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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구를 촉촉하게 적셔주는【잠옷을 입으렴】
"내 안구를 촉촉하게 적셔주는【잠옷을 입으렴】" 내용보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읽었던 그 적지 않은 책들 중에 이제는 홀연히 사라져가버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은 과연 몇 권이나 됐을까 하는. 몇작품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도우 작가의 이 작품만큼 절절하게 추억을 곱씹게 만드는 작품도 흔치는 않았던 듯 하다. 그렇다. 지금 난, 추억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그 추억에 푹 잠기게 만드는 아릿한 성장소설을 한권 만나
"내 안구를 촉촉하게 적셔주는【잠옷을 입으렴】" 내용보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읽었던 그 적지 않은 책들 중에 이제는 홀연히 사라져가버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은 과연 몇 권이나 됐을까 하는. 몇작품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도우 작가의 이 작품만큼 절절하게 추억을 곱씹게 만드는 작품도 흔치는 않았던 듯 하다. 그렇다. 지금 난, 추억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그 추억에 푹 잠기게 만드는 아릿한 성장소설을 한권 만나고 돌아오는 중이다.

 

신작로, 네잎클로버, 삼중담문고 등..기억 한켠에 잠재해(혹은 나에게도 낯설은) 있던 추억 속 단어, 장소, 놀이 등이 가득하다. 그래서 읽다보면 나 역시 저절로 그때 그 시절로 슬그머니 발을 들여놓게 된다. 많은 분들이 제목만을 보고는 음흉(?)한 상상을 하시는걸 목격했는데, 이도우 작가가 말하는 '잠옷'은 중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1살 어린시절 이종사촌 수안과 입었던 디자인은 같지만 색이 다른 리본 달린 잠옷과 38살, 여전히 추억에 젖어있는 또는 헤어나올 수 없는 둘녕이 잠결에 잠옷을 입은 채로 밤거리를 헤매는 극적 수단으로써. 잠옷이란 매개는 그렇게 11살과 38살, 27년이란 시차를 뛰어넘어 한 곳에 존재하고 둘녕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둘녕이 수안에게 잠옷을 건넴으로서 둘의 우정은 기억 속에서나마 계속 되기도 한다.

 

소설 속 화자 둘녕을 만나는 시작은 이렇다. 갑작스레 엄마가 집을 나가 버리고 바쁜 회사생활에 시달리던 아빠는 둘녕을 시골 할머니댁에 맡기게 된다. 이모 내외, 막내이모와 삼촌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다. 아, 그리고 유년시절에도 어른이 된 후에도 둘녕에게 제일 중요한 인물로 각인되 있는 수안이 있다. 대체적으로 이 경우에는(친척 중 여자형제가 있을때) 두 가지 경우의 관계가 존재한다. 아주 친하거나 시기하거나. 나의 경우 외가,친가 할것없이 어디든 남자사촌들만 득시글거렸고 내가 유일한 친손녀이자 외가에서도 첫 손녀였기에 야수 속의 미녀(?)처럼 고운 대접을 받고 자랐다. 그래서 여자 사촌과의 우애같은건 전혀 낯설기만 하고, 남자 사촌들 속에서 항상 겉돌았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그래도 내가 유일하게 따랐던 사람이 있다면 9살 차이가 났던 막내이모 정도일까. 초등 1학년때 이미 고등학생이었던 이모를 손전등을 들고서 시골 밤길을 헤치며 버스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가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어렴풋이 떠오르곤 한다. 한참 머리가 커버린 이모였지만 나도 퍽이나 철이 들었던터라 꽤나 잘 맞는 말동무가 되었던거 같다(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 다락방에서 막내이모의 일기장이나 연애편지를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했고. 그 시절, 이모가 하는건 뭐가 그리 다 멋져 보였던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는 줄줄 꾀고 있었고... 책꽂이에 꽂힌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나 에밀 졸라, 헤밍웨이의 책 등은 언제나 내 눈으로 격하게 애무를 해주곤 했다. 읽어봤자 멋도 모르긴 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 꽤나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한 사람이 내 부모 내 형제가 아니더라도 있을 것이다. 그런 존재가 나에게는 막내이모였고 둘녕에게는 동갑내기 사촌 수안이었던 것이다. 둘녕의 입장에서는 얹혀사는 입장이라 어른들의 눈치도 봐야했겠고, 수안은 부모님 두분 다 계심은 물론 약한 몸으로 인해 어른들의 걱정을 한몸에 받는 입장이라 둘녕의 입장에서는 상대적 박탈감과 주눅이 들만도 하지만 둘의 사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들이 성장 해 나감에 따라서 점점 끈끈해지기만 했다. 서로의 그림자처럼, 바람이 불면 나무잎이 살랑거리듯이, 햇빛이 내리쬐면 나뭇잎이 그 빛에 영롱이 초록빛을 뿜어내듯이..그렇게 둘도 없는 친구이자 사촌이자 성장의 동반자였다.

 

정신적으로 강한 유대를 형성한 이들은 어느 한쪽이 흔들리게 되면 나머지 한쪽은 꿋꿋이 버티는 버팀목이 되거나 아니면 둘 다 중심을 잃고 사정없이 바스라지게 되든 종 잡을 수가 없다. 수안과 둘녕의 성장 역시 그와 다를바 없다. 한창 민감한 사춘기를 지나고 감성의 발달이 극에 달했을때는 바스라지는 낙엽만으로도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지 않던가. 그런 성장통을 좀 더 냉철하고 현실적이었던 수안이 겪게되고 그 모습을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둘녕이 고스란히 바라보며 애타하고 받아주게 되는 입장이다. 대신 아파 해줄 수 없음에 마음 졸이는 둘녕을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는 시선이 교차한다. 누구든 피해갈 수 없는 성장의 바람 안에서 이들이 겪어가는 사소하면서도 특별한 일들은 어린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기 어렵지 않다. 다만, 그 아이들에게서 전해져오는 그 바람이 너무나 쓸쓸하다는게 문제라면 문젤까. 아직,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데 내던져진 듯한 그 흔들리던 소녀들의 감성이 뭉근하게 전해져 온다.

 

 

 

나의 유년 시절? 잠옷을 대신하는 전천후 무릎 나온 내복의 추억뿐.

