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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에게 기독교는 대체 불가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진리겠지만, 무신론자나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 기독교가 왜 필요한지 의문일 수 있다. 복음 전파라는 기독교의 사명을 실천하려면 ‘왜 우리에게 기독교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답변의 핵심에는 기독교 정신이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인류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
목사도 장로도 아닌 평신자로, 철학자로 100년을 살아 온 김형석 교수님의 강연을 엮은 이 책을 통해 기독교가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분의 글은 쉽고 명쾌하며 설득력이 있다. 불교와 이슬람교 같은 다른 종교와 종교학, 다양한 철학과 윤리학, 역사 등 여러 학문에 조예가 깊어 현재 기독교의 모습과 위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깊은 지혜를 소유하고 있다. 기독교와 함께 기독교가 아닌 다른 학문을 탐구하면서 신앙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성숙한 믿음의 경지를 보여준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교회의 본분과 책임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의무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는 마땅하다’ 등 기독교의 역할, ‘누가 교회를 떠나는가?’, ‘기독교와 죄의식의 문제’ 등 기독교와 세상의 관계, 그리고 ‘교회 생활과 사회 생활은 하나다’, ‘무엇이 바른 성경 읽기와 기도인가’, ‘더 높은 차원의 인간 관계를 위하여’ 등 구원의 확신과 별개로 세상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연약한 크리스천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격려까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녹여내며 드러내는 그의 글을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 보면 그동안 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놓치고 있던 것, 차마 깨닫지 못한 것, 알면서도 행하지 못한 것, 앞으로 명심해야 할 것들이 다가온다.
그렇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의 역사는 범죄와 회개의 역사였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양심에 있지만 양심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죄로부터의 용서와 구원이 인간의 희망이다. 그 구원의 길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이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 일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기독교가 필요한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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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하고 사회적 책임을 져야함을 알려준다. 신학자나목회자가아닌 분이 일생을 그리스도인으로살아오면서 깨달은,체험한,철학적으로 담백하게 기술한책이어서 가독성이 매우 좋다. 책 안쪽에 자필서명이 함께 인쇄되어 있어서 뭔가 선물 받은 느낌도 들고 얼마전 tv를 통해 실제 저자가 학자로서, 지성인으로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인생의 선배로서 생활하는 모습을 뵈어서인지 더욱 친근한 느낌도 받았다. 옆에서tv를 틀어놓고있어도 읽힐 정도로 쉬우면서도 매력적인 책이라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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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에게 기독교가 필요한가>는 백년의 지혜, 노철학자가 말하는 기독교 지인에게 추천을 받아 구매했다
기독교는 사회가 묻는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는가
100세의 철학자가 말하는 내용이 궁금했다.
나에게는 종교를 떠나서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었다. 철학자와 같은 시대를 산 책에 나오는 인물들과의 에피소드도 쏠쏠 한 재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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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니 제목이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것 같아서 아쉬웠다. 내용은 기독교인들이 삶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한 내용이었다. 철학인으로서 그 깊이있는 지식으로 이렇게나 읽기쉽게 서술하신 것으로 보아 많은 대중들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야기 들려주시는 듯한 포근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안의 내용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쉽게만 읽을 수는 없는 예리한 지적들 이었다. 외세의 침략과 전쟁을 겪은 세대로서 우리가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그 말씀은 청년실업문제, 학자금대출 등등으로 나라에 불만만 가지고있던 젊은세대중 하나였던 나에게 우리나라라는 존재를 다시금 생각해보게끔 만들었다.
