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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체보다 책 속의 구절에 따라 솟아나는 내 생각에 더 머무르게 되는 독서였다. 내가 정말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속절없구나.
언제까지라도 한창 때일 줄로만 알았는데 나이는 내 의식의 바깥에서 먼저 온다. 내가 나이 들었구나를 확 깨달았던 것은 시력 때문이었다. 책의 글자가 잘 안 보이기 시작하면서, 연수 받을 때 화면과 책을 번갈아 보는데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 내 나이! 했다. 드디어 노년이라는 말에 익숙해져야 하는 건가, 이제는 내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건가. 그러면서 서서히 하나둘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었는데.
이 책은 김훈의 추천사도 한몫 했고, 앞서 본 작가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http://blog.yes24.com/document/7303133>라는 책에서 받았던 좋은 인상이 크게 작용하여 구입한 것이다. 그때 읽었던 내 상황과 지금의 내 상황은 좀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사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이 달라진 건 아니기에 별다른 차이는 못 느꼈다고 해야겠다. 어쩌면 나이를 먹더라도 한 사람의 일생에 일관되게 흐르는 생의 지침 같은 것은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사람 잘 안 변한다는 말의 경우처럼.
글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어떤 점 때문이었을까 짚어 가면서 읽으려고 했는데 작가가 주장하는 일반적인 내용에 동의하기 어려웠다기보다는 퀘이커교도라는 작가의 입장과 신앙과 관련된 글에서 몰입하기 힘들었던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일단 기독교나 종교 관련 글에 맹목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편이라 이런 내용이 나오면 굳이 읽고 싶지 않는 생각이 먼저 들고 만다. 그러니 대충 가려 읽을 수밖에 없게 된다. 작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정도에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갖고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정도로 살피고는 넘기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전체를 정독하지 못한 셈이 되고 말았다.
작가가 당부하고자 하는 바는 알아듣겠다. 내가 취하느냐 취하지 않느냐 하는 내 문제가 남는 것일 테고. 마음과 의지를 열어 두었으면 좋겠다는 인생 선배로서의 당부는 나도 힘껏 받아들이고 싶다. 젊은이들의 뜻을 헤아릴 줄도 알고 그들과의 교류도 게을리하지 말라는 것, 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는 길에 망설이지 말라는 것, 나이가 더 들어가도 세상에 관여하려는 좋은 의지를 놓치지 말라는 것, 그리고 글을 쓰라는 것. 기꺼이 동참하고 싶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작가는 이번 책에서 자신의 시를 제법 실어 놓았다. 번역된 시는 아무래도 산문만큼 와 닿지 않는다. 그렇 내가 원문으로 그 시들을 읽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는 아니고, 시를 계속 찾는 작가의 의도만큼은 기억하고자 한다. 나 또한 시라는 영역이 내 삶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사람이 나이가 들면 나이만큼의 고집을 부리게 된다는 것을 안다. 그 고집이라는 게 나이만큼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증명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해 봤으니 겪어 봤으니 고집도 부리는 것이겠지. 맞다고 틀렸다고, 그런데 그걸 자신의 고집으로 젊은이들에게 강요하는 건 또 부질없는 노릇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들은 또 그들대로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모든 생이 다 그러하듯이.