 

잠옷? 그런건 안 키웠다. 무릎 나온 무늬내복이라면 모를까. 어떻게 날이 되어 엄마와 함께 시장바닥을 누빌 때면 좌판에 진열되어 있는(시골 시장이 뭐 거기서 거기지) 잠옷들에 시선과 정신을 쏘옥 빼앗기어 침을 질질 흘리며 사달라고 졸라대곤 했다. 하지만 사주면 뭐하나.  이미 나는 겨울엔 무릎 나온 내복, 여름에는 츄리닝에 길들여져 있는 아이일 뿐이었는데. 입고 벗고 갈아입기 귀찮다는 이유로 언제나 옷장 속에 고이 모셔져 있기만 했던게 그 시절 잠옷이었다. 성인이 되고? 원피스, 파자마 할 것 없이 잠옷에 열광했다. 입고 벗고의 귀찮음을 떠나 잠은 편하게 자야한다는 주의로 바뀌었고 원피스잠옷은 나름 시원해서 좋았고 파자마잠옷은 편하다는 이유로 즐겨입기 시작했다. 심지어 약속 없던 휴일에는 하루종일 잠옷을 입고 생활 할 정도로. 하지만, 그래도 제일 좋았던, 편했던 시절을 떠올리라면 무릎 나온 내복에 소매 끝에 때가 꼬질꼬질 끼어있던 그때이다. 내복을 입고 무릎걸음으로 하도 방바닥을 기어다녀서 종래에는 무릎 부분이 금새 너덜너덜 해지고 말았던 내 몸의 방한을 어느 정도 책임(?)지고 편함을 주었던 그 시절 한겨울, 내복의 추억...떠올려줘서 고마워요.

 

 

 

사실, 이도우 작가의 이번 작품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 많은 분들의 반응처럼 나 역시 의외였다. 하지만 그 특유의 감성만은 여전하다. 단어 하나, 행간마다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듯한...그렇다고 달디단 사탕처럼 달콤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 침샘을 고이게는 하지 못하지만 대신 내 안구의 촉촉함은 보장하는, 그렇게 감성에 노크를 마구 해대는 소설이다. 작가의 이름만 들으면 남자야? 싶지만...이도우 작가는 확실한 여성이 맞다. 글을 보면 안다. 그 쓸쓸하고도 촉촉한 물기 어린 글은 절대, 남자의 글일 수가 없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또 몇 년을 그렇게...기다려야 하겠지...

 

 



w*****8 2012.03.26. 신고 공감 25 댓글 42
리뷰 총점 종이책
아름다운 시절을 누가 데려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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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읽고 이도우 작가를 기억하게 된 것 같다. 로맨스의 풋풋함과 싱그러움으로 다가왔던 전작이었기에 『잠옷을 입으렴』도 그런 기대감으로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은 로맨스가 아니라 성장소설이다. (사뭇 로맨스를 기대 ^^;;) 성장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시큰둥하게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다 덮는 순간 콧날이 시큰거린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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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읽고 이도우 작가를 기억하게 된 것 같다. 로맨스의 풋풋함과 싱그러움으로 다가왔던 전작이었기에 잠옷을 입으렴도 그런 기대감으로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은 로맨스가 아니라 성장소설이다. (사뭇 로맨스를 기대 ^^;;) 성장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시큰둥하게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다 덮는 순간 콧날이 시큰거린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렸을 때 잠시 외갓집에 맡겨 지낸 적이 있었는데 , 이 책의 주인공 둘녕과 처지가 비슷하다보니, 둘녕의 감정이 퍽 친숙하게 다가왔다. 바느질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서른 여덟살의 둘녕의 시점이다. 둘녕에게는 잠옷을 입은 채로 돌아다니는 몽유병이 있다. 마음속에 치유되지 않은 아픔을 안고 잠옷을 짓는 둘녕은 잠옷을 완성하는 동시에 오랜 기억속의 그 마을에 가려 한다. 그곳에는 그 아이가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기에....

 

엄마가 갑자기 집을 나가고 바쁜 아빠는 둘녕을 외할머니에게 보낸다. 처음 만난 새침한 아이 수안을 보고 , 둘녕은 어딘지 모르게 새침하고 당돌한 수안에게 위축되지만, 그 아이의 낡은 내복을 본 순간 위안을 받는다. 장에 가서 외할머니는 둘녕과 수안에게 처음으로 잠옷을 사주고 둘의 아름다운 소녀시절은 그렇게 시작된다. 책이 귀한 시절에 가끔 들리는 만화방에서 주고 받던 만화책이야기가 좀 더 진일보해서 문학작품을 탐독하게 되고 둘은 복잡한 어른들 세계와는 달리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책은 둘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위로이자, 추억이 된다. 둘의 문학세계가 문을 열고, 주의 사람들은 만나고 떠나고, 삼촌 역시 떠났다가 돌아오고, 이웃집 할매는 죽고 , 둘은 성장하고 있었다.

 

몸이 약한 수안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던 둘녕은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하지만, 서른 여덟이 되어서야 깨닫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다. 자신이 끊임없이 무엇인가 해주려고 하고,

사랑하니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

 

그 아이는 내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닫습니다.

 

젊음이 아름다운 이유는 삶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려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면서 모든 것이 명징해감에 따라 삶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음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서 성장한 사실을 깨닫고는 한다. 어른이 되어도 는 그대로이며, 단지 늙어가고 있다는 진실만 남는다.

 

흘러간 물은 다시 오지 않는다지만, 우리 눈에 비친 냇물은 언제나 똑같아 보이기만 했다.

 

이 책이 아름답게 느껴진 이유도 바로 그런 청춘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삶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을 때는 오로지 성장할 때이다. 그래서인지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여고생들의 뒷모습만 바라봐도 웃음이 나고,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써니건축학개론을 읽으면서 눈물 범벅이 되는 이유도 이제는 삶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장소설을 읽고 나면 마음이 아프다. 둘녕이 오랜 세월, 수안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잠옷을 짓는 그 마음처럼 내 안에 깃들여있던 추억의 한자락을 떠올렸다가 다시 떠나보내기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지...새벽녘의 짙푸른 어스름 속에 아슴아슴 제 붉은 빛을 드러내는 고운 꽃처럼 추억과 젊음과 아름다운 기억들을 애절함과 간절함과 아련함으로 기억하게끔 하는 소설이다. 들녕의 기억 한자락에 기대어 나의 아름다운 시절을 추억해본다.

