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동안 소름 끼쳤다. 100년 내외로 된 작품 속의 세상이 지금과도 무척이나 비슷한 내용들이 보였다. <82년생 김지영>의 큰 틀을 그 시기로 가져다 놓아도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그게 너무 무섭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으니 사회가 쉽게 변할리가 없다. 그들이 부조리하다고 그렸던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모습이 씁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일고십에서 추천도서로 올라온 책은 <경희> 한 편이었지만, 책을 찾다 보니 이렇게 세 명의 여성작가들을 묶어 놓은 책이 있어서 일부러 선정했다. 나혜석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만 탐구해도 좋을 듯 하지만, 그 시대를 알면 각 작가를 좀 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이 책으로 선정했다. 세 명의 여성 작가는 같은 시대를 살았고, 비슷한 듯 다른 삶을 살았으며, 그들의 상황이 비슷한 듯 달랐다. 하지만 그들이 점진적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점 만은 분명히 느꼈다.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에서 여성도 ‘배워야 함’을 이야기 한다. 아는 사람(단지 배운 사람이 아니라)과 무지한 사람은 분명히 다를 수 밖에 없다.
- “먹고 입고만 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알아야 사람이에요. 당신 댁처럼 영감, 아들에게 첩이 넷이나 있는 것도 배우지 못한 까닭이고 그것으로 속을 썩이는 당신도 알지 못한 죄에요. 그러니까 여편네가 시집가서 시앗을 보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가르쳐야 하고 여편네 두고 첩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르쳐야만 합니다.” (<경희>, 14)
- 나는 남만 못한 처지에서 나서 기생의 딸이니 첩년의 딸이니 하고 많은 업심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생장하는 나라는 약하고 무식하므로 역사적으로 남에게 이겨 본 때가 별로 없었고 늘 강한 나라의 업심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이 경우에는 벗어나야 하겠다, 벗어나야 하겠다. 남의 나라 처녀가 다섯 자를 배우고 노는 동안에 나는 놀지 않고 열두 자를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이 겉으로 명예를 찾을 때 나는 속으로 실력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되겠다. 지금의 한마디 욕, 한 치의 미움이 장차 내 영광이 되도록 나는 내 모든 정력으로 배우고 생각해서 무엇보다도 듣기 싫은 ‘첩’이란 이름을 듣지 않을, 정숙한 여자가 되어야 하겠다. 그러려면 나는 다른 집 처녀가 가지고 있는 정숙한 부인의 딸이란 팔자가 아니니, 그 대신 공부만을 잘해서 그 결점을 감추지 않으면 안 되겠다. (<탄실이와 주영이>, 300-301)
특히 나혜석 작가의 대표작 <경희>에서는 그런 내용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전의 가부장적 제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더더욱 여성도 배워야 하며, 알아야 하며, 자신을 성장시켜야 함을 강조한다. 이전의 삶이 좋지 않음을, 자신들의 지위가 어떠한지를 먼저 알아야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기에 그 당시 여성, 특히 여학생이 들어야 했던 거의 모든 험담이 들어 있다. 경희가 들었던 것도, 건너 들은 것들도 많으나 어쨌든 사실에 기반하지 않고, 세태에 휘둘리는 이야기들이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경희는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탄실이 또한 자신의 신분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을 게 분명하여, 어떻게든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한다. 탄실이는 좋은 성정을 지녔다고는 할 수 없다. 욕심도 많고, 그 순간에 대처도 영악하게 한다. 하지만 무작정 욕할 순 없는 것이, 누구나 그런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런 탄실이가 성장하기 위해 몰래 일본으로 갈 정도로 집착한다.
