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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기대하지도 않았던 책에서 큰 감동을 받게 될 때, 책과의 인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반쪽이 될 사람을 우연처럼 발견하게 되었을 때의 감동처럼 말이다. 오치아이 게이코의 소설 <우는 법을 잊었다> 역시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소설이라기보다 주인공 후유코가 적어 내려 간 간병일지나 다름없는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하는 그런 책이었다.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 나는 굴복하지 않는다. 나는 죽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여러 의미에서 관리하고 운영하는 모든 기술과 능력, 지식과 지혜를 잃어버린 늙은 어머니를 남기고 딸이 먼저 죽을 수는 없다. 인지장애라는 증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빼앗긴 어머니 자신의 삶에 대한 확인. 나는 어머니 삶의 대행업자가 되려는 것인가. 그건 가능한 일일까." (p.161)
소설의 주인공인 후유코는 치매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와 7년째 함께 살고 있다. 일흔두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의 후유코가 어머니를 간병하고 어린이책 서점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꾸려가는 모습은 왠지 모를 숙연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후유코의 어머니는 혼외 자식으로 그녀를 낳았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들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던 후유코는 어린 나이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후유코에게 청개구리를 선물했던 친구의 남동생은 어느 날 물풀을 따다 주기 위해 늪으로 갔다가 시체로 발견되었고, 장례식장에서 힘없이 앉아 있던 그 아이의 어머니를 본 후 자신이 죽게 되면 혼자 남겨질 그녀의 어머니 역시 그런 모습일 거라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후유코가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어머니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깨어 있는 내내 손을 씻고 또 씻는 바람에 액체 세제 한 통을 일주일 만에 다 써버리기 일쑤였던 어머니는 새 옷을 입으면 세균이 달라붙는다는 강박증세로 인해 옷을 갈아입는 것도, 목욕도 거부하는 등 불안정한 신경 증세를 보였다. 그러던 어머니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사랑했던 남자, 후유코 자신의 친부가 거의 동시에 죽음을 맞으면서 어머니는 당신이 겪던 긴 '겨울잠'에서 스스로 깨어나게 되었다. 힘들게 살아왔던 어머니. 후유코는 남들의 칭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어머니 같은 여자가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야말로 왜곡돼 있는 거죠.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어머니를 칭찬할 게 아니라, 저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바꿔가고 싶어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사회 자체를 말이에요. 불필요한 열정을 개인에게 강요하는 사회를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필요 이상 열심히 하는 것을 미담으로 삼는 사회와 인간관계에도 저는 이의가 있습니다." (p.58)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어머니를 위해 이모들과 사촌, 조카 등 가족들이 모두 모여 생일 파티를 하고, 대소변을 받아주고, 나날이 약해져 가는 어머니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던 어머니의 뜻에 반하여 후유코는 어머니의 간병을 도맡음으로써 어머니를 온전히 자신의 손에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지만 그러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7년 동안 돌보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후유코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유로워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간병에서 벗어난 자신만 그렇게 믿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네 딸을 키웠던 할머니. 좋은 집에 시집가서 편하게 살기를 바랐던 맏딸이 '아비 없는 자식'을 낳겠다고 했을 때 혹독한 말로 몰아세우며 모욕과 분노를 퍼부었던 할머니를 10년간 병수발을 들었던 어머니.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자신이 없었던 후유코가 독신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을 지지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마지막 7년을 지켜보면서 후유코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된다. 책에는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남자의 갑작스러웠던 죽음과 어린이책 전문서점 '광장'의 직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했던 '미치코'의 남편의 죽음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후유코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다라고 쓴 시인이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까지 나는 어떤 책을 써왔을까. 내가 살아온 일흔두 살이라는 나이의 책. 만약 그 책에 색이 있다면, 어떤 색으로 물들어 있을까. 단색은 아닐 테지만 어떤 색이 도드라질지 나는 생각해본다." (p.282)