 

 한때 내 것이었다가 나를 떠난 것도 있고, 내가 버리고 외면한 것도,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던 것도 있다. 다만 한때 몹시 아름다웠던 것들을 나는 기억한다. 그것들은 지금 어디로 달아나서 금빛 먼지처럼 카를거리며 웃고 있을까. 무엇이 그 아름다운 시절을 데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2.05.28. 신고 공감 16 댓글 28
리뷰 총점 종이책
잠옷을 입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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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몇 년 전에 사놓은 책<저자는> 저 : 이도우 ---발췌하다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라디오 작가,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공진솔 작가와 이건 PD의 쓸쓸하고 저릿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종사촌 자매 수안과 둘녕의 아프고 아름다운 성장과 추억을 그린 『잠옷을 입으렴』, 시골 마을의 낡은 기와집에 자리한 작은 서점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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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몇 년 전에 사놓은 책

<저자는>

 저 : 이도우 ---발췌하다

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라디오 작가,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공진솔 작가와 이건 PD의 쓸쓸하고 저릿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종사촌 자매 수안과 둘녕의 아프고 아름다운 성장과 추억을 그린 『잠옷을 입으렴』, 시골 마을의 낡은 기와집에 자리한 작은 서점 ‘굿나잇책방’ 이야기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썼다.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깊고 서정적인 문체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천천히 오래 아끼며 읽고 싶은 책’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 이어, 산문집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를 작업하고 있다.

<책읽고 느낀 바>

  여기저기 노출된 정보들과 리뷰를 통해 자꾸 접하다보면  읽은 책인양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끌려서 사놓았던 모양이다. 동저자의 산문 신간이벤트를 보면서 독서계획에 올렸고 읽었다. 산문을 첫 만남으로 만나니 슴슴하다는 느낌과 나랑 덜 맞는지 몰입감이 적었다. 소설을 읽어보니 산문보다 나았다. 글은 순하고 맑다. 냉소적이지 않고 비틀리지 않았다. 섬세한 묘사로 인해 마치 거기에 함께 한,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둘녕의 회상이 대부분이고 현재의 싯점과 오가는 이 책은 성장소설이다. 이종사촌인 두 자매가 함께한 유년시절의 추억이 독자로 하여금 빠져들게 한다. 동시대 사람이라면 그땐 그랬지, 그렇지 않다면 조금은 공감하기 어렵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느낌. 소설 안에는 많은 책이 등장하는데 동시대의 책을 접했던 사람들에겐 향수일 걸 안다. 단순히 책 나열이 아닌 어떤 경우엔 책 내용이 들어가기에 아는 사람에겐 더 정겨울 수 있겠다.

 

  이름이 O둘자 씨가 가끔씩 직장에 방문한다. 이 책을 읽던 지난달에 드뎌 호기심에 물었다. 이름에 둘자가 들어가기 쉽지 않은데 어떤 이유가 있으신가요. 별거 없어요. 아들 낳으라고 둘자라고 지었대요 하하. 그럼 성공은 하셨나요. 남동생 낳았으니 성공이죠 흐흐. 제가 지금 읽는 책에 고둘녕이라는 주인공이 나와서요. 예. 이 책에서 주인공은 고둘녕인데 특이한 이름이면서도 이름에 관한 연유나 그런 건 없다.

 

  어느날 엄마가 집을 나갔고 아빠 손에 이끌려 역에 내렸다가 한참을 들어간 인가. 외할머니댁으로 오게 된 손녀 고둘녕은 다리를 약간 절었다. 그 집에 교사 부부인 첫째 이모네와  딸 정수안, 둘째 이모, 외삼촌이 있는 대가족. 그 선봉에 외할머니가 계셨다. 마치 한참을 여행갔다 돌아온 것처럼 가족들은 둘녕의 등장을 특별해하지 않는다. 유난을 떨지 않는다. 불쌍해 하지도 않고 소외감을 느끼게도 않는다. 어쩌다 한번 외할머니가  안쓰러워하실 뿐.

 

  엄마 없이 외가에 맡겨진 것도 가여운데 다리를 약간 전다는 이 때부터였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가슴이 아펐다. 주인공인 둘녕은 누가 뭐라지 않아도 스스로 소외감을 느낄터인데 그럴 수 없이 잘 적응한다. 문제가 하나도 없다. 남들 앞에서는 씩씩하다가도 혼자인 시간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법도 한데 저자는 그런 면을 거의 그리지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같이 살았던 것처럼 둘녕은 잘 적응한다. 그렇다고 무덤덤한 성격도 아니다.

 

  수안은 둘녕에 비하면 다 가진 이종사촌인데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예민한 성격인데 고정관념에 미루어 분석하자면 미술 교사인 아버지 유전자를 가진 것(?). 이모부는 성격이 원만하고 배려심도 있는 분이다. 예민하지 않다. 수안의 남동생이 생기고 이모가 휴직을 하면서 수안은 학원을 등록하지만 둘녕은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때 가족들이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둘녕은 오히려 미안해하는 가족들을 보는게 미안해한다.

 

  그녀들이 함께 하는 유년 시절이 끝나고 중등 고등이 나온다. 늘 책이 함께 했으며 꿈꾸는 두 소녀는 행복했다. 회상할 추억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는 걸. 수안의 문학적 감수성은 빼어났고 좋은 집안에 모든 면에서 돋보이는 성격도 좋은 승모와 많이 친했다. 걸스카우트 행사에 둘녕은 다리도 불편하고 비용도 많아서 불참하려고 했는데  어찌저찌해 동참했다. 수안과 승모는 눈부셨고 승모 친구이자 의사 아들인 동창은 사람들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부모를 보낸 자식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잘 지낸다. 자식을 가슴에 묻는 부모는 그 자식이 떠난 때의 나이에서 더 나아가질 못하고 자식이 죽은 때가 가까워오면 가슴이 무너져내린다고 한다. 방송인 송해 씨가 외아들을 잃고서 한 말이다. 꿈많던 시절에 생각이 통하던 이성 친구를 잃는다는 사실이 예민하고 잠도 잘 못자는 친구에게 발생했을 때의 감당은 더 힘들터. 승모의 죽음으로 수안은 생기를 잃는다.

 

  여기에 더 불을 지폈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게 둘녕의 독립. 고3 진로를 결정할 시기에 둘녕은 스스로 대학진학포기를 선택한다. 경제가 어려워도 둘녕을 대학에 보내리라 생각은 했지만 둘녕의 결심이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 격이랄까. 둘녕은 뜨게질을 잘했고 그 특기로 가정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알바겸 직원이 되면서 방을 얻고 독립을 한다. 그때부터였을거다. 수안의 증세가 더 심해진 건.  독립하지 않았다면 수안은 괜찮았을까 둘녕은 자책도 해본다.

