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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의 참상을 사실 그대로 잘 보여준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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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자들의 고난과 비애를 그리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당시 상황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해 독자에게 당시 사람들의 고통과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아주 잘 전달해주고 있다.   이 책의 배경은 1947년의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침공으로 피해를 본 나라 중 하나다. 한국으로 치면 일본의 침공을 받은 것과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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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자들의 고난과 비애를 그리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당시 상황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해 독자에게 당시 사람들의 고통과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아주 잘 전달해주고 있다.

 

이 책의 배경은 1947년의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독일의 침공으로 피해를 본 나라 중 하나다. 한국으로 치면 일본의 침공을 받은 것과 같은데 네덜란드는 그때 입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21C인 지금까지도 독일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 감정은 축구 국가대항전 때 잘 나타나는데 한일전과 흡사한 광경이 벌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독일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1947년만 해도 네덜란드 국민들의 감정과 고통은 현재의 그것과는 좀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우리로 치면 해방 직후가 되겠는데 그때만 해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전후 처리는 확실히 하고 있었지만 감정 표출과 대응은 잘 못했던 것 같다. 나치군으로부터 가족과 재산을 잃었으니 응당 독일인들에게 온갖 욕설과 비난을 퍼부었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전쟁 후라 모든 물자가 부족해 당장 먹고 살기 바빴고 정신적으론 아직 전쟁의 참상이 덜 잊혀진 상태라 그럴 틈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하고 정신적으로도 온전해야 과거 일을 논리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따지고 들 텐데 아직 그럴 준비가 덜 되어서인지 1947년도를 산 네덜란드인들은 독일에 대한 감정 분풀이보단 당장 먹고 사는데 더 힘을 쏟은 것 같다. 이런 점을 저자는 되도록 사실 그대로 묘사해 21C를 사는 독자들에게 당시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이 책은 총 22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작가를 소심하고 무능한 예술가로 취급한 당시 분위기를 보여준 점’이다. 토마스의 담임선생님인 콜레뱅은 주인공인 토마스가 수업시간에 딴 짓을 했다는 이유로 토마스의 뺨을 때린다. 이에 대해 토마스는 자신의 아빠가 선생님은 이러시면 안 된다고 말했다며 체벌에 대해 항의한다. 그러자 콜레뱅 선생은 토마스 아버지가 군대는 다녀왔냐고 묻고는 토마스가 물론 안 다녀왔다고 하자 바로 다른 쪽 뺨을 또 때린다. 그리고는 두 번째 뺨을 때린 것은 ‘물론’이란 단어를 써서 그랬다는 변명을 한다.

 

콜레뱅 선생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이 군인이었다는 사실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쟁 당시 군인이 아니었던 사람들을 무척이나 깔보는 경향이 없지 않다. 전쟁이 벌어졌으면 마땅히 조국을 위해 총을 들고 싸워야 하는데 예술가라 불리는 작자들은 직접 전장에 나서지 않고 그저 펜만 들고 뒤에 숨어 있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소심한 존재로 치부한 것이다. 콜레뱅 선생은 토마스의 아버지가 작가라는 사실을 사전에 잘 알았다. 대체로 작가들은 소심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콜레뱅 선생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놓고 추정해보면 콜레뱅이 토마스의 두 번째 뺨을 때리며 한 말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콜레뱅이 토마스에게 두 번째 뺨을 때린 건 토마스가 단어를 잘못 선택했다기 보단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자가 선생의 도리에 대해 왈가왈부를 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콜레뱅 선생과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이 비단 군복무를 마친 이들만의 생각이었을까? 그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전쟁 참전자를 대변하는 인물인 콜레뱅 선생 이외에 다른 일반인들의 대화를 통해서도 예술가들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이자 토마스의 친구츠반이 한 말은 당시 사람들이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토마스와 츠반은 극장 앞에 있던 영국의 어떤 왕에 대한 포스터를 보고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하던 중 츠반의 주장에 대해 토마스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어본다고 하자 츠반은 “너희 아빠야 소심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예술가잖아, 안 그래?”라는 말을 서슴없이 해버린다. 생각이 제법 깊은 츠반이 단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토마스의 아버지를 두고 소심한 사람이라 단정지어버린 것이다. 과연 12살짜리가 세상을 온전히 파악해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이건 어른들의 생각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옮겨져 아이들까지 예술가를 소심한 인간으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작가인 저자는 당시 이와 같은 세태에 대해 전혀 과잉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당시 그 사회를 살았던 작가들이 어떻게 비춰졌고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 사실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대개 예술가로 불린 사람들은 세계대전에 벌어졌을 때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숨죽여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전시 전엔 펜으로 세상을 비판하고 악을 규탄하던 예술가들이 막상 전쟁이 터지자 밖으로 나와 싸우는 대신 비겁하게 뒤에 숨어버린 것을 보고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들에게 실망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 선생은 물론이고 일반 사람들 심지어 12살짜리 아이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술가로 지칭되는 대상을 두고 소심한 작자들로 여기고 한심하게 바라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점을 저자는 등장인물과 상황 그리고 대화를 통해 아주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점이 이 책의 가치를 높이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준 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되도록 1947년 당시 상황 독자인 우리들에게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평범한 것 같지만 평범해 보이지 않는 등장인물과 그들의 언행으로 당시 정황을 보여주려고 애썼는데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을 등장시켜 전쟁이 어른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몇몇 특징적인 어른을 등장시켜 당시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토마스의 아버지요스 아줌마(베트의 엄마이자 츠반의 숙모)다. 바로 앞에서 난 토마스의 아버진 예술가라는 이유로 소심한 인간으로 치부되어 사람들로부터 안 좋은 시선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토마스의 아버진 전쟁 후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모습까지 더해져 독자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소심한 예술가로 취급받는데다가 사회 부적응자로 이리 저리 떠도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어 이 책에서 가장 불행한 인물로 비춰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동정의 눈길로 토마스의 아버지를 바라봐선 안 된다. 토마스의 아버진 아무리 전쟁 중에 소심하게 숨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쟁이 끝나고 나선 어떤 일이든 해서 자식인 토마스를 부양해야 했다. 그런 차원에서 토마스의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돈을 벌려고 고향을 떠나 독일에서 일을 하려고도 했고 실제로 몇 개월간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곳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별로 오래 있지 않고 바로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와 다시 궁핍한 생활을 이어나간다. 만약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과연 토마스의 아버지가 사람들로부터 안 좋은 대우를 받고 사회에 부적응하며 살았을까? 이 책의 등장인물 중 토마스의 아버지만 유일하게 이중고를 앓고 있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당시의 예술가들은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이런 이중고를 감수하며 살았어야 했다는 점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한편 베트의 어머니인 요스 아줌마 전쟁 중 남편을 잃고 그 충격으로 정신을 좀 놓고 사는 귀부인으로 등장한다.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요스 아줌마는 자신이 인 베트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딸로부터 보살핌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다행히 요스 아줌마네는 부유해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되는데 그 덕분에 요스 아줌마는 행동이 어른답진 않지만 토마스의 아버지와 달리 무능력한 인물로는 묘사되고 있지 않다.

