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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한,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이다. 이미 여러 출판사에서 아주 다양하게 번역되어 출간되었기 때문에, 구매할 때에는 어떠한 것이 최선인가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일단 이 책은 판형이 편한 책은 아니다. 세로로 긴...그리고 난 각주가 책의 말미에 한꺼번에 달리는 걸 싫어하는데(일일이 찾아 읽기 힘드니까) 이 책은 각주가 말미에 달려있고.
대신 사진이 풍부하다. 컬러는 물론 아니지만, 그 시대에는 어차피 흑백사진이니까. 그리고 카프카의 어린시절부터 나이순대로 사진을 배열해 놓은 것도 마음에 들고. 편지에 언급되는 여러 지역들의 사진도 그 장면장면에 실려있다. 사진배열이 내용의 몰입에 방해되지는 않는 정도이다.
동일 작품의 다른 출판사 버전은 잘 모르지만, 이 버전(?)을 구입하실 분들은 참조하시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카프카 팬으로서, 항상 그가 이 편지를 아버지께 직접 전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의 모든 불안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롯되었고, 그의 행동을 이 편지를 읽으면 알 수 있지만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친구는 이걸 읽고(그 친구는 토마스 만 팬이다) 카프카는 뭔가 꼬인 사람 같아!! 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아버지나, 가까운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모순되고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를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감정은 그 많은 만인의 고민중 하나이지 않을까하고.
그래서 나는 계속 카프카와 나를 동일시하게되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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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편지란 평소에 말로는 하기 힘들었던 일들, 일단 풀어놓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릴 오래 참아왔던 일들, 혹은 수줍음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속 깊은 정, 사랑.
카프카가 그랬을까? 이름은 익숙하지만 작품이라고는 '변신' 밖에 읽어본 적 없는 카프카라는 하나의 존재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편지였다.
그가 느낀 아버지를 한마디로 표현해보면, 자기 중심적인 나라는 알맹이에 근엄함 엄격함으로 된 갑주를 두르고 언행 불일치의 칼을 휘두르며 애정을 '행사'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애정엔 너무나 접점이 없었다.
어린 시절의 카프카는 아버지를 '거인'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고, 항상 두려움으로 아버지에 대한 공포만을 키워갔던 것 같다. 아버지가 두렵고 무서웠지만 아버지를 떠날 수도 없었다.
편지 속에서 카프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카프카에게 있어 아버지는 늘 무섭고 어렵고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공익 광고로 "집 안과 집 밖에서 당신은 얼마나 다른 사람입니까?"하고 묻는 것을 보았다. 카프카에게 있어 글쓰기란 오랫동안에 걸쳐 의도적으로 진행된 아버지와의 결별 과정이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이 편지 역시 그 의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가 원하고 바랬던 것은 오직 정신적 무능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리라. 아버지의 크나큰 거인의 그늘을 벗어나는 것, 그 공포에서 해방되는 것 말이다.
이것이 카프카의 삶의 모든 기록이다.
그의 삶과 그의 작품들에 짧은 묵념. |
| 화자는 카프카 수신인은 아버지이다. 때론 굉장히 사적인 영역을 노출하면서 아버지를 부르는 카프카에게 인간적인 연민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카프카가 그 장문의 편지를 쓰면서 곳곳에 카프카의 가족사진과 카프카가 살던 주변 환경의 흑백사진이 실려있어서 매우 흥미롭고 카프카에 대한 전기문을 읽는 기분이기도 했다. 모든 예술가에게 첫번째 적은 바로 아버지라는 생각이 든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존재는 자유분방한 예술가의 마음을 위축시키고 펜을 속박한다. 카프카는 그의 아버지에겐 방탕한 아들이었지만, 실은 서로를 말없이 사랑하는 부자지간이라는 것을 옅볼수 있었다. 기타 작가들의 산문집보단 호소하듯 쓰여진 이러한 편짓글이 작가의 내면을 한층 더 와닿게 해준 것 같다. 물론 이것을 하나의 새로운 소설 형식이라고 해석을 하기도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 혹은 아버지로 불리는 거대한 사회에게던지는 가슴아픈 화두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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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크게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너는 이 편지 자체만 가지고 보아도 아직 나한테 빌붙어 살고 있다.”