- 열심히 젓고 앉아 있는 시월이는 이러한 재미있는 것을 모르겠구나 하고 제 생각을 하다가, 자기는 조금이라도 이 묘한 미감을 느낄 줄 아는 것이 얼마만큼 행복하다고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저보다 몇 십 백 배 묘한 미감을 느끼는 자가 있으려니 생각할 때에, 제 눈을 빼어버리고도 싶고 제 머리를 두드려 바치고도 싶다. (<경희>, 28)
배움이 의미 있음은 당연하다. 경희는 집안일을 하는 것도 배운 것을 활용하여 좀 더 잘, 제대로 하게 되었으며, 무엇을 하든 자신이 배운 것과 접목시켜 즐겁고 신나는 마음으로 한다. 그래서 행복함을 느낀다. 여기 저기서 자신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듯이 살며, 알면 보이고, 보이면 알게 된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행복을 위해 배우고 또 배우고자 노력하는 신여성이었다.
어쩌면 이는 그 방법 외에는 길이 없어서일지 모른다. 일제시대이기에 책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일본에서 수학한다. 어떻게 해서든 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조금은 씁쓸했던 것이 이러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70~80년대를 거쳐 지금까지 온 게 아닐까 한다. 공부만이 우리의 살길이며, 꼭 배워야 하고, 못 배운 사람을 하대하거나 천하게 여기는 생각이 나온 게 아닐까? 앞으로 우리 시대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에, 백 년 전의 생각 그대로 사는 것에서는 좀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 경희가 종일 일하는 것은 어떤 보수를 바라서가 아니다. 다만 제가 저 할 일을 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경희의 일동일정의 내막에는 자각이 생기고 의식적으로 되는 동시에 외형으로 활동할 일은 많아진다. (중략) 낮잠을 한 번 자고 나면 그 시간 자리가 완연히 티가 난다. 종일 일을 하고 나면 경희는 반드시 조금씩 자라난다. 경희가 갖는 것은 하나씩 늘어난다. 경희는 이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얻기 위하여 자라갈 욕심으로 제 힘껏 일을 한다. (<경희>, 36)
게다가 경희가 하는 일은 결국 우리를 ‘수퍼 우먼’으로 만든다. 여성이 공부를 하고 싶으면, 사회적으로 인정 받고 싶으면 가부장 제도 안에서 주어진 임무인 집안일을 잘 한 다음에 자신의 일도 잘해야 함을 강조한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도 효율적으로 완벽하게 해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외부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것만으로도 대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당연히 여자가 다 처리해야만 한다는 상황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어쨌든 경희의 모습을 보면서 젊어서 저리 힘들게 모든 걸 처리하려다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원한>편은 읽는데 너무 화가 나서 진짜 미칠 것 같았다.
- 저 지옥굴은 면하였으나 장차 어디로 향할까 할 때 지금까지 쓴 경험을 해오던 중에 없던 형용치 못할 설움이 끓어올라와 금치 못할 눈물이 오뉴월 소낙비 쏟아지듯 하였다. / 양반의 집 가문을 흐렸다는 이 씨는 과연 용납할 곳이 없었다. 원통하게도 첩의 누명을 썼으나 손마디가 굵어졌을 뿐이요, 알뜰히도 빨간 몸뿐이었다. 아직도 삼십이 못 된 여자가 길을 헤매며 흑흑 느껴 울었다. (<원한>, 75)
한 사람의 인격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저 과정에서 어찌 욕지기가 나오지 않겠는가… ‘노리개’라는 표현이 딱이었다. 남편이라는 사람도, 첩으로 데리고 간 사람도… 정말 욕하고 싶다… 쌍욕을… 저자가 표현한 ‘빨간 몸’이라는 게 너무 안타까웠는데, 너무 적절해서 더 마음이 저렸다.
