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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인간이 부족한 사람에게 연민과 측은지심을 소유하는 건, 유일하게 남은 나의 인간성인지 모른다. 그 나의 모자람에 생명수와 표피를 주어 생동하게 하는, 사랑할 수밖에 없어지는 모든 가련한 사람과 미물과 무생물에게도 나는 늘 감사한다. 여름철 지겹도록 울어대는 그 매미의 처절한 몸부림에, 물 한 모금 햇빛 한번 못 쐬고 생사의 기로에서 보낸 슬픈 외침을 못 들은 죄로 수없이 죽어간 화초에게, 24시간 매양 지키고 있을수만은 없어 지척에서 배곯아 죽게 만든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에게, 내 한 몸 건사하자고 우리네 살리자고 몸 바쳐 죽어간 수많은 소와 돼지와 양과 이름도 못 다 열거하게 많은 너희들, 너희들... 에게 과연 나는 무엇을 주었던가. 하여 나는 언제나 니들에 대한 보답으로 이 난삽하고 미약하기 그지없는 죄스러움의 바다만 안고 산다.
1%의 공통점이라곤 찾을 수 없는 두 사람이 만나 조화를 이룬 우정이야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흑인과 백인, 동양과 서양, 정상인과 장애인, 모범생과 열등생, 아이와 어른, 동물과 사람- 이 모난 확률이 규정지어 줘버린 그 불가능성에 과감한 도전장을 내민, 이 상반된 우정이야기에 나는 미리 눈물을 동행했다. 백인 필립이 전신불구가 된 건 사랑하는 아내의 병 때문이었고, 흑인 드리스가 부랑아가 된 건 줄줄이 달린 동생과 자신을 입양한 숙모이자 엄마 그리고 가난이었다. 전자는 아내가 없는 삶이 곧 장애라고 말하는 갑부이고, 후자는 부양할 가족이 많은 삶의 무게가 주는 극빈자였다. 갑부는 치료도우미를 구하는 중이었고, 극빈자는 밥과 돈을 구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둘은 만난다.
부조화 속의 조화를 나 얼마나 맹신하던지, 결핍이 보내는 그 애절함에 나 얼마나 민감한지, 쉽게 잊혀지는 혹은 보이지도 않는 그 작은 떨림과 속삭임이 내게 얼마나 큰 울림이던지. 나는 껌 좀 씹은, 사회와 학교와 친구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아대던 그 친구가 보낸 시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너만은 날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하는. 그 눈빛은 둘도 아닌 딱 한사람, 딱 한 친구만이라도 간절히 원하는 듯한 어떤 절규였다. 닭 벼슬처럼 앞머리를 잔뜩 추켜세우고, 긴 치맛단을 자르고 잘라 팬틴지 스커튼지도 구분이 안가는 핫미니를 두르고, 눈두덩을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시퍼렇게 화장으로 떡칠을 하고, 슬리퍼를 질질 끄시며 껌을 짝짝 씹어대던 그 친구는 너무나도 눈에 잘 띄었다. 사람들은 분명히 그녀를 보긴 봤다. 어떻게? 당신들의 머리가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생각으로. 나도 봤다. 그녀의 외모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그래서 나는 무작정 그녈 향해 걸었다. 안아 주었다. 그녀는 울었다. 그녀와 친해진 이후 다른 아이들과 교사는 말했다. ‘너 같은 애가 왜 그런 애랑 친하게 다니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나도 말했다. ‘나 같은 애만 걔 같은 애와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죠).’라고.
휠체어에 앉은 필립은 가난하지만 건강한 미소와 유머를 간직한 드리스로 인해 웃고 웃는다. 자신이 장애인이란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그의 껄렁한 몸짓, 툭툭 던지는 상스런 말투가 그랬는데, 이를테면 그는 어느 광고에서 들어봤다던 클래식에 몸을 벌떡 일으키고 생일잔치 땐 자고로 춤을 춰야한다면서 바람풍선처럼 온몸을 휘저어댄다. 어느 날에는 코피 좀 흩뿌려놓은 그림이 몇 만 달러에 팔려나가는 게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던, 바로 그 드리스가 갑자기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그림이 얼마에 팔려나갈지 잔뜩 기대를 거는 드리스. 이제 필립은 깜찍한 농간을 부려 11000달러에 팔아 그 돈을 그에게 건넨다. 그리고 드리스는 아내가 죽은 후 6개월 간 필립과 펜팔 했던 여인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장애를 장애로 보기 이전에 온전히 필립으로서만, 펜팔하면서 교감했던 그 필립으로만 보아주기를 바랐을 그. 그는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불안과 초조함으로 6분을 기다리다 미팅장소를 나왔더랬다.
