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보시는 블친님들은 기시감이 들것이다. 왜냐하면 전에 한번 리뷰를 썼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시 쓰는 이유는 나의 선물 목록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신년 선물 준비가 끝나게 될런지 이렇게나 느리고 더딘 선물 준비라니
이대흠 시인 페이스북에 책을 사서 보내주면 싸인해 줄 수 있냐 물어보니 그렇게 해주시겠다 해서 5권을 한꺼번에 샀다. 이렇게 여러권을 구입해서 리뷰를 썼을 때 포인트는 한권에 대한 것만 주는 건 지 아니면 권수에 곱해서 주는 건 지가 급 궁금해진다.
시는 자기 스스로 반짝 반짝 빛난다. 샛별처럼 자기 스스로 물들어 간다. 놀빛처럼
참 멀리도 갔구나 싶어 앞을 건너다 보면 다시 거기 있고 참 멀리도 왔구나 싶어 뒤를 뒤돌아 보면 다시 그 시절이다.
그도 생활인일텐데, 어떨 때 시인이 되어 시를 쓰는 지 정색하고 나 시인이라고 폼 잡는 시인은 물론 아니겠지만 다른 사람과 따로 떨어져 외로워질 때 시를 쓰는 건지 아니면 어울려 기꺼워질 때 시가 되는 건 지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럼 대답해 줄까?
-천관(天冠)- *장흥군 관산읍에 천관산이라는 산이 있다
강으로 간 새들이 강을 물고 돌아오는 저물녘에 차를 마신다
막 돋아난 개밥바라기를 보며 별의 뒤편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노을은 바위에 들고 바위는 노을을 새긴다
오랜만에 바위와 놀빛처럼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말이 없고
먼 데 갔다 온 새들이 어둠에 덧칠된다
참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참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마에서 북천의 맑은 물이 출렁거린다 그 무엇도 미워하는 법을 모르기에 당신은 사랑만 하고 아파하지는 않는다
당신의 말은 향기로 시작되어 아주 작은 씨앗으로 사라진다
누군가가 북천으로 가는 길을 물으면 당신은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거기 이미 출렁거리는 북천이 있다며 먼 하늘을 보듯이 당신은 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던 순간 그는 당신의 눈동자에 풍덩 빠진다
북천은 걸어서 가거나 헤엄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당신 눈동자를 거치면 바로 갈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걷거나 헤엄을 치다가 되돌아나온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사랑을 할 줄만 알아서 무엇이든 다 주고 자신마저 남기지 않는다 |
이대흠 시인이 오랜만에(8년만이라고 한다) 시집을 냈다. 이대흠 시인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토속적인 정서를 서정적으로 노래한다. 그는 나의 고향의 언어로 말하고 쓰고 노래한다. 몇십년동안 귀에 익었던 사투리로 한참 전에 잃어버린 그 마음을 표현한다.
울적하고 허전하고 누군가에게 말을 꼭 하고 싶은데 들어줄 사람을 찾기 힘들 때 나는 그의 시집 '귀가 서럽다'를 펼치곤 했다. 거기에 나온 시들이 나의 고향을 정서를 소환한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가 너무 좋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도시의 풍경안에서 그런 정서는 생기지 않는다.
그는 장흥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커서는 타지를 떠돌다 다시 장흥으로 돌아왔다. 난 시골에서 나고 자랐긴 하지만 어린 시절 기억이 희미하다. 모든 것이 어렴풋이 기억될 뿐 명확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시인의 기억은 유별나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들, 동네사람들, 유년 곳곳의 모든 사람들을 소환한다. 그는 기억을 각인해놓고 언제든 그 곳을 다시 소환하고 사람과 감정을 불러와 그때의 그사람들을 되살려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만이 시인이 되나 보다. 그러니 나는 애시당초 시인이 되긴 틀렸다.
그는 주술사에 가까워진 사람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 어렴풋한 기억이 다시 선명해지고, 그 마음을 심장에 갖다 대면 다시 두근거리는 설레임이 일렁이고, 나의 닫힌 눈물샘을 열어 눈물을 펑펑 쏟게 하는 그런 사람이다. 시골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이 그의 시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수 도 있겠지만 그는 유년시절을 그리워할뿐 아니라 지금의 소박한 풍경과 애달픈 사랑까지 노래하는 시인이니 걱정하지 말고 그의 시집을 펼치시기를! 그의 마음에 풍덩 빠져보시기를!! 한때나마 근심 걱정 모두 잊고 온전히 시에 집중해보시기를!!!
