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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육학자 E. 라이머의 『학교는 죽었다』는 1971년 씌여졌지만 지금 읽어도 매우 진보적입니다. 이반 일리치와 나눈 15년간의 긴 대화를 정리한 이 책에서 그는 사회와 교육 변혁을 주장합니다. 학교 제도의 목적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진정한 교육을 하는 것이지만, 지금의 학교는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면서 학교를 해체하고 자율과 보편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내용입니다. 학교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학교는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1. 학교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교육의 목적은 '진정한 자유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가 '국가가 사회를 통제하고 유지하기 위한 기관'으로 변질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학교에서 오래 공부할수록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가능성이 높은데 오래 공부하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학교는 언제나 특권층에게 유리한 제도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탈락하거나 경쟁에 도태된 이들은 낮은 사회적 지위에 머물 수밖에 없고, 학교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주입합니다. 획일적인 과정을 따라가지 못하면 낙오자로 판단해 위계질서를 만드는 지금의 학교 제도는 현실을 숙고하지 못하게 하며 생산과 소비라는 현대 사회의 수레바퀴에 학생들을 길들이고 있다 합니다. "대체로 제도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운영되며 그 다음에는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되는데, 이는 그 제도를 만든 사람과는 별 관련 없는 사람들의 희생에 의한 것이다."(p.106) 사회는 실제로 평등하거나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학교 교육은 이를 숨기고 사회 구성원 스스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표준화된 단계적 교육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직업을 갖고 사회에서 역할을 하도록 돕는 것뿐만 아니라 <기회평등>, <자유>, <진보>, 능률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주입합니다.
학교에서 정한 커리큘럼을 잘 따라가는 학생들은 학위를 받고 직업을 갖는 등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성취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서 정한 길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학교에서 정한 길을 가는 학생들보다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더 많은데 이들은 학교 제도 안에서 패배자가 되어버립니다. 학교와 직장, 사회의 계층구조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형태의 위계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경쟁을 피할 수 없고 승리자와 패배자가 나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승리자인 학생들이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학교에서 주입하는대로 지식을 습득한 학생들은 사회에 순응하는 평범한 구성원이 되어 버립니다.
2. 학교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라이머가 제시하는 새로운 교육은 어떤 것일까요? 진정으로 모든 사람을, 공익을 위하는 교육을 하려면 무료 혹은 매우 적은 비용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여야 합니다. 마치 전기나 수도사업처럼 말입니다. 교육받는 이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교육의 종류와 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려면 학교는 사람과 사물을 포함한 모든 중요한 교육자원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 조직망으로 대체"(p.124)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지금의 학교를 해체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죠.
더불어 모든 정보가 개방되어 교육 자원으로 활용될 때 통찰력을 키우는 교육이 가능해 질 것이라 합니다.지금의 학교 제도는 국가가 교육환경과 자원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학생에게 국가가 원하는 사상을 주입하고, 국가가 원하는 구성원을 재생산하기 위해서지요. 과학, 군사, 경제, 정치 등 모든 분야에 걸친 벽이 허물어져 모든 정보를 교육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날이 올 때, 정보와 자원을 통합한 질 높은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라 합니다.
'교육자'의 개념 역시 변해야 합니다. 학교나 교육기관은 교육자의 자격요건을 두어 교육인력의 양과 질을 통제하면서도 현장에서 교사들의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합니다. 그리고 학교 안보다 오히려 학교 밖에 풍부한 '기술 모델'(선생님)이 많다면서,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기술모델' 인력풀을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이 인력풀 시스템을 통해 학생과 교사, 클래스메이트 매칭이 가능해집니다. 즉 이 시스템 안에서 학생들은 자신을 가르쳐 줄 선생님, 과목, 수업시간,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고, 배우고자 하는 것과 주소를 입력하여 적당한 동료 학습자를 구하면 된다는 겁니다.
이런 교육 시스템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제공될 것이고, 자신의 필요와 의지로 이루어지는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인간이 배우기를 원하고 원하는 것을 배울 때 이 세상은 진보합니다. 장기적으로 "정의로운 사회에로의 진보 - 인간의 행동 동기를 개조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진보 - 만이 안전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p.147) 있다는 것이 라이머의 주장입니다.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려면 재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학교를 대신할 교육 조직망과 기술모델 인력풀을 운영하기 위해 교육을 위한 '공공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합니다. 또한 보편적인 교육이 가능하려면 가난한 이들에게 더 많은 교육비를 지원해야 하는데, 이 예산은 세금 혹은 기업 기부금으로 충당이 가능할거라 합니다. 그가 추구하는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돕고 배우는 세상, 보편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세상, 올바른 교육이 평등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이끌어내어 변화의 선순환을 이루는 세상입니다.
라이머의 혁신적인 교육 조직망이 실제로 도입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돌봄이 필요한 어린아이들을 보육하는 기능을 하는 기관은 여전히 필요할 겁니다. 혹은 기관이 아니더라도 돌봄 품앗이를 하는 커뮤니티가 존재하겠지요. 아이들이 조금 자라면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같은 공개 수업 시스템에 접속하여 원격수업을 듣거나, 온라인 매칭 시스템을 이용해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알려줄 수 있는 기술모델을 찾아 오프라인 수업을 들을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미줄같이 연결되어 가르침과 배움을 주고 받을 겁니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가 생산활동을 할 것이고 여유로워진 사람들은 교육의 본질적 의미를 찾아 진정한 자유인이 될 겁니다. 라이머의 구상이 이루어지는 날이 곧 올까요?
3. 영웅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가
라이머가 추구하는 미래 교육 조직망의 모습은 이상적입니다. 지금의 기술 수준이라면 교육 조직망을 구현하기에 충분하겠지만, 기존 질서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겁니다. 학교 제도에 묶인 수많은 이해당사자들 즉 교육관계자, 학교행정가, 교육학자들이 과연 변혁의 필요성을 받아들일까요? 현 제도에 최선을 다해 순응하며 살아 온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 역시 어떤 개혁도 반기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학교를 대신할 교육망이 생긴다면, 그 교육망 내에서는 경쟁이 없어질까요? 사람에게는 자신과 남과 비교하며 더 탁월하기를 추구하려는 본성이 있지 않았던가요? 국가가 개인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과 삶의 질을 보장해준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현재 상태보다 잘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에 아무리 교육이 상향평준화된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생길 겁니다. 교육 '평등'과 '수월성' 은 모두 중요합니다. 『학교는 죽었다』는 학교 제도를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대안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더욱 혁명적이지만,이상적인 교육 제도를 실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현대 사회는 모두의 이권이 얽혀있어 더 복잡한 논의와 조정이 필요합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은 정권과 담당자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듯하여 정쟁의 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라이머는 책 말미에서 영웅이 등장했으면 한다고 남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진정한 교육을 방향성으로 제시해 줄, 그리고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 줄 영웅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