 

  수안의 맘을 보듬어주지도 않고, 수안이 엄마라고 속내를 털어놓지도 않는 관계. 수안이 수면유도제를 먹는다는 사실에 의지가 약한 사람이 이런 걸 먹는다며 화를 내던 엄마. 수안을 위해 저는 다리로 이 약국 저 약국을 돌며 수면유도제를 사다 준 둘녕을 야단치던 이모. 수안은 그 예민한 심성을 컨트롤하지 못한 채로 승모의 죽음을 받아들여야했고...둘녕은 자기 삶을 꾸려야한다는 마음으로 독립을 했는데, 수안이 선택한 죽음앞에서 많은 자책을 한다.

 

  책은 잔잔하게 추억을 소환하며 잘 읽힌다. 가끔씩 동화책 내용을 대입시키며 외삼촌에게 편지를 쓰거나, 자신의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 글이 등장하기도 하는 구성이 참신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굳이 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대를 같이 한 사람과 가까이 살지 않아도 같이했던 추억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오랜 시간만에 만나도 반갑다. 둘녕과 수안은 같이했으나 먼저 떠나야했고, 떠나보내고 남은 자의 현실이 있다.

 

  이 책은 담백하지만 반면에 궁금증을 낳는다. 어린 소녀가 엄마를 한 번도 그리워하지 않는다. 특별한 날에 선물을 보내고 가끔 편지도 하던 아빠는 재혼하며 연락을 끊는다. 둘녕은 한번도 엄마를 궁금해하지 않고 지나가는 말로도 엄마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다. 어린 둘녕도 잠자리에 들어서라던지 부당하다 여겨지는 상황이라면 엄마를 찾으며 울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애간장을 끓일텐데 그런게 전혀없다. 애당초 엄마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애 같다.

k******5 2020.05.10. 신고 공감 15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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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을 입으렴』둘녕에게 손내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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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읽은 독자라면 거의 모두가 작가의 신작을 기다렸을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아련함을, 사랑의 설레임을 알게 해준 작가였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우리의 마음을 이제는 로맨틱 소설에서 성장 소설로 우리에게 손내민다. 어린시절의 들녕에게 우리를 안내한다. 조금은 쓸쓸함으로, 조금은 아련함으로, 그럼에도 따뜻함으로 그 시절을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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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읽은 독자라면 거의 모두가 작가의 신작을 기다렸을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아련함을, 사랑의 설레임을 알게 해준 작가였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우리의 마음을 이제는 로맨틱 소설에서 성장 소설로 우리에게 손내민다. 어린시절의 들녕에게 우리를 안내한다. 조금은 쓸쓸함으로, 조금은 아련함으로, 그럼에도 따뜻함으로 그 시절을 추억하게 만든다. 

 

서른여덟 살, 옷감을 이용해 수선집을 하는 둘녕.

둘녕은 언덕길의 허름한 집에서 산다. 재개발이 된다고 하지만 언제 되는지 말만 무성할뿐 알수가 없다. 뒷방 할머니의 냉방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고, 뒷방의 향이가 찾아와 떼를 쓰기도 한다. 그 소리마저 사라질까봐 애타하는 둘녕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던 외할머니집에서 지내던 때로 돌아간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다가 외할머니가 계신 집에 맡겨져 모든 삶이 이루어졌던 그때를 추억하는 현재의 둘녕. 쓸쓸하지만 아름다웠던 그때, 둘녕의 모든 삶을 같이 했던 외사촌 수안이를 그리워한다. 

 

수안이와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빠질수 없는게 있다. 책이 귀했던 그때 책과 함께 수안이와 모든 것을 함께 했다. 책을 읽으며 책속의 문장을 음미하며 따라하기를 즐겼고 책속의 문장을 편지글에 써 붙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그럼 이만 총총' 같은 문장을. 우리도 한때 그랬다. 책속의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하고는 무언가를 할때마다 써먹고 그에 따른 감동을 느끼기도 했던 터. '그럼 이만 총총' 이나 'P.S.' 같은 경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때 꼭 써야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왠지 쓰지 않으면 허전하고, 다 끝마치지 못했다는 느낌도 들었었다. 우리도 그러지 아니했던가. 유리병에 편지를 써 냇물에 띄워 보내놓고 간절하게 답장을 기다리던 그때의 우리 모습. 왠지 지금보다는 훨씬 낭만적이었던 우리의 추억들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진득한 오디즙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며 나는 조팝나무꽃을 따모았다. 배앓이와 두통에 동시에 좋은 약을 만들고 싶었다. 진하게 우러난 오디즙에 찧은 조팝꽃을 가득 넣고, 밀가루를 조금 부어 반죽했다. 검은 오디와 새하얀 조팝꽃, 밀가루가 섞인 회색 빛깔 반죽으로 동글동글한 환을 빚었다. 팥죽 새알보다는 작고 정로환 알갱이보다는 크게. 수안은 기대에 찬 눈길로 내 곁에서 환이 빚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백 개쯤 빚은 환을 채반에 얹어 그늘에다 며칠을 말렸다가 투명한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았다.  (123페이지 중에서)

 

누군가 힘들 때 그걸 고쳐주는 일은 쉽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는 걸 (298페이지 중에서)

 

둘녕이 옷감을 이용해 바느질을 하듯이 촘촘하게 혹은 따스하게 해준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구성작가인 진솔이 건피디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로맨틱 소설이었다면 『잠옷을 입으렴』은 1인칭 시점의 고둘녕이 동갑내기 사촌인 수안이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생각하는 성장소설이다. 수안이를 처음 만났을때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모습에서부터 눈을 마주치고, 서로 의지하던 모습들. 수안이의 고민, 잠못드는 이유, 소리없이 다가온 이별까지도.

 

이도우 작가의 글답게 잔잔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린다.

어린 날, 한여름의 수채화 같은 소설. 왠지 황순원의 『소나기』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애틋함과 따스함을 줘 내 마음을 울렸던 둘녕과 수안이의 이야기였다. 둘녕이 안쓰러워 손을 내밀어 안아주고 싶게 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2.03.07. 신고 공감 11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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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기억이 아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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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많이 아팠다. 내가 학교에 입학할 때쯤 엄마의 병은 최고조를 달했던 것 같다. 근데 엄마가 아프면 늘 내가 아팠다. 그래서 나는 중간에 이름도 바꿨고, 엄마와 함께 굿도 해 봤고, 기도라는 것도 해 봤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나를 어딘가에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나를 누군가에게 팔아넘기려는 줄 알고 몇 날 며칠을 울기만 했다. 엄마는 자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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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많이 아팠다. 내가 학교에 입학할 때쯤 엄마의 병은 최고조를 달했던 것 같다. 근데 엄마가 아프면 늘 내가 아팠다. 그래서 나는 중간에 이름도 바꿨고, 엄마와 함께 굿도 해 봤고, 기도라는 것도 해 봤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나를 어딘가에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나를 누군가에게 팔아넘기려는 줄 알고 몇 날 며칠을 울기만 했다. 엄마는 자세한 설명 없이 나를 팔기(?)위해 시골 외갓집으로 나를 보내 버렸다. 아프고 아팠던 날들이었다. 엄마가 나를 팔다니... 역시 나는 주워온 아이였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체념한 듯 시골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아팠지만 시골 생활은 금방 적응되었고, 친구들도 사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는 나를 곱게 단장 시키고 이상하게 생긴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곳에서 어떤 할머니가 내 머리위에 뭔가를 씌우고 중얼거리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서울의 우리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다락에 조그마한 불상과 함께 매일 치성으로 예(?)를 올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이 책에서 나온 사주를 파는 행위였던 것 같다. 나를 많이 울렸던 그날의 그 사건. 나는 이 책을 통해 예전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되었다.

