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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칼잡이...[츠바키 산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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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세다. 칼싸움으로 피가 튀고 살이 떨어져나가는 영화에서도 보는 이들을 실실 웃기면서 끌어당긴다.   1962년에 만든 <츠바키 산주로 Tsubaki Sanjuro>도 비슷한 흑백 영화였다. 피끓는 젊은이들을 두고 보지 못해서 끼어들어 도와주는 떠돌이 칼잡이를 그렸는데, 그의 칼 아래 여러 사내가 죽어날 때는 섬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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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세다.

칼싸움으로 피가 튀고 살이 떨어져나가는 영화에서도 보는 이들을 실실 웃기면서 끌어당긴다.

 

1962년에 만든 <츠바키 산주로 Tsubaki Sanjuro>도 비슷한 흑백 영화였다.

피끓는 젊은이들을 두고 보지 못해서 끼어들어 도와주는 떠돌이 칼잡이를 그렸는데,

그의 칼 아래 여러 사내가 죽어날 때는 섬뜩하지만 일을 풀어가는 모습을 보면 웃을 수밖에 없었다.

 

2.

고을을 다스리는 영주가 어디로 떠난 사이에 고을은 두 패로 나뉜다.

한 쪽은 벼슬아치들의 썩은 모습에 들고 일어난 젊은이들이고,

다른 쪽은 그들을 잡아 없애고 고을을 손에 넣으려는 사람들이다.

 

젊은이들은 고을의 시종장관에게 나쁜 무리들을 잡아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알렸지만,

시종장관은 고개를 젓는다. 오히려 이들한테 나서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들이 치안국장 기쿠이한테 말한다.

치안국장은 도와주겠으니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을 모으라고 했다.

 

이들이 모여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엉뚱한 사내의 소리가 들린다.

놀라 돌아보는데 떠돌이 칼잡이(미후네 도시로)가 나타난다.

"내가 보기에는, 저를 바보라 여겨도 마음을 쓰지 않는 시종장관이 올바른 사람이고,

오히려 치안국장이 나쁜 사람이야...너희들 목숨이 위태롭구나..."

아니나 다를까, 기쿠이가 보낸 칼잡이들이 이들이 있는 집을 둘러싸고 순순히 나와 무릎을 꿇으라 한다.

 

3.

기쿠이를 따르는 무리와 이들에 맞서는 사람들이 한 판을 벌이는 영화다.

잘못을 바로 잡으려 나선 이들은 힘이나 꾀가 없이 끓는 피만 갖춘 아홉 사내다. 모두 애송이들이다.

그런데 기쿠이 무리는 사람이 많고 싸움을 잘 하는 무로토 한베이(나카다이 타쯔야)까지 갖추고 있다.

처음부터 안 되는 싸움이다. 그저 달걀로 바위치기를 하는 꼴이다.

 

영화에선 떠돌이 칼잡이가 힘이 되고 꾀를 부려서 애송이들이 어려움을 뚫고 나아가지만,

세상은 꼭 그렇게 도와주리라는 법이 없다. 오히려 좋은 뜻을 짓밟으려는 사람이 더 많다.

영화 속의 애송이들처럼 떠돌이 칼잡이를 만나기가 쉽지 않고, 거꾸로 주저앉기 쉽다.

괜스레 노련하고 꾀밝은 이들의 먹이감이 되기 쉽다. 뜻만 높이 치켜세운다고 일이 풀리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감독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애송이들의 쫗은 뜻을 살려주었다.

세상에 무릎을 꿇지 않고 올바른 일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이 좋아짐을 알리는 것일까?

살맛 나는 세상을 보여주려면 그래야 할 것이지만,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영화에 나오는 떠돌이 칼잡이 같은 이를 만나지 못한 애송이들이 많았을 것이고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4.

영화 속에서 눈길을 끌어가는 이는 따로 있었다. 감독이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삶과 죽음에 매여 살기보다는 뛰어넘은 듯 보여준다. 다른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시종장관의 늙은 아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때의 일본 아낙네들이 했듯이 검게 물들인 이빨을 드러내면서. 이런 모습은 자주 보기 어렵다.

그이는 세상에 바쁜 일도 무서운 일도 없이 느긋하기가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기쿠이 무리에 사로잡혔다가 달아날 때, 담을 넘어가야 하는데 못 넘어가겠다며 주저앉아서 버틴다.

칼을 들고 죽이러 따라오는 데도 그렇게 느긋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산주로의 속이 탄다.

 

게다가 산주로를 보고서도 쓴소리를 내뱉는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아요...당신은 너무 날카롭군요. 뽑아든 칼과 같아요.

당신은 잘 자르지만 좋은 칼은 칼집에 들어있죠."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싸움판에서 베지 않으면 베이는 데도 사납게 살지 말라고 한다.

