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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과 인문학이 무슨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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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은 종교학이나 미학과 마찬가지로 인문학에서도 마이너한 학문이다. 인문학이 약한 학교라도 철학이나 역사학, 국문학, 영문학 정도는 대부분 있지만 언어학은 손으로 꼽을 수 있다. 네이버 검색 결과 '언어학과'가 설치된 학교는 달랑 두 곳, 서울대와 고려대가 전부다. 무려 종교학과보다 적은 숫자다. 이 땅의 인문학 기반이 부실하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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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은 종교학이나 미학과 마찬가지로 인문학에서도 마이너한 학문이다. 인문학이 약한 학교라도 철학이나 역사학, 국문학, 영문학 정도는 대부분 있지만 언어학은 손으로 꼽을 수 있다. 네이버 검색 결과 '언어학과'가 설치된 학교는 달랑 두 곳, 서울대와 고려대가 전부다. 무려 종교학과보다 적은 숫자다. 이 땅의 인문학 기반이 부실하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언어학에 관한 한 백지상태인 나이지만 인문학의 중추가 언어학이라는 점은 상식 아닌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가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나왔다는 실례를 들지 않더라도 인간의 사고는 언어와 깊숙이 관련되고 언어학은 언어를 학문적 대상으로 하기 떄문이다.

 

심지어 사회학과 모교수님은 강의 중에 이런 말씀까지 하셨다.

 

"사회학과 학생이나 인문학도 중에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읽지 않고 졸업하면 살아 가면서 뭔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겁니다."

 

몹시 찝찝할 듯하다. 당장 다음 학기 졸업인데 못 읽을 가능성이 크다. 대신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온 '언어학과 인문학'이라는 책을 보기로 했다. 이 책, 샀다. 미쳤냐고 따질 지도 모르겠다. 대학교출판부에서 간행하는 책은 으레 지독히도 지루하기 때문이다. 정가로 판매했으면 당연히 안 샀을 테다. 가을의 스산한 어느 날, 연례행사처럼 출판부에서 떠리를 했다. 천 원, 이천 원, 삼천 원, 오천 원 떠리 판매. 이 책은 삼천 원에 샀다.

 

저자는 권재일, 김윤한, 김효중, 문양수, 허창운 이렇게 5명이다. 문양수가 서설을, 김윤한이 구조주의 언어학과 인문학을, 문양수가 촘스키 언어학과 인문학을, 권재일이 텍스트 언어학과 인문학을, 허창운이 정신분석학과 언어학 그리고 인문학을, 김효중이 해체주의 이론의 한국적 수용을 썼다. 누가 대학출판부가 펴낸 학문서 아니랄까봐 소제목이 거의 비슷하다. 게다가 각각 장들도 비슷한 전개형식을 사용했다. 2장의 경우 목차는 ; 1.문제의 제기 2. 언어이론의 정립과 인접학문과의 관계 3.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 4. 인문학 연구방법 모델로서의 구조주의 언어학. 3장 역시 ; 1.문제의 제기 2.촘스키 언어학의 성격 3.촘스키 언어학이 인문학에 끼친 영향 4.촘스키 언어학과 인문학의 전망. 단순한 논문 짜집기가 아니라 이 책은 사전에 기획 단계부터 최종 편집까지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하는 내 멋대로 요약한 내용이니 나만 볼 겁니다.

 