 

둘녕은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난 뒤, 아빠에 의해 외갓집으로 보내진다. 외갓집이라고는 하나 왕래가 많지 않았던 탓에 모두가 낯설다. 외할머니, 선생님 부부인 첫째 이모와 이모부, 사무원인 둘째 이모, 말이 없는 외삼촌, 그리고 동갑내기 사촌 수안이 까지.. 그 곳에서 둘녕은 어른이 되어 간다.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쓸쓸하고 또 조금은 상처를 받은 채...

 

책을 읽는 내내 마음속에서 바람이 분다. 어렴풋이 추억으로만 남았던 책이나, 단어, 장소 혹은 이야기들.. 어린 시절 나와 내 주변을 축소시켜 놓은 듯 한 이야기 속에 매료 될 수밖에 없었고,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잘 웃고, 명랑하고, 늘 자신 만만한 사람이었다고 친구들은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많이 아팠고 많이 외로웠다. 끊임없이 내 존재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었고, 나 자신에게 매일 질문을 했다. 엄마한테 많이 혼났음에도 처절하게 엄마에게 대들었고, 누구보다 많이 매를 벌(?)었다. 차라리 엄마의 딸이 아니었다면 그런 홀대를 참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뼈 속까지 엄마를 닮아 있어 더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때론 비련의 여 주인공을 상상하기도 했고, 신데렐라처럼 계모의 구박에서 벗어나 멋진 다른 인생을 꿈꾸기도 했다. 책은 나에게 다른 세상이었고, 신천지였다. 시를 좋아했고 시화전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나의 감성이 불을 지르곤 했지만 나는 현실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다.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이론상으론 가장 따스하고 가장 아름다운 관계라고 칭하지만 가족은 결코.. 따스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은 아니다. 누구보다 제일 많이 상처를 주고, 상처를 줬음에도 사과하지 않는다.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생활의 경쟁 상대이자, 사랑의 경쟁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족을 따스함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둘녕은 그들과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상처 받고, 사랑하고, 어른이 된다. 나는 어떤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된 것일까? 지금의 나는 얼 만큼의 어린 시절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소중하게 간직하게 될까? 지금은 사실.. 아픈 기억보다는 행복한 기억을 더 많이 떠올리고 사랑하려 한다. 나의 어린 시절이 조금은 어둡고 아팠을지언정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픔 없이 어른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마음속에 상처를 주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해 주고 싶다. 상처를 준다고, 혹은 상처가 있다고 해서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따스한 책을 만났다. 이도우 작가의 후속 작품이 기다려진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2.09.30. 신고 공감 5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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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을 입으렴] 이제, 잠옷을 입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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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덟의 둘령, 그녀. 추운 겨울. 한밤중에. 잠옷 차림으로. 맨 발로. 살아있는 누군가의 부름처럼 들리는 소리에. 차가운 땅바닥을 걸어서. 어딘가로 향하는. 그 길. 차마 놓을 수 없어서. 다 풀어진 끈의 끝이라도. 붙잡고 싶어서. 슬픔으로 애가 타는. 그 손끝. 뒷방 할머니와 향이의 소리마저 그리워. 그 목소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둘령의 발걸음. 그 이름 몽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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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덟의 둘령, 그녀. 추운 겨울. 한밤중에. 잠옷 차림으로. 맨 발로. 살아있는 누군가의 부름처럼 들리는 소리에. 차가운 땅바닥을 걸어서. 어딘가로 향하는. 그 길. 차마 놓을 수 없어서. 다 풀어진 끈의 끝이라도. 붙잡고 싶어서. 슬픔으로 애가 타는. 그 손끝. 뒷방 할머니와 향이의 소리마저 그리워. 그 목소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둘령의 발걸음. 그 이름 몽유병. 가서 붙잡아주고 싶은 마음에. 내 마음이 애가 타서. 감히. 이해하겠노라. 말할 수 없어서. 그저. 지켜봐주고 있겠다고. 둘령, 너를……. 그리고, 나를…….

 

아련한 기억.

둘령과 수안, 두 아이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한다. 그 나이대의 소녀들이 충분히 그러할 수 있는 일들과 생각으로 자라나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한 집에 같이 사는 사촌이지만 단짝이기도 하고 마음을 의지하는 대상이기도 하고 무언가 비밀 하나쯤 나누어 친밀감을 더해가기도 하는 사이.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깊이도 저절로 더해간다.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같은 시기를 같이 겪어온 사람으로 충분한 공감과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키워온 두 사람이다. 그리고 책이라는 매개체로 더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가는 두 사람이기도 하다. 아마도 40세 전후의 사람이라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책들-문고판이나 명작전집류 같은-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동시에 추억에 잠기게 한다. 이젠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져 그 이름도 떠올리기 어려운 것들을 끄집어내주면서 그들의 추억 속에 동참시킨다.

 

추억, 그 쓸쓸함.

