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7%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소설 읽기의 즐거움
"소설 읽기의 즐거움" 내용보기
한국 현대문학 100년을 대표하는 소설들은 한 권의 책으로 만난다. 참으로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장편소설은 없고 단편소설뿐인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소설 읽는 즐거움의 극치를 맛볼 수 있다. 이 책의 후속 작업으로 '장편소설 베스트 10'을 기획해서 출판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이 소설집에는 이상의 '날개', 김동리의 '무녀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
"소설 읽기의 즐거움" 내용보기
한국 현대문학 100년을 대표하는 소설들은 한 권의 책으로 만난다. 참으로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장편소설은 없고 단편소설뿐인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소설 읽는 즐거움의 극치를 맛볼 수 있다. 이 책의 후속 작업으로 '장편소설 베스트 10'을 기획해서 출판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이 소설집에는 이상의 '날개', 김동리의 '무녀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의 '동백꽃',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김동인의 '감자', 황순원의 '소나기' 등 우리가 국어 시간을 통하여 접해본 우리 현대소설의 고전들을 만날 수 있다. 발표 당시 '감수성의 혁명, 문체의 혁명'을 이루었다는 평을 들었던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중심으로 이전의 작품이 9편이고, 그 이후의 작품이 11편으로 시대의 균형도 잘 맞추고 있다고 하겠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김승옥 이후의 작품들에 좀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 이전의 작품들도 물론 뛰어나긴 하지만 김승옥 이후의 작품들(손창섭의 '비 오는 날'은 예외로 하고)에서 신선함과 단편소설로서의 완결된 짜임새와 30대인 내가 느끼는 삶의 진실성 문제 등에서 공감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자신의 순수했던 과거와 만나게 되는 안개 가득한 무진으로의 여정을 그린, 안개가 너무나 인상적인 '무진기행', 산업화의 물결 속에 사라진 70년대의 우리 고향으로 가는 세 사람의 이야기인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서울에 정착하고 싶어하는 어머니에 얽힌 추억을 그린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이라 생각되는 '엄마의 말뚝', 귀향을 통해 내 자신이 애써 부정하고 있던 어머니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 어머니와 화해하게 되는 이청준의 '눈길', 참호를 파다 발견한 유골과 25년 동안 아버지를 기다린 어머니의 삶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그린 '아버지의 땅' 등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소설의 성찬을 즐길 수 있다. 이전의 작품에서는 인생의 변두리로 밀려난 세 노인의 이야기인 이태준의 '복덕방', 음습한 폐가와 40일이나 계속되는 장마가 빚어내는 우울한 분위기와 불구와 같은 인생들을 그린 손창섭의 '비 오는 날'이 새롭고 좋다. 좋은 소설을 읽는다는 것, 읽을 수 있다는 것, 아니 그런 좋은 소설이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행복하다.

[인상깊은구절]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들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j***g 2002.10.09.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떠나자. 무진으로
"떠나자. 무진으로" 내용보기
「무진기행」. 문학을 전공했다는 놈이 오늘에서야 읽었다. 작가와 같은 이름을 가진 대학 동창 하나가 1학년 땐가,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자고 제안했던 게 생각난다. YEFF라는 얼토당토 않은 모임의 세미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놈으로서는 그나마 몇 안되는, 주워들을 거 중에서 좋은 거 하나 골랐던 셈인데, 일고 나서 뭔소린지 몰라서 쩔쩔매던 꼴이 생각난다. 추억을 빙자해서
"떠나자. 무진으로" 내용보기
「무진기행」. 문학을 전공했다는 놈이 오늘에서야 읽었다. 작가와 같은 이름을 가진 대학 동창 하나가 1학년 땐가,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자고 제안했던 게 생각난다. YEFF라는 얼토당토 않은 모임의 세미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놈으로서는 그나마 몇 안되는, 주워들을 거 중에서 좋은 거 하나 골랐던 셈인데, 일고 나서 뭔소린지 몰라서 쩔쩔매던 꼴이 생각난다. 추억을 빙자해서 남 험담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난 그때 「서울 1964년 겨울」을 한번 훑어보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그로부터 10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무진기행」을 읽었건만 뭔소린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감수성 없고 똑 떨어지는 설명 좋아하는, 한마디로 하면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나같은 족속들은 이런 소설을 읽고나면 대뜸 해설을 찾는다. 남들 다 한마디씩 하는 이런 소설에 대해 나 역시 한마디 할 거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해설이 없거나 그 역시 너무 어렵다면? 아무래도 좋다. 