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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은 그 역사적 의의나 동아시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단연코 높기 때문에 역사책들에서 비중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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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 이름이 다소 이상한데, 영국산 아편 때문에 중국 청나라와 영국이 전쟁을 했다고 붙여진 호칭이다. 이 아편전쟁은 1840년부터 1860년까지 2번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모두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4억의 인구를 가진 대국 청나라가 그보다 훨씬 적은 고작 2만 명 내외의 영국군에게 전투에서 붙는 족족 참패하고, 마침내 수도인 베이징까지 함락당하는 등 온갖 치욕으로 일관된 전쟁이 바로 아편전쟁이었다. 그래서 아편전쟁은 중국인들이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남아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아편전쟁을 집중적으로 다룬 개괄서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 중국 역사학자가 쓴 아편전쟁이 출간되어서 무척이나 기쁜 마음이 들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아편전쟁은 1840년에 일어난 1차 아편전쟁이다. 저자는 1차 아편전쟁을 다루면서 중국뿐 아니라 상대방인 영국 쪽의 자료들도 구해서 치밀하게 읽었다. 저자의 말로는 1차 아편전쟁을 다룬 중국 쪽 자료들이 결코 적어서가 아니라(오히려 너무 많아 천장에 닿을 정도라고 했다!), 영국 쪽의 자료들도 함께 읽어야 교차검증이 된다고 했는데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이 책은 1차 아편전쟁의 배경과 전개 및 결과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돋보기를 들이대고 역사를 해부하고 있다. 다른 책들처럼 텍스트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도표까지 곁들이고 있어서 출판사에서 무척 정성을 다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중국 쪽의 비분강개한 모습만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 관리들의 심각한 부패와 적국인 영국의 군사 전술에 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또 한 번 저자의 치밀함을 느끼고 감탄했다. 아편전쟁 당시, 영국군은 정면에서 해군 함대가 대포를 쏘고, 그러는 사이 함대에 타고 있던 육군 병력이 작은 배에 옮겨 타고 멀리 측면을 돌아 육지에 상륙하여, 청군의 측면을 들이치는 전술을 구사했다. 해군과 육군의 합동 전술인 셈인데, 이 전술에 청나라 군대는 일방적으로 참패를 거듭했다. 이는 그만큼 청군의 군사 전술이 경직되어 있었던 사실을 증명해 준다. 또한 아편전쟁 무렵, 청나라 황제와 관리들은 영국군이 바다에서는 잘 싸우나 육지로 올라오면 제대로 못싸운다는 터무니없는 착각에 빠져 있었는데, 오히려 사실은 정반대로 영국군은 바다와 육지 모두에서 잘 싸웠다. 이는 마치 임진왜란 무렵, 조선의 지배층들이 일본군은 바다에서 잘 싸우지만 육지에서는 제대로 못싸운다는 황당한 착각에 빠져 있다가 막상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일본군이 육지에서 맹위를 떨치는 모습에 당황하여 피난을 갔던 일과 겹쳐져 무척 씁쓸했다. 물론 아편전쟁이 영국의 승리로 끝난 원인은 결국 영국의 막강한 해군력 덕분이었다. 당시 영국은 현재의 미국처럼 글자 그대로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던 해상 강국이었고, 그에 반해 청나라 해군은 고깃배에 불과하여 도저히 영국 해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 함대가 세계 최강의 러시아 발틱 함대를 무찔렀다 운운했지만, 사실 20세기 초 진짜 세계 최강의 함대는 러시아가 아닌 영국 함대였다. 이런 역사적 경험 때문에 오늘날도 중국은 아편 같은 마약을 엄중히 처벌하며, 더 나아가 강력한 해군력을 확보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중국이 러시아의 낡은 항공모함 바랴그호를 사들여 항모로 개조하는 등의 이유도 바로 미국에 맞설 강력한 해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인들은 아편전쟁이 역사에 던진 의미를 정확히 깨닫고 있는 셈이다.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영국 등 서구에게 패배했기 때문에 중국은 2천년 동안 누려온 패권을 잃고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한 반면, 영국 등 서구는 중국을 굴복시켰기 때문에 명실상부하게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했으니까. 중국인들에게는 무척 뼈아픈 순간일 텐데도 과감하게 역사의 돋보기를 들이댄 저자의 용기와 방대한 해설에 큰 유익함을 느꼈다. 앞으로 이런 책들처럼 중국사에 관한 좋은 개설서가 나왔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