 

사실 요스 아줌마도 토마스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성인이기에 전쟁이 끝난 후엔 정신을 좀 차리고 딸을 돌보며 살아남은 자의 삶을 이어나갈 생각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요스 아줌마는 오로지 전쟁으로 받은 자신의 충격만 생각한 채 정신을 놓아버리는 어른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만다. 물론 사람이기 때문에 전쟁 중에 남편을 잃었다면 응당 정신 줄을 놓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요스 아줌마는 혼자가 아니었다. 딸인 베트도 있었고 조카인 츠반도 곁에 있었다. 아무리 전쟁으로 인해 심한 충격을 받았다 하더라도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는 어른이라면 본인의 입장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을 돌보려고 노력을 했어야 마땅한 것 아닌가? 요스 아줌마 입장에선 남편을 잃었지만 베트는 아버지를 잃었고 츠반은 부모를 다 잃었다. 충격의 정도를 비교할 순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성인인 요스 아줌마가 아닌 아직 12살인 츠반이 더욱 고통 받고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츠반은 오히려 어른다운 면모를 보이며 삶을 살아간다. 풍요롭게만 살아 고생 내지 고통을 모르고 살았던 요스 아줌마는 자신만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사람처럼 행동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어른은 마땅히 어른다워야 한다. 아무리 전쟁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힘들다 하더라도 다들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는데 예술가나 부유한 자들정신적 후유증을 운운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은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는다. 저자는 이런 점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아이들이 아이들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점’이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인 토마스와 그의 친구 츠반 그리고 츠반의 사촌 누나 베트는 각각 12살14살이다. 하지만 세 아이는 전혀 아이답지 않다. 츠반은 나치군에 의해 양친이 끌려가 돌아오지 않은 상태고 베트는 아버지만 유대인이라 츠반의 부모와 같은 이유로 수용소로 끌려간 후 돌아오지 않은 상태다. 전쟁이 끝난 후 둘은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자신들의 부모가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지만 그들의 부모는 도무지 돌아올 줄 모른다. 이런 모습만 보면 천상 아이들 같다.

 