늘 그렇듯 추억이, 추억이 아닌 기억으로만 남기 원하는 시간도 있다. 기억으로조차 머물지 않기를 바라는 시간이 있다. 둘령에게 수안의 마지막 모습이 그랬다. 마치 그 시간을 기억에서 지워내려는 것처럼 애써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둘령에게 뜻밖의 누군가의 등장은 지워내려 애쓰던 그 기억의 끝을 보게 해준다.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오직 둘령만이 알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 끝을 본다면 더 이상 둘령에게는 맨발로 밤길을 헤매게 만들지 않고 재개발로 어수선한 그 동네를 떠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줄 것만 같았다. 쓸쓸한 기억이 아닌 이제는 편안하게 떠올려도 되는 추억으로 가슴 속에 켜켜이 담아두는 것으로도 괜찮을 것 같은 의미로 남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의 마음을 나 아닌 어느 누가 구원할 수 있을까. 사랑도, 타인도 나를 바꿔놓지는 못한다. - 남의 사랑 이야기 (김신회 / 북노마드 2012)”

결국 각자의 상처는 각자의 치유만을 필요로 한다. 수안이 둘령에게 손 내밀었지만 둘령이 차마 해줄 수 없었던 것처럼, 산호가 둘령에게 다가가 기억의 봉인을 풀어내버렸지만 역시 그것을 꺼내는 것은 둘령의 몫인 것처럼 어떤 식으로 풀어내려 해도 각자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분명 있다. 그 시기의 그 기억을 가진 둘령이 마무리 지어야만 하는 문제이기도 한 것들이 그렇게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그런 것이 원칙인가 싶었다. 그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것들이 말이다. 가끔 우리는 그것을 성장통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해야만 할 때도 있다. 그때의 그 나이에 겪어가면서 지독한 ‘앓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분명 자신이 지나오는 그 시간을 겪어가는 흔적일 수 있기에 눈 감지 말고 그대로 지켜봐주어야 한다.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이미 어른이 된 우리도 겪을 수 있는 제2의 성장통이 올 수도 있기에 제대로 겪어야 한다. 지독한 슬픔과 아픔이라는 흉터를 남겨주더라도 겪어내야 한다고.

 

둘령이 만드는 잠옷. “이제, 잠옷을 입으렴.”

자신이 입을 것도 아닌 잠옷을 만드는 둘령. 그 잠옷은 이제 둘령과 수안 두 사람 모두 편히 잠들 수 있도록 허락하는 자장가가 되어준다. 다 괜찮아졌으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제는 편한 잠 속으로 빠져들어도 된다고 편하게 가슴을 손바닥으로 다독여주는 외할머니의 손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기다려온 애가 타던 시간과는 반대로 이 책을 읽어가는 게 힘이 드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이었던 이야기의 흐름도 그랬지만 순간순간 가슴을 아릿하게 하는 둘령과 수안의 이야기와 기억에도 없는 외가를 떠올리게 하는 배경들이 이 책을 읽는데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흐르게 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는 외할머니와 어떤 장소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느라 머릿속이 바빴다. 그리고 울고 웃으면서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기꺼이 동참했다. 공감을 만들어내는 추억들과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이미 한참 전에 그 시간을 지나왔던 기억들을 새삼 떠올리면서 행복해했다. 힘들게 읽어가던 이 책의 느낌은 그래서 행복한 미소로 마무리 지어졌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한때 내 것이었다가 나를 떠난 것도 있고, 내가 버리고 외면한 것도,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던 것도 있다. 다만 한때 몹시 아름다웠던 것들을 나는 기억한다. 그것들은 지금 어디로 달아나서 금빛 먼지처럼 카를거리며 웃고 있을까.



n******i 2012.03.14. 신고 공감 4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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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찾아오면 그냥 웃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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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서정성 충만한 소설 한 편을 읽었다. 내가 미처 몰랐던 이도우라는 작가. 이름만 듣고는 남자인줄 알았는데 소설을 읽고 보니 여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설마, 이런 감성을 지닌 작가가 남자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구태여 이 작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찾아보지 않았다. 남자가 이런 소설을 쓸 수는 없으리. 연한 쑥색 표지에 “잠옷을 입으렴”이라고 제목을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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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서정성 충만한 소설 한 편을 읽었다. 내가 미처 몰랐던 이도우라는 작가. 이름만 듣고는 남자인줄 알았는데 소설을 읽고 보니 여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설마, 이런 감성을 지닌 작가가 남자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구태여 이 작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찾아보지 않았다. 남자가 이런 소설을 쓸 수는 없으리. 연한 쑥색 표지에 “잠옷을 입으렴”이라고 제목을 만들 수도.


둘녕은 어머니의 가출로 인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외할머니 댁에 얹혀살게 된다. 온전히 외할머니 댁이면 오히려 나았을 텐데 그 곳은 교사부부인 이모와 이모부가 나머지 외가 식구들을 부양하는 형태의 외갓집이었다. 이종사촌인 수안은 둘녕과 같은 나이, 둘은 금방 친해져서 모든 일을 함께하는 절친한 친구사이가 된다.


그러나 둘녕은 수안이 이모와 이모부의 외동딸로 자라는 것처럼 마냥 해맑게 자랄 수는 없는 처지. 아무리 외갓집 식구들이 잘해준다고 해도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은 앉으려 하지 않는 둘녕은 이미 철이 들어버린 애어른이 되었다. 슬픈 환경은 아이를 나이보다 빨리 철들게 하는 게 틀림없다는 사실을 이 소설에서도 알려주고 있는 것.


해맑던 수안이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점점 말이 없어지며 신경증을 앓던 중에 수학여행지에서 사라지고, 수안의 죽음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서 어디에서도 행복해지지 못했던 둘녕.


둘녕을 찾아온 산호 역시 수안의 죽음을 말리지 못한 자책감에 떠도는 사람이 된다. 이 이야기는 떠돌던 산호가 둘녕을 찾아오면서 그 석 달 동안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일을 둘녕의 회상 속에서 이어진다.


둘녕이 일 하던 가게를 넘기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남자친구였던 충하를 만나고, 다시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며 먼저 용기를 내어 손을 내미는 둘녕을 보며 이제 둘녕은 행복해지리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착한 사람들은 남보다 행복해지는 것에 미안함을 느낀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남의 불행에 자신의 자책을 얹는 것 역시 착한 사람들의 나쁜 습관이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마음껏 행복해야한다고, 그것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행복한 시간이 왔을 때 행복하지 않으면 도대체 착한 사람들은 언제 행복할 거냐고 서정적이며 마음 착한 작가가 스스로에게 묻는 이야기였다.


t******e 2012.07.08. 신고 공감 4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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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쓸쓸하지만 따스하고 아름다운 성장소설 - 잠옷을 입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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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작가.  그렇지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읽고 요즘 같이 많은책들이 출간속에서도 별다른 홍보 없이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지.... 읽어보면 알거야~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네요.  이도위 작가의 신간 출간 소식을 듣고 전작을 읽고 손꼽아 기다렸던 지인들 사이에선 들썩거리며 그의 책이 출간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답니다.    11살의 봄 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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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작가.  그렇지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읽고 요즘 같이 많은책들이 출간속에서도 별다른 홍보 없이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지.... 읽어보면 알거야~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네요.  이도위 작가의 신간 출간 소식을 듣고 전작을 읽고 손꼽아 기다렸던 지인들 사이에선 들썩거리며 그의 책이 출간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답니다. 