주고받는 우정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건 없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걸로, 사는 공간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진 것이 다르다는 것으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도 잴 수 없는 거란 게 실은 우리 주변엔 참 많다. 보려고만 하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았던 그 수많은 실수로 인해 어쩌면 우린 진실한 친구를 많이 잃었는지도 모른다. 웃음 뒤에 감춰져있는 눈물을 먼저 가슴으로 품은 사람이고팠던 나의 어쭙잖은 겸손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결핍과 부족, 심지어 무의미한 바람처럼 스치는 결에도, 가슴 떨리도록 전율할 수 있는 그 작은 인연마저도 섣불리 지나칠 수 없는 이유도. 그리하여 나는 세상 모든 친구에게 외친다. 너 존재하는 그 자체로 나 행복하다고, 감사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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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남자가 있다. 이 두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너무나 달랐기에, 결코 그둘이 만날만한 접점을 찾을수 없을 것 같건만 그들은 만나야 할 운명이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았고, 또 각기 다른 아픔을 가진 두사람이기에 어쩌면 상대를 더 이해할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정말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언제 어느때든 영화관으로 달려가곤 했건만, 요즘은 제약사항이 많다. 어쩜 이것도 핑계일수 있겠으나, 아무튼 예전과는 달라졌기에, 영화를 글로 읽을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 call을 큰소리로 외치게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과, 정상인으로 살다가 불의의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가지게 된 경우를 비교했을때 어느쪽이 더 고통스러울지는 감히 상상을 못하겠다. 이 책의 주인공인 필립은 모든것을 다 가진 백만장자였지만 한순간에 자신의 몸을 의지대로 움직일수 없게 된다. 그때 그에게 찾아온 무서울만큼의 고통을 어떻게 이겨냈을지 상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또 뭐하나 제대로 풀리는 것 없이 꼬이고 또 오해받으며 살아왔던 압둘 역시 아픔이 있었다. 어린시절 자신을 숙모네로 보낸 부모를 이해할수 없었을 것이고, 또 숙모네를 전혀 가족으로 느낄수 없었던 그 어린시절이 꽤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그렇기에 늦게라도 진정한 가족(?)인 필립을 만난것이 그에게는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의 소개글을 읽다보면 매번 주장했던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사람의 우정이야기라는 부분이 나온다. 그렇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완벽히 다른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하여 이세상의 모든 행복과 행운을 거머쥘수 없듯이,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다고 하여 마음이 인색할수만은 없기에 그 둘은 언제고 만나게 되어 있었던 것 같다. 필립과 압둘의 우정이야기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난 베아트리스에 대한 필립의 한결같은 마음과 사랑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필립이 있기에 베아트리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베아트리스가 먼저 존재했기에 필립이 있을수 있다는 말이 너무 멋졌다. 전혀 다른 비유지만,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을 내세울때도 서로 자신의 이름을 먼저 내걸려 애쓰는데, 그만큼 자신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우수하다고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인데, 필립은 너무나도 겸손하게 자신보다 베아트리스를 먼저 내세웠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입지도 당연히 높아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숨결로 표현되고, 인생 그 자체라는 평을 받을 정도라면 그녀의 삶은 길이와 상관없이 찬란했다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아무튼 아내가 먼저 떠나버린 그 공허감과 절망감을 압둘이 있었기에, 그와 공유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필립이 견뎌냈을것이다. 여자만은 때리지 말라면서, 여자는 보호하기 위해 있는 존재라고 조언하는 필립에게 상대가 자신을 더러운 아랍인 취급만 하지 않으면 때리지 않는다는 압둘의 말을 들으면서, 참 불편하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았구나, 그래서 응어리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구나, 그렇기에 필립과 함께 하며 그도 가족의 느낌을 받고 또 우정을 느끼며 인간적으로 변모해갈수 있는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욕심을 내면 안되는데, 책을 보고 나니 영화로도 보고 싶어진다. 훈훈한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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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남자가 있다. 대단한 부와 명성을 가지고 어느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만큼 훌륭한 가문에 필립 포조 디 보르고. 그리고 또 한 남자. 프랑스로 이민 온 북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남자 압델. 이 두 사람의 만남이 가능한것이기나 한걸까? 다만, 상위 1%에 속한 남자는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상태이기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 하다. 그리고 하위 1%의 압델은 건강한 신체만 가지고 있는 남자다.
