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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 또는 짐작으로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 물음이란 절차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확신을 갖고 취조하는 것. 상당히 위험하다. 조사의 과정을 거쳐 범인이라 확인된 다음에, 범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이미 범인으로 만들어놓고 필요한 자백을 채우려는 것이었다. 그 안에 있는 두 사람, 취조 형사 트렌트와 범인으로 지정되었던 열두 살 소년 제이슨. 두 사람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이면서 이끌어가는 분위기는 사뭇 소리 없는 전쟁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 하지만 그 어떤 싸움보다 더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싸움이었다. 누가 이길 것인지 볼 수 있는, 이야기로의 재미가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가서야 내가 만난 결말은 난도질당한 심장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웃집의 일곱 살 소녀가 살해당했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형사들은 죽은 소녀의 마지막-살인자 외에- 목격자였던 제이슨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물증은 없이 심증만 있는 상태에서 제이슨을 범인이라 단정 지어 놓는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물증이 없어도 제이슨을 범인으로 만들 수 있는 자백을 듣는 것이었다. 제이슨이 이웃집 소녀를 죽였다는, 직접 제이슨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생생한 고백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끌어낼 인물로 취조 전문가인 트렌트 형사가 등장한다. 지금은 그동안 취조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쌓아왔던 트렌트가 성공하기 위한 딱 좋은 타이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트렌트 역시 제이슨의 고백을 받아내야만 했다. 형사들에게는 사건을 마무리 지을 범인이 필요했고, 트렌트에게는 자신을 성공시켜줄, 마지막 한건의 경력이 추가되어야만 했다. 모든 것의 아귀가 맞춰졌다. 이제 제이슨의 고백만 남았다.
사건은 처음부터 제이슨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시작했다. 이 이야기에서는 범인이 누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인사건을 계기로 시작되는 취조의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확인해야 할 사실이 아닌 자백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제이슨은 분명 결백했다.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불려왔고, 자신 역시 범인이 잡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는 것을 털어놓아 도움이 되고자 애쓰려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제이슨은 힘을 부릴 수 없는 어린 소년이었고 개인이었다. 어느 집단에서 한 사람을 누르기 위한 모든 수단을 진행시킬 때 그 안에 홀로 남겨진 단 한 사람. 그 사람은 어떤 힘으로 그 중심 밖으로 나갈 수 있었을까. 이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사건을 해결해야만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이익에 대한 계산을 끝낸 이들에게 이미 사건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필요한 조각 하나만 채워 넣으면 되는…….
한 사람을 무력화시키고 여러 명이서 가하는 정신적인 폭력이 얼마나 잔인한 결과를 낳는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각자가 취해야 하는 것이 있는 입장에서 서로의 입맛에 맞추어 가져가면 그만인 상황. 그 안에서 자신의 의무를 지키지 못한 트렌트의 행동은 가늠할 수조차 없는 살인을 만들어냈다. 누군가를 죽여 피를 흘려야만 살인이 아니다. 그런데 이 결과물은 피를 흘려도, 피를 흘리지 않아도 달라질 것이 없었다. 트렌트가 진실을 무시하려고 했던 그 순간 또 다른 살인은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트렌트는 제이슨에게 정신적인 살인을 가했고, 그 이후의 일들은 감당하지 못할 것들로 채워질 것이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아냐, 했어.’ 하지만 그는 자신이 했다고 자백한 그 일을 했을 리 없다. 트렌트 형사가 자백하게 만든 그 일. 그런데 정말로 하지 않았다면 트렌트가 어떻게 자백하게 만들 수 있었지? 결코 그런 일을 했을 리 없다. 절대로. 죽어도. ‘죽어도?’ 네가 했다고 말했다면, 그건 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야. 어쩌면 그 끔찍한 일을 할 수도 있었을 거야. 네 마음 깊은 곳에선 분명 네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거라고. (148페이지)