 

11살의 봄 외가댁에 맡겨지면서 이종사촌 자매인 수안과의 유년시절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녀의 시선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시골집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둘녕과 수안의 유년시절 이야기는 상상만 해왔던 시골에서의 유년시절을 상상해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들의 즐거운 놀이중 하나였던 책읽기를 통한 놀이들은 어린시절 '전집'을 집집마다 한 질씩은 비치해두는게 경쟁인듯했던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땐 거의 대부분의 책을 뒤적거리기만 했을뿐 제대로 읽은 책들이 없었네요.)   책을 통한 그녀들의 놀이는 주변을 바라보는 세세한 시선은 생각지 못했던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함께했던 시간만큼, 그리고 단짝처럼 그들의 비밀을 한씩 공유했기에 서로에게 더 큰 의미이지 않았을까요?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지금은 지금은 없는 외가집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수안이 행복하지 않은데 나 혼자 행복해진다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수안뿐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얻는 행복의 평균이 있다면 나도 그 정도이길 바랐다.  혼자서 더 행복한 건 어쩐지 불안하고, 남의 행복에서 덜어온 듯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세상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의 양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고 느꼈던 날들이 있었다.  누구 하나가 많이 행복하면 다른 하나가 그만큼 불행할지도 모른다고.  타인의 행복이 커진다고 해서 내 행복이 줄어들진 않는다는 진실을 깨닫기까지는 세월이 많이 걸렸다.  /p52-53

 

 

서른 여덟의 둘녕.  그녀의 삶은 고독해보입니다.  어린시절 외가집에서의 북적거림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삶.  소녀시절의 반짝임은 느껴지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는 것인지, 그 무엇으로부터 떠나고 싶어하는 것인지... 그녀는 재봉틀이 아닌 손바느질로 잠옷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땀 한땀...  같은 책을 읽고 많은 시간을 공유했지만 조금씩 다름을 갖게 되는 소녀들.  화자가 둘녕이 아닌 어른이 된 수안이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무심함'이 편안함이 되어버린 요즘 그녀의 시선을 통해 조금은 더 참견을 하고 자세히 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어린 존재를 사로잡은 우상은, 그러나 어느 날 그들의 세계로 우리가 한 발짝 걸어들어갈 때면 새삼 긴장하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모든 걸 이해해주던 마음은 상대가 선을 넘는 걸 깨닫는 순간 경고음을 보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의 깊은 곳을 엿본 기분일 때, 우리는 실망했고 배신감을 느끼며 약간씩 상처받았다.  /p258

 

 

오래기다렸던 만큼 좋았습니다.  금방 읽어져지만, 아껴 읽고 싶은 마음에 천천히 속도를 가다듬으며 읽기도 했던 책입니다.  그들의 유년을 조금더 오래 공유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였던것 같습니다.  이야기 사이 그녀가 쓰는 편지글은 호흡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주었던것 같아요.  생각하며 쉬어가기...(간혹 글을 읽으며 앞으로 넘겨 다시 읽어보게도 했고 한번씩 생각을 정리하게 해주었던 글이었던것 같아요.)  이 책이 어떻냐고 물어보신다면 그냥 좋았습니다. 책장을 덮으며 뭉클했지만 그만큼 행복했습니다.  봄을 먼저 만난 기분이랄까요? 

 

 

한때 내 것이었다가 나를 떠난 것도 있고,  내가 버리고 외면한 것도,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던 것도 있다.  다만 한때 몹시 아름다웠던 것들을 나는 기억한다.  그것들은 지금 어디로 달아나서 금빛 먼지처럼 카를거리며 웃고 있을까, 무엇이 그 아름다운 시절을 데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  /p462-463

 

 

 

 

본 서평은 해당출판서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본인의 주관적 의견으로 작성하였습니다.

 



d******7 2012.03.15.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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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을 입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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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우 작가 하면 떠오르는 작품 사서함110호 우편물 그의 신작 잠옷을 입으렴이 출간되었다. 제목의 느낌이 너무 서정적이다. 아마 사서함같이 잔잔한 일상을 담을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번에는 유년의 아픔을 서른이 넘는 나이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하는 이야기다. 내 어린시절은 이런 달콤하고 쌉싸름한 사연도 없었고, 수안 같은 문학소녀 사촌도 없었다. 그저 때가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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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우 작가 하면 떠오르는 작품 사서함110호 우편물 그의 신작 잠옷을 입으렴이 출간되었다. 제목의 느낌이 너무 서정적이다. 아마 사서함같이 잔잔한 일상을 담을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번에는 유년의 아픔을 서른이 넘는 나이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하는 이야기다.

내 어린시절은 이런 달콤하고 쌉싸름한 사연도 없었고, 수안 같은 문학소녀 사촌도 없었다. 그저 때가 되면 밖으로 나가 놀다 해가지면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 먹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놀다 잠들던 그런 추억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런지 둘녕이 같은 그런 환경은 아니 여도 소녀시설 아릿한 감성이 부럽다.


둘녕은 서른이 넘은 나이에 세진상가에서 실과 바늘이라는 자그마한 가게를 하며 혼자살고 있다. 둘녕은 어릴때 외갓집에서 자란다. 그래서 그랬을까 빨리 성숙해 버린 아이가 안쓰럽다. 이모와 할머니가 따뜻하게 보살핀다 해도 부모의 손길이 아닌 게 아이를 빨리 어른스럽게 만들었으리라 다행스럽게도 사촌인 수안이가 있어 둘녕이가 마음을 빨리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수안은 둘녕과는 많이 다른 아이다. 몸이 건강하지 못하고, 자아가 강하다. 수안의 이미지는 황순원님의 소나기의 소녀의 느낌이다. 파르스름하니 곁을 주지 않지만 자신에게 다가와줄 친구를 기다리는 그런 아이가 수안이다. 둘녕은 그런 수안을 잘 받아준다. 수안과 둘녕이 잠들지 않은 밤에 도란도란 속사이던 소리 가게에서 구입한 종이 인형놀이 내가 어릴 때 많이 했던 놀이다. 둘녕이는 자신만의 예쁜 종이옷을 만들어 낸다. 어릴 때부터 둘녕은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것에 남다른 능력을 보인다. 반대로 수안은 문학소녀로 자란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느낌 그대로가 바로 수안이다. 예쁜 소녀로 자란 수안과 둘녕이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계기가 있다. 야영지에서 생긴 사건으로 수안은 힘들어  하고 그 일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런 수안을 곁에 지켜주던 둘녕 또한 언제까지 더부살이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독립을 결행한다.