하지만 14살인 베트는 물론이고 12살인 츠반조차 어른스러운 생각을 해 과연 이들이 이 나이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초등학생 마인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린애들은 아이 같은 생각을 한다. 아직 지식과 지혜, 경험이 부족한 상태고 어른에 비해 뇌가 덜 발달해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베트와 츠반은 이런 우리들의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해 이미 어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츠반은 깊이 있는 사고와 논리적인 행동으로 초등학생을 초월하고 있고 베트는 어머니와 사촌동생을 돌보며 역시 나이에 걸맞지 않는 언행을 보이며 나이를 초월하고 있다. 유일하게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건 주인공인 토마스인데 그 토마스조차도 이따금씩 어른스러운 말투나 사고, 행동을 보여주어 얘가 정말 초등학생 맞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저자는 이 또한 전쟁의 후유증으로 보는 것 같다. 전쟁이 아이들에게 아이다운 감성을 빼앗아가 아이들에게 응당 있고 발휘되어야 할 동심이 전혀 표출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저자는 이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베트는 어른이 없는 상태에선 자유롭게 행동하고 어린애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이 있는 곳에선 어김없이 다시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이는 전쟁 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이들은 아무리 전쟁이란 무서운 재앙을 겪었어도 성숙함 보단 나이에 맞게 아이처럼 행동하고 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른들이 그걸 용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자꾸 억제를 해 아이들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후유증을 같이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로 인해 아이들은 아이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전쟁 후를 힘들게 산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전쟁은 끝났지만 상황이 별로 좋지 못하니 아이답게 굴지 말고 어른스럽게 굴어야 한다는 의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어 아이들에게 이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자는 가시적인 것은 물론이고 이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까지도 잘 잡아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했는데 이 또한 이 책의 가치를 높이는 작용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쟁은 비단 총칼을 들고 직접 싸운 이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전장에서 싸우지 않았어도 전쟁으로 인해 정신적 혹은 육체적 고통을 겪는 이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저자는 전쟁 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전쟁이 인간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어 전쟁의 위험성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아직 휴전 중이라 언제든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우리의 입장에선 이 책이 매우 의미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쟁 후 삶이 어떠한지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를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인상적인 글귀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

 

“젊을 땐 슬픔도 지나가는 새와 같아. 늙으면 슬픔은 네 심장을 꽉 깨물고는 절대 놓아주지 않는 독사가 되지.”

 

“오늘은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아주, 매우 놀라운 거야.”

 

 

 



d****3 2012.06.07. 신고 공감 10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오늘'은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아주, 매우 놀라운 것.
"'오늘'은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아주, 매우 놀라운 것." 내용보기
지난겨울은 유난히 길게 느껴집니다. 예년에 비해 봄이 더디 온다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계절 중 봄은 늦게 오고 빨리 가지요. 오죽하면 계절이 춥든지, 덥든지 하는 겨울과 여름만 남는 것 같다고 하겠습니까.   이 소설을 나름대로 분류시킨다면 ‘성장소설’이라 하겠습니다. 특징적인 것은 등장인물의 이미지가 ‘어른 같은 아이’와 ‘아이 같은 어른’들입니다.
"'오늘'은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아주, 매우 놀라운 것." 내용보기

지난겨울은 유난히 길게 느껴집니다.

예년에 비해 봄이 더디 온다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계절 중 봄은 늦게 오고 빨리 가지요. 오죽하면 계절이 춥든지, 덥든지 하는 겨울과 여름만 남는 것 같다고 하겠습니까.

 

이 소설을 나름대로 분류시킨다면 ‘성장소설’이라 하겠습니다.

특징적인 것은 등장인물의 이미지가 ‘어른 같은 아이’와 ‘아이 같은 어른’들입니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 토마스의 입을 통해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와 츠반의 이야기, 나와 베트의 이야기, 암스테르담의 추위와

  얼음이야기, 그리고 얼음이 녹아 이 모든 것이 끝난 날의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그리고 대체 누구한테 해야 할까?”

 

가족 중 한사람의 죽음은 남은 이들의 일상을 뒤흔듭니다. 토마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토마스보다 염려되는 것은 토마스의 아빠입니다. “엄마를 묻고 난 다음 한 주일 내내, 아빠는 밤마다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아빠는 내가 그 시간에 세상모르고 잔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감은 채 깨어 있었다.”

 

전쟁이 지나간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상흔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쟁 후 황폐화되어버린 후의 먼지와 연기같이 불안감이 스몰스몰 올라옵니다.

그 분위기에서 성장해야하는 아이들은 홀로서기를 배웁니다. 어른들은 각자의 삶을 꾸려가기도 힘들기 때문에 아이들은 스스로 커 가야합니다.

 

토머스의 친구 피에트 츠반과 츠반의 사촌 누이 베트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구도가 형성됩니다. “난 이제 집에 가야겠다.” “나도.” 츠반이 물었다. “같이 갈래? 우리 집도 이따금 아늑해.”

토머스의 아빠는 일자리를 찾아 독일로 떠나고, 이모 집에 혼자 남게 된 그에겐 일상의 큰 변화이기도 합니다.

 

‘베트가 다가왔다. 어찌나 떨리는지 배가 살살 아팠다. 그 애는 나랑 키가 똑같았다. 단 1센

티미터도 작지 않았다. 그 애는 내 주위를 한 바퀴 빙 돌더니 코가 맞닿을 만큼 내 곁에 바짝 붙어 섰다. 차갑게 식힌 비눗물 냄새가 났다. 향기로웠다.’

 

토머스나 츠반보다 겨우 두 살 위인 베트는 토머스의 가족에 대해서 의외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머스의 가족과 베트, 츠반의 가족과 무언가 깊이 관여 되어있다는 느낌이 전달됩니다. 토머스의 아빠가 독일로 떠나던 날. 기차역에서 토머스는 그의 아빠에게 묻습니다. “츠반 가족을 알아요?” 아빠는 나를 지나쳐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건 왜 묻니?” “피에트 츠반이 우리 반이에요.” 아빠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투덜댔다.