-장흥-
장흥에서 조금 살다보면 누구든지 장흥사람들이 장흥을 자응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다
하지만 자응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장흥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장흥 사는 사람과 자응 사람은 다르다
자응 장에 가서 칠거리 본전통이나 지전머리를 바지 자락으로 쓸어본 사람이라야 겨우 물짠 자응 사람이 된다
독실보건 백룡쏘건 예양강에 붙은 어느 또랑에서라도 뫼욕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자응에 간이 배고 자응으로 척척해진 사람이랄 수 있다
자응에 아조 뿌리를 내리면 장서 나서 장서 자라고 장가 있는 장고나 장여고를 나온 토백이가 된다
장흥에서 자응으로 가는 데는 십년이 족히 걸리고 자응에서 또 자앙, 장으로 가는 데는 다시 몇십년이 걸린다
거기다가 '자응가'라는 말이 '장흥에'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기에는 너무 먼 거리인데다 비포장도로라서 어지간한 사람은 돈밧재를 넘기도 전에 힘이 파하고 만다
-물은 왜 너에게서 나에게로 흘러오나-
그녀는 내게 손목을 주었을 뿐인데 내 손바닥에 강이 생 겼다 어린 그녀의 손금 같은 강이 흐르고 강가의 돌멩이처 럼 작아진 나는 굳어버린 귀로 물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손 금의 강에 스며든 말은 얼마나 많은 모래 알갱이가 되었을 까 희미하게 그녀가 모래알처럼 웃을 때 나는 모래알 같은 그녀의 웃음에 조금씩 부서져내렸다 그녀의 손목이 모래 톱 같다고 느꼈던 그 순간에 내일은 모래가 되고 오지 않 을 손목에 머리를 기대고 싶었던 나는 울며 졸이며 굳어가 는 조청 같은 나의 생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여린 손목 하나를 강으로 놓아두었다
-칠량에서 만난 옹구쟁이-
요새는 유약이라고 허제 요런조런 색깔을 이삐게도 내 싸제 시체에 화장빨 세우는 격이여 기둥 썩은 집에 뼁끼 칠한 식이제
옹구쟁이 잿물은 딴 거 없어 솔가리 태운 재는 솔가리 태운 재대로 짚가리 태운 재는 짚가리 태운 재대로 뻣신 억새 태운 재는 또 그것대로 색깔이 적저금 달부제이잉 옹 구쟁이라 하면 설익은 잿물은 안 쓰는 벱이여 얼렁뚱땅 만 든 잿물은 겉만 빤지르한 것잉께 잿물이라먼 그래도 한 삼 년은 푹 삭어사써 그런 잿물로 그륵을 궈사 색에 뿌리가 생기제
사람도 그란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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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들녁 -이대흠 널펑네 양반 돼지 한마리 팔고 오는 길에 젤 먼저 국밥집 들러 막걸리 두되 마시고 현찰로 줘불고 밀린 술값까지 탈탈 털어 쥐알려불고 내친 짐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종재기골 양반네 막걸리값까지 개러불고 종묘상 들러 고추 모종값 갚어불고 지물포에 가서 지난저슬에 샀던 창호지값 벡지값 지와불고 지전머리 단골 점방에 가서 묵은 외상값 죽에불고 빚내서 사기는 뭐했던 손지년 빗 한나 현찰로 사불고 걸레짝이 다 된 마누래 빤스 브라자에 지폐 몇장 볼라불라다가 크음 하고 돌아서서 방엣간 떡값 밀린 것 잉끼레불고 농협에 가서 비료값 꼴랑지 짤라불고 집이 가불라고 차부에 들렀는디 널펑네 처삼촌을 만나불고 나서는 또 이바지로 과일 조깐 사서 앵게줄 때게 지갑 열어불고 쐬주 두벵 사 엄버줌서 괴춤 또 풀어불고 슈퍼에 들러 음료수 두벵 삼서 조마니돈 털어불고 풍로 바람에 검불 날리대끼 다 까묵어불고 마침내 차표 한장 딸랑 바까서는 빙골로 빙골로 돌아가는 저 늦가을 들녁 긍께 돼지 한마리 팔고 오는 길에 그 돈을 다 외상값 갚는데 썼다는거 아녀. 참새 방앗간 못 지난거 같은디. 나가 말 안 했는가. 돈 받으면 그 길로 곧장 오라고. 외상값은 무신 외상값이여, 그게 다 핑계 아녀. 임빙할 양반아. 집에 오면 뜨신 밥 차려 놓고 이녁이랑 나랑 묵으믄 되는데 국밥집은 뭐하러 갔당가. 그 돈 받으면 어련히 알아서 나가 다 갚아 분다고 혔는가 안 혔는가. 그거 말고도 급한 거 먼저 갚아야 하는디. 널펑네 삼촌 이바지는 나가 다 사서 줬당께. 암것도 모르면서 인심만 자꾸 쓰고 다닐겨? 근디 손에 든 검은 봉지는 뭐당가. 오메, 오메, 낯짝도 두껍네. 요런 걸 어디서 샀당가. 아따, 나가 괜히 뭐라고 한 것이 아니고. 암만 기둘려도 안 옹께 벌떡증이 나고 오다가 뭔 일이 생겼는가 걱정도 되고 그래서 한 마디 한 건디. 삐지지 마소 잉. 오메, 이녁 얼굴에 단풍 들어 부렀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