소녀시절 성격이 다른 아이가 같은 집에 살아가는 건 어느 한쪽이 많은 양보를 해야 한다. 둘녕은 그런 면에서 수안을 많이 챙겨줄 수밖에 없다. 둘녕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처음 이모가 장에서 수안과 같은 잠옷을 사 주셨을 때 좋아하던 모습이 살아가면서 자신이 어떤 위치인지 깨달아 가는 과정이 마음을 쓰리게 만든다. 수안이 걱정되어 한밤중에 수안을 찾은 둘녕에게 이모는 그러지 말라고 한다. 수안이 걱정되어 했을 말이지만 둘녕에게는 그 말이 돌덩이가 날아온 듯한 아픔으로 다가왔으리라. 쓸쓸이 등졌던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게 진정한 둘녕의 마음이었다면, 용기를 낼 수 있게 한건 그녀가 걱정돼 몰래 곁에 머물다간 산호의 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둘녕을 자신의 마을로 돌아와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한다.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수안에 대한 미안함을 잠옷을 만들어 주면서 갚으려 한다. 둘녕에게 잠옷은 관계의 시작이고 완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둘녕이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한다. 이제 과거에 자신을 묶어놓지 말고 용감한 둘녕으로 거듭나길 둘녕아 넌 그럴 자격이 충분해 그러니 남은 날들은 행복해지는 것에만 너의 마음을 쓰도록 했으면 좋겠다. 각박하고 야박한 세상이지만 나는 둘녕이 같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많아지는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본다. 내가 이도우님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읽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게 감정을 담백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오래 기다렸다 만난 글이라 더 좋은데 제발 다음 글은 좀더 빨리 나오길 기대해 본다. 

r*******5 2012.03.13.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럼, 이만 총총” [잠옷을 입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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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이 행복하지 않은데 나 혼자 행복해진다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수안뿐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얻는 행복의 평균이 있다면 나도 그 정도이길 바랐다. 혼자서 더 행복한 건 어쩐지 불안하고, 남의 행복에서 덜어온 듯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세상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의 양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고 느꼈던 날들이 있었다. 누구 하나가 많이 행복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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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이 행복하지 않은데 나 혼자 행복해진다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수안뿐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얻는 행복의 평균이 있다면 나도 그 정도이길 바랐다. 혼자서 더 행복한 건 어쩐지 불안하고, 남의 행복에서 덜어온 듯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세상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의 양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고 느꼈던 날들이 있었다. 누구 하나가 많이 행복하면 다른 하나가 그만큼 불행할지도 모른다고 타인의 행복이 커진다고 해서 내 행복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진실을 깨닫기까지는 세월이 많이 걸렸다.” - 이도우 [잠옷을 입으렴] 52-53

 

 

 

꿈속에서조차 타박타박 신작로 길 먼지 폴폴 날리며 건조하게 걷고 있을 것 만 같은,

찬기 어린 속내를 감추기 위해 더 깊디깊어진, 그래서 더 아련하기 만한 둘녕은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아빠에 손에 이끌려 이모 집에 맡겨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촌인 수안과 마주합니다. 너무나 일찍 철이 들어버린, 그래서 외려 어른들이 미안해질 정도로 마음이 성숙해져버린 속 깊은 아이 둘녕과 아이답지 않게 깊고 어두운 눈을 지닌 이종사촌 수안의 첫 만남은 시큰둥, 어색했지만, 아이들이 그렇듯 어느 한 꼭지점에서 둘은 단짝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공유합니다.

 

잠옷을 입으렴은 왠지 내 어린 시절 한 자락을 붙잡고 얘기하는 듯 합니다.

닳고 닳도록 읽었던 클로버문고, 계몽사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소년중앙, 어깨동무,,, 종이인형 놀이를 시작해 진화해 가는 종이인형 옷 만들기 놀이, 집안에 텐트치고 렌턴 켜놓고 책읽기, 짧은 생명선을 조금 더 길게 만들려 손바닥을 칼로 그었던(,, 난 칼이 아니라 손톱으로 계속 그었던 듯 싶다. ^^;;;), 병약한 수안을 위해 둘녕이 만들어 준 만병통치약, 걸스카웃 캠프, 문학회 서클,,,, 두 소녀의 성장기는 나의 성장기를 돌아보게 만들며, 아스라한 그 추억의 한 페이지로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한, 그녀를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메이게 합니다.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나. 오래 전 아주 추운 마을이 있었다고 해. 너무나 추워서 사람들이 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말이 얼음알갱이로 변해버려. 겨울 동안은 아무도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대. 어느 날 마을의 젊은 처녀가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는데 그 역시 얼어버렸지. 이웃에 사는 부자가 처녀의 유언을 사고 싶어했고, 가난한 가족들은 그만 팔아버렸어. 이듬해 봄이 오니 허공에 떠돌던 말들이 녹아 메아리치며 들려오기 시작했데, 봄 내내 그 울림을 듣는 일은 정말 아득했을 거야. 귀를 틀어막고 싶지 않았을까? 먼 곳에서 처녀의 연인이었던 청년이 돌아왔지만 이미 팔려버린 유언을 돌려받진 못했어. 그건 그냥, 사랑한다는 말이었는데,,,” - 111

 

둘녕과 수안, 이모와 이모부, 둘녕과 아빠, 외할머니와 경이 이모, 수안과 승모, 둘녕과 충하,,, 모두가 얼어버린, 끝내 들려주지 못한,,, 이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사랑해.”

찬바람이 부는 듯, 하지만 가슴 속에선 몽글몽글,,, 따뜻한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느낌, 아련한 속삭임 같은 울림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둘녕과 수안을 만나면, 도르르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이 부끄럽지 않을 거예요.

 

수안에게, 시화전 들렀어. 내게는 네가 쓴 시만 보였어. 정말이야.”

사랑하는 고둘녕. 네가 스웨터를 짜고 있을 땐 나는 곁에서 같이 아늑해져.

넌 털실을 짜고 난 시간을 허비하지. 넌 물레를 돌릴 테고 난 딸기잼을 휘젓겠지.

축복할게. 내 사촌. 언제나 마법 같은 손길 지나기를. 수안.” - 380

 

북쪽보다 더 북쪽이고, 남쪽보다 더 남쪽인 곳,

 수탉 풍향계가 가리키는 그 곳에서 웃고 있는 수안과 둘녕에게 미소를 보냅니다.

 그럼, 이만 총총. - 스밀라



n****5 2012.11.22.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