“열차가 지금 당장이라도 출발할 텐데, 하필이면 지금 그 얘기를 꺼내야겠니?”

 

던 턱스 거리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난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아빠랑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아빠는 아무것도 아닌 놈들이 어떤 것인 놈들보다 낫대. 아무것도 아닌 놈들은 어떤 것인 놈들을 미워하지 않는 반면 어떤 것인 놈들은 아무것도 아닌 놈들한테 유감이 많으니까.”

 

역사상 사람이 사람에게 행한 일중 두고두고 반성하며 마음을 쓸고 닦아야 할 부분이 참 많이 있지만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에게 행한 일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과 치유가 불가능하지요.

 

작가는 어른이 아닌 아이들의 눈과 입을 통해서 그 어렵고 힘든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치기어린 말과 생각을 통해서 그 음울한 기운에 반짝반짝 햇살이 비춰지기도 합니다.

 

홀로코스트를 직접 겪은, 남은 자들이라 불리는 생존자들은 그들이 살아 남아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힘이 듭니다. 그래서 지난 일들을 그저 가슴에만 묻어두고 싶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그 상처를 드러내는 일이 있지요.

 

200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임레 케르테스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홀로코스트를 겪고 나니 거울을 바라보는 것도, 삶의 존엄을 믿는 것도,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무것도 쉬운 게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와의 인터뷰를 책에 담은 사비 아옌은 또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임레 케르테스는, 어렸을 때 부다페스트에 살았던 열네 살 소년과는 전혀 다르거나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인다. 1944년 어느 날, 일을 하러 공장으로 가는 버스에서 강제로 하차되어 그 길로 포로수용소에 끌려갔던 그 소년 말이다. 아유슈비츠, 부헨발트, 짜이츠는 죽음의 정류장이었다.

그들은 소년을 번호(64921번)로 불렀고 줄무늬 옷을 입혔으며, 머리를 빡빡 밀고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의 체모를 깎았다. 그곳에서 어린 케르테스는 햇살과 수프의 온기를 담담하게 즐기는 것을 배우는 한편, 동료들을 태우는 화형장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굴뚝 앞에서 영혼이 한 없이 비루해졌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냄새가 풍기고 있었어요.”

 

비록 이 소설에 등장하는 토머스, 츠반, 베트는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그 일들이 가슴에 새겨진 어른들의 틈에서 듣고, 배웁니다. 각인이 됩니다.

 

“서로 싸웠니? 독일 놈이랑 유대인이랑?”

츠반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아니, 서로 싸운 게 아니야. 수용소에선 독일인들한테만 무기가 있었어. 유대인들은 기껏해야 낡아 빠진 칫솔이나 있었겠지. 그리고 몸에 힘이라곤 남지 않고 진이 다 빠지면 살해됐어.”

 

토머스에게 베트의 존재는 사랑하는 대상이자, 엄마와 같은 이미지로 다가섭니다.

비록 서로가 마음에 담겨진 것과 다른 말을 주고받긴 하지만 말입니다.

토머스, 츠반, 베트는 서로 기약 없이 흩어집니다.

서로의 갈 길, 살아가는 방법이 따로 있는 법이지요.

 

토머스와 베트가 오랜만에 재회했습니다.

서로를 그리워했다는 표현은 여전히 생략된 상태입니다.

 

폰델 공원 벤치에 서로 좀 떨어져서 앉는다.

오래도록 정적이 흐른 다음 내가(토머스) 말문을 연다.

“ 이 벤치에는 셋이 앉아도 넉넉할 거야.”

베트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씩 웃음이 난다. 베트한테는 굳이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다 이해한다.

내가 말한다.

“내일은 여기 도 다른 사람들이 와서 앉겠지.”

베트가 말한다.

“어제는 여기 또 다른 사람들이 와서 앉았어.”

내가 말한다.

“어제는 놀라운 거야. 내일도 놀라운 거야. 하지만 오늘이 가장 놀라운 거야.”

베트가 맞장구친다.

“오늘은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아주, 매우 놀라운 거야.”

 