나혜석 작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잘 읽히고 의도도 분명하다. 그에 반해 김일엽의 작품은 짧지만 확 와닿는 게 쎄서 읽고 나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김명순의 작품은 솔직히 너무 어려웠다. 묘사나 설명하는 수준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시절에 쓰던 단어들이 지금의 시대와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내용 이해도 어려웠고, 맥락도 못 잡고, 그냥 훅훅 넘어간 부분이 많았다 ㅠ
- 소문 속에서 창조력을 거세당한 채 남성작가에 의해 창작의 대상으로 재현되다가 ‘욕망에 달뜬 사치와 허영덩어리’라는, 신여성을 대표하는 고정된 이미지로 박제화되고 만다. (324)
- 근대 초창기에 사회 개조와 변혁의 선구자라는 역할을 부여받았던 신여성은 어느덧 그러한 가치와 의미를 상실한 채 당신의 온갖 사회적 악덕과 부도덕이 집결되는 비유적, 실제적 장소가 되고 만 것이다. (333)
해설 부분을 보며 이 세 명의 여성 작가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되니 더 마음이 아팠다. 신여성, 모던걸을 못된 걸이라고 희화해 부를 정도로 그들을 성적으로 부패한 인물들로 표현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얼마나 그들에게 척박했을지 상상이 되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 말도 안 되는 회로가 화가 난다. 이혼한 여성은 아직도 사회적으로 낙인 찍고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언제쯤 서로가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할 수 있을까
여성도 사람이다 라는 내용은 경희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이다.
- 경희도 사람이다. 그 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이철원, 김 부인의 딸보다 먼저 하나님의 딸이다. 여하튼 두 말 할 것 없이 삶의 형상이다. 그 형상은 잠깐 들씌운 가죽뿐 아니라 내장의 구조도 확실히 금수가 아니라 사람이다. / 오냐, 사람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게 하지 않으면 누구더러 찾으라 하리! 산정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것도 사람이 할 것이다. (<경희>, 48)
- 이왕 사람이 아닌 노예의 생활에서 벗어났으니 인제는 한 개 완전한 사람이 되어 값있고 뜻있는 생활을 하여야겠나이다. 그리고 사람으로 알아주는 사람을 찾으려 하나이다. (<자각>, 169)
- 그보다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침묵 속에서 발화되지 못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다양한 문학적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럴 때라야 비로소 새롭고 풍성한 한국문학의 시작은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345)
하지만 이는 나혜석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절 배운 ‘신여성’ 작가들이 추구하는 바였다. 그들이 그저 사람으로 대우 받고 싶은, 여성이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 받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고 주장하고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리라. 그들이 내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소수가 내는 목소리는 처음엔 미약해도 들어주는 사람들이 동조하다 보면 그 울림으로 점점 뻗어나갈 수 있으리라. 그들이 낸 목소리를 통해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혜택을 받았으리라. 그러니 우리도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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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12월 도쿄 조선인 유학생 잡지 「학지광」 제3호에 최초의 글 『이상적 부인』을 발표하고, 오빠 경석의 친구인 최승구와 연애 관계를 맺는다. 1915년 아버지의 결혼 강요로 여주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1년간 근무하여 학비를 마련하고, 11월 복학하면서 고등사법과 1학년으로 전입했으나 제대로 다니지 못한다. 12월 아버지가 사망하고, 애인 최승구는 결핵에 걸려 귀국하여 요양을 한다. 1916년 최승구가 사망한 뒤 오빠 경석의 강력한 권유로 김우영과 교제를 시작한다. 1918년 3월 「여자계」 제2호에 나혜석의 대표작이자 문학사적 가치를 지닌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하고, 'H.S.'라는 필명으로 시 「광(光)」을 발표한다. 사립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하고, 4월에 귀국하여 모교인 진명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건강이 안 좋아 그만두고, 집에서 그림 공부를 한다. 9월 「여자계」 제3호에 『회생한 손녀에게」를 발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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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서 엿본 '배운 여자' 에 대한 혐오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계집이 유학해서 많이 배워 건방을 떤다느니, 못 쓰게 되었다느니, 동네 창피하다느니, 철이 안 들었다느니, 시집을 가지 않겠다는 해괴망측한 소릴 해댄다느니, ...온갖 해괴한 배운 여성에 대한 혐오의 말들은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자가 너무 많이 배우면 남자들이 부담스러워 한다, 인기가 없다... 시대가 많이 변한 것처럼 보여도 근본적인 시선이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세대가 쌓아놓은 주춧돌이 있었기에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엔 이 문제에 대해 깨닫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갖고 타파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 개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한 사람으로써, 인격체로써, 온전히 존중받는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