고백의 장소, 여기서 취조실을 고물상이라 표현하는 이유가 결말로 다가갈수록 드러난다. 자백을 만들어내야만 했던 그곳에서 한 사람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눈으로 확인한 순간, 그곳은 정말 고물상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멀쩡한 한 사람 ‘고물’이란 이름으로 던져 넣기에 충분하게 만들어버리는 곳이었기에. 본디 고백이란 것은 죄가 낳은 것이어야 하는데, 강제된 고백이 죄의식을 강요해 고백의 본질을 흐려버리는 것이다. 트렌트의 개인적인 욕심으로 채워진 목적이 있었으나, 그가 가진 직업의 본질은 트렌트 자신의 모습을 규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알면서도 덮어버리는 순간을 트렌트가 그렇게 건너왔고, 그 다음에 맞닥뜨린 모든 결과물들 역시 그를 규정하는 것으로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누군가가 가한 정신적인 폭력이 한 사람에게 만들어내는 것은 무시무시하다는 것 밖에는, 지금 달리 할 말이 없다. 그게 살인이 될지라도, 되돌릴 수는 없다. 그 자리에 고백은 없었고, 정신적인 폭력에 희생당한 한 사람과 그 이후의 위험만이 남아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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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코마이어의 유작이라는 정보를 듣고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찍이 교내 폭력과 교사 비리와 같은 교육 환경의 어두운 이면을 다룬 그의 걸작이자 대표작인 [초콜릿 전쟁]이 준 충격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과연 청소년들에게 읽혀도 될 것이라는 고민이 들 정도로 그의 저서들은 언제나 아픈 상처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더 놀라운 점은 이미 70년대부터 현대사회의 청소년들의 어두운 내면과 고민들에 대해서 저자가 주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청소년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청소년을 위한 문학,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밝고 긍정적인 내용만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언론인 출신의 저자는 그런 밝고 긍정적인 내용으로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감출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소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한 소년과 그를 취조하는 형사의 심리대결을 다룬 이 책은.. 그의 작품세계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소년범죄 증가율이 높아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들은 물론 학부모들과 교사들까지 이 책을 한번쯤 읽었으면 한다.
그건 아주 무시무시한 침묵이란다. 사람들이 분노를 감추고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 사람들은 누가 이 방을 떠나는지, 어린 소녀를 죽인 냉혈한의 괴물이 누구인지 보려고 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그 괴물은 버젓이 가족이 있는 착한 아이일 수도 있단다.
- p.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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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은없다]를 읽으면서 온몸에 전율이 일었고 한순간도 눈을 돌릴수없었다. 잘못된 권력의 남용을 그대로 말해주는 한권의 소설은 섬칫하고 잔인했다. 자백을 받아내야만 하는 자가 있다. 그리고 그자의 앞에서 자백을 해야만 하는 그 상대자가 있다. 자백을 받아내려는 자는 상대자에게서 죄의 고백을 들으려는 것이지만 만약에 그 상대자가 무죄라면, 자백은 어떻게 받아낸다는것일까...
일곱살 어린 소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이 되었다. 용의자는 이웃의 소년,제이슨..소녀를 마지막으로 본 목격자이며 살인의 용의자. 그러나 아무런 물증도 증인도 없이 오로지 심증으로만, 사건해결을 위해서 행차하신 상원의원의 말한마디에 출세에 눈이 먼 자들이 벌이는 놀음에 자백을 받아야하는자가 등장한다.소년이 무죄이건 유죄이건 그것은 중요하지않다. 소년의 입으로 자백을 하게만드는것, 그것만이 그가 가진 임무이다.