우리 모두에게 오늘 이시간이, 이 순간이 가장, 아주, 매우 놀랍고 소중한 시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s******5 2012.04.25. 신고 공감 4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32/60] 아이들에게 남겨진 전쟁의 상흔
"[32/60] 아이들에게 남겨진 전쟁의 상흔" 내용보기
큰 아이가 학교에서 서로 돌려보는 책이라며 집에 둔 책을 꺼내 보았습니다. 며칠 지나면 다른 친구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해서 급히 읽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몇 년이 흐른 1947년의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전쟁이 끝나고 몇 달 뒤 크리스마스에 엄마를 티푸스로 잃은 토마스, 엄마와 아빠를 홀로코스트로 잃은 유대인 츠반, 유대인이자 공산주의자인 아빠를 홀로코스트로 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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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아이가 학교에서 서로 돌려보는 책이라며 집에 둔 책을 꺼내 보았습니다. 며칠 지나면 다른 친구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해서 급히 읽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몇 년이 흐른 1947년의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전쟁이 끝나고 몇 달 뒤 크리스마스에 엄마를 티푸스로 잃은 토마스, 엄마와 아빠를 홀로코스트로 잃은 유대인 츠반, 유대인이자 공산주의자인 아빠를 홀로코스트로 잃은 츠반의 사촌누나 베트.봄이 더디게 왔다는 제목이 암시하듯 그 해의 겨울은 무척이나 춥고 깊었고, 사람들 마음을 얼어붙게 했던 심리적인 겨울 역시도 따스한 햇살에 녹아내리기엔 너무 추웠던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책 표지에 있는 아이의 그림자마저도 차갑게 느껴지고, 혼자인 듯 외로움이 전해져 오며, 도시의 풍경이 우울하게 다가옵니다. 

 

 어려운 상황을, 특히나 전쟁이라고 하는 극한 상황을 겪어야 했던 아이들은, 그 전과 후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법입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겪어야 하는 경험은 아이들을 천진함 속에 남겨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열 두살의 토마스와 츠반, 열 네살의 베트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들은 제 나이보다 몇 살은 더 지난 아이들을 보는 듯합니다. 대견하다기보다 안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아파옵니다. 어쩌면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늘 웃으며 지내야 할 아이들이, 죽음과 이별을 겪으며 어른들처럼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아빠가 독일로 일자리를 구해 떠나면서 우연히 같이 지내게 된 세 친구는, 지나간 아픔을 함께 나누고 현재의 시간을 공유하며 우정과 사랑을 쌓아갑니다. 츠반에게 깊은 우정을 느낀 토마스는 베트를 사랑하게 되고 - 열 두살 소년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사랑 말입니다 - 사촌인 츠반과 베트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또 다른 애정을 나눕니다. 외삼촌을 따라 미국으로 떠난 츠반과 친척들과 다른 마을로 떠난 베트, 그들을 그리워하는 토마스. 하지만,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그들도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네델란드에서는 2차 대전 당시에 네델란드 사람들이 많은 유대인을 숨겨주고 어려움을 함께 했다고 합니다. 들키면 모두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에서, 다른 이를 위해 따스한 인간애를 발휘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그 나라 사람들의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물자반입이 차단되어 수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게 되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굶주림의 겨울이라는 말로 그 당시 처참했던 시간을 표현하기도 합니다만, 아마 당시의 처참하고 힘들었던 상황을 온전히 드러내기엔 말이나 글이 가진 한계가 뚜렷합니다.

 

 춥고 배고픈 시간, 전쟁의 상흔이 아직 아물지 않은 시간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의 시간이 복합적으로 '겨울'로 표현되고 있고, 봄이 더디게 온다는 표현을 그 상처의 깊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대인을 향한 집단 학살을 단순히 홀로코스트라는 말로 다 묻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절대적인 악인이 저지른 일이 아니고, 우리 이웃에 사는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된 그 학살을 그저 홀로코스트라는 말에 다 담아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고 있듯, 악의 평범함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있는 법이고, 우리가 양심에 잠시 눈을 감으면 그 '악'은 나를 지배하여 상상할 수 없는 범죄를 정당화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억압받던 유대인들이 지금 팔레스타인들을 향해 벌이고 있는 일들도 어쩌면 그와 비슷한 범주에 들어가는 일이 아닌가, 그것이 그들의 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학살이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전쟁에 혹은 다른 이들에 가하는 폭력에 둔감해져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물어야 할 때입니다.

s*****2 2016.06.1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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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은 더디게 왔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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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와 츠반의 이야기, 나와 베트의 이야기, 암스테르담의 추위와 얼음 이야기, 그리고 얼음이 녹아 이 모든 것이 끝난 나날의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그리고 대체 누구한테 해야 할까? (16p)1947년 겨울, 혹독했던 2차 대전이 끝나자 12살 주인공 토마스는 아버지와 함께 고향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 돌아왔다. 전쟁은 끝났지만 페허 속의 춥고도 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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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와 츠반의 이야기, 나와 베트의 이야기, 암스테르담의 추위와 얼음 이야기, 

그리고 얼음이 녹아 이 모든 것이 끝난 나날의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그리고 대체 누구한테 해야 할까? (16p)




1947년 겨울, 혹독했던 2차 대전이 끝나자 12살 주인공 토마스는 아버지와 함께 고향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 돌아왔다. 전쟁은 끝났지만 페허 속의 춥고도 낡은 삶은 또 다시 현실이 되어 사람들의 상처조차 돌볼 겨를도 없이 그렇게 지리지멸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다를 건 없었다. 


