'의 단어는 내가 평소 알고 있던 의미가 아니라서 다소 난해하게 느껴졌지만, 내용의 난이도와는 별개로 딱딱하지 않은 어투가 글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두 번째 챕터에서는 '학문의 언어와 문학의 언어'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양한 모습의 '이해'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챕터가 더 인상적이었다. 그 이유는 편독이 있던 나에게 문학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부분 경제, 사회 관련 책을 읽고, 문학은 가뭄에 콩 나듯 읽는다) 이 책은 독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지만, 곱씹어야 할 내용이 많다.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교양인'이 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사색했던 경험을 '교양인'이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여기기로 했다. '교양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다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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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고민했다. 어차피 나는 고향이 멀지도 않고 가야 하는 친척댁 또한 한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조금 더 쉬자는 마음보다는 조금 더 읽어보자는 마음에서 계속 눈에 밝히는 책을 골랐고 바로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이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 여전히 읽지 못한 책이다. 게다가 나는 소설의 작가가 철학자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오로지 이 책의 표지와 제목만을 보고 선택했다.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저렇게 얇은 책에 어떤 교양적 내용이 있을까하는 궁금증도 한몫을 했다.
책등이 얇은 만큼, 목차 또한 간략하다. "교양이란 무엇인가?"에서는 교양에 대해 제각기 다른 제목으로 접근했고 "이해의 다양한 모습_학문의 언어와 문학의 언어"에서는 앞서 이야기해던 교양의 부문에서 조금 더 길게 언급했던 언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문학적 언어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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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당황스러운 책들이 있다. 너무 얇은데도 속도가 안 나가는 책.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건, 시집을 읽을 때 종종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속도를 조절해서 깊이에 대한 이해를 따라가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 책을 받아들고 제일 처음 느낀 건, 시집처럼 그럴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었다. 그러나 책을 펼쳤을 때, 강의를 풀어쓴 형태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마음 먹고 한 자리에서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됐다. 이른 아침 펼쳤고 점심이 되기 전에 다 읽었으니 말이다.
"교양은 무엇인가"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하자면, 꽤 어렵고 복잡해진다. 우리가 종종 쓰는 '교양머리'라는 단어는 상식이 있다거나 조금 더 아는 '무언가'에 머물러 있는데, 그게 결코 '교양'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기 때문이다.
"이제 교양의 정의를 하나 더 추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양이 있는 사람이란 자신에 대해 아는 사람, 그리고 그 앎을 얻기가 어째서 어려운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아상에 대해 고민하고 비판적 민감성을 중곧 경지하며 자신을 고정시키는 사람입니다." -p31, '자아 인식으로서의 교양'에서
내가 줄곧 찾고 싶었던 '나에 대한 질문'은 결국 교양이라는 말과 참 닮아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등등의 나를 향한 모든 질문은 교양을 찾고자하는 질문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말과 질문 끝에서 교양을 내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결국엔 "나는 얼마나 다양하게 꾸준히 생각을 밀어나가는 사람인가"에 다다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런 의미에서 교양을 쌓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자연히 특정한 종류의 호기심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내가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지역과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다른 기후 환경에서 자라났더라면 어땠을까 궁금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p24, '역사의식으로서의 교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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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에 대한 고찰을 기대하면서 언어와 문학적 언어로 폭을 얿혔을 때는 조금 의아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책의 뒷면으로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스스로 마음에 담아내는 것들이 늘어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한때, 문학만 읽었고 그 생각에만 골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언어에 대한 생각은 얄팍했다. 그저 기술적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던 날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작가. 소설가이자 철학가인 페터 비에리가 말하는 문학적 언어, 그 글을 씀으로써, 그것들을 나열함으로써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충분하게 알려주었다.