남들에 대한 아버지의 불신조차 제 자신에 대한 저의 불신만큼 그렇게 크지는 않을겁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길러주셨지요.”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나의 어머니였다.
그 다음은 이 편지글이 아버지에 대한 전대미문의 소송 소장이라면, 아버지인 헤르만 카프카의 죄목은 과연 무엇일까? 그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무슨 죄일까였다.
이에 피고소인이 되어버린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와의 대화를 리뷰로 작성하고 싶어졌다.
반갑습니다. 헤르만 카프카씨.
잠깐 돌아 앉아 보세요!
그게 그의 삶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신은 행복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욕구의 충족' 말고도 '관계의 만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더군요. 추위와 배고픔 보다 더 두려운 것은 지옥문 앞에 서는것 뿐이라고 확신하는 당신에게 그깟 ‘관계’로 인한 아픔 따위가 눈에나 들어왔겠습니까만은, 프란츠는 달랐습니다.
이처럼 다름으로 인한 부자 간의 '부정적인 상호작용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켜켜이 쌓여 견고한 틀을 만들었고, 프란츠는 결국 그 틀에 같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의 틀 역시 전적으로 당신에게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더군요. 그 견고한 틀은 어린 프란츠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고, 시간이 흘러 그는 점점 자라났지만 그 구조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과업을 완수하기에 프란츠는 너무 소심했고 심약했으며 순종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상대인 당신은 어떤 도전에도 끄떡하지 않는 강인한 '힘과 '정복 의지'로 무장되어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온 카프카 가문의 ‘피’가 주는 위압감은, 아버지를 떠나려는 마음을 먹는것 만으로도 두려움과 죄책감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당신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피해 다니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고, 결국 그는 당신과의 소통의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아들 카프카는 지나치게 맑고 투명했으며 순수하고 예민한 아이였습니다.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적당히 자기를 열고 외부와 타협하고 받아들이면서 혼탁해질 필요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무엇보다 치명적이었던 것은 세상의 경이로움에 빠져 한창 세상을 탐색해 나갈 시기의 프란츠에게 당신이 들이댄 건조하고 무미한 '현실'이라는 잣대였습니다. 물론 그 잣대마저 대개 일정한 노선이 없이 그때 그 때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일관성 없는 자기 중심적인 것이었지만요. 유아적 통찰력과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림들은 당신 앞에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일쑤였고, 당신의 부정적인 판결은 늘 이미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따라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그렇기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수수께끼 투성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끊임 없이 혼란을 일으키는 외부세계와 소통을 끊고 안으로만 파고 들어가 묻을 닫아버립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당신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하는 당신의 저주와도 같은 암시와 예언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과 산다는 것은 곧 대화와 사는 것입니다. 필경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당신의 말은 늘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철저하게 융합되어 지속적으로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 결과 프란츠는 자신이 꿈꾸고 계획하는 모든 것은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비합리적인 신념도 얻게 되었지요.
말이 길어졌네요!
"아무튼 아버지와 저는 그렇게 달랐고, 다르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위험했습니다" -프란츠
이 말 뒤로 쓸쓸하게 돌아서 가는 애잔한 프란츠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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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네가 쓴 수십여 페이지에 달하는 편지는 아버지께 전하지 못했다. 얇은 책 만큼이나 두툼한 그 긴 편지를 네가 과연 아버지께 보여드리려고 했었는지 궁금해진다. 평소 네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늦게까지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 무언가를 글로 써내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만 내가 보기에도 네가 쓴 편지는 그리 이해하기 쉬운 말로 쓰여있지는 않더구나(그렇다고 해서 내가 네 아버지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너도 알고 있겠지).
조숙한 네가 초등학교 때부터 항상 진지하고 점잖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기억을 나는 지금도 가끔씩 네 어릴적 사진 속에서 회상해보며 흐뭇해하곤 한다. 그 후로도 변함없이 넌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성장해 왔고 그런 너를 나는 언제나 고맙게 생각해 왔다.