그앞에만 서면 누구나 다 자기가 저지른 죄들을 자백하게 만들수있었다. 심리적으로 위협을 주고 갈증을 느끼도록 불안을 조장하며 어디가 급소인지를 알아서 한번에 물어버리는 트렌트,그가 제이슨과 마주앉았다. 제이슨은 살해된 얼리셔를 정말 좋아했기때문에 얼리셔가 그렇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제이슨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날의 일과를 형사에게 말했을때 그것이 마지막인줄 알았지만 이제 새로운 사람과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했다. 그런데 질문의 행방이 조금씩 이상해진다. 목격자 제이슨이 아니라 용의자, 살인용의자 제이슨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것같다. 점점 숨이 막혀오고 좁은 이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어지는 제이슨이지만 하지않은 일을 했다고 고백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트렌트는 교묘하게 발톱을 숨기며 제이슨을 위하는 말투로 제이슨을 압박하며 하지않은 살인을 자백하게 만든다.
그렇게 모든것이 끝나는것 같았다. 트렌트에게는, 출세하고싶은 욕망이 있었기에 상원의원의 눈에 들어 한계단 한계단 더 높은곳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심문을 하면서 제이슨이 살인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사실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느냐? 하지못하느냐?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트렌트 자신을 속여가며 어린 제이슨을 윽박질러가며 거짓된 자백을 받아내는 트렌트. 그런데 제이슨에게 자백을 받았다는 트렌트를 바라보는 세러의 표정이 이상하다. 범인이 잡혔고 지금 호송중이라는, 트렌트가 거짓자백을 강요했을것이라는....
트렌트와 단둘이서 좁은 공간에서 심문의 시간들을 견디는 제이슨을 보면서 함께 취조받고있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무것도 할 수없는 무기력감, 범인이 아닌데 이미 일방적으로 범인으로 확정지어놓고 그안에 제이슨을 꿰맞추려는 무리들을 보면서 공정한 법의 집행이 어디에 있는것인지 묻고싶어졌다. 그러나 모든 화살이 상원의원에게 돌아갔다. 애초에 상원의원이란 자가 나서서 들쑤시지만 않았더라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수사를 진행시켰을것인데 자기의 권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인물로 인해 제이슨의 인권이 짓밟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이책에 등장하는 상원의원만은 문제는 아니겠지만... 출세하고 싶은 트렌트와 자기의 권력을 과시하고 싶어하던 상원의원으로 인해서 애꿎은 제이슨만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제발 제이슨이 집밖으로 나가기전에 누군가 도착해서 제이슨의 발걸음을 막아줬으면... 만약에 제이슨이 불행하게된다면 그건 다름아닌 트렌트 당신때문이야... 이책은 나만 읽기로 했다. 내 아이에게 이런 책을 권해주고 싶지는 않기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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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질문과 대답, 핑계의 합리화 그리고 유죄 인정 그렇게 최후의 자백을 받아내는 취조 전문가와 그런 취조 전문가에게 답을 해야 하는 마지막 목격자이자 용의자인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정의인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고백은 없다의 마지막 이야기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취조 전문가 트렌트는 잔인한 살인자에게서 자백을 받아 낸 후 성취감을 느끼는 대신 그가 들려주는 잔인한 살인 얘기에 몸서리를 떨면서 자신의 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여름 방학이 되자 제이슨 도런트는 한가로운 여름 방학에 대해 생각하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여름 캠프가 기다리고 있지만 수업도 숙제도 없는 방학이 좋았습니다. 학교에서 제이슨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적도 나쁜 편이 아니지만 성적 때문에 고민하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수줍어하고 남들의 주위를 끄는 것을 싫어 하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발표도 잘 못하지만 그래도 우등생 명단에 오르는 학교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출장 중이라 엄마와 그리고 여덟살 동생 에마와 있는데 에마와는 잘 지내면서 애들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이웃에 사는 브래드 바틀릿은 장난이 심해 친하지는 않지만 브래드의 여동생 얼리셔는 직소 퍼즐을 잘 하는 아이로 얼리셔를 좋아했습니다. 일곱살 얼리셔의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얼리셔가 마지막 목격된 곳이 자기집 안뜰이고 목격자는 열두살짜리 이웃집 아이 제이슨 이라고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의 수사의 총괄은 조지 브랙스턴 경위로 사건을 수사하면서 유일한 목격자 뿐인 사건이 풀기 어려웠는데 상원 위원이 그를 찾아 오고 위원의 손자가 피해자와 같은 반 친구라는 이유로 사건에 대한 압력과 지역 사회의 관심이 많은 사건이었기 때문에 브랙스턴은 이 사건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유일한 목격자인 제이슨을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고 심문을 하기 위해 취조 전문가 트렌트를 불러 들이고 트렌트 역시 자신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 이 사건을 맡기로 했습니다. 