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경씨의 책은 사람을 빠져들게 만듭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자가 지칠줄 모르고 하나의 화두를 물고 늘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화두는 다름 아니라, '주체' 개인적으로, 이 책을 저자의 최근작인 '노마디즘'보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인 감동에 비해 이 책이 뜨지 못 한것 같아 무척 아쉽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유야 어떻든, 저는 저자를 알려면 이 책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책은, 부제대로 '주체 생산의 역사이론'에 관한 책입니다. 저자는 맑스주의 조차도 '근대성'이라는 그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비판합니다. '맑스가 만들어낸 탈근대적 사고의 이 공간은 곧바로 맑스의 시대를 지배한 역사속에서, 특히 과학주의라는 이중의 장벽에 갇혀 축소되고 무화되었다'고 비판합니다. 곧바로 이는 '역사에 개입하려는 사상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부가 설명합니다. 맑스는 '개인은 그 반복적인 실천을 통해 특정한 형태의 주체로 생산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맑스의 유물론의 대상은 1) 물질적 생산양식 2) 생활양식 혹은 활동양식 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주체의 생산을 개념화하기 위해서는 주체의 활동을 생산양식으로 환원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다뤄야 하는데, 결국 무의식화된 활동방식으로 생활양식을 다뤄야 하는데, 맑스에게는 사회 역사적인 무의식화된 활동으로서 생활양식을 다룰 수 있는 지반이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입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근대적 주체생산양식이 서로 강력한 결속력을 지니고 있지만 서로가 완전히 일치 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근대적 주체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으로 1)노동하는 신체에 대한 해부학적 분할과 통제 2) 과잉인구 을 들고 있습니다. 근대적 노동의 성분들로, 시간, 공간, 기계라는 개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근대적 노동의 성분들은 권력이 노동하는 신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자본은 과잉인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에 의해 노동자들에게 자본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강요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자본을 비롯한 권력이 노동자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노동자는 자신의 '정체성'에 흠이 가지 않도록 자기 감시의 단계까지 이끌려 갑니다. 이러한 자기 감시를 통한 포장된 자유가 그대적 개인을 상징하는 '자유'의 본질입니다. 노동자는 이 과정을 통해 극도로 개인주의화 되어 갑니다. 노동자 개인이 이타주의를 발휘하는 최대 영역은 '가족'이라는 경계선입니다. 이러한 근대적인 질곡을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저자는 '꼬뮨주의'를 꺼내듭니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자신의 의지-자신의 욕망'에 의해 노동하고 이에 따른 '욕망의 풍부한 세계를 형성하는' 노동이 이루어지는 그 무엇(?)입니다. 다른 말로, 권력에 의해 구획된 경계를 가로질러 끊임없이 차이를 생성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너와 나의 차이는 아닙니다. 그래서, '타자화'되지 않는 주체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쓰고 보니, 너무나 거칠게 요약을 해 버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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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권의 책을 읽다보면, 어떤 책은 읽는이에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열정을 기억나게 한다. 여러 명의 친구보다, 한 권의 책이 내 마음을 더 잘 알아줄 때가 있는 것처럼. 이진경 선생의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책이었다. 한때는 맑시즘을 공부했지만, 길을 잃어버려 도중에 그만두고 말았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나에게 그 길을 다시 찾아주었다. 이진경 선생의 책을 계속 읽어왔던 이라면, 그 분이 들뢰즈/가타리를 맑시즘에 접속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 경계에 서 있다. 맑시즘 내부의 근대성을 들뢰즈/가타리를 통해,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진경 선생은 스스로 밝혔듯이 맑시스트이다. 그래서, 들뢰즈/가타리를 충분히 육화하여, 그의 언어로 맑시즘에 접목시킨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새로운 가능성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맑시즘의 전문가인 저자로부터 많이 배우게 된다. 내용 중에는 괴델의 공준을 이용하여, 맑시즘을 극복하려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맑스의 현재성과 근대적 노동의 의미, 역사유물론과 근대적 주체의 생산 문제, 횡단의 정치 등을 다룬 항목은 신선하다. 많이 읽고 배울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맑시즘 내부에서 코뮤니즘으로 이행할 수 있는 단초로 보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과연 이행으로서의 코뮤니즘은 어디서 가능할까? [인상깊은구절] 그것(잉여가치)은 가치론의 공리계에 내적인 이율배반이 적대와 계급투쟁의 형태로 응축되어 있는 개념이며, 자본의 권력과 노동자계급의 능력이 항상적으로 공존하며 충돌하는 작용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경제학에 의해 끊임없이 양적 대립의 양상으로 변환되어 경제적 이해의 충돌로 속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며, 이를 위해 가치론의 공리계 안으로 포섭되고 내부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