작가 자신의 자서전일 수도 있는 이 책을 내가 때로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공감하며 읽었던 데에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들을 처가에 맡긴 후 내가 혼자 머물던 좁은 숙소로 내려왔던 아내. 나는 온전히 아내의 식사를 챙기고, 행여나 몸이 굳을까 하루에도 여러 번 손발을 주무르고, 아내를 부축하여 산책을 나가고, 산책 후에는 꼼꼼히 몸을 씻기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는 등 정성을 다했건만 아내는 겨우 일곱 달을 나와 함께 살았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내 삶의 무게를 조금쯤 덜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 자에게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건 곧 외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죽음 직전까지도 누군가를 걱정하고 책임을 지려 한다는 건 외로움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어깨에 짐을 더함으로써 외로움에 저항하려는 작은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상실과 슬픔 끝에 찾아오는 자유는 산 자의 몫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할 수 있다. 삶에서 얻는 어떤 깨달음은 상실과 슬픔 끝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삶에서 겪는 상실의 고통은 깨달음의 완결이자 완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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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의 김언호 대표가 쓴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을 읽다가 눈에 띈 <우는 법을 잊었다>를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오치아이 게이코 씨는 작가이자 어린이 책 전문서점 ‘크레용 하우스’와 여성책 전문서점 ‘미즈 크레용 하우스’를 운영하는 분입니다. 이분이 여성운동가인 것보다는 치매로 진단된 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간병했다고 해서 읽게 된 것입니다. 작가가 발표한 작품목록을 보니 <어머니에게 불러주는 자장가: 나의 간병 일지>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우는 법을 잊었다>에는 작가의 어머니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운영하는 서점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 사이에 연인을 만나고 사별한 일이 짧게 소개됩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집에서 간병한다는 그녀에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머니 간병을 집에서 하다니, 페미니스트인 네가 왜? 성별 분업을 노인 간병에 적용하는 거야? 네가 줄곧 반대하던 일이잖아. (…) 집에서 부모님 수발드는 건 페미니즘에 반한다고 생각해, 나는(46-47쪽)”
옛날에는 치매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치매 환자를 집에서 모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게이코 씨처럼 직업을 가진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다행히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퇴근해서는 자신이 어머니를 돌보는 방식으로 간병을 했고, 주치의가 정기적으로 왕진을 와주는 일본식 치매환자 간병체계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왕진을 나온 의사도 집에서 어머니를 간병하는 게이코 씨의 입장에 찬성하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사실 게이코 씨가 어머니 간병에 나선 것은 모녀에 얽힌 특별한 사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게이코 씨는 어머니가 22살 때 미혼모로 낳았던 것입니다. 외할머니 역시 서른 살 즈음에 사별하고 어렵게 네 딸을 키워왔던 것인데 맏이가 미혼모로 딸을 낳았으니, 모녀 삼대의 삶은 신산하기만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에서 이런 대목도 썼을 것 같습니다. “이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남자는 모른다. 남자가 만들어놓은 틀을 믿고, 그 안에서 충실하게 사는 여자들 또는 외면하는 억압.. 그래서 딸인 나는 어머니가 내면에 쌓아놓았던 피로를 밖으로 표출하는 데 열중했는지도 모른다.(41쪽)”
세상의 시선이 냉냉할수록 모녀 사이는 긴밀해져갔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어머니보다 먼저 죽으면 안된다 생각했던 게이코 씨지만,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면서부터는 다른 이유로 살아야 하만 했습니다.
그렇게 모시던 어머니가 숨을 거두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유로워졌다. 이제 고통을 겪을 일도 없다. 죽음이 어머니를 자유롭게 했다. 어머니는 삶을 내려놓고 자유를 얻었다.(176쪽)” 게이코 씨가 우는 법을 잊었다고 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데서 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어머니 생전에 동거했던 남자가 오토바이 사고로 갑자기 죽음을 맞은 데서 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고가 있을 무렵 게이코 씨는 ‘광장’이라는 서점을 확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울 여유도 없었다고 합니다. 직원들에게 슬픔을 보일 수는 없었다는데, 직원들 앞에서 가족의 죽음을 애도할 수 없었다는 심경이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어렸을 적 겪었던 동무와 장성했을 때 사랑하는 남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나이가 들어 어머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게이코 씨는 죽음을 애도할 여유나 이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서점을 중견 직원에게 맡기고 나서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제 울어도 돼”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게이코 씨는 우는 법을 잊은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울기를 참아온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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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 들어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책 제목이 우는 법을 잊었다 임에도 불구하고). 그 묘사가 너무나도 섬세해서일까? 문장을 읽으면 그녀의 삶이 내 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그려내는 문장은 담백했다. 하지만 강렬했다. 담담하게 그려내는 마음 아픈 상황들이 감정을 더 증폭시켰다. 어린 시절의 아주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행복했던 엄마와의 기억들. 잊고 있던, 기억할 틈이 없던 나의 삶에 이 책의 문장들이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너무나 행복했기에 내 기억의 저편에 소중히 간직해온 그런 일상의 행복들이 마구마구 떠오르면서 마음을 자극했다. 행복한 추억은 슬프다. 그 모든 것이 추억으로만 남았다는 것이 한편으론 절망스럽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도 절망적인 어머니의 상황 속에서 언뜻언뜻 그려내는 어머니와의 행복했던, 지극히 일상적이었던 시절의 추억이 대비되면서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