제이슨은 자신이 좋아했던 얼리셔의 죽음에 마음 아파하고 자신이 목격자라는 사실에 경찰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이 찾아와 질문을 했을때 열심히 대답했습니다. 경찰은 제이슨을 심문하기 위해 제이슨의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아이들 몇명을 경찰서에 불러서 조사를 하는데 제이슨을 불러 가는데 제이슨에게만 트렌트를 붙여서 심문을 하게 됩니다. 제이슨은 경찰서에 들어 오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트렌트를 만났을때 잘못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는 사건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의 무리한 심문 그 결과로 일어나게 되는 마지막 충격적인 내용을 통해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정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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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두렵다. 열 두살의 어린 아이가 무기력하게 정신적으로 상처 입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막막하고 답답한 이 상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로버트 코마이어'의 이름 값에 걸맞는 엄청난 필력을 느끼며 짧은 문장이 이끄는 속도감에 끌려 한눈 팔 겨를이 없었다. 일가족을 장난삼아 살해한 칼 시튼이라는 열입곱 소년의 자백을 받아내는 형사 '트렌트'는 이 분야에서 꽤 알려진 형사다. 끔찍한 강력범들과 마주 앉아 심문을 할 때면 마치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지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범인들을 동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다가도 확실한 패를 잡았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거침없이 몰아치는 베테랑이다. 그에게 있어서 범인들의 손짓과 표정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단서들이며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심리전의 미끼가 된다.
'제이슨'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다. 대개 아이들은 제이슨을 무시했지만 그렇다고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동생 에마와도 사이좋게 지내며 이웃에 사는 어린 동생들의 그네도 밀어주기 좋아하는 수줍은 열 두살의 소년! 멜버른에 사는 친구와 펜팔을 하고 미스터리 소설이나 스티븐 킹의 공상 과학물도 즐겨보지만 브래드 바틀릿의 동생 얼리셔가 직소 퍼즐을 할 때 옆에서 말 없이 지켜보는 것도 좋아한다. 이제 막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고 재미있고 멋진 시간들이 펼쳐지리라 기대를 하던 소년에게 차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았을까?
<고백은 없다>는 취조 전문 형사 트렌트가 제이슨이라는 무고한 아이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골에서 짭새로 썩지 않기 위해 상원 의원의 힘을 배경 삼아 출세를 하고 싶은 형사 트렌트의 욕망 앞에 힘없고 약한 제이슨이 거짓으로 자백을 강요받고 무력하게 쓰러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가슴에 분노가 인다. 물증도 없이, 단지 살해 당한 얼리셔를 마지막에 보았다는 이유로 유력한 용의자가 된 제이슨은 물조차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강도 높은 취조를 받는다. 얼리셔를 죽인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이 되고 싶은 어린 아이의 심리를 이용해 교묘하게 범인으로 몰고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누구라도 부당함과 파렴치함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 때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했던 남산 아래의 안가가(?!) 생각나기도 하고 일제 강점기 하 애국지사들을 심문하던 광경이 떠올라 몸서리가 쳐졌다. 누구보다 제이슨이 결백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 한 아이의 영혼을 송두리째 파괴시키는 트렌트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다행히 범인이 잡히고 제이슨의 자백이 강요된 것임이 밝혀지지만 사건은 그리 단순하게 끝나지 않아 더 큰 충격을 준다. 거짓으로 강요된 자백때문에 자아에 손상을 입은 제이슨은 누가 책임져 줄 수 있을까? 자신이 얼리셔를 죽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제이슨은 얼리셔를 죽였다는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에 고통 받는다. 취조실에서의 시간은 지울 수 없는 정신적 데미지가 되어 제이슨을 따라 다닌다. 온몬에 땀이 흐르고 목이 타들어가고 죽을 것만 같은 갑갑함과 죄책감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심지어 행위가 본질로 전이된 제이슨이 자신의 말을 거짓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보보 켈튼에게로 향하는 걸음을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
옮긴이는 책 속 로티가 트렌트에게 하는 말을 인용해( "당신이 하는 일이 바로 당신의 정체예요.") 우리가 하는 일이 단지 직업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질을 규정하기도 한다는 메세지를 전한다. 행위가 존재를 규정한다는 사실은 거짓 자백을 한 어린 제이슨에게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거짓 자백을(행위) 한 제이슨이 그 사실을 거짓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부엌칼을 꺼내는 마지막 장면은 아...어떻게 해야 할지....