"문학적 이야기는 인간의 행위를 지나치게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것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맞서는 싸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정확성이 문학적 이해를 재는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P74, '문학은 복합성의 정신을 가진다'에서
한동안 잊었던 것 같다. 문학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꾸준히 탐색하려던 눈이나 귀, 손들의 움직임이 사라진 지 오래여서였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정확성으로 나아가는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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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당장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을 만들고 그 안으로 독자를 이끄는 것. 그게 좋은 책의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게 여행이든, 생각이든 말이다. 나는 이 책을 덮을 때쯤 굉장히 아쉬웠다. '아- 조금만 더 길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솟았다. 그리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행동하고 싶어졌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조금 더 면밀하게 관찰하고 싶어졌고 그에 대해 생각을 열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너무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게 시든, 소설이든. 아무튼 문학적 언어를 통해 나를 확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결국 나는 쓰지 않는 삶에 지속적으로, 여전히, 꽤 오래오래 머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도 받지 않았던 질문과 하지 않았던 생각을 연결하게 되는 힘을 얻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그 생각은 자신으로 향한 것인가, 아니면 타인를 향한 것인가. 그 생각이 우선 이 책에서 말하는 '교양'에 머물러 있다면 성공이다. 하지만 아니라 해도 상관 없다. 우리가 오랜 시간 교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라는 걸 깨달을지도 모르니까. (우선 이 책을 읽었다는 것, 읽으려는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교양적 질문을 안고 있다고 가정한다) 한번쯤은,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외부를 바라보고 내 내면을 향해 걷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일이 꾸준히 습관이 된다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에 대해 상상해봐도 좋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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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좋아하는 독자라 이 책도 바로 구입하게 됐습니다. 교양인이 된다는 것이 단순히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자유롭게 사고하며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일임을 강조하는데 그게 기억이 남습니다. 페터 비에리 특유의 따뜻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풀어낸 이 강의는, 독자에게 교양인의 길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용기와 방향을 제시합니다. 단순히 "배우는 것"을 넘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 교양을 쌓은 이는 단순한 궤변적 외양과 올바른 사고를 구별할 줄 압니다. 행복에 관한 문제에 대해 자기 것이 아닌 남이 만든 기준에 맞춰 사는 한 사람은 자신의 생에 완전한 책임을 진다고 말할 수 없다. 표현력이 풍부할수록 경험을 표출하는 언어를 더 잘 활용할수록 감정을 세분해서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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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란 사람이 자신에게 행하는, 그리고 자신을 위해 행하는 어떤 것을 말합니다. 교양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교육은 타인이 나에게 해줄 수 있지만 교양은 오직 혼자 힘으로 쌓을 수밖에 없습니다...교양을 쌓는다는 것은 교육을 받는 것과는 실제로 아주 많이 다른 것입니다...교양을 갖추려고 할 때는 무언가가 되려는 목적, 즉 이 세상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의식을 품고 노력하게 됩니다. 세계를 대면하는 방식, 바로 이것이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입니다... ...교양은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호기심은 이 세계에 과연 어떤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는지를 알고자 하는 끊임없는 갈망입니다. 호기심이 향하는 방향을 실로 다양합니다...호기심을 지탱하는 건 언제나 두 개의 기둥입니다. 하나는 그것이 무언가를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째서 그런지 이해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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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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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 그 어느 시대보다 풍부한 정보가 쏟아지는 오늘 날, 아이러니하게도 ‘지식인’은 많아졌지만 ‘지성인’은 찾기 힘들다. 나 비록 학문적 깊이가 있는 지식인이 되기는 어려워도, 교양과 품격을 갖춘 지성인이 되고 싶었다. 하여 전공인 윤리교육 외에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지리, 심리, 법, 문학, 예술,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 흥미를 갖고 꾸준히 관련 책들을 찾아 독서하고 있다. 보람도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지는 것 같아 뿌듯할 때도 있지만, ‘나는 진정 교양인인가?’라는 질문에는 아직 긍정의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평생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겸손’도 교양의 한 덕목이라 합리화하지만,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의 교훈이 계속 상기되기 때문이다.
스위스 출신의 저명한 철학교수이자 유명 작가인 ‘페터 비에리’가 교양에 대하여 말하다. 독일어 번역 상 뉘앙스 차이와 압축적 설명에서 비롯되는, 온전한 이해가 어려운 오해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교양인’을 꿈꾸는 나와 같은 독자라면 이 책의 제목을 보고서도 이 책을 외면하기 어렵다. 비에리에 따르면 ‘교육’은 타인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지만, ‘교양’은 오직 혼자 힘으로 쌓아야 한다. 그리고 교양은 자신의 존재 방식과 세계를 대면하는 방식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이를 토대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 깨인 사상, 역사의식, 표현, 자아 인식, 주체적 결정, 도덕적 감수성, 시적 경험, 열정이라는 키워드로 교양인이 갖추어야 할 가치를 간략하게 전개해 나간다. 각 영역 별로 핵심적인 내용을 (내 나름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소개하자면 정확함에 대한 의식, 사고의 청렴함, 역사적 우연성, 내면의 변화와 확장, 자아의 미완성에 대한 여유, 도덕적 주체, 관용과 공감, 예술의 고상함 등인데,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교양의 특성으로 인해 왜 교양인이 되기가 어려운지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원컨대 단 한 분야에서만이라도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언어철학 교수답게 비에리는 2장에서 언어와 문학을 논한다. (내가 이런 책을 썼다면 분명 윤리와 도덕에 대해 언급했을 것이다.) 이 부분은 단순히 교양을 넘어서는 철학적 전문 지식의 영역 같지만 이 분야에 문외한인 나의 무지함을 탓할 뿐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은 비에리를 원망할 순 없다.
적은 분량의 책이었지만 지적인 도전과 숙고된 사유, 내 안의 교양을 향한 로망을 자극해준 고마운 책이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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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타인이 해줄 수 있지만 교양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네요 언어가 우리를 이해 능력이 있는 존재로 만듭니다. '우리가 오페라를 보러 가는 이유는 줄거리 때문이 아니라 음악을 듣기 위해서죠. (중략)문학적인 글도 다르지 않습니다. 언어가 만들어내는 음악을 듣고자 하기 때문에 문학적 글을 계속 읽게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