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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익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리코 녀석은 총명해서,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는 갈팡질팡하지 않았다. 개는 꼼짝하지 않았고 늘 그랬듯 말을 잘 들었다. 제리코는 물에 띄워진 라일로를 타고 가는 제 역할에 충실했다. 샛노란 바탕에 선명하게 찍힌 짙은 검은색 점이 되어. 두 소년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수도 호스 무지개가 만들어내는 색깔을 바라보았을 때처럼, 더밸리 양이 춤추는 고양이의 휘청거리는 발짓을 바라보았다고 한 것처럼. 이미 저 멀리 밀려간 라일로의 노란색이 물 위의 흐릿한 점이 되었고, 그러다 사라졌고, 다시 나타났다가 또다시 사라졌다. 개 짖는 소리가 시작되었다가 울부짖음으로 변했다. 그때도 둘 사이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자갈밭과 바위를 타고 오를 때나 지름길로 올라서서 가시금작화가 핀 들판을 질러갈 때도. 절벽에서 그들은 다시, 마지막으로,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잠잠했고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래, 오늘 아침엔 너희들 뭐하고 놀았니? 더밸리 양이 물었다. 다음 날, 다른 어딘가로, 개가 파도에 떠밀려 왔다.』 (pp.292~293, <감응성 광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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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의 12개의 단편 소설이 수록된 소설집입니다. 12개의 단편소설은 두 번, 세 번 읽을수록 마음에 새로운 무늬를 남기며 켜켜이 쌓입니다. 처음 읽을 때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읽느라 바빴다면, 반복해서 읽을 때는 문장 속에서 생략되어 있는 단어들이 무엇인지, 가리키는 대상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는 대명사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읽다보면 인물들의 마음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은 잔잔하고 평온한 듯 보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그저 평범할 수도 있고요. 그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격정적인 변화는 주인공들의 삶을 살짝 비켜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세상과 단절되어 숲 속에서 사는 재단사의 아이를 차로 치어 죽게 한 카할에게 경찰의 수사망은 비켜갑니다.(<재단사의 아이>) 또 남편의 외도 상대자인 여인의 죽음으로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캐서린은 남편이 상대 여인을 죽였을지도 모르지만 남편의 알리바이를 거짓으로 증명하여 남편의 삶도, 자신의 일상도 지켜내지요.(<방>) 나이트 클럽에서 밤을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던 새벽, 젊은 패거리 중의 하나인 애슬링은 남자 친구 메닝이 길에서 어떤 청년을 가격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다음 날 뉴스를 통해 그 청년의 사망기사를 접하게 되고 메닝은 11년 형을 언도받지만, 그녀에게는 경찰의 혹독한 수사도, 가족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직접적인 비난도 비켜갑니다.(<객기>) 전화 대화 서비스로 만나게 된 남자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 재스민. 그가 건넨 술을 마시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집 앞까지 가지만 우연히 그의 이모를 만나며 그가 법원의 보호관찰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모를 만나지 않고 그를 따라 들어갔더라면 겪게 되었을지 모를 일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오후>) 하지만 그들의 마음도 그 ‘사건’들을 비켜가지는 못합니다. 감옥에 가거나, 결혼 생활이 파탄 나거나,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그들의 마음은 그 ‘사건’을 전적으로 ‘감수’해낼 수밖에 없습니다. <재단사의 아이>의 카할은 ‘사건’이 있은 후 아이의 엄마인 재단사가 항상 자신의 주변에 있음을 느낍니다.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튀어나오곤 했던 아이는 어쩌면 자신이 아니더라도 사고가 날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고 자기 위안을 삼아보지만, 그래도 카할의 머릿속에는 그 순간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 그날로 돌아가 자신의 행동을, 거기까지 차를 몰고 간 자신의 욕심을, 거짓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것을 반복합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끝은 없었다. 시내에서, 비록 밤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항상 주변에 있었다. 카할은 그것이 망상임을, 실제로는 그녀가 항상 주변에 있지 않은데도 나타날 때마다 매번 그 존재가 너무 의미심장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뿐임을 알았다.(p32) <방>의 캐서린에게도 남편의 외도(혹은 남편의 살인)와 자신의 거짓 증언은 결혼 생활을, 그리고 자신의 삶을 이미 손상시켜 그 ‘사건’이 있은 뒤 9년 내내 그녀는 ‘황무지’를 걷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걸어가는 길이 황무지 같았다.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녀의 기분 때문에 황무지가 된 곳, 아무런 연고 없는 이곳에서 그녀는 익명성을, 고독을 느꼈다. 그와 함께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힘든 어떤 것이 찾아왔다. 