자백과 고해 성사라는 두 행위가 자발성을 띠고 있는 것 같아도 그 내면에는 고백을 강제하고 죄의식을 강요한다는 점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백을 했다고 그 죄가 용서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고백은 누구를 위한 행위일까?.... 또한 행위가 존재를 규정할 수 있다면 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전부 착한 사람인 것일까? 그 행동이 다분히 의도된 바이며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다고 해도 그를 착한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에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로버트 코마이어의 깊이 있는 글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의 유작인 '고백은 없다'를 통해 진실과 거짓에 대해, 권력과 욕망에 대해, 나아가 정의의 문제까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은 후 떠오른 많은 의문들과 분노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좋은 책을 알게 되어서 반가웠다. 힘에 의해, 돈에 의해, 혹은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에 의해 거짓으로 강요받고 그 앞에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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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에 미션으로 "고백은 없다" 책을 받고 나서, 평소 문학작품에서는 잘 보지 않았던, 소녀의 자살과 관한 용의자의 취조 모습을 그린 책이라 그런지 호기심과 함께 나를 책을 읽어나갔다. 아마 평소 범죄 사건에 관심이 많은 나였더라 더 관심이 갔던 것 같다. 이번에 고백은 없다의 저자는 초콜릿전쟁을 쓴 미국 청소년문학의 영원한 별 로버트 코마이어 였는데, 초콜릿 전재이라는 책을 너무 인상 깊어 읽어서 그런지 그 또한, 내가 책을 좀 더 흥미롭게 바라본 이유 중 큰 몫을 차지하였다. 책의 첫부분의 책의 주인공인 제이슨의 일상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 방학이 막 시작 된 시점 누구나 나름함과 자유를 느끼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제이슨의 모습을 보여주다 주제가 갑자기 바뀌게 된다. 바로 얼리셔 바틀릿의 살인 사건, 누구보다도 영특하고 특히 직소 퍼즐을 좋아하던 일곱살 여자 아이 얼리셔 바틀릿이 갑자기 무엇인가에 맞아 사망한 채로 산책로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이 살인사건은 평화롭고 조그만 마을 그리고 평범하던 한 소년에게 엄청나게 큰 변화를 가지고 온다. 제이슨은 얼리셔 바틀릿의 사망 전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강력한 용의자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부터 순수하고 착한 소년 제이슨의 변화가 시작된다고 된다. 마을 경찰은 이번 사건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유명한 취조 전문가인 트렌트를 불러오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제이슨과 트렌트의 취조 현장을 글로 접하게 되면, 그 묘사가 너무나도 세부적이고 보는 나 또한 마치 내가 제이슨이 된 것 처럼 답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러한 취조 과정에서 그저 글로 묘사된 걸 읽는 나도 답답함을 느끼는데, 직접 현장에 있을 제이슨은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마 내가 죄도 짖지 않고 제이슨 처럼 이렇게 용의자로 몰려 취조를 받게 된다면 정말 억울해서 취조에 제대로 임하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트렌트의 단정짖는 취조에 질린 제이슨은 거짓 진술을 고하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그런 취조를 한 트렌트는 단순히 취조를 한 번 잘못한 것 아닌 아이 하나를 망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마지막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책을 읽으면서 소름이 끼칠 정도 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마지막까지 청소년을 위해 좋은 작품 남기신 로버트 코마이어 할어버지에게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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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평소 제이슨이 친하게 지내던 7살 엘리셔 바틀릿이 의문의 살인 사건으로 죽게 된다. 이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는 마지막을 엘리셔를 만난 제이슨이다. 많은 용의자들의 심문을 하여 자백을 받아내기로 유명한 트렌트가 이 사건을 맡게된다. 