상식적으로는 서로 도저히 맞을 것 같지 않고 심지어 접촉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은(언터처블!) 이 두 남자가 만났다. <1%의 우정>은 필립 포조 디 보르고의 60여년 삶에 대한 기록이다. 필립 포조 디 보르고와 압델 사이에 있었던 우정과 일상사를 다르고 있는데, 출판사의 말에 의하면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인데다 좌충우돌 끊임없이 문제를 빚곤 하는 압델은 이 책의 저자 필립의 고백처럼 전신마비 환자인 그의 부패하기 직전의 삶에 생기와 숨결을 불어넣어 준다. 그래서 필립은 압델에게 나의 사랑스러운 '악마지기'압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1%의 우정>은 1998년과 2004년에 각각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바 있는 <두 번째의 숨결>과 <악마지기>를 한 권에 묶어 재출간한 신간으로, 2011년 10월에 출간되어 지금까지 20만 부 이상 판매된 바 있단다. 그보다 더 시선을 끌어당긴 것은 이 책이 프랑스와 전 유럽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영화 <언터처블 - 1%의 우정>의 원작이라는 점이었다. 영화는 감동과 웃음이 떠나지 않았기에 원작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컸었던 것 같다. 읽어 내려가면서 내가 원하는 그런 내용이 아닌 필립의 이야기와 압델의 이야기, 작은 에피소드들이 나열되어 나오는 느낌이었다.
2권의 책을 한 권에 묶어서 나왔다고 하는데도, 에피소드나 왜 이들이 서로를 강하게 의지하는지에 관한 이이기는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고 있다. 아마, 글을 일기전에 이 글을 에세이가 아닌 <언터처블 - 1%의 우정>의 원작 소설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의 우정>은 소설이 아니다. 그러기에 기승전결이 뚜렷한 패턴을 가지고 있지 않고, 저자인 필립의 일상적인 고백을 띠고 있는 글이다. 필립의 고백은 필립의 고백일 뿐이다. 압델의 이야기 또한 압델의 관점이 아닌 필립의 관점에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읽으면서도 끊임없이 에세이를 소설로 인식해 버리는 몹쓸 나의 기억력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처음엔 돈 때문에 묶였을 것이다, 하지만 2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동안 그들은 두개의 인격체를 가진 하나의 몸이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 하다. 그래서 그들은 이야기 한다. 언터처블 - 1%의 우정이라고 말이다. 접근불가가 당연할것 같은 이들의 만남은 또 하나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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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조금 들었다. 필립은 돈은 많은 사람인데 전신마비 장애인이고, 압델은 반대로 돈은 거의 없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1%란 생활 형편에 대한 것으로 필립은 위에서 1%에 해당하고, 압델은 밑에서 1%에 해당했다. 지금 생각하니 필립이 건강한 사람이었다면 압델을 만나지 못 했을 것 같기도 하다. 도움을 받은 필립한테만이 아니라, 압델한테도 좋은 만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필립은 압델 때문에 여기저기 다닐 수 있었고, 압델은 필립 때문에 누군가한테 존중받는 것을 알게 되고 필립 식구들 때문에 식구들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필립과 압델의 이야기가 아주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영화는 두 사람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필립 포조 디 보르고의 자서전과도 같다. 솔직히 나는 소설을 기대했다. 아마 영화로 만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과장이 없는 이런 수필이 더 마음에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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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명문가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선택받은 상위 1%의 '필립'과 그를 간병하는 하위1% '압델' 젊은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왕성한 대학시절 지금의 아내 베아트리스와 정말 멋진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역시 선택받은 상위 1%의 생활은 뭔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하늘이 그들을 시기하고 질투를 했던것일까... 결혼을 한뒤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심지어 그의 아내는 적혈구암이라는 선고를 받게 된다. (끊임없는 임신과 유산, 그의 아내 베아트리스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했을것이다.) 불행은 연속으로 이어지게 된다. 패러글라이딩의 사고로 인해 이제 필립은 더이상 자유롭지 못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참으로 많이 힘겨워했던 필립! 지금까지 누려왔던 특권(?)들은 이제는 자의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니.. 그의 사랑 베아트리스의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를 하게된다. 그녀의 몸은 그렇게 건강하지 못했지만 사랑하는 필립을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필립뿐만 아니라 병원에 있는 모든이들에게 희망(?)을 나눠주기도 했다. 그녀도 적혈구암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였기에 도우미를 구하기로 결정을 하고 ANPE소속이었던 압델을 고용하게 된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독특한 개성, 상황에 맞는 처세술, 그리고 모성애에 가까운 무언가를 느꼈다고 한다. 무질서한 점은 있었지만... 