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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기억-양애경,『맛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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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기억- 양애경, 『맛을 보다』          양애경의 시는 감각으로 피어나는 기억의 풍경과 맞물려 있다. 감각으로 저장된 기억은 쉽게 말하면 몸에 새겨진 기억의 흔적을 의미한다. 머리는 애써 잊으려 하지만 몸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감각화된 기억이다. 따라서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이러한 기억은 확연한 감각으로 시인의 현실 속으로 파고든다. 시간의 파괴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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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기억

- 양애경, 『맛을 보다』

 

 

 

 

 

양애경의 시는 감각으로 피어나는 기억의 풍경과 맞물려 있다. 감각으로 저장된 기억은 쉽게 말하면 몸에 새겨진 기억의 흔적을 의미한다. 머리는 애써 잊으려 하지만 몸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감각화된 기억이다. 따라서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이러한 기억은 확연한 감각으로 시인의 현실 속으로 파고든다. 시간의 파괴적인 흐름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 기억의 감각은 양애경 시의 감각을 살아있게 만드는 시적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감각은 생명의 징표이다. 감각이 없는 생명은 이미 죽은 생명과 다를 바 없다.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져 갈 수밖에 없는 과거의 흔적들을 감각적으로 기억함으로써, 양애경은 그녀만의 독특한 시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여름 방학」이란 시를 먼저 보도록 하자. 어린 시절 ‘병천’의 추억을 시화하고 있는 이 시는 “해마다 여름이 오면” 떠오르는 기억의 감각을 시의 언어로 펼쳐내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기억 속의 감각은 무엇보다 몸의 감각으로 새겨져 있다. 병천에 가는 날이면 시적 화자는 또래아이들과 언니들이 빨래를 하는 냇가의 상류로 올라가 옷을 벗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풍덩 물의 탄력을 깨고 얼굴을 묻으면” 햇빛 줄기는 수면에 금가루로 떨어져 어룽졌고, “배꼽 주위를 톡톡 건드리는 송사리의 입/얼굴과 발목을/살며시 감아오는 물풀들”로 하여 어느새 봉곳해지는 가슴 때문에 시적 화자는 “이상하고 간지럽고 부끄러운 기분”에 빠져들기도 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만큼 긴/나이를 지나” 무의식 깊이 숨어 있던 기억 너머의 이러한 감각은 “여름 방학이 되면 다시 열려서…” 시적 화자의 온몸을 뜨겁게 달군다. 감각의 영원회귀(반복)는 “물풀의 간지럽고 서걱이는 감촉”과 더불어 화자의 몸속 깊은 곳에서 일순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의 감각은 「첫 뺨」이라는 작품에서도 표현되고 있다. 「여름 방학」에 시화된 기억과는 다른, 어떻게 보면 당하는 소녀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이 시는, 감각으로 현전(現前)하는 기억 속의 ‘입맞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40년 전 “여자중학교 1학년생 처음 하복 입은 날”에 벌어진 이 갑작스런 사건을 시인(화자)은 “뺨에 묻은 침과 냄새”로 뚜렷하게 기억한다. ‘너 안 우니’라고 자꾸 되묻는 친구 계집애의 ‘당연한’ 질문과는 상관없이 “그럴 땐 울어야 하는 건지/왜 울어야 하는 건지”를 생각하는 한 소녀의 시적 정황은 4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감각으로 살아남아 시의 세계로 호출되고 있다. “대체 며칠을 안 닦으면 그런 냄새가 나는 걸까요”에 드러나듯, 어린 소녀의 “첫 뺨을 훔친” 그 남자의 냄새는 결코 향기로운 것이 아니었다. 향기롭지 않은 냄새를 40년이 넘은 순간에도 기억하는 것에 이 시의 핵심이 있다면, 시인(화자)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러한 사건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는 것일까?

 

 

하긴 그 입냄새

여름에 역 앞 벤치에 누운 사람들 앞을 지날 때

아직도 끈질기게 따라오곤 해요

내 첫 뺨을 훔친 노숙자 아저씨

아마 지상에 안 계시지 싶은데

저 세상에서

이는 닦으셨는지요

- 「첫 뺨」 마지막 연

 

 

기억은 어떤 계기가 주어져야만 현실화된다. 따라서 무의식의 세계에 깊이 묻혀 있는 기억일수록 이러한 계기를 밝히는 일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위에 인용한 부분에서 드러나는바, 시인은 역 앞 벤치에 누운 사람들이라는 현실적 계기를 통해 기억 속에 새겨진 그 남자의 입냄새(감각)를 떠올리고 있다. 감각이 감각으로 한정되지 않고 윤리로 확장되는 지점을 이 시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거니와, 양애경 시에 펼쳐지는 감각의 특성은 무엇보다 이러한 윤리의 감각과 결부되고 있다. 시의 윤리가 사회(공동체)의 도덕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생성된다는 점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중생의 뺨에 “쩍~ 입을 맞추고 히히거리며” 사라진 그 남자의 시적 정황을 시인(화자)은 공동체의 도덕관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인에게 그 기억은 공동체의 도덕과는 무관한 지점에서 현실 세계로 뻗어 나오고 있다.

