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는 한영대역 시리즈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시리즈와 <K-픽션> 시리즈에 이어 새롭게 시선집 들을 영어로 번역하여 함께 싣고 있는 한영대역 시리즈 <K-포엣> 시리즈를 출간하였다. 우리의 좋은 시들이 세계 여러 독자들에게 읽히게 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다. 또한 비록 영어가 짧긴 하지만 한영 대역으로 우리의 시를 접한다는 신선한 기대감을 품고 책장을 펼쳐본다. 안상학 시인의 시를 접하며 든 생각 하나는 시를 읽다보면 문득문득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점이다. 때론 무릎을 치며, ‘아하, 그렇구나!’ 공감하게도 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시가 있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한다 / 아니다, 사람은 손 없이 왔다가 손 없이 가는 것이다 / 보라, 기어 다니는 아이까지는 손이 아니라 발이다 / 똥을 뭉개는 저 / 기어 다니는 노인의 손도 손이 아니라 발이다 / 사람은 네 발로 와서 두 손으로 살다가 / 네 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내 손이 슬퍼 보인다> 일부 문제는 두 손으로 살아가는 동안이다. 두 손을 가지고, 남의 것을 빼앗는데 사용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군림하는데 사용한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두 손의 역사는 끊임없이 싸움을 재생산하는 역사다.”라고. 시를 읽다, 두 손을 한참을 들여다봤다. 내 손 역시 슬퍼 보이는 손은 아닌지. 시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다. 적어두고 기억하고 싶은 시구들도 많다. 꼭 시로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문구로 외워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시구들이 말이다. “때가 되면 발밑에 연연하지 않아야 될 때가 한번은 오는 법이다.”<발밑이라는 곳> “세상에는 보이지 않아야 보이는 것이 있다 / 아득하니 볼 수 없을 때야 보이는 것이 있다.”<그려본다는 것> 인생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평화에 대해, 아버지에 대해 등등 다양한 주제의 시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다. 엄청 어렵지는 않으면서 시 한 편 한 편 깊이 묵상하면 좋을 시들로 가득하여 얇은 시집이지만 배부른 느낌이다. 그 가운데 한편 적어본다. 내 걸어온 길 늘 어둠 속이었으나 /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 그 언젠가 단 한 번 번개 칠 때 / 잠깐 드러났다 사라진 그 길을 떠올리며 / 더듬더듬 한발 한발 줄여온 덕분 아니겠는가 // 남은 길도 / 캄캄한 길 더듬어 가는 중에 / 언제고 번개 한 번 더 쳐주길 학수고대하며 / 그렇게 더듬거리며 가는 길 아니겠는가 <노정> 전문 인생이란 결국 이런 ‘노정’을 걷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 노정에 길 밝혀줄 번개가 길을 잃을 때마다 ‘한 번 더 쳐주길 학수고대’하는 게 아니라, 자주 쳐주길 욕심 부려보며 시집을 덮는다. |
|
시에 가진 다양한 의미와 문체, 운율, 함축과 생략 등을 생각치 않고 있는 그대로의 글로만 이 책 "안상학 시선"은 저자 스스로가 이야기하는 사랑이 가진 슬픔의 모습들을 통해 그런가 하면 "아배생각"과 같은 그야말로 "빵" 터지는듯 한 웃음의 현신이 놀랍지만 자연의 순리적인 운용에 대한 이치를 시세계에 녹여낸 시인의 시들을 통해 우리 삶의 |
|
좋은 시는 여백이 많은 시였다. 좋은 시는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시였다. 한권의 시 속에서 내가 놓치고 있었던 빈 여백을 채워 줄 수 있다면, 시 한편이 주는 무게감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안상학 시선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의 근원에 대해서 사유하게 되고, 인간의 소유욕이 가져오는 인위적인 현상들을 고발한다. 인간은 왜 폭력성을 잉태하고, 동물이 보여주는 폭력성과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인간이 가지는 오만함은 동물을 학살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 또다른 고차원적인 단계에 다다르게 된다. |
|
시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시집을 읽기 전에는 안상학이란 시인을 몰랐다. 아주 가끔 시집을 읽는데 이런 시집들도 대부분 이미 잘 알려진 시인들이다. 물론 어딘가의 시선집에서 그의 시 한두 편을 읽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시집 한 권을 읽은 적은 없다. 그래서 선택할 때 조금 주저했다.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결론부터 말하면 이 선택을 잘 했다. 우연히 새벽에 일어나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일상을 그려내는 시부터 사회 문제를 다루는 시까지 다양한 시들이 나오는데 나의 감상과 해석이 달라 조금 어리둥절한 부분이 있다. 해설에는 무위자연과 음양을 중심으로 풀어내었는데 이 시집을 읽으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시인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나의 입장에서 이런 해설을 볼 때는 늘 당혹스럽다. 