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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서 자아의 고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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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밤, 울분을 가라앉히기에 이만한 약이 또 있을까. 나는 낮에 본 영화를 떠올리며 한밤에 찾아온 슬픔을 달랬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다. 좌절을 가라앉히기 위해 또다른 누군가의 불행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분노와 절망, 죄책감은 하나가 아니다. 억울함과 좌절이 차츰 누그러지기 시작할 때도 여전히 단 하나를 향한 미안함은 남았다. 죄의식에서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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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밤, 울분을 가라앉히기에 이만한 약이 또 있을까. 나는 낮에 본 영화를 떠올리며 한밤에 찾아온 슬픔을 달랬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다. 좌절을 가라앉히기 위해 또다른 누군가의 불행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분노와 절망, 죄책감은 하나가 아니다. 억울함과 좌절이 차츰 누그러지기 시작할 때도 여전히 단 하나를 향한 미안함은 남았다. 죄의식에서 벗어날수록 사실상 미안함은 더 커져갔다. 오랫동안 나는 나조차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나를 감시하며 살아야 했나. 감시란 숙청과 축출을 위해 도청 등의 방법으로 누군가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행위. 쉽고 빠른 판단으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기만은 방지했으나 그것이 나의 결백을 증명하는 토대가 될 수 없음을 잠시 잊었다. 누군가를 오랜 시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이 영화가 생각난 이유가 고작 울음을 참고 마음에서 터지는 절규를 묽게 할 방편이었다니. 내가 받았던 혹은 받아야 할 더없이 지나친 관심과 관심을 가장한 비난과 역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는 소심함에서 시작되었다니. 


바닥까지 흔들린다. 반듯하고 번듯하지만 터져나오지 않고 안으로 스며드는 울음이 꼭 붕대 같아서 상처에 시간의 더께가 켭켭이 쌓이기를 그래서 이 모든 순간들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나와는 반대로 이 비극은 삶의 모든 부분을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들키고도 들킨 줄 모르는 자의 혼란이 마지막 장면만으로 끝까지 달려간다. 요란하지도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게 섬세한 필치로 그려나가는 한 인간의 한 인간에 대한 제대로된 이해와 관찰 그리고 화해가 잔잔하지만 철통같은 단단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예술마저 억누르려는 국가의 광기, 감시와 처벌로 유지되는 체제, 자유를 뺏고 뺏기는 비밀경찰과 시민들의 보이지 않는 대치, 자유가 곧 삶으로 이어지는 예술가들(배우, 작가, 연출가)의 절망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이 비인간적이고 냉랭한 사회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억압적이고 냉정한 비밀경찰이 감시대상의 삶에 공감하면서 이해와 감응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고 감동적이다.


사회를 유지하는 유일한 원동력으로 작용하던 감시체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무용지물이 된다. 한 인간의 웃지 못할 삶이 고스란히 기록으로 재현되고 그로인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감사의 마음까지 생기는 믿기 힘든 이야기는 사실 우리가 정해놓은 기준에서 얼만큼 탈피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졌는지, 강요와 억압과 압박에 저항하는지, 상대를 연민하고 아파하는지 보여준다고 해도 걸맞다. 차고 넘치는 간섭과 충고, 걱정과 비난이 사실 상대를 위한 게 아니었음을 우리 스스로가 모른다면 거짓말이듯, 보이는 것을 통해 상대를 판단하거나 보이기 위해 나를 포장하는 일련의 방식들에서 환멸을 느낀 적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무관심이 미덕이자 상식인 사회가 된지 오래다. 존중과 이해와 소통을 빌미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압도적인 가치들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이며, 개입과 해석을 통해 무작정 잣대를 들이대 비난하거나 비하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나의 말과 글이 드러내는 삶이 일부분에 불과한 것처럼 누구에게도 나의 전부를 들키지 않으리라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자유롭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강박도, 타인의 삶에 지나친 결정권을 흔들리는 부질없음도 벗어나고 싶다. 부모가 자식에게, 국가가 국민에게, 선생이 학생에게, 의사가 환자에게. 이해와 간섭은 전혀 다르다. 각자 주어진 시간을 견디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의식하는 주체라는 것을 기억하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 연민과 욕망을 혼동하지 않고 위안과 위선을 구별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그대는 책을 읽지 않아서 그다지도 용감한가. 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문학이면 충분하다.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이 타인의 허점이나 약점을 공격할 시간이 없고, 고찰과 지향점이 명확한 사람은 단지 지금의 짧은 식견으로 그 사람의 부분을 통해 전체를 평가하지 않는다. 내게 문학은 늘 타인에게 데려다주고 다른 세상을 여행하는 통로였다. 이제 그만 굴절과 가공으로 얼룩진 타인의 시선에서 놓여나고 싶다. 이 문제는 영화의 오류에 가깝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얻기도 어려울 뿐더러 실현도 문제지만, 타인의 삶을 인정해야 한다는 고민을 다함께 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비극이다. 더이상 당신을 이해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s*****d 2013.10.07. 신고 공감 4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