 2차대전의 유럽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은 많이 접해왔지만, 이렇게 아이들의 담담한 관점으로 그 나이때의 천진함과 고통에 의한 성장이 동반된 이야기는 처음이였다. 우울하고 쓸쓸한 배경은 내재되어 있었지만, 아이들은 소설 내내 자신의 주변을 받아 들이고 사랑하며 오늘을 가치있게 여겼다.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열병을 앓더니 크리스마스날 죽었고 나는 반고아가 되었다.(아빠는 세상엔 반고아란 없다고 했지만) 전쟁이 끝난지 2년 가까이 지났으나 아빠는 일자리가 없고 겨울은 어름처럼 차갑기만 했다. 

 그런 아빠가 돈을 벌기 위해 독일로 가기로 결심을 했고 나는 이모집에 잠시 지내기로 한다.



이모네 집에서 보낸 첫날 밤, 눈을 붙이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깬 채 누워 있는 꿈을 꾼 건지도 모른다. (124p)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지냄을 보여줬던 토마스는 아버지까지 독일로 떠나자 뭔지 모를 쓸쓸함이나 불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모가 다리를 다치게 되면서 토마스를 돌보기 힘들어 지자, 학교 친구인 츠반이 사는 곳에서 몇일간 지내게 되었다. 그집은 크고 멋진 집이였지만 츠반 그리고 츠반의 친척 누이 베트가 전쟁때 잃은 부모님을 대신해 친척집에 돌봄을 받으며 머물고 있었다.


"난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아빠랑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아빠는 아무것도 아닌 놈들이 어떤 것인 놈들보다 낫대. 

아무것도 아닌 놈들은 어떤 것인 놈들을 미워하지 않는 반면 어떤 것인 놈들은 아무것도 아닌 놈들한테 유감이 많으니까." (141p)




 츠반은 유대인이였고, 아빠는 공산주의자였다. 러시아의 사람들이 '동무'라고 부르며 평등하게 지내는 모습을 옳다고 여겼다. 그래서 위험한 공산주의자로 찍혀 아빠를 나라에서 잡아갔고, 위험하지 않은 유대인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폴란드 수용소로 옮겨졌다. 정세가 더욱 불안해지자 츠반의 아빠는 아들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지인의 집안에 츠반을 숨겨 놓는다. 그렇게 엄마의 얼굴도 아빠의 얼굴도 희미해진 기억으로 6살의 츠반은 그 나이의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다. 엄마와 아빠는 더한 고통을 겪으며 살해되었을 것이다.


"가장 끔찍한 일은 내가 아무것도 함께 겪지 않았다는 거야. 굶주림의 겨울도, 일제 검거도, 나는 유대인들이 자기 집에서 끌려 나오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 내가 유대인이라는 것조차 나는 몰랐어.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 안 나. 너희 엄마는 어떻게 생겼니?" (206p)


 베트의 아빠도 유대인이라 폴란드 수용소에 끌려가 살해되었다. 엄마는 유대인이 아니였지만 아빠가 그렇게 되고 나선 정신이 많이 나약해져 버렸다. 그렇게 전쟁을 겪고난 베트와 엄마는 시대의 유대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존재 자체가 상처로 남겨지게 되었다.


베트가 말했다. "그 사람들은 다 죽었어."  손에 든 사진을 다시 살펴보았다. 

베트는 하얀 집게손가락으로 왼쪽에 있는 남자아이를 

툭 치면서 말했다."여기 이 사람만 살아 있어." 
"응, 모두 폴란드에서 살해됐어. 그렇지?" (233p)


"엄마는 유대인이 아니야. 어쩌면 그게 아빠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유대인이 유대인 아닌 사람과 결혼했으면 가만히 놔두기도 했어. 하지만 언제나 그런 건 아니였지. 독일인들은 뭐든지 자기들 마음대로 했어. 수많은 사람을 죽였어. 아이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젖먹이들까지. 그것도 쉬쉬하며 죽인 게 아니야. 아니, 그들의 위대한 총통이 공식적으로 허락했어. 때로는 전쟁이 한창일 때가 그리워. 그땐 아빠가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었어. 요즘도 때로는 그렇게 생각해. 아빠는 죽지 않았어. 아빠는 돌아올꺼야. 그럼 겁이 나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아.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 알기 때문이지." (237p)



토마스는 츠반과 베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생활하면서 공감하고, 또 위로 받았던 것 같다. 엄마의 죽음 아빠의 부재.. 하지만 츠반과 베트에 비하면 나는 너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다. 그것을 알아가면서 12살의 나 토마스는 그리고 츠반과 14살의 베트는 그렇게 상처를 조금씩 덮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잠들지 못하고 곰곰히 생각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은 그냥 어둠이 아니다. 눈을 감으면 어둡지만 이 어둠 속에서도 볼 수는 있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둠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 무(無)란 무엇일까? 빈 상자 속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빈 상자를 열면 무를 볼 수 있을까? 그래, 그럴 수 있다. 무는 존재한다. 그러니까 죽은 이들 또한 존재한다. (240p)



토마스는 감정에 솔직했다. 아, 내면의 감정에게 말이다. 겉으로는 반대로 행동하고 표현이 서툴렀으나 그 나이의 아이들에겐 당연한 일이였다. 하지만 토마스는 스스로의 감정에 반응하는 솔직하고 순수한 아이였다. 그렇게 츠반과 베트와 어울리며 우정을 느끼고 사랑을 경험했다. 2살이나 연상이지만 베트가 너무나도 좋아 너무너무 행복했다.그들은 어울려 다니며 영화도 보러가고, 엄마, 아빠와 함께 살던 집에도 가보며 티격태격 하면서 사랑도 하고 우정도 쌓고 질투도 느끼면서 성장하고 있었다.