우리네 인생은 "나도 읽어봤다"라고 한마디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인내를 초월하는 자존심으로 끝까지 읽어내기도 한다. 그러고나면 스스로가 대견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책에 실린 해설은 간단하다. 발표 당시 감수성의 혁명, 문체의 혁명을 이룬 획기적인 작품. 무진 = 진실된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으로 고뇌하던 절은 날의 기억을 담고 있는 곳. 서울 =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돈과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곳. 순결한 영혼의 공간과 세속적 욕망의 공간 사이의 방황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 통시대적인 보편성을 확보했다. 꿈이 먼저인지 해몽이 먼저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무진은 "하여튼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 가는 곳이고, "스스로를 모멸하고 오욕을 웃으며 견디는" 곳이다. 그리고 "세무서장으로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무진에 어울리는 사람"이고, 바빠서 "자랑스러워 할 틈도 없이" 바쁜 사람은 서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어디서 굴러온 줄도 모르는 음악선생"은 자신의 색시감이 되지 못한다고 강변한다. 멋지다. 명쾌하다. 딱 떨어지는 설명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어차피 가공의 장소라지만 무진과 서울의 중간지대로 광주를 설정한 건 좋다. 바다와 안개가 있다는 말을 보곤 난 해남을 염두에 두고 읽었기도 하다. 문제는 서울을 떠났음을, 그리고 무진에 가까워졌음을 깨닫게 하는 매개체로서의 미친년이다. 이성과 감성의 중간지대로서의 미침? 좋다. 일단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 가지만 무진에서의 자살한 여자에 가면, 이건 미친 여자까지 다시 헷갈린다. 그리고 무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구성도 마찬가지. 趙君과 朴君이 대비를 이룬다면, 인숙의 상대는 '나' 아니면 자살한 여자다. 여기서 '나'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서울과 무진 사이에서 방황하는 전형적인 인상형으로서의 설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숙의 상대자가 자살한 술집 여자라면 이는 서울 사람으로서의 인숙과 무진사람으로서의 술집 여자와의 대비를 노린 설정이 될 것이다. 각기 명쾌한 설명은 안된다. 인숙의 맞상대로서의 '나'가 결국 서울 사람일 수밖에 없다면, 이는 반대로 인숙은 무진사람이라는 뜻인가, 아니면 역시 서울 사람이라는 뜻인가. 후자 역시 마찬가지로 문제다. 과연 자살한 술집 여자는 어떤 점에서 무진을 대변하는가. 어쩌면 이런 식의 문제제기 자체가, 내가 이 소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함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하긴 이 모든 구조가 나같은 놈에 너무도 명쾌하게 보인다면 그건 출간된지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목받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야말로 도식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문학이란 원래 그런 것 같다. 문학이라는게 결국 사람 사는 얘긴데, 사람이라는게 그리 간단치 않다는 거다. 그래서 문학이든, 영화든 예술이 한 캐릭터만 부각시키게 마련이고, 이에 익숙해진 우리는 복잡한 캐릭터(실은 누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만나면 어떻게든 뜯어서 마음대로 붙이려는게 아닌가. 하지만 사람을 뜯었다가 다시 붙이지 못하는 한 문학 속의 인물도 마찬가지다.///
k****9 2001.12.2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안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안개" 내용보기
처음 을 읽었을때, 무진에 꼭 한번 가보리라 생각했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무진게 가보지 못하고 있지만... 책 내용과 관계없이 '안개'라면 무작정 좋아하고 안개를 맞으려고 밤을 새워 기다려 보기까지 하던 철없던 시절, 무진=안개라고 미화시키던 동경의 장소였던것 같다. 이제 다시 을 읽으며 20여년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게된다. 안개는 영화속에서 보는 아름다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안개" 내용보기
처음 <무진기행>을 읽었을때, 무진에 꼭 한번 가보리라 생각했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무진게 가보지 못하고 있지만... 책 내용과 관계없이 '안개'라면 무작정 좋아하고 안개를 맞으려고 밤을 새워 기다려 보기까지 하던 철없던 시절, 무진=안개라고 미화시키던 동경의 장소였던것 같다. 이제 다시 <무진기행>을 읽으며 20여년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게된다. 안개는 영화속에서 보는 아름다운 로맨스의 장치도구도 아니며, 안개속에 둘러쌓여 야릇한 흥분을 느끼던 20대 초반의 청춘도 아니다. 그것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고뇌와 번뇌의 시간이며 공간이다. 무진을 떠나 서울로 향하면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주인공처럼 순수한 영혼과 세속적 욕망 사이를 구분지어놓은 울타리가 안개인 것이다. 또다시 20년후, <무진기행>을 대할때 나는 과연 부끄러움없이 읽을수 있을까?

[인상깊은구절]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s*****y 2000.05.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