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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의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에 대해서 쓰기 전에 나 스스로 확인해야할 사항들. 첫 번째, 지질학이라곤 대학시절 과학사개론 시간의 ‘격변론’과 ‘균일론’ 정도 밖에 알 지 못한다. 격변론은 퀴비에, 균일론은 허튼에서 시작해서 라이엘. 그저 이 정도로 나왔던 것 같다. 두 번째, 스티븐 제이 굴드에 대해서. 스티븐 제이 굴드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진화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런데, 그의 학부 전공은 지질학이며, 연구 분야는 고생물학이었다. 지질학과 고생물학은 당연히 진화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세 번째, 다시 스티븐 제이 굴드에 대해서. 20년 넘게 한 주도 빼먹지 않고 연재한 에세이로도 유명하지만, 학문적으로 가장 주목받은 것은 닐스 엘드리지와 함께 발표한 ‘단속 평형론(punctuated equilibrium)'이다. 이게 1972년도의 일이니, 그가 30대를 갓 넘겼을 때의 일이다. 이 단속평형론은 어느 쪽이냐 하면, 분명히 ’격변론‘쪽의 손을 들 수 밖에 없다. 네 번째, 라이엘. 그는 균일론의 대가로, 또 지질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더 유명한 것은 (아마도) 다윈의 자연선택설의 이론적 힌트를 제공한 인물이며, 최초의 다윈 옹호자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일 것이다. 다윈이 비글호 항해를 떠나면서 항상 자신의 곁에 두었던 책이 바로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였으며, 월레스의 편지를 받고서 당황한 다윈이 처음 찾은 사람도 라이엘이었다. 자, 이런 기본 지식을 확인하고 나서 스티븐 제이 굴드의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그런데, 정작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그러니 몇 가지로 번호를 붙여가며 정리해보자. 1. 스티븐 제이 굴드가 진화학자 뿐만 아니라 과학사가(科學史家)로서 불릴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는 것. 스티븐 제이 굴드는 라이엘에 관한 장의 끝부분에 이렇게 적고 있다. “많은 현역 과학자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러 분야에서 10년 이상 오래된 학술지들은 선반에서 치워져 다락으로 옮겨지거나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그 자리는 마이크로필름으로 가득 채워진다.”(260쪽) (지금으로 말하자면 인터넷이 있고, pdf file이 있기 때문에 어디로 치울 필요도 없다. 다만 보지 않고, 내 컴퓨터에서도 지울 뿐이다.) 2. 스티븐 제이 굴드가 지질학사에서 악당처럼 여겨지는 버넷과, 그와 반대쪽에서 지질학을 만든 것으로 여겨지고 지금까지도 큰 영향력을 지닌 허튼과 라이엘에 대해서 기존의 평가와는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의 반골 기질 같은 것이 아닌가. 물론 꼼꼼한 원전 해석에 이은, 합당한 논거를 가진 분석이지만, 그래도 그런 의심을 떨칠 순 없다. 3. 지질학에서도 그렇고, 생물학(특히 진화학), 물리학에서 시간의 문제에 대해서 깊게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그걸 순환적으로 생각하느냐, 직선적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세계관이 바뀐다. 그러나 스티븐 제이 굴드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그 어느 쪽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는 아니다. 방법적인 부분에서 우리가 취할 부분이 있는가, 그것이 정당하게 평가를 받았느냐, 그것이 후대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 등등. 그걸 현란하게 펼쳐놓았다. 쉽지는 않다. 4. 라이엘에 대한 부분은 특히 집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이엘이 가장 유명하기 때문이다. 유명하다는 것은 그를 뛰어넘으면 그와 비슷한 레벨이 된다는 말도 되니까. 물론 굴드는 라이엘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단속평형론’은 라이엘 뛰어넘기에 다름 아니었고, 이 책도 다른 의미에서 라이엘 뛰어넘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5. 모든 사람은 그 시대적 한계 속에서 사고한다. 물론 그것을 뛰어넘는 사람이 나온다. 그래서 그는 천재로 추앙받는다. 그런 사람이 전 역사를 통틀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사람도 모든 부분에서 시대를 뛰어넘었을까? 그런 점에서 현대의 관점에서 과거 인물의 생각과 이론을 평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굴드는 그 시대의 한계 내에서 이해하고자 무척 애를 썼다. 다만 허튼과 같은 경우엔 너무나도 잘못 알려져 있어서 그것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허튼을 세상에 알린 플레이페어 같은 인물이 있다는 것 자체가 허튼에게는 행운이다. 그런 행운을 갖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굴드도 부러워하지 않을까? 6. 옮긴이 해제는 필요없다. 굴드가 제대로 썼으면 그만이고, 옮긴이가 제대로 옮겼으면 그만인데, 책 전체를 다시 설명하고 있다. 일반인은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드니(물론 쉽지는 않다), 내가 설명해줄테니 이걸로 이해하시오, 라는 거다. 그럴 바에야 이 한 권의 책이 왜 필요할까? 교수님이 너무 많이 개입하셨다. 아무리 ‘한국연구재단총서’이지만. (2012.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