"베트는 슬픈거야.."

"왜?"

"오늘 하루가 이토록 아름다우니까." (266p)




그렇게 아이들은 좋은 한때를 보내지만, 결국 각자의 사정으로 멀리 흩어지게 된다. 곧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하지만 츠반은 삼촌을 따라 미국으로 갈 것을 진작부터 생각 했던 것 같다. 나중에 배신자가 될지도 모른다며 매번 토마스에게 미안함을 보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츠반은 결국 뉴욕 브루클린으로 떠났고 토마스에게 아주 긴 편지를 남기게 된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소리 내어 읽어주면 그 편지는 더는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이따가 혼자서 편지를 몇 번 더 읽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럼 그 편지는 다시 내 것이 된다. (321p)



토마스는 마지막 남은 베트를 만나기 위해 암스테르담 근교의 먼길을 찾아가지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채 담담하게 이별을 한다. 그 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지만 서로가 있어 견딜 수 있었고 이제 봄이 오기 위해 길은 녹은 눈으로 지져분해졌다. 하지만 그런 오늘을 살 수 있다는 것 조차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리고 츠반, 베트는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어제는 놀라운 거야. 내일도 놀라운 거야. 하지만 오늘이 가장 놀라운 거야."

"오늘은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아주, 매우 놀라운 거야." (391p)



 

 고통은 아이들을 철들게 한다. 아이들은 천진하고 개구졌지만 때론 어른을 넘어서는 생각의 성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모습이 나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전쟁후의 삶이란 나로썬 상상조차 하기 힘들테지만 그렇게 아이들이 철들어 가는 모습을 보고 어른으로서 미안해짐을 느낀다. 서로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세명의 아이들을 보며 오히려 내가 위로받던 시간이였다. 


토마스, 츠반, 베트와 함께 '소니보이'를 듣고 싶어지는 밤이다. 





c*******2 2012.04.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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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이제는, 그 봄을 어떻게 맞이해야하는가를…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이제는, 그 봄을 어떻게 맞이해야하는가를…" 내용보기
제목만으로도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고, 전체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어갈지 알 수 있는 책들이 있다.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가 그런 책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없이 힘든 추위가 지속되는 겨울이라는 시공간에 놓여있지만 그래도 다가올 봄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봄이 올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겨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힘겨운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이제는, 그 봄을 어떻게 맞이해야하는가를…" 내용보기

 제목만으로도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고, 전체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어갈지 알 수 있는 책들이 있다.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가 그런 책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없이 힘든 추위가 지속되는 겨울이라는 시공간에 놓여있지만 그래도 다가올 봄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봄이 올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겨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힘겨운 시간이 계속되는 삶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은 실제 겨울에 놓여있기도 하지만, 전쟁이라는 크나큰 상처까지 더해져 더 춥게만 느껴지는 공간이다. 또한 그 속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보통의 어른들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이다. 전쟁의 상처가 여기저기에 남겨진 1947년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그 공간에서 함께하는 토마스와 츠반, 베트, 이 세 아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런저런 이야기 전에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서 말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이 끌렸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라면 지금의 나에게 어떤 희망을 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그해 봄이 더디게 왔듯이, 나의 봄도 더디지만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희망. 그 희망이라는 것이 당장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한방 먹고 말았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는 훈훈함이 가득할 것이며, 새로운 희망도 확실히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막연한 나의 바람이 충족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왠지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소중한 것을 너무 쉽게만 얻으려고 했던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랄까. 이 세 아이들도 힘겹게 견디며 찾아가는 그 희망들을 난 왜 아무런 노력도 없이 거저먹으려고만 했을까 싶은…

 

 전쟁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 열두 살의 ‘토마스’와 ‘츠반’, 그리고 츠반의 사촌누나 ‘베트’. 토마스는 엄마를, 츠반은 엄마와 아빠 모두를, 그리고 베트는 아빠를 잃었다. 어린 나이에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경험하고, 그 상처를 계속해서 지니고 살아가야하는 아픔까지 더해진 이 아이들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런 과정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그들은 자기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치유해가면서 봄을 찾아 한걸음씩 나아간다. 자신들도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내뱉지만, 어느 순간에는 나를 뜨끔하게 만들기도 한다. 머리로는 알지 못하는 말을, 어렴풋하게나마 가슴으로는 느끼고들 있는 것일까 싶어서 슬프기도 하고… 물론 그 속에서 그래도 아이는 아이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순수함에서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저 피하기만 하고 싶은 기억이 그들에게서는 수많은 이야기들-정말 쓸데없거나 생뚱맞게만 보이는 이야기들까지-로 옮겨져 서로서로에게 위로와 치료의 힘으로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더더욱 말이다.