제1장 '서설'은 소쉬르가 등장하기 이전 간략한 언어학의 전사(前史)를 다룬다. 19세기는 역사-비교언어학의 시대였다. 지리상의 발견,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 본격화된 식민지 경쟁 와중에 개별 언어의 역사와 언어 간 비교를 시도하는 학풍이 유행했다. 인도-유럽어족, 알타이 어족 등으로 분류하는 작업이 당시 언어학이 고심한 일이었다. 이를 동(動)적 모델이라 부른다. 이에 비해 20세기 소쉬르가 탄생시킨 구조주의 언어학은 정(靜)적 모델이라 한다. 지금까지 정통언어학은 소쉬르의 구조주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제2장 '구조주의 언어학과 인문학'에서 소쉬르의 이론에 대해 상세히 다룬다. 1장에서 언어학의 전사를 간략히 다뤘지만 2장에서 다시 한 번 이전의 학문 풍토를 개관한다. 인간의 특징을 언어에서 찾는 만큼, 언어에 대한 관심은 19세기 이전에도 존재했다. 희랍문명에서부터 언어에 대한 관심은 명칭론과 수사학(문법기술)을 통해 표출되었다. 명칭은 자연적이냐 관습적이냐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이 진행되었다. 플라톤은 사물과 명칭의 관계가 자연적이라 믿는 쪽이었다. 수사학은 고대 교육에서 중시된 과목이다. 르네상스 이후 Port-Royal 문법학파는 보편문법을 연구한다. 베이컨과 데카르트, 라이프니쯔 등도 보편언어와 철학적 언어에 관심을 뒀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보편문법을 추구한 일련의 학자 뒤에 소쉬르가 등장했어야 옳다. 그러나 중간에 역사-비교언어학이 낀다. 이들의 연구는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경험주의적 연구였다. 이에 비해 보편문법, 보편언어를 추구한 학자들이나 언어의 보편적 구조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역사-비교 언어학과 다소 다른 성격을 지닌다. 역사-비교 언어학은 다른 말로 통시언어학이라고도 하는데, 세부적으로 3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낭만주의의 영향 아래 자기역사, 민족정신, 시원을 강조한다. 2단계는 언어학에 과학주의의 영향이 도입되는 시기로 이 시기에 언어는 자연유기체라는 가정이 도입된다. 따라서 언어는 생물학과 같은 자연과학적 방법론으로 접근해야 한다. 3단계에서 낭만주의와 과학주의 모두를 지양하며 심리학적 연구방법을 도입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통시 언어학에는 실증주의의 영향이 짙게 밴다. 소쉬르가 등장한 시기가 바로 이 때다.

 

언어의 연구 방법으로 역사적 방법 외에는 없다고 주장한 이전의 학풍을 소쉬르는 거부한다. 그는 랑그와 빠롤을 구분한다.랑그는 기호 쳬계로 구성되며 추상적 쳬계다. 이에 비해 빠롤은 언어 현상이다. 언어 현상은 시간적, 공간적 요소에 제약되는데 소쉬르가 언어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빠롤이 아니라 랑그다. 소쉬르를 구조주의 혁명의 장본인으로 꼽지만 다른 독창적 사상이 그렇듯 소쉬르의 학문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았다. 언어는 사회적 사실이라고 주장한 뒤르켐, 정시태와 통시태를 구분한 콩트, 그리고 젊은 문법학파들의 언어학은 분명 소쉬르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어쨌든 20세기 초기, 소쉬르가 나타남으로써 언어학의 주류는 통시언어학은 공시언어학으로 바뀌게 된다. 구조주의 학파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공시적 언어 연구가 우선이다. 둘째, 언어 연구는 형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셋째, 언어학은 정밀과학이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전개한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이분법을 선호했다. 랑그와 빠롤, 내적 언어학과 외적 언어학, 공시태와 통시태,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통합적 관계와 계열적 관계가 그러한 이분법이다. 이 때문에 소쉬르에 쏟아지는 비판 중 하나가 언어를 두 개의 상이한 대립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두 개로 딱 나눠 떨어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랑그와 빠롤은 앞에서 잠시 언급했으니 내적 언어학과 외적 언어학이라는 대립쌍을 살펴 보자. 내적 언어학이란 체계로서 랑그를 다룬다. 이에 비해 외적 언어학은 인종학, 지리학, 방언적 현상을 다룬다. 즉 내적 언어학은 랑그와, 외적 언어학은 빠롤과 밀접하다. 다음은 공시태와 통시태의 구분이다. 공시태는 동시성의 수평축, 통시태는 시간의 경과로써 수직축이다. 그리고 시니피앙과 시니페. 이건 고등학교 국어시간 언어의 자의성을 설명하는 지문에서 많이 배운 내용이다. 흔히 기표로 번역되는 시니피앙은 청각영상, 시니피에는 개념이다. 이들 사이의 관계가 자의적이라는 주장은 소쉬르의 뛰어난 학문적 성취 중 하나다. 이로써 언어기호는 명칭과 사물(소쉬르 이전)이 아니라 청각영상과 개념(소쉬르 이후)의 결합으로 인식된다. 한편 통합적 관계와 계열적 관계는 이전의 대립쌍에 비해 대조의 성격은 약하다. 한 기호가 주위의 다른 기호와 구별될 경우에 고유한 가치를 지니는데 이를 통합적 관계라 한다. 빨간 꽃, 흰 꽃, 푸른 꽃 등에서 보듯 꽃 앞에 놓일 수 있는 단어는 계열적이다. 이를 계열적 관계라 한다.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은 인접 학문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슬픈 열대'의 저자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의 후광을 업어 성공한 학자다. 형식, 구조를 중시한 소쉬르의 언어학과 마찬가지로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에 구조주의를 도입한다. 이 자체가 엄청난 학문적 논쟁을 불러 온다. 레비스트로스와 샤르트르의 논쟁은 지금 시점에서 보기에 유치한 점도 있지만 그 당시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지를 우리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문학비평도 구조주의 영향이 큰 분야다. 저자나 독자가 아니라 문학작품 자체를 구조와 형식으로 분석할 틀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사회학, 종교학 등 구조주의 혁명은 한 때 지성계를 풍미했다.