네가 쓴 편지는 그런데, 내가 그동안 너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담고 있더구나. 언젠가 네가 쓴 "유형지에서"란 글이 책으로 만들어져 나왔을 때, 넌 카드놀이를 하시던 아버지가 네 글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했더라만,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가 너를, 네 능력을 무시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아라. 아버지가 가족들을 위해 평생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고 또 지금도 얼마나 애쓰시는지 너도 잘 알잖니. 짐작컨대, 아버지가 네가 하고 있는 일을 과소평가 하시는게 아니라 다만 너의 책 속의 세계와 그 분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인 듯 싶다. 물론 단 한번의 추측으로 모든 것을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보기에 아버지는 네가 쓰는 글들을 두려워하고 계신 것 같다. 알다시피 아버지는 집안형편 때문에 너 만큼 많은 교육을 받지 못하셔서 복잡한 글을 읽고 쓰시는 것보다는 말로써 표현하는데 훨씬 더 익숙한 분이잖니.네가 정말로 우리들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가 지나온 날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수는 없겠니? 이미 흘려보낸 시간들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잖아.
아버지는 아무리 건장한 체격에 힘이 넘치는 분이라고 해도 이제는 눈앞에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다. 그러니 집에서만이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렸으면 좋겠다. 점점 더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인생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가시는 것처럼 보인다. 너의 결혼문제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고... 오틀라와 네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는 걸 너희들이 우리를 돌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한 행동으로 생각하신단다. 하지만 나는 네가 집을 떠나 독립하려고 애쓰는 것을 그리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는 깨닫지 못했겠지만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난 너를 네 아버지의 또 다른 분신으로 생각해왔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내 앞에 두 명의 똑같은(?) 카프카가 동시에 함께 있다는 거겠지.
두 사람의 불화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도록 내 입장이 유도될 때 나는 가장 괴로웠다. 그래서 네가 하루빨리 결혼해서 가장으로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이 가족 전체를 위해서도 가장 바람직한 일이 될거라고 생각했었다. 네가 펠리체와의 파혼을 결정했을 때 우리 모두 몹시 실망했었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곧 더 좋은 여자를 찾아내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네가 율리에를 선택했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매우 언짢아 하셨다. 여자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 네가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적어도 우리는 네가 교회당지기의 딸과 결혼함으로해서 네 아버지가 겪었던 그 고생을 너와 우리 후손들이 다시 겪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다(너는 물론 신중하게 합리적으로 선택했다고 믿고서 서둘러 약혼을 했겠지만 말이다). 유태인들이 정식허가 없이도 결혼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리 아주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네 할아버지의 경우를 들어서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우리가 가진 권리를 소중하게 사용할 줄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것이 우리 마음대로 만들었다 부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니? 네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 설령 내 입장에서는 결코 너를 이해할 수 없다고 네가 생각할지라도- 이제는 너도 자식으로서 자신의 입장만을 변호하기 보다는,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와 불합리함을 가진 한 인간으로 이해하고 포용할 때가 되었다고, 아니 적어도 그렇게 받아들여주었으면 하고 나는 간절히 바란다.