아, 하지만 다 끝난 일이잖아, 그녀는 방금 느낀 가벼운 당혹감에 대한 반응처럼,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당혹감은 더욱 커져갔고, 그녀는 얼핏 알 것 같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자문했다. 생각은 쓸모가 없다. 이 모든 것은 감정이다. 그래서 그녀는 줄곧 걷는 동안, 생각을 하지 않았다. (p57) <객기>의 애슬링 또한 10대에 겪었던 사건을 마음에 품고 긴 시간이 흘러도 죽은 청년에게 용서를 빌며 그의 무덤을 찾습니다. 애슬링에게, 흐르는 시간은 전에 알던 낮과 밤보다 생소하게 느껴졌다.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p115) 음산한 묘지에서 애슬링은 받아들이기에 너무 추한 진실 앞에서 허위를 끌어안은 자신에 대해 죽은 이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 전의 다른 행위들이 그랬듯이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에게 사랑받을 자격을 얻으려고 저지른 행위를 그녀는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었다. 그리고 지켜보는 순간에는 쾌락도 있었다. 잠시뿐이었다 해도, 있기는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떠나게 될 수도 있으며,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할 때도 많았다. 평온을 주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한때의 객기가 드리운 그림자를 떨쳐내기 위해,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 남았다. 자신 또한 새사람이 되어, 그 일이 일어난 곳에 속한 채로. (p117) 저 역시 과거에서 벗어나기 힘든, 그런 유형의 인간인지라 때때로 부끄러움에, 죄책감에, 또는 수많은 과거의 감정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어느 날은 그것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혼자 삭혀내기도 합니다.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은, 이젠 내가 어떻게 돌이킬 수도 없을 만큼 저 먼 너머로 지나가버렸지만 그래도 잊히지 않는 몇 가지 잘못, 상처, 죄책감들은 지금의 나의 삶을 ‘손상’시킵니다. 물론 과거의 그 일들이 가져온 “손상은 파괴가 아니며 파괴를 의도한 결과도 아니(p56)”었지만.... 저마다의 어떤 죄책감을 갖고 사는 우리에게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은 절대로 “괜찮아.”라고 다독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절대로 괜찮을 수 없는 것임을 일깨웁니다. “우린 감수하며 살고 있어요.”(p41) 캐서린이 말한 것처럼. “우린 감수하며 살아야 해.”(p115) 애슬링 아버지의 말처럼. 그 죄책감을, 과거로부터 이어진 그 감정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 것.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그래야 하는 것. 그래서 이후의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표면적인 사과나 깊이 없는 회개와 후회만으로는 결코 이전의 감정으로, 혹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 결국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된 셈이지만, 왜인지 그것은 “괜찮아.”라는 말보다 삶의 진실됨에 더욱 다가가게 해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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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이지 않다, 질식할것 같지도 않다. 평범한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매혹적이다. 인생의 과정중에 때로는 짧은 순간을,어떤때는 사건들이 모여서 긴 시간을 거쳐 하나의 이야기를 되는 과정을 일관성을 갖고 풀어낸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한밤의 사건'과 살짝 비교해 보았다. '한밤의 사건'이 삶의 단편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시간을 거슬러서 따라가는 과정이 조금은 환성적으로 풀어내지는 반면에, 트레버의 글들은 좀더 현실적이다. 주인공들의 사연은 나름 이해가능하다. 멱살을 잡고 글속으로 몰아가지도 않는다. 그냥 툭 던져지는 이야기들이 아일랜드, 종교, 각자의 직업과 관계없이 대한민국에 사는 지금의 나에게도 동감을 주는것 같다. 이 책 제목을 '그의 옛 연인' 으로 한것은 아마 마케팅적인 목적이 강한것 같다. 사실 첫번째로 실려있는 '재봉사의 아이' 를 읽으면서 이미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끝난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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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는 왜 이렇게 쓸쓸한 글들만 쓴 걸까. 얼마전 읽었던 #루버니의 #오래전멀리사라져버린 에서도 죄책감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 였는데 이 책에 실려있는 12편의 단편들도 각자의 사건 속에서 서로 다른 죄책감을 가지며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뭔가 가슴속에 묵직한 울림이 있고 읽고 난 뒤에도 여운이 남아 먹먹했는데 막상 글로 쓰려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한번쯤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은 책. 그리고 한번만 읽지말라고 말해주고 싶은 책. 나 또한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잊을 만 하면 한번씩 계속 들춰보면서 읽어볼 생각.. 깔끔한 문체로 깊은 감정을 군더더기 없이 정말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그의 작품을 읽으면 읽을 수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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