 

2장에 대한 요약이 조금 길었지만 제3장부터는 짧다. 3장 '촘스키 언어학과 인문학'은 분량상 2장과 거의 비슷하지만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먹겠더라. 있는 힘을 다 짜내 얇은 뇌피질 두껍게 위장해 보겠다. 1957년 촘스키는 'Synatactic Structures'를 발표한다. 변형생성문법, 이 논문으로 촘스키는 소쉬르 이후 또 한 차례 언어학계를 흔드는 혁명을 일으킨다.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은 랑그만을 대상으로 하고 과학을 지향한 탓에 학문적 영역을 스스로 제한시킨 감이 없지 않다. 이에 비해 촘스키는 언어의 본질과 인간의 본질을 결합시켜 이해하려 노력했다. 어린 아이가 별 어려움 없이 모국어를 배우는 현상은 촘스키에게 경이의 대상이었다. '왜 어린아이는 언어를 배울 수 있나?'가 촘스키가 던진 질문이고 이에 대한 답이 변형생성문법이다. 촘스키 이전까지 언어습득에 관해서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견해가 우세했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자극과 반응의 연쇄를 통해 인간은 언어를 습득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촘스키는 언어습득능력(LAD, language aquistition device)을 들고 나왔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선천적으로 언어습득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이성주의 심리학이 촘스키의 입장이다. 변형생성문법의 목표는 LAD를 해명하는 것이다.

 

변형생성문법은 통사부가 중심이 되어 언어의 양면인 의미와 소리를 명료하게 나타내 주는 문법이론으로, 이 문법은 구절구조규칙에 의해 무한히 많은 수형을 도출할 수 있는 생성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변형규칙들을 수형구조들을 다른 형태의 수형구조들로 바꿀 수 있는 변형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변형생성문법이라고 불려진다.(124-125쪽) 경험론적, 행동주의적, 구조주의적 연구방법의 한계를 지적하고 변형생성문법은 인지적 접근을 시도한다. 단순히 규칙만을 나열하는데 그친 구조주의 언어학에 비해 변형생성문법은 원리체계를 기술하려 했다. 이런 변형생성문법은 크게 통사부, 음운부, 의미부로 나뉘지만 통사부가 중심이다. 변형생성문법은 지금도 이론의 폐쇄와 개정이 계속되고 있다는데, 이론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현기증이 날 정도'라고 한다. 솔직히 나는 변형생성문법의 세세한 내용은 잘 이해 못하겠더라. 그래서 이 정도로 줄이고.

 

변형생성문법은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이 그랬듯 인접 학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지적할 분야는 두 분야다. 논리실증주의가 그 첫 번째다. Carnap, 전기비트겐슈타인은 언어와 세계 간의 관계에 주목한 반면 후기비트겐슈타인과 Austin, Ryle, Searle, Strawsan은 언어의 기능에 주목했다. 언어철학과 변형생성문법은 통사론을 위시한 학문적 대상을 공유하고 상호 영향을 끼쳤다. 나머지 한 분야는 외국어 학습이다. 자극-반응 모델을 취한 구조주의 언어학은 몇 개의 기본적인 단어만을 암기하고 문장을 통째로 외우는 방법을 통해 숙련을 추구한다. 이러한 방법이 초기 학습자에게는 유효하지만 한계가 있다. 오히려 보편문법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용을 강조하는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이 외국어  교육에 더 많은 통찰을 제공한다.