결국 선명한 답은 얻지 못했다. 아니,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든다는 것을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각자 자신의 몫으로 나이들어 갈 수밖에 없는 것을. 다른 사람의 생은, 먼저 산 선배들의 생이라고 해도 그저 참고사항일 수밖에 없는 것을. 끝까지 이렇게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이게 생이 아닐까 싶어진다. 고정된 것에 고집부리지 않고 한쪽을 비워 놓고 이렇게 헤맬 줄 아는 것이 그래도 조금 더 나은 태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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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파머는 ‘나이듦’의 무거움을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사회 활동가이자 영성 교육자로서 왕성한 에너지를 발산해온 파머는 생의 후반부에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었다. 안으로만 숨고 파고들다가 그는 자기 안에서 안으로 통하는 문을 하나 더 열어버렸다. 그렇게 발견한 노년, 그는 현재 노년의 리듬에 따라 물감처럼 스미는 글을 쓴다. 파머는 이 책에서 노화라는 중력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나이듦에 협력’할 때 얻게 되는 것들에 대한 경험을 들려준다. 노인들만 대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젊은이들을 향하고 있다. 젊음에게 노년은 낯선 것이고, 낯선 것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은 못 보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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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J. 파머 작가님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를 봤는데요 이 책은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외국의 평화로운 목장 마을 같은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자연을 즐기는 듯한 일러스트가 한참을 뚫어져라 감상하게 만드네요 |
| 파커 J. 파머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리뷰입니다. 이 책은 이전엔 알지 못했었으나 이벤트의 기회로 대여해보게 되었습니다. 표지 일러와 제목으로 생각한 것보다 흥미로웠었고 알지 못했던 정보를 알게 된 것과 작가의 관점을 짚어보며 재밌게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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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항아리 출판사에서 출간한 파커 J. 파머 작가님의 작품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리뷰입니다. 대여 이벤트로 우연히 읽게 된 책입니다. 소개글에 나와있는 "나이 드는 걸"을 좋아하는 감정이라는게 뭘까 싶었는데 저자가 무슨 말을 전하고 싶었는지 알거 같아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 제목이 마음에 드는 책이였어요. 가장자리는 어떤 것을 의미할까 작가는 어떤 것을 염두해 두고 썼을까를 생각하며 읽었던 책이예요.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삶은 타인에게 위협이 된다는 문구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저는 에세이가 맞나봐요. 좋은 시간이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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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통해 파커 파머를 처음 알게 되었다. 밑줄과 형광펜이 엄청나게 그어져 있는 그 책은 오래 전에 만나서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강렬했는지 이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당시의 내게는 무척이나 간절한 질문에 대해 답을 주었던 책이었다는 점.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을 발견하고 샀을 때에는 ‘나이듦’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 ‘잘 살고 있는것일까?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건가?’가 내 질문이었던 것이다. 종교를 초월해, 그 분의 겸손한 자기 인정에 숙연해졌다. ‘삶이란 내가 획득한 것도 아니고, 영원히 누릴 수도 없는 순수한 선물임을 기억하는 일’이 삶을 감사히 살게 하고, 기꺼이 베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16개월 마야가 “세상이 즐겁게 하리라는 크고, 분별없는 기대 하나만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듯이, 자신도 즐겁게 삶의 선물을 즐기겠노라고. 삶의 가장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 삶이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 파머는 이 질문이, 자신을 어떤 사람의 태양계 한가운데 있는 태양이라 여기는 것. 