지금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타의 모범은 커녕 일반인들도 저질러서는 안되는 범법행위들을 저지르고 기독교 자체를 욕보이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바르게 살 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삶, 나아가 우리 나라를 위해 삶을 바치는 것이 올바른 기독교인의 자세라는 것을 가슴깊이 새겨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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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서로 행복하려면 좀 더 높은 차원의 사랑, 좀 더 귀한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좀 더 높은 차원이란 나에게 있어서는 성실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 p.187 대학원을 다니면서 지친 마음에 도서관에 자주 들리곤 했었다. 그곳에서 제목에 이끌려 꺼낸 책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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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어떤 종교일까요? 기독교 구약의 줄기가 되는 내용은 코란과 똑같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신약이 시작된 데서부터 그 줄기가 갈라집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구약이라는 계란 속에서 병아리처럼 그 껍질을 깨고 나온 것입니다. 이슬람교는 아직도 계란 속에 있고요. 계란을 깨고 나와서 출발한 게 우리 기독교라는 점에서 두 가지가 확실해집니다. 첫째는 자연종교가 아닌 유일신을 믿는 종교로서 구약과 신약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 둘째는 구약의 연장이 아닌 인류와 세계 종교로 개편된 예수님 이후의 종교라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는 예수님 이전 종교와 확실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구별하지 않고 그저 종교라는 이름으로 다 같은 것으로 취급하면 종교가 인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폐단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치관, 즉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무엇을 위해서’라는 것은 목적이 됩니다. 내 인생의 목표가 돈 버는 것, 출세하는 것, 권력을 가지는 것이라면 세속적인 것이고, 그 목표가 그리스도의 뜻이 우리와 더불어 이루어지는 데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가이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내 인생의 목표가 그리스도와 같은가?’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목표가 예수님과 같은 것이라고 해도 우리는 부족한 인간이기에 예수님보다 뒤처지는 부분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헌금도 많이 하는 것은 세속적인 가치입니까, 아닙니까? 그런 행동이 내 소유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러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 권력을 얻기 위해서, 명예를 누리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잘못된 방향의 가치입니다. 대신 내 소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의 목표에 반쯤은 다가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은 인간사회에서 행 복하고 반은 예수님의 목표와 함께하는 것이지요. 또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이 원하시는 데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앞장서는 것이 교회가 줄 수 있는 가치입니다. -왜 우리에게 기독교가 필요한가 중 발췌
그리스도 신앙을 삶으로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울림이 있는 도서이다. 대개의 경건 서적들은 특정한 사건 내지는 저자의 느낀 바에 치우치는 경향성이 짙은 반면 이 도서는 신앙을 삶으로 구체화한 바에 유의점을 두기에 굉장히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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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독교, 먹사x 이게 현재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받고 있는 평가다 일제 식민지 시절 판결문 중에 당대 피지배층에 반식민지적 종교인 조선인 기독교인에 대한 평가를 엿볼 수 있는게 있었다 물증없는 살인 사건을 재판하면 오직 단 한 사람의 증인만이 있었음에도, 일본인 판사는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증인의 증언을 받아들여 사형을 선고했다 한다 그만큼 당대 기독교인은 사회을 뛰어넘는 고결함과 정직성을 수반했기에 피지배층에 속해 있을찌라도 감히 범접못할 위상을 받았다 곧 기독교인을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일종의 이정표의 역할을 대사회적으로 충분히 감당했었다 예배당 크기와 정치인들에 로비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현대 한국교회는 이제 헛짓거리 멈추고 돌이켜야 한다 그래야 사회 역시 기독교가 꼭 필요함을 인정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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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교회에 대한 두 가지 우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는 교회가 기복신앙으로 흐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샤머니즘, 즉 기복신앙적인 요소를 없애야 합니다. 둘째는 사회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든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고 우리 조국인 한국 사회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예를 들어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서울의 한강을 중심으로 교회는 강북에 있고, 현실을 사는 사람들은 강남에 있다고 가정합시다. 강북에 있는 교회에서 강남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리로 오라. 여기 주님의 말씀이 있고 주님의 뜻이 있고 사회 공의가 있고 은총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갈 힘도 없고 강을 건널 다리도 없고 지금으로서는 갈 방법을 모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 우리 교회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나룻배를 구하든지, 다리를 놓든지 해서 강을 건널 방법을 마련해주고 우리 그리스도인이 먼저 가서 교회로 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물론 현대 기독교는 사회를 선도하는 가치를 보여주기 보다는 일종의 패거리 집단이자 암적 존재로 위상이 떨어진지 오래다. 저자는 그러한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기독신앙이 바라보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재고하고 바른 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