 

그 아내에 그 옆지기라 했던가. 시종장관도 다를 바가 없었다.

처음 조카인 아자카(카야마 유죠)가 썩은 무리를 내쳐야 한다고 알리러 갔을 때도 서두르지 않는다.

"내가 착한 사람으로 보이냐? 어쩌면 그들 뒤에 내가 있을지도 모르지...가장 나쁜 건 네 생각 너머에 있다"

제 목숨이 오락가락했는데도 나쁜 무리들을 탓하기보다는 마무리를 더 잘 할 수도 있었음을 아쉬워한다. 

"증거를 모은 다음 이야기를 해서 물러나게 할 수도 있었는데..."

칼부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렇게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산주로 무리가 사로잡은 사내도 그에 못지 않다.

벽장에 갇혀 있다가도 밖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방으로 불쑥 나와 한 마디 하며 나선다.

때로는 같이 웃고 춤추기까지 한다. 그러다 "왜 당신이 나와서..." 하면, 머쓱한 듯 다시 쏙 들어가버린다.

감독의 우스개 솜씨가 잘 드러났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따뜻한 눈길도 곳곳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5.

츠바키 산주로를 맡은 미후네 도시로의 모습은 보기에 좋았다.

옷 속으로 손을 집어 넣어 어깨를 씰룩이거나 손으로 얼굴을 긁거나 턱수염을 어루만지는 모습은

그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몸짓이다.

듬직한 몸에다 날랜 칼 솜씨와 살짝 우스꽝스러운 몸짓까지 보여주는 덕분에 볼수록 끌리는 배우다.

 

이에 맞서는 이로 나오는 무로토 한베이 노릇의 나카다이 타쯔야는 큰 눈을 왕방울 굴리듯 했지만,

<대보살 고개>에 나올 때처럼 눈길을 확 잡아끌지는 못했다. 

 

이야기를 촘촘히 엮어내고 어떻게 이어질지 가슴을 졸이게 하는 감독의 솜씨가 돋보였지만,

이 감독의 영화에선 구경거리로 칼잡이들의 싸움 만한 게 없다.

 

처음 애송이들을 지키려 떠돌이 칼잡이가 나섰을 때나,

무로토 한베이를 만나러 간 떠돌이 칼잡이를 믿지 못해 애송이 넷이 몰래 따라갔다가 혼쭐이 날 때나,

떠돌이 칼잡이가 꾀를 써서 무로토 한베이를 떼어놓고 그 무리를 베어넘길 때는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손에 땀이 났다.

 

그런데 끝무렵에 츠바키 산주로와 무로토 한베이가 서로의 목숨을 걸고 칼싸움을 벌일 때는

두 사람의 사이를 너무 가깝게 잡은 것이 아닐까 싶다. 

마주 보고 칼싸움을 하는 이들이 그렇게 가까이 할 수가 있을까?

보는 이들로 가슴을 졸이게 하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싸움하는 거리로는 맞지 않아 보였다.

 

기쿠이 무리에 끼인 구로후지의 집은 동백나무로 둘러싸여 아름다웠는데,

그 집에서 애송이 무리들이 숨어있던 옆집으로 개울이 흐르고 동백꽃도 같이 흘러나오는 모습은

흑백이 아니라 컬러로 보여주었다면 아주 아름다웠을 것이다.

붉은 동백꽃과 흰 동백꽃이 같이 나오는데 그 빛깔을 눈으로 제대로 볼 수가 없어 더더욱 아쉬웠다.

 

6.

떠돌이 칼잡이의 빼어난 칼솜씨에 놀란 애송이들이 부러운 듯 "대단하십니다" 했을 때, 대뜸 맞받는다.

"멍청이들, 너희는 몰라..."

제 칼이 언제까지나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언제든 저보다 칼을 잘 쓰는 사람을 만나면 죽을 수 있는 게 칼잡이라는 것을.

 

시종장관의 아내가 떠돌이 칼잡이한테 이름을 물었을 때, 그는 방 밖을 둘러보다가 동백나무로 둘러싸인

울타리를 보면서 "츠바키 산주로 (동백나무 서른 살)요...나이는 이제 마흔에 가깝지만요..." 한다.

얼렁뚱땅 이름을 지어낸 덕분에 영화 이름까지 <츠바키 산주로>가 되었다.

 

떠돌이 칼잡이와 애송이들이 나중에 작전에 맞춘 신호로 동백꽃을 골랐는데,

개울물을 따라 동백꽃이 어떻게 내려올지 애타게 기다리게 하는 것도 보기 좋은 영화였다.

 

만든 지 쉰 해나 지난 영화며 디뷔디로 보기가 어렵던 것이라 나오자마자 샀다.

화면은 깔끔하지는 않으나 그런대로 볼만 했으며, 소리는 괜찮았다.

우리말 옮김은 그리 좋지 못했다. 가끔 눈에 거슬렸다.

