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작품들을 꽤 좋아하는데, 근래에는 볼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 96년도에 읽은 소설인데 지금 읽어도 아마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재밌다고 여긴 문장들 몇 개 옮겨 적는다. 괄호 안은 내 심경. "그날 밤은 낫처럼 날카로운 초승달이 떠 있었다." (왠지 심난한 밤이다, 라고 하는 것보다 백배쯤 잘된 표현 아닌가.) "...나는 아직도 그녀에게 감정을 기대하고 있었다. 교코씨와 벌인 하룻밤의 사건은 마치 사토코의 정절이 흐트러졌을 때, 이쪽이 예방하기 위한 예방선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연애 감정의 심층부 내지는 조악한 일면을 잡아내는 데에는 경험만한 것이 없다.) "홀가분하게 살고 있구만. 택시로 이사가 되니. 내게 걸려 있는 중력과 네게 걸려 있는 중력은 목성과 달만큼이나 달라." 그의 말뜻은 이해가 갔다. 아그네스와 만나기 전에는 분명히 달 표면에 있는 것처럼 홀가분했지만, 지금은 지구만한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 그녀와 결혼이라도 하는 날에는 역시 나도 목성만한 중력에 시달릴 것이다. (목성이 두 개쯤 날 끌어당기는 듯한 기분 속에서 몇년째 살고 있다.) "꽤 흥이 나서 술을 마시고 나니, 침대 속에서 흥이 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상상력을 왕성하게 하여 <아그네스는 나의="" 아내인데,="" 한국인="" 야채상과="" 밀통하고="" 있다.="" 그="" 모습을="" 내가="" 붙박이장에="" 숨어서="" 훔쳐보고="" 있다="">라고 하는 상황을 설정해 봤더니, 힘차게 발기되었다. 나는 천재가 아닐까." (비슷하게 따라해 보았으나 명백한 실패였다. 그나마의 발기마저 원위치로 추락하는 정도. 나는 천재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바보가 아닐까.)"아그네스는> |
| 이 책은.. 이상한 책입니다.. 제가 말하는 이상한을 일본어로 표현해 보자면 おかしい(이상한), 不思議な(신비한) 이런 이상함이 아니라.. 變な.. 별난 이야기 입니다. 제가 이 책을 접하게 된 건 학교 도서관 만들 당시, 도서관에 책을 다 비치해두고 남는책.. 혹은 학교도서관에 적합하지 않은 책을 학생들에게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피안선생이라는 제목에 마음이 끌려서 가져왔더니, 웬걸 제가 생각하던 피안선생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의 피안선생이 나오더군요.. 꽤 인상적이었던 것이.. 피안선생과 아그네스와의 성관계에 대한 내용 자체는 꽤 문란한 내용인데.. 이 책의 문장에선 전혀 문란하단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뭔가 엉망진창이고 제멋대로 비뚤어진 작품세계가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아무튼, 전 이 책으로 인해서 시마다 마사히코의 작품세계에 빠져들게 되었구요, 그의 작품이라면 뭐든지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시마다 마사히코의 작품이라면 다 읽어댔습니다.. 지금 품절이라고 뜨지만.. 사실상 절판된 것일 겁니다.. 그래서.. 전 우연히도 이 책을 가질 수 있었던 일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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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선생의 사랑은 현대 일본문학의 대표적 작가 중 한 사람인 시마다 마사히코의 1992년 일본 이즈미 교카 문학상 수상작이다. 전형적인 소설구조와 등장인물이 유려한 문체로 그려지는 소설에만 익숙한 사람에게 시마다 마사히코의 소설은 조금 낯설고 당혹해 할지도 모른다. 특히나 상식을 뒤엎는 인물들의 행각에 반듯한 바른 생활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면 기분 나쁘게 읽힐 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피안 선생이 누구와 사랑을 하고 어떤 결말을 맺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그 관계에서 그가 무엇을 추구했으며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지 하는 것, 그리고 세상을 읽고 바람직한 가치관을 제시해주는 소설가로서의 역할과 자신의 노정이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야말로 소설을 읽는 재미인 것 같다. 줄거리가 중요한 소설이 아닌 고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눈이 가는 대로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는 장점도 있다.
기쿠히토라는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젊은이가 소설가 피안선생의 제자가 되면서 시작되는 소설은 처음에는 성장소설같은 분위기를 띤다. 그러나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피안선생의 일기 등이 공개되고 본격적으로 나이, 인종, 성별, 국적, 언어를 초월한 피안선생의 연애담이 묘사되고 있다. 돈후안과 겐지이야기의 '겐지'가 피안선생의 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자신의 경쟁상대이다. 화자의 두 개의 축. 소설가로서의 피안선생 그리고 연애를 하는 피안선생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피안선생은 더 이상 소설쓰기를 그만두고 소설을 몸으로 살고 있는 인물이다. 제자인 기쿠히토에게 소설가가 되지 말기를 권유하고 있다. 피안선생이 연애를 통해서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뜻밖에 선생의 애인이었던 교코의 편지에서 어렴풋이 암시된다. 교코는 티벳의 오지에서 반년동안 살면서 '공'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피안과 차안, 이승과 저승 현세와 내세가 한데 섞여 있는 사랑을 제시한다.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 대해서 너무나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의문을 던지는 부분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일본사회에 대해서라면 길거리 패션이나 애니매이션 정도로밖에 접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인상깊은구절] 펜으로 소설을 쓰기보다 몸으로 소설을 쓰는 편이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 거짓말쟁이 색광에 대한 걸 써봤자 조금도 재미가 없어. 그 자체가 되어버려야 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진정한 소설가와 거짓 소설가를 구별하기는 간단하지. 목숨을 걸고 거짓말을 하나 안 하나, 이것으로 확실히 나뉘네. |
| 시마다 마사히코는 도서관에서 이리저리 책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작가입니다. 피안선생의 사랑을 읽고서 가장 궁금하게 생각된 것은 피안선생의 수제자(?)인 기쿠히코의 그 다음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나와 크게 차이나지않는 연령대였던 기쿠히코는 아마 지금쯤 사회생활을 하고 있겠지요..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피안선생의 제자이고 싶었던 저는 그의 온몸으로 거짓말을 연기하는 것이 어떤것인가에 대해 늘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만 아직 그것이 어떤것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적어도 정신병원에 자진해서 입원하는 것만은 사양하려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만... 저의 "밤의 동지들"은 이젠 모두 떠나고 없습니다. 혼자서 밤거리를 순례하는 일따윈 어느샌가 잊어버렸지요. 저는 젊은 시절에 그를 만났던 것을 아마도 잊을수 없을것 같습니다. 언젠가 시간을 내어서 정신병원에 들러 피안선생에게 음료수라도 가져다 줘야 겠습니다. 오늘도 길거리 어느 곳에서 어깨를 스쳐지났을 기쿠히코들에게도 말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