끝으로 네 편지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하고 싶구나. 아버지는 사실 그 편지를 읽어 보셨단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너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란다.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네가 없는 사이에 -네가 없을 거라 믿고서- 몰래 그 편지를 읽고 계시다가 갑자기 나와 마주치게 되었기 때문이지. 아버지는 얼른 편지를 덮고서 표정을 바꾸려 애쓰셨지만... 그러니 내가 어떻게 그 편지를 네 아버지께 '전할' 수 있었겠니. 내가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도 어쩌면 쉽게 표현될 수 없는 그 때의 상황을, 그 분위기를 너에게 제대로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되어 무척 기쁘구나.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너는 지금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인상깊은구절] ...그건 마치 한 사람은 다섯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또 한 사람은 한 계단만 올라가면 되는데, 뒤의 사람의 경우 그 하나의 계단이-적어도 그에게는-앞 사람의 다섯 계단을 합한 것만큼이나 높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의 사람은 그 다섯 계단만이 아니라 백 개, 천 개의 계단이라도 계속해서 올라갈 수 있을 것이고 선이 굵고 몹시 고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밟고 올라간 계단들은 그 어느 것도 뒤의 사람한테 그 하나의 계단이 갖는 만큼의 의미를 갖지는 못했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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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바늘끝같은 예민함을 가진듯한 얼굴.. 내면의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의 단편들..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의 글에서 느끼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어떤 절망감.. 너무도 선연히 얼굴에 나타나는 그의 예민함과 절망감은 오히려 너무 생생해서 그가 궁금해진다.
소설가의 에세이나 개인적인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묘한 기분이다. 소설속에서는 어렴풋이 알듯한 그의 생각이 개인적인 글을 통해서는 좀 더 명확하게 잡히기 때문에.. 작가와 조금은 친분을 맺게된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나 편지글들을 접할 기회가 생기면 살짝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사진으로만 보던 이상형의 사람을 처음 만나러 갈때의 기분처럼..
카프카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그리고 그의 간략한 연보를 통해서 막연히 그가 가진 고독이라던가 절망감에 대한 원인같은 것들이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신문기사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을 읽게 되었다. 카프카의 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라. 그의 불안, 절망의 원인이라고 하는 아버지.. 결국 부치지 못했다는 이 편지를 카프카는 정말 아버지에게 보내려고 했을까?
사실 글을 읽다보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보고 같기도 하다. 아버지와의 갈등에서 생긴 그의 마음 속 병을 치유하기 위해, 마치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자신을 회상하는 느낌이랄까? 어쩜 그가 원한건 아버지와의 화해나 아버지로부터의 해방이라기 보다, 자신혐오적인 자신의 치유가 아니였을까?
나에게는 강압적이고 독선적인 부모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글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나도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도 믿지도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과 화해하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스스로에 대한 불확신이나 불안감이 나 자신을 더 힘들게 하기 전에.. |
| 카프카가 정말 아버지에게 드리려고 썼던 편지를 옮긴 이 책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상당하다. 일단은 자신이 스스로 밝혔듯이 그의 모든 문학은 아버지를 상대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에게 아버지의 영향은 컸다. 뭐랄까... 그의 문학의 배경은 세계 전부가 아니라 아주 작은 그의 가장 내부에 있었다고 할까. 적어도 내가 읽어본 카프카 작품의 내면 세계는 매우 작고 내밀한 것이다. 그 속에서만 본다면 아버지는 그에게 절대자이다. 그를 인식하고, 그에게 독특한 정서를 가지고, 결국 그의 영향 속에서 결별하려는 카프카는 매우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공간 속에서 그의 사유를 형성했다. 그런 점에서 이 편지를 읽는 것은 그의 작품 전체를 이해하는 키워드이다. 너무 무섭고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유약한 아이의 내면은 무엇일까? 카프카가 끊임없이 그려내는 이미지는 그 속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로 다시 확대된다. 독특하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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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좋을수 만은 없는가 보다. 카프카가 아버지께 드리는 이 장문의 편지(어쩌면 애초에 편지의 형식을 빌은 글 일지도 모르겠지만)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카프카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머니와 나와의 그것과 놀랍게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아버지같은 권위적인 행동에 의한 지배와 종속의 감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 따른 고통이라든가, 두려움이라든가 그에 따른 자괴감의 크기는 비슷했을 것이다. 그가 글쓰기를 도피처로 택한것 처럼 나 또한 음악을 듣거나 하는것 등으로 그리고 가끔씩 글을 끄적이는 식으로 현실을 도피하기를 원했고 그러했다. 나도 카프카가 가진 재능같은 걸 타고 났으면 좋았을뻔 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어머니와의 화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며 어머니 또한 그러하다. 아니 나보다 더 노력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자식은 결코 부모의 사랑을 따라갈수 없다는 말이 옳은거 같으니까. 하지만 몇해전 까지의 우리모녀의 사이는 카프카 부자간의 관계보다 결코 좋지 못했다. 내가 어렸을적 어머니는 언제나 화를 내던 모습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으며 화풀이의 대상은 우리들이었다. 조금만 잘못해도 욕을 듣거나 매를 맞아야 했다. 나 역시 어린 카프카처럼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심만 키워왔었고 어머니를 더 화나게 하려 했으며 동시에 피하려고 노력했다.