필립은 사고로 인해 전신마비가 되는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면 압델에게는 태어나 사랑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어린시절 숙부에게 보내지기도 했다. 그덕에 가족애를 느껴본적이 없었는데 그들에게서 받는 관심과 사랑이 너무 고마웠을것이다.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아왔던 필립과 압델이었지만 그들은 톱니바퀴가 맞물리면서 굴러가듯이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맞춰가는 모습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던 두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배려하는 모습이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다소 이해하기 힘든 그들이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 생각하면서 박수를 보낸다. 필립의 소중한 악마지기 압델~ 이 책은 필립의 에세이기 때문에 필립의 관점에서 그려졌지만 압델은 과연 필립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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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화된 책이라는 것은 그만큼 내용이 입증된 것을 뜻한다. 이 책 또한 영화화, 그것도 꽤 성공을 거둔 영화의 원작으로서 어느정도 내용의 대중성은 확보한 셈이니, 읽어두어도 큰 손해는 없겠다 싶었다. 난 사실 영화를 안보았다. 좋은 영화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뻔한 스토리가 뻔한 것 같아서인가, 어쩐 이유인지 썩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이 책과 조우했다. 찬찬히 내용을 음미하며 읽어보려 했으나, 불행히도 편집의 무성의함과 번역의 어리둥절함으로 읽는 내내 불편했다. 그 가운데서도 저자의 진심을 어렵게 읽어나갔으며, 그 내면의 슬픔과 기쁨을 발견하는 순간순간을 어렵지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편집과 번역에 좀더 신경을 썼으면 정말 좋은 책이 될 수 있었는데, 많이 아쉽다.
이 책은 필립 포조 디 보르고가 펴낸 책 '두번째의 숨결'과 '악마지기'를 그대로 묶어서 낸 것이다. 두번째의 숨결이란, 그가 부인과 함께 장애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정한 제목에서 따온 것이며, 악마지기란 그가 사고후 그를 돌보게 된 압델을 일컫는다. 따라서 이 책은 그의 아내, 사고, 압델에 관한 자서전적 책이다. 귀족이며 재산에 관한한 궁핍을 모르는 포조는 어느날 선녀같은 베아트리스를 만나고 사랑에 빠져 마침내 결혼에 골인한다. 사랑이 풍부한 이들을 질투라도 하듯이 아내는 계속해서 유산을 하게되고, 또 아내에게 골수암이라는 판정이 내려진다. 그럴수록 아내 베아트리스에 대한 포조의 사랑은 더 깊어질 따름이다. 정말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포조는 부유한 귀조기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다양한 스포츠를 섭렵하였는데, 패러글라이딩도 그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패러글라이딩으로 나이 마흔에 전신불구라는 장애를 얻게 된다. 설상가상, 운명은 불행을 선택하는 듯 하다. 자신 스스로 투병중인데, 남편까지 투병하게 된 처지의 아내는 그 얼마나 고통이 컸을까. 또 그 남편의 심정은 어떻고. 사랑하는 이 부부의 시련,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고자 애쓰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이 두 사람. 이들이 치료를 받으면서 겪은 고통이 이 책에 고스란히 적혀있다. 육체적인 고통의 아픔은 돈이 아무리 많이 있다고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결국 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내는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이 정신적 아픔 또한 포조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압델은 병원에서 있었던 그녀의 기록들을 모두 가져왔다. 그녀가 손수 기록한 글과 편지들이었다. 그녀는 병상일지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가족들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헌신, 행복, 하나님을 향한 믿음, 나와 자신의 치유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주님, 당신 뜻대로 이루어지길 원해요!' 이것은 그녀가 지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아름다운 나무 관을 골랐다. <196쪽>
포조, 그에게 새로운 보호자가 생긴 것은 사고가 일어난 후의 일이다. 그 이름은 압델, 어두운 세계에서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북아프리카 출신 흑인이다. 포조가 그 명성과 부로 인해 언터처블인 존재라면 압델은 그 행적과 가난으로 인해 언터처블인 존재이다. 이렇게 상반된 처지에서 압델과 포조의 묘한 생활이 시작된다. 그는 포조와 함께 있게 된 후에도 여전히 예전의 생활방식을 고집하는데, 이것은 포조에게 또한 새로운 경험이 되고 둘은 같이 어울려 새로운 유쾌한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규범을 무시하고 마약을 하고 여자를 유독 좋아하는 압델에게 포조는 진심어린 충고로 보듬어안는다. 비록 또 그러한 압델이지만 자신이 보호하여할 이 전신마비의 포조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여는 사람 못지 않다. 해서 비록 지금의 육체적 고통이 그를 좌절하게 하지만, 압델이라는 동반자와 함께 그 육체적 고통을 뛰어넘는 새로운 기쁨의 세계를 맛보게 된다고나 할까. 그는 계속해서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 심지어 그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던 패러글라이딩을 다시 시도하는 용기도 불사한다. 이러한 그의 상황은 포조 자신의 성격과 의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압델로 부터 받은 영향도 무시못할 것이다. 포조와 압델은 계속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서로의 삶을 바꿔나가게 된다.
