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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다 보면 기억의 밑바닥에 다양한 웃음이 있단 것쯤은 알게 된다. 행복과 직결된 웃음이 있는가 하면, 지금처럼 제어 불능의 웃음이 있다는 것도 모모코 씨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 웃음은 대체로 절망의 끝에서 돌변한 웃음이란 것도 모모코 씨는 일찍이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방금 전 웃음은 또 다른 종류라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직면한 상황은 절망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기쁨은 더더욱 아니며, 굳이 말하면 담담하게 지나가는 시간을 기다리는 웃음이다. 거기엔 뭐가 내포돼 있을까.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에 모모코 씨 자신도 반쯤 질리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질문을 발견했다는 생각도 든다. 질문이 있으면 더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자신에 대한 호기심. 그것이 그저 무언가를 기다리기만 하는 나날의 무료함을 달래 줄 거라고, 모모코 씨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믿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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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건 아니다. 슬픔 따위 이미 익숙하다. 그저, 아아, 그랬구나, 싶은 감정이다." 그저, 아아, 그랬구나 싶은 감정이 한동안 머물다 갔습니다. 처음 겪어보는 할머니의 내적 생활, 낯설었어요. 161페이지 노년의 단편적인 일상 이야기가 에세이가 아니고 어쩌다 소설이 되었을까요?. 너무 슬프지 않기를 읽는 내내 마음을 졸였습니다. 혹시라도 그녀가 독자를 남기고 떠나는 것은 아닐까, 미리부터 겁을 먹고 있기도 했습니다. 일흔넷의 여자가 투박한 손으로 끓이는 수제비처럼 한 모금씩 툭툭 끊어지는 일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이고, 현실과 사유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그즈음의 나이가 쉽게 이입이 됩니다. 남편이 죽었다. 죽어 버렸다. 내가 가장 괴롭고 견디기 힘들 때, 내 마음에 용기를 북돋워 주는 이가 있었다. 내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있을 때, 자유롭게 살라고 진심으로 격려했다. 그건 나, 또 다른 나, 그때 나는 발견했다. 기뻐하고 있는, 나의 마음을, 그랬다. 정말루 이상해, 마음이란 녀석은. 남편은 날 혼자 살게 하려고 죽었다. 배려다. 배려, 저 멀리에 살짝 비쳐 보이는 거대한 존재의 배려다. 그것이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가 찾은, 의미입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자유롭지만 고독한 삶, 한 이불을 덮고 있던 체온을 이젠 더는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통곡을 하던 밤도 있었지만, 무언가를 잃고 나면 그만큼 자유로움이 남아 홀가분한 웃음을 배우게 됩니다. 쓸쓸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그렇다고 유쾌하지도 않은, 그 즈음에 배울 수 있는 다른 웃음의 종류를 알게 됩니다. 젊을 시절 용기 있는 선택 끝엔 자유로운 신여성이 될 줄 알았지만, 사랑하는 이를 만나 그를 중심으로 사는 내내 애써 밝은 표정으로 아이를 낳고 키워냈습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촘촘히 얽혀있던 관계들이 느슨해지고, 가장 가까운 존재가 유일한 대화의 상대가 되어 질문을 쏟아냅니다. 그러니 늙음, 고독함의 목소리는 에세이가 될 수 없으니, 문학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별이 필연이라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여자의 얼굴이다. 하지만 그뿐일까. 모모코 씨는 여자의 목 안에 뜨거운 응어리가 있다는 걸 알아챘다. 여자는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수많은 사람, 그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것 같았다. 어릴 적 화상의 흔적이 고독함의 세월만큼 켜켜이 주름지고, 집안 이곳저곳 살아온 세월만큼 흔적이 쌓여도 이젠 그마저도 받아들이게 되는 여유랄지 자유로움이랄지, 몇 해가 지난 용도를 다한 달력은 그대로 걸려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중입니다. 소음이라곤 키우던 고양이가 죽은 뒤로 겁 없이 드나드는 쥐가 내는 부스럭 소리가 전부인 일상입니다. 그 소리도 없을 만큼 고요해지면, 아직 이 세계에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뭘 알면 좋을까, 멀 깨닫게 되려나, 아무 결실도 없다. 기대했던 것이 기대한 대로 나타나 주지 않는다. 속삭임도 없다. 외부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내부에선 얼마 안 되는 자신감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오그라들었다. 어쨌거나 믿을 건 나 하나뿐인데, 그런 자신에게도 배신당한 듯한. 먼 산의 능선에 초점을 맞추고 두서없는 기억들이 안부를 묻는 삶, 희미해져가는 오늘 뒤로 뚜렷하게 떠오르는 과거를 대할 때마다 나는 그 옛날의 존재들과 다시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 뭐 할까를 묻는 대신 그때 왜 그렇게 살았는지 생각하느라, 가물거리는 눈을 먼 초점에 맞추고 사색을 하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오래전 떠나온 고향 사투리는 나로 인해 누군가에게 옮아간 듯합니다. 동경하던 꿈을 누군가에게 물들이며 새봄을 맞습니다. 팥죽 소금이란 단어처럼, 웃음이라고 읽었지만 더 서글픈 감정이 진해지고, 파릇한 손녀의 새봄을 맞으며 끝을 맺지만 어쩐지 할머니의 남은 시간이 앞당겨진 것만 같아서 저는 내내 싸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울컥거렸습니다. "할머니의 내적 생활을 쓰고 싶었습니다. 노년이 되어서야 얻을 수 있는,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감각, 그 부분을 소설로 써나가고 싶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할머니의 내적 생활이 담긴 이야기들을 기대해봅니다. 낯설었지만, 그리운 할머니의 존재를 다시 만난듯 뭉클했어요. "슬픈 건 아니다. 슬픔 따위 이미 익숙하다. 그저, 아아, 그랬구나, 싶은 감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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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매우 의미심장하지만 책 안에는 나홀로 된 할머니의 조용한 외침이 있다. 평생을 가족에게 둘러쌓여서 살았던 한 할머니가 남편을 읽고 자식들과 멀어지고 속으로 읖조리는 이야기들. 젊을때는 모른다. 늙는게 무엇인지. 남편을 잃는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다양한 감정들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늙음을 경험해보기 위해 읽어보았는데 늙음을 대비하기에 나쁘지 않은 책인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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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와카타케 치사코는 이 작품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55세가 되어서 소설 강좌를 듣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팔 년여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 소설을 완성하였다. 소설은 데뷔작이었고 작가의 나이는 63세였다. 소설 안에서 모모코 씨의 남편이 죽는데, 작가 또한 남편의 죽음 이후 소설 강좌를 듣고 또 바로 자신의 내용을 소설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와카타케 치사코 / 정수윤 역 /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 토마토출판사 / 167쪽 / 2018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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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sns에서 이 책에 대해 알게 된 후 책 소개를 읽고 흥미를 갖게 되어 읽게 되었다.
실제 종이책을 접하지 않고 바로 전자책으로 구입하여서 분량이 어느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실제로 읽어보니 분량도 작고 짧은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어 부담스럽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을 수 있었다.
노년의 여성이 겪는 어려움, 자유, 추억 등을 소재로 한 책으로 이 또래 여성들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을 특히 접하기 어려운데
노년의 여성 작가가 직접 자기 나이대의 여성을 소재로 쓴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좋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나이대, 직업 등과 상관없이 다양한 여성 작가, 여성 화자의 글을 읽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