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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분의 강의에 의하면 어느 고등학교에게 장래 희망에 대해서 설문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많은 수의 대답중에 하나가 빌딩 주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나라의 종교는 자본주의가 되고 있고, 신은 돈이다. 돈이면 다 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가치가 인격이나, 품성으로 평가 받는 것이 아니고, 그가 가지고 있는 돈과 받을 수 있는 연봉(노동력)으로 평가받고 있고, 자본과 노동력이 떨어지면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사회이다.
돈벌이 위주의 경제 구조는 공동체에서 개인을 분리해 내고, 자연에서 인간을 분리시키고, 삶터와 일터를 분리하며, 생산 수단에서 노동력을 분리해낸다. 초기 자본주의의 마르크스가 고민했던 내용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에서는 과잉 생산으로 인한 파괴의 생산이다.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지만, 자연을 파괴시켜가면서 생산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아껴서 사용하고, 노동 시간도 줄이고 해서, 자연을 파괴시키지 않고 필요에 의한 생산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피라미드 구조라는 비슷한 사다리 질서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상층부는 좁고, 하층부는 넓다. 현재 우리가 사는 질서는 좁은 사다리를 오르기 위한 경쟁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자 상층부가 하층부를 착취하고, 또 하층부 내부적으로 경쟁하는 구조이다. 당연히 이런 구조에서는 경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고, 극소수를 위한 경제인 것이다. 이런 구조를 버리고 원탁형 구조인 사랑,생명,소통,인정,자율,연대가 있는 행복감의 원천인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책은 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많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우리 나라 기업의 그렇지 못한 점을 비판하고, 한국의 일중독에 대해 비판과 걱정을 한다. 좀 적게 얻고 주4일에 4시간 노동이라면 행복할 것 같다. 한국의 개발 위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도 당연하다.
또 하나의 챕터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결국 가진나라와 가지고 있지 않는 나라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며, 그 예로 80년대 이후로 더 나빠진 아프리카 등의 나라들을 들고있다. 또한 세계 곡물을 다루는 몬산토,카길등의 기업이 세계화를 통해 어떤 이익을 얻고 있으며, 한미 FTA의 경우에도 미국 농부보다는 세계 곡물 기업의 이익이 클 것이며, 우리나라 농민은 황폐화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복지 국가에 대해서도 국가가 연금으로 책임지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탈권력 풀뿌리 민중 복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안으로 행복의 경제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키워드는 지역공동체이다. 다음으로는 연대와 상생이다. 연대의 경우 각자의 이익에 따라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결국은 서로 다양성을 인정하고 크게 봐서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One No, Many Yeses" 그리고 나부터 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나부터 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기는 쉽지 않다. 처음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무조건 비판같아서 읽어야되나 의문도 가졌고, 이 책 경제학 책 맞아?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가 자본주의의 비판보다는 상생할 수 있는, 그리고 책 앞에도 있는 "사람을 살리고 자연도 살리는 살림살이 경제학"의 의도를 갖고 여러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선한 의도로 쓴 좋은 책인 것이다. 책 내용중 우리 나라가 과로사가 많다는 데에서 슬펐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니, 또 한쪽 가슴에 스트레스를 담고 살고 있으니, 그런일이 많이 생기는 구나 생각해 보았다. 맨날 스트레스는 소주와 삼겹살로 풀고, 주말은 잠만 자는 불쌍한 사람들이여... 돈만 보고 인생을 살다 가는구나 느껴져서 너무 슬펐다. 사실 이렇게 되고 움직여 주려면 60%의 민중들이 알고 움직여 줘야 하는데 당장에는 불가능 할 것이다. 이것은 사다리질서의 하층, 혹은 먹물 상층이 움직여줘야 할것이 아니라, 저자를 비롯한 행하는 지식인들이 대안을 연구하고 조금씩 실천해야 할 것이다. 조금씩 주변을 설득해야 하여 방향성을 만들어야 하겠다. * 옛날 리뷰를 보다가 책이 사라져서 새로운 책에 올립니다. 좋은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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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가 시원하게 흐르는 모습이 연상된다 혹시나 했는데 주류경제학자의 역사관은 살아 있었다 그렇다 서민의 복지와 생활수준은 경제논리로 귀결되는것이 아니라 정치논리로서 완성되는것이다 이것을 역사가 증명한 것이다
대공황의 와중에서도 뉴딜중의 뉴딜은 근로자를 근로자 답게 대우하고 인정한 것이다 그게 노동관련법의 정리이다 종전후 풍요롭게 한시대를 풍미한 기초이고 기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분은 확대적용하여 양당정치의 안정이 경제적 황금시대를 이끌었고 보수당인 공화당의 득세가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니 초당적 제휴가 중요한 모멘텀과 경제적 평등의 비단을 수놓는 작업임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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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2008년 출간된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입니다. 출판사가 바뀌어서 출간되었네요. 2008년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를 찾아보면 이책이 개정판이라는 정보가 나옵니다. 하지만 정작 이책엔 그러한 정보가 없이 <폴 크루그먼 새로운 미래를 말하다> 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어 마치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이후 새로 출간 된 책인듯한 혼동을 주네요. 혹시 제2판인가 싶어 목차를 봤지만 약간의 번역상 느낌 차이는 있지만 목차도 같은듯 합니다. 가끔 제1판, 제2판 과 같은 개정판이 아닌 그냥 출판사가 바뀌어 출간되는 것인데 제목을 달리하여 마치 저자의 새책이 나온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하는 책들이 있더군요. 기존에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책을 사신분들이 혹시 신간이 나왔나 구매할까 싶어 글 남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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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팠을까? 마지막으로 읽은 책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분이 이루지 못한 세상을 이야기 하고 있을지 몰랐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 번의 출간 이후 다시 출판사를 옮겨 출간된 이 책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잊혀지지 말아야 할 그 흐름의 중심을 그렇게 찾아 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미래를 말하고자 하는 저자는 먼저 미국의 과거를 이야기 하고 있다. 