트렌트는 오직 자신의 명성을 위해 제이슨이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말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엘리셔를 죽인 범인이 제이슨이라고 확신을 가지며 거의 세뇌에 가까운 심문을 하였다. 트렌트는 제이슨을 겉으로는 이해해주는 척하며 강제적으로 고백을 받아내고자 하였다.오랜 심문으로 지칠대로 지친 제이슨은 결국 자신은 범인이 아님에도 불구하도 자신이 엘리셔를 죽었다고 자백한다. 그 후에 엘리셔를 죽인 진짜 범인은 엘리셔의 오빠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 결과 트렌트는 좌천을 당하고 특권과 취조권을 박탈당했다. 그렇게 진짜 범인이 밝혀지고 엘리셔 사건이 마무리가 되었지만,,, 제이슨은 지금까지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부엌에 가서 식칼을 꺼내 평소 싫어했던 친구인 보보 켈븐을 향해 갔다.
"넌 이미 그런짓을 할 수 있다고 자백했어. 그런데 왜 진짜로 안 하는 거지? 네가 할수 있다는 걸 보여줘. 그방에서 네가 한말이 정말로 옳았다고.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결국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따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여줘."
진짜 범인이 밝혀지고 행복하게 끝날것만 같았던 결말은 비극적이였다. 뒤부분에 두려움에 쌓인 제이슨의 행동을 보며 정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죄를 지은 사람들의 고백을 받아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에 고백을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들에 정신적이 큰 고통을 안겨준다. 범인도 아닌 제이슨에게 무조건 고백을 강요하며 제이슨의 내면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는 트렌트.. 제이슨의 말을 듣지 않고 유일하게 마지막에 있었다는 상황만으로 판단하며 고백을 강요했던 이 사회가 마지막 제이슨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무슨일이 있을때 무조건 그 상황만을 보고 판단을 할 때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그 상황을 보고 판단해버린다면 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책을 통해서 제이슨과 같은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도 무조건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을 보고 판단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도 먼저 들어보고 겉보다 내면을 먼저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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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은 없다
-로버트 코마이어 (비룡소)
-2012년 3월 19일
한 사람의 인생을 쉽게 좌우하는 것 중 하나는‘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긍정적인 말을 들어온 사람과 부정적인 말을 들어온 사람의 미래가 달라지듯이 어떤 말을 듣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가치관이 확립되기도 하고, 미래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이슨이다. 어느 날 한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일곱 살의 어린 여자 아이, 용의자는 열 두 살의 어린 소년 제이슨. 제이슨은 피해자인 얼리셔와 평소 가깝게 지냈고, 살해 직전 마지막으로 같이 있던 사람이었다. 이 조용한 마을에서의 살인사건은 선거를 앞둔 의원의 개입으로 무조건 결론을 내야만 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무조건 결론을 내야만 하는 상황, 그게 바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유력한 용의자인 제이슨에게 자백을 받아내려고 애쓴다. 어린 제이슨이 감당하기 힘들만한 질문들이였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얼리셔의 살인사건의 배후를 밝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며 불러 단독 심문을 하기 시작한다. 단순한 취미인 공포영화 보기와 게임으로 폭력적 성향이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동네 동생으로서 좋아하는 감정을 얄밉고 아니꼬운 존재로 탈바꿈한다. 유능한 형사인 트렌트는 제이슨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가 얼마나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지만 이 사건은 잘 해결하면 큰 돈과 명예가 굴러 들어오는‘선거 전 의원이 맡은 사건’이였다. 