덤으로 예고편은 담아 놓아 디뷔디 노릇은 한 셈이다.

 

예스24의 상품에 나오는 '제품 소개'의 글은 영화와 조금 다르다. 본디 글이 틀려 예스24도 틀려버렸다.

한국영상자료원의 글을 옮긴 듯한데, '단칼에 목이 날아가고...' 이 대목은 고쳐야 한다. 목은 멀쩡하다.

b******g 2012.04.22. 신고 공감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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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칼은 칼집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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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츠바키 산주로는 감독의 또 다른 영화인 요진보의 자매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요진보의 주인공이 그대로 이 영화 츠바키 산주로에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하게 이 영화를 바라보는 것이고, 실제로는 그 주인공 두 명이 같은 인물인지는 알 수 있다. 그냥 떠돌이 무사가 어느 마을에 나타나 문제를 해결한다는 그 기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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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츠바키 산주로는 감독의 또 다른 영화인 요진보의 자매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요진보의 주인공이 그대로 이 영화 츠바키 산주로에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하게 이 영화를 바라보는 것이고, 실제로는 그 주인공 두 명이 같은 인물인지는 알 수 있다. 그냥 떠돌이 무사가 어느 마을에 나타나 문제를 해결한다는 그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면 두 명의 공통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사람들이 그에게 이름을 물었을 때, 농담처럼 산주로라고 대답을 하는 것에서 이 두 인물이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도 그 인물이 자신의 이름을 대답하기 전에 주변의 풍경을 보면서 적당히 대답을 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굳이 다른 인물이 벌이는 각각 다른 이야기라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이 두 영화 요진보와 츠바키 산주로는 연결이 될 수밖에는 없는 부분들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는 이 반복을 조금 더 흥미롭게 풀기 위해서 츠바키 산주로의 이야기에 조금 다른 양념을 더하고, 속도감있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영화 츠바키 산주로는 기본적으로 당시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 확실히 상영시간 자체도 짧고, 그 이야기도 상당히 빠르게 진행이 된다. 무엇보다도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에 조금은 길게 설명이 들어가는 부분이 이 영화 츠바키 산주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그 부분이 조금 더 이야기를 타이트하게 만들어서 비슷한 이야기의 반복임에도 영화를 보는 이들이 지루하게 느끼지 않게 하려한 감독의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 츠바키 산주로는 요진보의 이야기와 그 기본적인 부분을 공유한다. 조금 다른 부분이라고 한다면, 상대가 하나로 줄어들었다는 것과 츠바키 산주로를 따르는 글자 그대로 지혜는 부족하지만 정의감은 강한 젊은이 무리가 등장해 계속 사고를 친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까지도 이 영화를 속도감있게 진행이 되게 만드는 좋은 조건을 만들어낸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들은 가끔 그 시대의 영화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바로 이 영화 츠바키 산주로도 그런 영화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산주로를 칼에 비유하는 좋은 칼에 대한 이야기는 어쩌면 전후의 일본인이 2차대전의 전범국으로서의 자신들에 대한 고민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m******d 2016.11.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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椿三十郞(1962)-요짐보 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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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산쥬로는 전해 전작품 요짐보의 성공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요짐보가 10점 만점에 9점5 라면 산쥬로는 8점을 주겠다. 어쨌든 재미있다. 어쩌면 제작진과 감독도 요짐보가 그렇게 대성공(대성공이었겠지)을 하리라고 예상했을까? 이 이야기는 작년에 요짐보였던 산쥬로가 그 마을을 떠나서 이곳을 지나다가 겪는 일이다. 그런데 그는 왜 이리 떠돌아 다닐까? 최고 무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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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산쥬로는 전해 전작품 요짐보의 성공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요짐보가 10점 만점에 9점5 라면 산쥬로는 8점을 주겠다.

어쨌든 재미있다. 어쩌면 제작진과 감독도 요짐보가 그렇게 대성공(대성공이었겠지)을 하리라고 예상했을까?

이 이야기는 작년에 요짐보였던 산쥬로가 그 마을을 떠나서 이곳을 지나다가 겪는 일이다.

그런데 그는 왜 이리 떠돌아 다닐까? 최고 무사인데, 일본 근대 역사를 조금은 알아야 나는 모른다.그는 머리와 검술이 경지에 이른 최고 무사이다.(+외모,이런 남자를 보고 반하지않을 여자는 없다. )

영화가 시작되면 어느 한적한 사당 방에 20대 초반의 한 다스 젊은이들이 모여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며 결의하고 일어나는데 갑자기 방 뒷편에서 웃는 소리가 나더니 하품을 하며 저 잘생긴 무사가 나온다. 엿듣고 아는척 하는것은 실례지만 내용이 모른척 지나갈수가 없다면서,...(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처럼, 여기서 미후네 도시로가 레트 버틀러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잠깐 엉뚱한 생각) 드라마가 시작된다.