 

제4장 '텍스트 언어학과 인문학'부터는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량도 적고 내용도 쉽다. 데리다나 바르트는 '오직 텍스트밖에 없다'고 멋지게 말했다. 맞다, 바로 그 텍스트다. 변형생성문법은 통사론 중심이고 이상적 화자를 전제하며 문장 위주라는 점에서 발화가 이루어지는 현실 조건을 배제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비해 텍스트는 의사소통의 단위이고 문장은 문법의 단위라고 주장하는 텍스트 언어학에서는 인간의 의사소통의 궁극적인 단위가 텍스트라고 본다. 따라서 텍스트 언어학의 학문적 대상은 문장이 아니라 텍스트다. 텍스트가 갖춰야 할 요건은 7가지다. 응집성, 결속성, 의도성, 용인성, 정보성, 상황성, 상호텍스트성이다. 얼마나 문법적으로 올바른가(응집성), 문법 외 인지적 장치가 유기적인가(결속성), 텍스트 생산자의 의도와 텍스트가 일치하나(의도성), 수용자에게 적합한가(용인성), 새로운 정보가 있나(정보성), 사전지식이나 기대내용과 같은 상황증거가 충분한가(상황성), 사전에 경험한 텍스트가 중간조정과정을 줄이는데 효과적인가(상호텍스트성), 이것이 텍스트성이다. 크리스테바는 모든 텍스트가 상호텍스트성을 지닌다고 주장하고 일부 학자는 의도성이 텍스트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전제라 주장하는 등, 텍스트의 7가지 요소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리겠지만 이 책에서는 Vater(1991)을 따른다.

 

제5장 '정신분석학과 언어학, 그리고 인문학'은 심리언어학이라는 분과 학문에 대해 다룬다. 심리언어학은 언어와 사고, 의식, 기억, 감정의 관계를 연구한다. 이 중 언어과 감정을 주제로 연구한 사례는 아직 미미한 편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언어의 문제를 고찰한다. 프로이트는 인류 지성은 세 가지 모욕으로 얼룩진 역사라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천문학, 코페르니쿠스로 인해 지구는 중심이 아니라 변방으로 밀렸다. 두 번째는 생물학,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으로 인류는 신의 은총어린 창조물이 아니라 원숭이로 전락했다. 세 번째는 심리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인류가 이성의 존재가 아니라 무의식에 의해 난도질 당하는 수동적 존재라고 설명한다. 무의식에 대한 강조는 프로이트의 업적이다. 라캉은 무의식이 언어로 구성된다고 주장하며 이들 간 관계를 규명하려 한 첫 학자였다. 정신분석학에 구조주의 원리를 도입한 것이다. 야심찬 의도와는 다르게 라캉의 사상은 난해하고 비관적이다. 그는 모든 의식, 모든 언어의 이면에는 무의식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합의를 추구하는 언어적 노력은 무용하다고 결론짓는다. 거울자아단계를 통해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비약하고 이들 상상계나 상징계와 달리 욕망을 충족시킬 실재계는 인식되지 못한다. 기표는 욕망이지만 언어적인 기호와 달리 욕망에 대응하는 기의는 데리다의 표현처럼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문명을 욕망의 억압으로 본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라캉에게 언어는 욕망을 끝없이 좌절시키는 기재다. 때문에 라캉이 보기에 모든 말하기와 글쓰기는 일종의 실수에 불과하다. 이에 대한 저자의 논평은 다음과 같다.

 

로고스 중심주의에 대항하는 라캉의 투쟁은 그 실천에 있어서 유감스럽게도 너무나 자주 임의적인 비합리주의에 빠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286쪽)

 

드디어 마지막인 제6장 '해체주의 이론의 한국적 수용'이다. 해체담론은 데리다의 '해체(deconstruction)'와 관련 있지만 한국에서 해체시는 데리다의 해체담론과 별 상관없이 전개되었다. 여기서 해체소설이 아니라 해체시인 이유는 소설에 비해 시에서 해체작업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형식미의 측면에서 소설보다는 시가 더 적절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형식을 파괴하는 해체정신이 시에 더 많이 투영되었다. 해체시의 시조로 꼽히는 민용태 이후로 1세대인 이성복, 황지우, 박남철을 거쳐 2세대 장정일, 기형도로 변하는 과정에서 해체시는 형태를 파괴하고 현실을 부정하며 기성세대를 비판했다. 시의 분위기는 도시를 배경으로 성립되었다. 이런 해체시는 데리다나 크리스테바의 해체이론보다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군홧발에 짓밟힌 광주,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 그리고 미완의 개혁으로 끝난 보수 대연합......

 

여하튼. 이로써 정리 끝.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0.02.1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