스스로를 거기에 두려고 안달하면서, 자신이 특별하고 자기 인생도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쭐함에서 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나는 새와 나무보다 더 중요하지도 덜 중요하지도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만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 평화가 온다고. 질문이 잘못되어 틀린 답에 이른 것이라고. 불교 수행에서는 생활 속에서 또는 어떤 일을 임하기 전에 ‘명심문’을 크게 소리내어 외치고 마음속으로 상기하는데, ‘나는 저 풀밭의 잡초입니다’라는 명심문을 받았을 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내 모습에 당황했던 기억이 났다. 그 순간에 자존심 비슷한 것이 꼿꼿하게 버티는 것을 발견했고, 결국 내 우월감을 인식했던 순간이었다. 그는 나이듦을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에 ‘프리즘’이라는 비유를 사용했는데, 그 중 ‘4장 일과 소명’에 관한 부분에서 그는 자신의 글쓰기가 어떤 과정에서 어떤 소명으로 이어졌는지를 고백한다. 그리고 ‘5장 바깥으로 손을 뻗기’에서 세상에 관여하며 살아가려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백인으로서 자연스럽게 ‘정상’이라고 느꼈던, 그래서 인식하지 못한 채 ‘타자화’했던 타자들에게 진심으로 자신을 고백한다. 이렇게까지 치열할까, 지나친 자기검열이 아닐까 싶었는데,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백인/유색인이라는 구별이 와 닿지 않아서 남성/여성으로 바꿔 생각해보니 파머의 고백이 어떤 점을 짚고 있는지 와 닿았으며, 어떻게 ‘문제의 일부’가 된다고 생각하는지에 설득되었다. 그는 분노가 옳지 않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문화적 폭력을 언급하며 사람들의 제각각 반응들을 환기시키고, ‘폭력은 고통을 다루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할 때 생기는 것’임을 기억하라고 한다. 책의 처음 시도가 한 권을 기획하고 쓴 것이 아니라 정연하게 펼쳐지지 않고 중복되는 구절(생각)도 있다. 일곱 가지가 하나에서 분광되었다는, 그래서 하나의 주제로 결국 모아진다는 느낌이 약하기도 하다. 하지만 치열하게 살아왔고, 저 높은 이상을 향해 위로, 위로 성공하기만 했던 것이 아님을, 우울증을 세 번이나 심각하게 앓았고, 현재 미국의 백인 중산층 지식인인 자신의 안일한 인식을 고해성사 하면서 결국, 나의 인생이라는 여인숙에 매일 아침마다 찾아오는 낯선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해야 하지 않겠냐고 조용히 설교하신다. 나이가 더 든 나를 살피기 위해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다시 읽어볼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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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시선과 유머로 가득 찬 노년 탐구 스스로를 면밀히 돌아보지 않는 삶은 타인에게 위헙이 된다.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먼 생애 동안 마구잡이로 헤쳐온 오르막 내리막의 길 그 길들의 가장자리에 선 한 노인이 써내려간 에세이
너무너무 좋은 책. 흠..이 책이 이리 좋은 걸 보면 내가 진짜 나이를 먹었다는 건가? ㅎㅎ 그래도 어쩌겠나, 좋은 걸. 언제부턴가 내 가장 큰 소원이고 바람이 된 건, 멋지게 늙어가는 것 그리고 눈 감을 때 '좀더 좀더'가 아닌 '넌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푹 쉬어도 돼'라는 스스로의 위로와 위안을 해 줄 수 있는 여유있는 죽음. 글쎄..이런 책들을 가끔 읽으면서 나는 좀 여유로워지고 있는 건가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도 봐야 겠다.
젊음이 떠나간 자리에 지혜가 남기를.. 내가 정말정말 좋아하는 말이다. 진심 이런 내가 되고 싶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해도 필요한 사람으로 있고 싶다는 욕심도.
저자는 나이듦의 무거움을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는 책소개에 있는 한 줄처럼 이 책은 무겁지 않다. 그런데도 무게감은 있더라. 그 무게감이 좋았고. 가끔 꺼내보게 될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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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 넘고 인생의 후반전을 지나면서 나이에서 오는 외로움과 내적갈등, 죽음에 대한 생각들로 번민할때 만나게 된 책이다. 잔잔하게 마음을 두드리는 글이 기대이상으로 좋아서 밑줄을 그으며 하루만에 읽었다 . 우리의 사명은 다른 누군가의 삶의 형상이 아닌 참자아로 사는것이라는 말이 심장을 울렸다. 파커j파머와 그가 추종하는 토머스머튼의 책을 찾아보며 다음 리스트에 올려두었다. 다만 책제목이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고, 글자가 너무 작아서 이책을 읽고자하는 나이많은 독자층들에게 불편함이 클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책은 80이 넘으신 아버지께서 신문 서평을 보시고 주문해달라고 하셨는데 글이 너무 작아서 못읽으시겠다며 내게 돌려주신 책이었다. |
|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출간한 파커 J. 파머 저 김찬호,정하린 역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을 읽고 작성하는 감상평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죽음을 향해 다가갑니다. 나이듦에 대한 여러 가지 단상을 나열하고 있는데 글을 읽으면서 상당히 피로해지는 느낌이네요. 저는 복잡한 생각 없이 그저 하루하루 만족하며 나이 들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