 

 내가 느낀 부끄러움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단단한 얼음을 조금씩 녹여갈 수 있는 그 과정들. 입 밖으로 꺼내기도 힘든 이야기들을 자신들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때로는 거침없이 뱉어내면서 성장해가는 모습들. 아프지만 아프지 않다는 듯이 혹은 아프다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들. 나는 그동안 정작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얼마나 피해 다녔는가를 떠올려보면 더더욱…

 

 이 책의 놀라운 점이라면 전쟁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거나 그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말할 수도 없을 만큼 아프고, 결코 잊을 수도 없는 일들이 세 아이들이나, 나를 비롯한 독자들에게는 그저 어렴풋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가슴속에는 그 무엇보다도 선명한 모습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슬프다. 그렇다고 한없이 아프기만 하고, 한없이 슬프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이야기라고 할까?!

 

 아이들의 길었던 겨울 이야기는 그들에게 펼쳐질 더 긴 미래를 생각하게 만든다.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그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겨울이지만, 어느새 봄은 찾아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말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당연하게 그리고 멍하니 앉아 봄을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모습들에서 그들의 미래가 크게 걱정되지 않기도 한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나 자신이랄까!? 뭐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그 어떤 견디기 힘든 아픔을 전해주는 추위일지라도 언젠가는 그 추위를 한순간에 녹여줄 따뜻함이 기다리고 있고, 또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봄은 더디더라도 반드시 찾아온다. 다만 이제는 봄이 올 것이냐를 두고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로 남겨지는 것이 아닐까…

b****j 2012.04.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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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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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겨울이 드디어 지나가고 마침내 봄이 오고야말았다.  끝끝내 물러갈것 같지않던 동장군이 봄바람의 기운을 결국 이겨내지못하고 물러가면서 미련을 질질 흘리며... 이 책은 네덜란드 3대 청소년 문학상을 동시에 석권을 했을 정도로 뛰어난 문학성을 보여주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역시 네덜란드라는 ..우리에겐 익숙치않은 나라의 소설이다보니 역시 정서가 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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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겨울이 드디어 지나가고 마침내 봄이 오고야말았다. 

끝끝내 물러갈것 같지않던 동장군이 봄바람의 기운을 결국 이겨내지못하고 물러가면서 미련을 질질 흘리며...

이 책은 네덜란드 3대 청소년 문학상을 동시에 석권을 했을 정도로 뛰어난 문학성을 보여주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역시 네덜란드라는 ..우리에겐 익숙치않은 나라의 소설이다보니 역시 정서가 달라서 우리완 코드가 맞지않는 유머가 종종 등장하곤하여 이해에 조금 어려운 점은 있었다.이책의 배경은 2차대전이 끝난후인 1947년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히틀러와 나치가 남긴 상처가 채 아물지않고 사람들에게 슬픔과 두려움이 남아있던 상태였던것 같다.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아이들의 입을 통해..그것도 유대인소년과 소녀의 입을 통해 이야기한다.

 

엄마를 잃고 약간은 비현실적인 아빠와 단둘이 살아가면서 늘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소년 토마스...가까이에 이모가 살고있어 항상 잔소리를 하고 걱정을 하지만 별다른 일 없이 살아가는 토마스는 그 해 겨울 반으로 전학온 츠반과 친해진다.항상 말이 없고 모든걸 알고있는 소년...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와도 그 비밀을 나누려하지않고있다.그런 그아이와 친해진 토마스는 그 아이의 저택으로 놀러가게 되고 그 곳에서 베트를 만나게 되면서 늘 같이 붙어다니게 된다.

별다른 일 없이 흘러가는 일상속에서 아이들의 입을 통해 가끔식 드러나는 진실들....유대인인 그 아이들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혹은 아빠를 잃고 가족을 잃은것..그 모든것들이 그 아이들에게 웃음을 앗아가고 행복을 앗아갔음을 알수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도 잠들지 못하고 늘 불안에 떨고 있는...살아남은 사람들..모두가 전쟁으로부터 크고 작은 상처를 얻고 고통받고 있었던것..세 아이들의 우정과 사랑을 통해 점차로 상처를 딛고 조금씩 치유해가며 성장해가는 이야기이다.

 

전쟁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주로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아이들이 그 전쟁으로 얼마나 큰 상처를 받고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짧은 몇마디의 글귀로도 알수있었다. 웃음을 잃은 아이,절대로 크게 웃는법이 없고 비밀을 얘기하지도 않는 모습에서 그 내면의 상처를 미루어 짐작할수 있었다.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죄의식에 대해서도...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상처를 주는지 아이들의 입을 통해 그 참상을 이야기한다.이런 잔혹한 이야기를 덤덤하고 약간의 웃음을 섞어서 이야기하는 작가...그래서 더욱 그 잔혹함이 피부에 와닿는것 같다.

 

y******0 2012.03.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