 

여름 방학이 되면 다시 현실로 들어오는 그 시절 몸의 감각처럼, 역 앞 벤치에 누운 노숙자들을 보면 시인은 그때의 그 남자를 감각적으로 떠올린다. 그 시절의 감각들을 공동체의 도덕으로 일반화할 수 있겠는가? 감각이 공동체의 도덕을 넘어 개인의 윤리로 표현되는 지점은 바로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지금 이곳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윤리라는 점에서 현실성을 동반한다. 감각에 새겨진 이러한 윤리(의미)를 물론 절대화할 필요는 없다. 개인의 윤리는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맛을 보다」라는 시에서 시인은 “어릴 적 아버지만 드시던 꿀단지”의 꿀을 훔쳐 먹던 기억을 시화하고 있는데, 시인은 이 시의 핵심에 ‘침’이라는 시어를 배치하고 있다. 아버지가 드시던 찻숟갈로 꿀을 훔쳐 먹는 시적 화자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시인은 “하긴 꿀은 벌들인 빨아먹은/꽃꿀과 꽃가루를 토해낸 거잖아/ 침투성이잖아/아니 침 그 자체이겠네”라고 말하고 있다. 침은 더러움과 달콤함의 사이에 있다. “‘더러워라’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찻숟갈로 꿀의 달콤한 맛을 보는 순간 시적 화자는 감각의 행복 속으로 빠져든다.

 

맛을 보는 것은 이처럼 감각의 실제(현실)를 몸에 새기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보는 것이 눈(시선)의 한계에 갇혀 있다면, 맛을 보는 행위는 눈의 한계를 넘어 눈에 갇힌 존재는 감각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맛(미각)으로 새겨진 기억은 그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는 현실 속으로 떠올라 시적 화자의 마음에 행복감을 불어넣는다. 현실 세계가 부정적일수록 과거의 행복한 감각은 더욱 더 화자의 입맛을 자극한다. “어릴 적 아버지만 드시던 꿀단지”의 기억이 과거의 기억으로 그치지 않고, 지금 이곳의 새로운 현실을 구성하는 계기로써 나타나는 이유는 이로써 명확해진다고 하겠다.

 

 

키스는

상대의 침을 맛보는 일

맛을 보고서

‘아, 괜찮네’ 싶으면

몸을 섞기도 하고

몸을 섞는 게 괜찮다 싶으면

아이를 만들기도 하잖아

 

몸과 몸끼리

서로를 맛보는 일

어차피 침투성이

더러울 것 하나 없겠네

- 「맛을 보다」 부분

 

 

기억 속의 ‘꿀맛’이 현실의 ‘키스’로 변주되는 과정에는 꿀맛과 키스에 드리워진 상황적 유사성이 스며들어 있다. 유사성이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비유적 유사성이 아니라 감각의 유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감각이 통하면 “몸을 섞기도 하고”, 그것이 괜찮으면 “아이를 만들기도 하”는 과정의 밑바탕에는 ‘꿀맛’의 달콤한 감각이 전제되어 있다. 제도의 바깥에서 펼쳐지는 시적 사유는 감각의 윤리를 바탕으로 시의 세계로 스며든다. 달콤함을 쾌락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좋겠다. 제도의 바깥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쾌락을 동반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슴을 조인 끈을 풀어버려요/스폰지, 에어, 실리콘도 뽑아버려요”(「브래지어」)라는 시구처럼, 쾌락은 아주 작은 일상을 거부하는 과정에서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브래지어가 여성을 억압하는 수단의 하나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여성 스스로 그러한 수단들을 통해 남성 중심의 사회가 원하는 ‘가슴’을 만들고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코르셋으로 몸을 조이고, 처진 가슴은 브래지어로 치켜 올리는 여성들의 일상 자체가 공동체의 도덕을 통해 은밀하게 기획되고 있는 것이다. 브래지어를 “벗어버려요”라는 시인(화자)의 외침이 공동체의 도덕과 불협화음을 형성하면서 그 나름의 시적 현실성을 획득하는 까닭은 실상 이러한 사회현실을 상정해야만 제대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o*****s 2017.11.30. 신고 공감 2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