어떤 것이 정치 혹은 경제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좀 더 행복함을 전해 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주변에 이 책을 권한 분의 속마음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진보, 보수 그 경계에서 생활과 생존의 경계에서 우리는 많은 시험을 당하게 된다. 자신의 가치관의 변화는 때로는 게으름으로 때로는 자신의 이익으로 그렇게 숨은 뒷 축을 담당하며 합리화라는 포장된 언어를 이용하여 나를 혹은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가지는 않겠지만 진보라는 의미 그리고 보수라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어떻게 사람들이 진보의 손을 들어 주었다가 보수의 손을 들어주는 지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책과 사랑이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다가오는 지 그렇게 차분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먼저 진보가 뭐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본다. 그게 뭘까? 신문, 방송 그리고 일상에서 그렇게 많이 들었던 ‘진보’라는 단어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 지고 있을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 의미가 어떤 것일까? 저자의 말처럼 변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생각, 단순하게 이렇게 정의 하고 나면 무엇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따라온다. 정치적 의미에서 진보가 아니라 개인적인 의미에서 진보는 결코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스스로 변화하며 발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으니 정치 사회가 아닌 개인적인 의미에서는 진보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부분에서 다시 모순이 되는 생각이 떠오른다. 직장이 변하고 사회 분위기가 변하고 가치관이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나는 진보적인 생각을 옹호할 것인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당장 눈앞에 닥치고 그 속에서 기본적인 생활이 어려워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힘들다면 어떤 변화ㄹ를 원할 것인가?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변화를 원할 것인가? 이런 질문은 보수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져 본다. 보수는 저자의 생각으로 지금의 것을 지키는 것. 변화 보다는 현재를 옹호하는 삶이다.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 변화를 좋아할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아무리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내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은 하루의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일에 자신의 가치관을 바꿀지도 모른다. 그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순이니까. 그럼 진보와 보수의 관계에서 개인적인 생각은 어떻게 정의를 내리고 살아갈 것인가? 이는 아마도 철학자가 던진 인간이라는 질문에 근접하지 않을까?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질문. ‘너는 보수니, 진보니?’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고민거리, 즉 나의 고민이기도 하다. 저자는 미국의 역사를 통해 즉 근대의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태동과 기원 그리고 정치적인 상황과 시대상을 같이 고려하며 선거를 통해 미국 국민이 보여 주었던 진보와 보수의 우세와 열세를 분석하고 있다. 마치 전장의 느낌을 받듯이 선거이야기는 시대적 변수와 국민들의 생활수준에 귀결되며 사상이 변하고 그 상황에서 어느 쪽의 손을 들어 주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사회변화에 반영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드라마틱하게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은 사회의 이슈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용하려 하였으며 혹자는 그 이슈를 놓치고 선거에 패배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우리의 정치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았을 때 비교하며 고민해 본다면 더 즐거운 책 읽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저자는 출판사의 소개에서도 드러나듯이 진보학자이다. 진보학자이기에 보수진영에 대한 정책을 그리고 그들의 전략을 비판하고 사회구성의 균열을 고민한다. 보수진영이 자주 활용하는 전쟁, 테러, 그리고 공산주의 등에 대한 비판과 그들만의 도그 휘슬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을 빌자면 보수는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집단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그 전략을 따르면 굶어 죽을 일은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왜 그는 보수를 반대하고 진보를 선택한 것인가? 마지막 부분에 그가 강조하는 양극화라는 문제이다. 이 양극화가 가져올 사회적 혼란에 대한 걱정 그는 이 부분에 대한 해결을 아니 미래를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양극화가 어떤 문제를 야기 할 것인가? 정치학자 에릭 우슬러너와 미첼 브라운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양극에 위치한 사람들은 ‘거의 모든 사람은 믿을 만하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다. 사회적 믿음은 경제적 평등에 기반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346쪽) 결국 사회구성을 위한 믿음의 문제 이것이 경제적 양극화로 갈 때 가져 올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이 어쩌면 진보라는 개념을 만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진보학자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부족한 경제여건이라도 경제적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을 추구하는 집단 그 것이 진보라는 개념의 출발이 아닐까한다. 이 개념은 공산주의라는 단어의 개념과 비슷하기에 주의해 사용해야 할 것이지만 말이다. 지금도 우리는 진보와 공산주의 그 것을 잘 구분할 능력이 없는 것 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읽으셨다던 이 책,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곰곰이 생각하며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리의 지금은 어떤 것인지 우리가 일지 못하는 도그 휘슬에 우리는 또 다른 해석을 하고 그렇게 다시 어려운 길을 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무엇이 정말 미래를 생각하는 일인지? 그리고 우리의 미래는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나는 이 복잡하고 모두 다 옳은 것 같은 말 속에서 어떤 곳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하는지? 머리가 복잡하고 더 힘들게 사회를 바라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