나는 정색을 하며 얘기 했지만, 압델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자네가 만일 가정을 꾸린다면 말일세. 자네는 자네의 가족을 위해 일하고, 가족을 위해 싸워야만 하네. 자네는 당연히 자네가 좋다고 생각하는 일에 그들이 시간을 보내길 원하겠지. 압델, 아름다움이란 말일세, 가정, 바람직한 관계, 성숙해지는 것, 그런 것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거란 말일세..." "길게 말씀하고 싶으신 거죠?" "....." <61쪽>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만큼은 사랑과 우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포조는 최선을 다해 그의 아내를 사랑했고 그 아내도 그에 보답했다. 정말이지 같은 구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포조와 압델은 신기하게도 그들나름대로의 우정을 만들어 나갔다. 포조는 매우 부유한 귀족이었지만, 이 책에서의 삶은 그가 가진 부와 명예는 별 관계가 없었다. 그런 것들이 그의 사랑과 우정을 만들었다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는다. 그보다 사랑과 우정에 대한 그의 진심,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이 이토록 힘들고 고달픈 그의 삶을 행복과 감사와 축복으로 어우러지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더불어 함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명예도 돈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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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1%의 우정]은 1998년과 2004년에 각각 프랑스에서 출간된, 글라이더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백만장자 ‘필립 포조 디 보르고'의 자전적 에세이인 [두 번째의 숨결]과 [악마지기]를 한권으로 묶어낸 책이다. 국내 개봉한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 처럼 표지도 광고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영화화 책 둘다 본 입장에서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 책은 영화의 원작은 아니다. 영화는 두 주인공 ‘필립'과 ‘압델'의 캐릭터와 [악마지기]에서의 모티브를 가지고 영화화 한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이 처해있는 상황에 비해 유쾌하고 담담하게 그들의 우정을 그려낸 수작이었지만 책은 자전적 에세이 답게 ‘필립 포조 디 보르고'의 절망과 희망, 사랑과 우정등의 감정을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하게 서술하고 있는 느낌이다. [악마지기]는 주로 ‘압델'과의 우정을 그리고 [두 번째 숨결]은 그의 평생의 사랑인 ‘베아트리스'와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두 이야기를 읽으며 필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생각했다. ‘베아트리스'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도 사랑이지만 ‘압델'과의 우정은 정말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화가 아닐까? ‘압델'의 분방한 캐릭터는 영화에서도 제법 엽기적이었지만 책에서는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눈감고 운전하다 추돌사고, 그것도 사지 마비인 그의 친구와 함께 타고 있음에도 수차례 추돌 사고를 내는 것 하며 요양하러 간 수도원에서 여자를 꼬시기도 하고, 정말 못말린다. 그러나 ‘필립'은 그가 잘못했다는 말을 단 한차례도 하지 않는다. 그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그의 생명력과 자유분방함을 사랑한다. 필자가 만약 그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오래전에 해고였을텐데 말이다. 그의 ‘악마지기' ‘압델' 또한 처음으로 그에게서 가족을 느꼈다며 그와 함께 진정한 우정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들은 영화처럼 유쾌하기만 한 것도 아니요 계속해서 희망과 깨닳음만을 이야기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에세이는 그가 처한 상황답게 우울의 그림자가 에세이 전반에 희미하게 깔려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반복해서 찾아오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삶과 사랑과 가족과 우정을 이야기한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백만장자이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에서도 삶과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돈이 없다면 단지 생명을 연명하는 것만으로도 벅찰테니. 그러나 가진것이 크면 잃은것 또한 큰법. 자신의 사고에 이어 그의 사랑까지 비운에 가버린 절망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그의 정신은 그의 이야기 속에서 결코 삿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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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이 너무좋아서 샀는데..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라고.. 내가 생각했던 스타일은 아닌것같음.. 긴장편소설인줄알았는데.. 책을 받자마자 두께도 얇고 읽어보니, 그냥 소재목마다 끊어지는 단편이야기를 보는듯했다.. 머 크게보자면 그게 큰줄거리를 이끌어나가는 방법이긴하지만.. 생각보다 실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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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처블 : 1%의 우정>은 유명한 배우도 화려한 영상도 없었지만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 어찌보면 진부한 내용의 이야기 일수 있지만 실화라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어떤 사람들이 만나 우정을 나누게 되며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며 친구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책 또한 영화 못지 않은 우리에게 감동을 전해준다. 우리에게 친구란 어떤 존재일까? 나의 조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를 보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람의 특별한 점이 마음에 들어 친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계산적이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친구가 아닐 것이다.