너무나 요즘 재밌게 보는 사람으로서는 이 리뷰를 쓰는것 자체가 즐겁기에 구로자와 감독이 시나리오도 쓰셨다고 하던데 천재 감독!

줄거리는 생략하고, 츠바키 산쥬로는 이 검객 이름인데 자신의 본명을 말하지않고 요짐보에서도 집 앞 저 멀리 보이는 어떤 나무를 보고  *** 산쥬로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분명히 츠바키 동백꽃 산쥬로 삼십대라고 한다.

동백꽃이 나중에 신호로 쓰이는 장면, 그 두집 구조는 정말 재밌고 아름답고 그런 깨끗한 개울물이 집 마당을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동백꽃이 아주 다발로 온통 피었다. 아름답다. 그런데 이 동백꽃을 촬영진이 맨날 바꾸어 만들었다고한다. 촬영내내

구로자와 영화에는 꼭 한 여자씩 밖에 등장하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두 여인이 나온다. 엄마와 딸 그런데 엄마는 왜 입안을 빨갛게 칠해서 입안이 흑백이니까 까맣게 만드는지 옛날 가부키던가? 그때도 입안 혀를 새빨갛게하고 입술 얼굴은 하얗게해서 참 이상하던데 거미의 성에서 성별이 모호한 귀신도 그렇더니 일본 문화는 참 이상하다.

그게 좋다고 옛 일본 여인들은 그랬는지 너무 기괴한 취미이다. 구로자와 감독의 영화를 20여일전에 처음 봤을때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음향이 굉장하다. 보는것 마다 그러니, 같은 시대 헐리웃 영화들은 스펙타클 장면에서 계속 실재 소리를 안내고 조금후 꼭 팡파르며 그 시대 음악이 나와서 참 지루하다. 이런것이 구로자와와 헐리웃 차이라고 느끼고 구로자와 감독이 소리에는 더 세련되었다.

요짐보는 대쉴 해밋의 붉은 수확과 또 한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역시 미후네 도시로는 매력적인 무사, 그는 감독이 역이 늑대와 영리한 개 같은 사나이라고 설명해서 그 동물들 행동에서 힌트를 얻어서 어깨를 들썩 거렸다고. 산쥬로는 품위있고 머리가 뛰어나지만 가식이 없고 격식과 의례를 벗어나서 자유로운 사람이라서 떨어진 옷에 밥도 막 먹고 아주 마쵸적으로 행동한다. 자주 긁적이면서, (이즈음 미후네는 너무 남성적이라서 징그럽기까지...)

그런데 만약 헐리웃 파티에서 미후네 도시로가 이런 제스쳐를 한번만 보이면 헐리웃 사람들은 꽤 좋아했을것이다.

구로자와 감독이 촬영중 한장면을 보여준다. 미후네 도시료와 상대 이 사람 이름이?? 수십년후 란과 카게무샤의 주인공이 될 배우 둘이 촬영장면을 찍는데 구로자와 감독이 옆에서 본다. 키가 정말 크다. 그때도 검은 선글래스와 모자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이 두사람 촬영 장면이 거의 영화와 같은 속도이다. 구로자와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말도 너무 잘타고 검술 실력도 뛰어나다.

게다가 미후네 도시로가 있었으니 영화 흥행은 말할 것이 없었겠다.

 

 

 마지막 결투장면,갑자기 피가 용솟음쳐서 놀랐다.

 나카다이 다쓰야는 미후네와 반대편에 있는 입장이지만 둘은 고용된 무사이다. 서로는 바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안다. 그러나 데츠야가 성질이 더 급하고 미후네는 느긋하다. 조금 더 능구렁이

그래서 미후네는 그냥 가자 하지만 데츠야는 안된다.오늘 결판을 안내면 일생 내 치욕으로 신경쓸것 같다해서 결투를 꼭 신청한다.

하나는 죽어야는데 서로를 마음속에는 좋은 친구될수 있지만 입장이 달랐을뿐인데

 

둘은 바로 다음작 천구과 지옥 현대극에서는 둘다 젊잖고 눈에 힘빼고 딱 그입장이 되는것이 모르는 사람은 그사람이었어? 할정도

 

 

 

귀엽다.요짐보와 산쥬로 모습이다. 키크고 안경쓴 인형은 구로자와 감독 왼쪽 옆 뚱뚱이는 요짐보에서 기막히던 사람, 왼쪽 오른쪽 둘씩은 미후네 도시로와 나카다이 다쓰야 두 영화 모습, 가운데 누운 인형은 산쥬로, 정말 똑같이 만들었다. 귀여워~

산주로를 뒤따르는 젊은 아이들은 어미 백조를 따라다니는 오리떼 같다.

 

 

k***9 2016.08.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