무작정 나의 이해만 주장하기에는 나의 내공이 부족하고, 그 해설이 시를 다른 방향에서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벼랑의 나무>였다. “머리도 풀어헤쳤고/ 그 어느 손도 다뿌리쳤으니/ 사뿐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 이제 신발만 벗으면 홀가분할 것이다.” 이 시구를 보고 자살과 절망을 느꼈는데 해설은 깨달음의 절대성으로 풀어낸다.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나는, 아니래도 그런 것처럼, 그래도 아닌 것처럼/ 진짜 내 얼굴을 하지 않을 때가 많다.” <얼굴> 이 글을 보고 우리의 삶이 그대로 느껴졌다. “제 얼굴로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라고 했지만 사회에 나오면 이 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좀 더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될까? <평화라는 이름의 칼>이란 시는 평화를 가장한 평화라는 이름의 칼에 의해 학살 당한 사람을 기리고 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절대, 평화를 가장한, 평화라는 이름의 칼, 그 칼날에 배식을 맡기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 우리 사회에는 이런 평화를 가장한 칼들이 춤추고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도 그 칼에 당한다.
<내 손이 슬퍼보인다>에서 직립하는 인간들의 삶이 얼마나 소유를 갈망하고, 폭력을 행하고, 군림을 바라는지 보여준다. 빌어먹던 손이 소유의 손이 되기도 하고, 칼을 빼앗아 살수를 휘두르기도 하는 이 손들은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한 삶이다. “두 손의 역사는 끊임없이 싸움을 재생산하는 역사다.” 멋진 시어다. 이런 무거운 시만 있다면 조금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아배 생각>에서 유쾌한 부자 간의 대화를 보고 빙그레 웃고, <노정>에서 작은 희망을 보았다. 시인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슬픔의 출처는 사랑이다.”라고 말할 때 잠시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
|
며칠 전에 읽기를 시도했다가 뭐가 뭔지 헷갈림이라는 부정적 기분만 가득 안겨 주었던 김현 시선 보다는 그래도 다소간은 이해와 느낌을 가져올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20개의 시를 먼저 단숨에 읽어 내려가 보았다. 군데군데에서 몇몇 구절들이 마음에 와 닿았지만 감탄하고 푹 빠질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이대로 끝내기에는 뭔가 모를 아쉬움도 남아있고, 다시 시들을 읽을 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해서 읽어본 뒷부분의 시인노트에서는 ‘내 시는 슬픔이 생겨나는 과정의 슬픔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리고자 하는 꿈의 현현이다.’와 해설에서는 ‘안상학의 시는 무위자연의 인식을 바탕으로 구축되어 있다.’와 그리고 ‘안상학에 대해‘에서는 ’안상학은 이와 같은 서정적 시간의식에 기반을 두면서 가족에 대한 기억을 통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맺으려는 시적 성찰을 펼치고 있다.‘라는 등등의 설명을 읽으면서 아주 멋지다고 할 수 밖에 없는 해설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지식이 있어야만 시의 행간을 읽을 수 있는지 궁금증이 생기고, 현재의 나 자신의 수준으로는 시 읽기에서 즐거움을 누리면서 새로운 지혜를 얻어 내기에는 아직은 멀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두 번째로 읽어 내려가면서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그기에 없었네(When that Person Came Back, I was Not There)‘에서 '아무리 급해도 내일로 갈 수 없고(No matter how urgent, I cannot go on to tomorrow.)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어제로 돌아갈 수 없네(No matter how reluctant, I cannot go back to yesterday.)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The way time comes and goes was not something possible for me.)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The way seasons come and go was not possible for me.) 그때 나는 그 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I should have stayed standing there, waiting for that person.)'이었다.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원래부터 할 수 없었던 일은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려야 하는 걸 깨닫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같이 병기된 영어에는 낮 설어서 그런지 아직은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이제 막 시작 문턱에 발을 들여 놓은 수준이므로 나 자신의 시 읽기는 한두 번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자꾸 반복하여 읽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