억지로 끼워 맞추고 아이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원하는 답을 이끌어 낸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서로가 지쳐갈 때 드디어 심문이 끝이 났다. 형사 트렌트는 원하는 자백 아닌 자백을 받고서 사건을 해결했다며 달려 나간다. 그러나 그 때 들려오는 한 마디.‘범인이 호송중이다. 당신은 강제로 자백을 받아낸 것이다.’범인은 제이슨이 아닌 얼리셔의 친오빠 브래드였다. 얼리셔와 다툰 후 살해를 한 것이다. 결국 트렌트는 좌천되었고 사건은 진짜 범인 브래드가 호송되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지만 제이슨의 인생은 마무리 되지 않았다. 장시간 심문을 받으면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은 것이다. 심문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든 의문‘나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를 되새기며 진짜 살인을 시작하려 한다. 범인으로 몰렸던 그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제이슨의 행동을 좌우하게 만든 것이다.
처음엔 추리소설처럼 가볍게 읽었다.‘범인이 누굴까, 진짜 제이슨일까’혼자 상상도 하며 보고, 어린 아이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뱉으며 혼란을 가중시키는 형사 트렌트에게 화도 내보면서 말이다. 읽을수록‘이게 뭐하는 건가’싶었다. 우리나라도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는데,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면 정말 사건 조작이 가능한 건지 궁금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신체적 폭행으로 생긴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겠지만 정신적으로 받은 폭행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혀 지지 않는다고 했다. 말의 중요성, 정신적 폭력의 위험성에 대해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깊게 생각해보고 생각한 결과를 실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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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볼 때 제목 외에 가장 먼저 보는 곳은 책의 뒤표지이다. 뒤표지엔 대부분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간략한 줄거리 그리고 유명인 들의 평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는 것은 나에게 수영 전 준비운동과 비슷한 것이다. ‘고백은 없다’의 뒤표지엔 “소름 돋는 결말이 독자들의 머릿속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길 것이다. 죄의 정의, 진실과 속임수에 대해 뜨거운 논쟁을 하게 만드는 작품”- 퍼블리셔스 위클리. 라는 글이 적혀 있다. 도대체 소름 돋는 결말이란 무엇일까 궁금해 졌다.
주인공인 제이슨은 평범한 중학생 소년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다. 어느 날 옆집에 살던 얼리셔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얼리셔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본 인물인 제이슨은 용의자가 되고 냉철하고 유능하기로 소문난 취조 전문가 트렌트가 사건을 맡게 된다. 경찰들은 제이슨을 속인 채 심문을 하기 시작하는데 자신이 용의자 인지도 모른 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순수한 제이슨과 어쩌면 이미 짜여져 있었을 지도 모르는 트렌트의 심문을 보며 강자가 약자를 휘두르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트렌트는 결국 제이슨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지만 끝내 제이슨에게 거짓 자백을 받아 낸다. 다행이도 진짜 범인이 잡혀 제이슨의 무죄가 증명되고 트렌트는 그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게 되지만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제이슨이 진짜 살인을 하게 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제이슨이 트렌트 에게 심문을 당하는 장면이었다. 서로 무릎이 닿을 정도로 작은 책상과 숨이 막힐 것 같은 생각을 하는 제이슨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을 정도로 생생한 묘사가 인상 적이었다. 또한 충격적인 결말은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강자에게 약자가 휘둘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지금, 지금 이 순간에 또 다른 제이슨이 생겨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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