압델, 그는 오랜 악습을 고친 후 내 삶의 소중한 보조자이자 귀한 동반자가 된 나의 악마지기이다. - 본문 21쪽
불의의 사고로 전신 마비의 장애를 가지게 된 필립과 그의 손발이 되어준 압델의 우정 이야기가 담긴 책을 보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생 살면서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친구 한명만 있어도 그 사람은 성공한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편에서 함께 싸워줄 친구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영화에서는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내용이지만 책에는 필립이 사랑하는 아내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두 사람의 만남에서부터 결혼해 아이를 간절히 바랬던 마음들. 여러 번의 유산으로 인해 결국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며 서로의 사랑이 점점더 단단해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을 때의 절망감을 우리가 어찌 알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하나의 음악이었다.
그녀는 내게 의미 있는 유일한 우주였다.
지금 필립의 곁에 사랑하는 아내는 없지만 자신보다 더 필립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압델이 곁에 있다.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시에서처럼 허물없이 찾아가고 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도 나누는 필립과 압델^^ 그들의 조건없는 마음을 들여다보며 우리의 마음도 따뜻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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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결혼전에는 영화를 좀 봤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들을 낳고 나서는 도대체 짬을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년 영화를 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다가 최근에 보게 된 영화들은 아이의 수준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이었다. 당연히 <언터처블 : 1%의 우정>을 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전신마비 백만장자와 무일푼 백수가 만드는 감동실화가 궁금해졌다.
이 책은 백만장자 필립이 자신의 이야기를 쓴 글이다. 악마지가고 불리는 압델을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한 삶들을 기록했으며, 두 번째의 숨결을 통해 부유했던 어린시절과 첫번째 부인 베아트리스와의 만남부터 그녀와의 생활들 그리고 힘겨웠던 유산을 통한 입양 그리고 병마와 싸우는 베아트리스와 글라이더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후의 일상들을 풀어가고 있다.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는 백만장자가 글라이더 사고로 인해 전신마비가 된 후로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기에 그들은 1%의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어나서부터 장애인인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요즘은 사고로 인해 건강한 사람이 장애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건강한 삶을 살다가 불현듯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되었을 때의 심정은 어떨까? 옆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야 하고, 힘겹게 전신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온전히 장애인의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님 바보같을지 모르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든 삶 속에서 지팡이가 되어 준 친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일 수 있다. 모든 것을 만족하고 살 수는 없지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인해 필립은 살아갈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압델은 인내심도 없고, 허풍쟁이에다, 때때로 오만하고, 성격이 급하고, 진득하지 못하고, 충동적이었다. 그런 그가 가진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겐 사람의 생명을 가능하게 해 주는 '공기'와도 같은 존재였다.
어쩌면 모든 단점을 덮어 버릴 수 있는 압델의 장점이 컸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는 필립에 대해서는 그의 어린시절부터 배우자를 만나고 장애를 갖게 되는 등 전체적으로 자신을 보여줬지만, 압델에 대해서는 그의 장점 부각이 많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1%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필립이 겪었던 그 고통들을 읽어 가면서 그의 삶을 상상할 수는 있었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우정이 조금 더 자세히 다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