이상한 것은 카프카의 아버지 처럼 어머니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관대하고, 동정적이었으며, 친절한 사람이라는 거였다. 물론 철이 들면서 조금씩 깨달아 간 거 지만 어머니는 당시 건강이 아주 나빳으며, 아버지와의 사이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어머니가 화풀이라도 할 수 있던 상대는 어렸던 우리밖에 없었으며, 어머니는 우리를 체벌한 다음에 혼자 우셨다. 그리고 가끔 '엄마가 잘못했다' 라면서 매맞고 우는 나를 보면서 같이 우시던 어머니 모습에 어머니를 조금 이해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우리 모녀의 사이는 좋은 편이다. 물론 가끔씩 터져 나오는 것들이야 어쩔수 없겠지만.
카프카의 이 글을 보면 그는 계속적으로 '절대로 아버지에게 책임을 지워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라고 썼지만 내가 보기엔 그는 아버지에게 책임을 전가 시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가 의도했던 것이던 아니던 간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아버지에게 사랑받기 원하는 마음이 그의 글 속에는 녹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려고, 그리고 사랑받으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죠' 라고 말하는 듯.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더 상처 받기를 원한것 같다. 아버지를 괴롭게 하기 위해서. 마치 지난 날의 나 처럼.
하지만 그의 글은 이상하게도 그리고 고맙게도 어머니(아버지)를 더 이해 하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으며,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한 위로도 되었던거 같다. '너 혼자만 그런 건 아니야' 라고...시간이 지나서 나이가 들면 나도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겠다. 보낼수 있는 편지를. 그 때 쓸 내용이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깃들 수 있길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전에 언젠가 제게 물어 보셨지요. 어째서 제가 아버지한테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하느냐구요. 그때 저는 여느 때처럼 아버지께 무슨 대답을 드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한편으론 제가 아버지한테 느끼는 그 두려움 때문이었구요. 또 한편으론 그 두려움의 근거를 설명해 드리기엔 구구한 내용들이 너무 많아서 말로는 어느정도 나마 알아들으실 수 있게 잘 간추려 말씀드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대답을 드리고자 하는데 그것도 온전하게 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두려움과 그 여파가 아버지께로 향하는 제 마음을 가로막을 것만 같고 이야기해드릴 내용의 크기가 너무 커서 제 기억력과 제 이성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
| 카프카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K' '그레고르' 등은 대개 평범한 소시민이고 알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며 거대한 기계같은 체제에 의해 강박적일 정도로 학대를 받는다. 후대인들은 유태인이라는 성장배경, 병약한 신체, 자본주의와 관료주의에 억압당하는 개인의 소외 등으로 그 이유를 찾기도 하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외디푸스 컴플랙스이다. 그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든 무의식중에 그렇게 했든 간에 평생토록 아버지에 대해 가졌던 죄의식과 분노를 떠나서 카프카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자전적 요소가 농후한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자신의 글은 전부 아버지에게 드리는 글이라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직설적으로 아버지를 공격한다. 가부장제에 대한 공격이 보편화되어 있는 요즘 읽기에는 식상한 주제일 수도 있으나 카프카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읽어야 할 글임에는 확실하다. 책을 읽으며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한편을 비디오로 다시 보았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카프카'이다. 영화는 카프카의 절친한 친구였던 막스 브로트의 실종에서 시작하여 아버지에게 드리는 글을 집필하기 시작하면서 끝이 난다. 감독 또한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야말로 카프카 문학의 시발점이라고 은근히 강조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