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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 들은 연주는 평생토록 귀에 새겨져 있는 법이고, 더군다나 몇 장 되지 않는 레코드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 들으니까, 그 무렵에 산 레코드는 지금의 내게는 일종의 표준 연주로 되어 버렸다. ... 모차르트의 현악 사중주 곡 중 15번과 17번만 해도 그렇다. 그 경우에는 15번은 줄리어드 현악 사중주단이고, 17번은 비엔나 콘체르토 하우스 현악 사중주단으로 라는 경이적인 커플링이다. ... 그런 연유로 나는 '15번은 엄격하고 딱딱한 곡이며, 17번은 부드럽고 따뜻한 곡이다. 모차르트란 사람은 과연 다면성을 지난 천재 작곡가다'라고 오래도록 믿고 있었을 정도였다. 스무 살이 넘어 다른 레코드로 15번을 들어보고서는 천지가 뒤집히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는데, ... - <세라복을 입은 연필>, 무라카미 하루키
아마 이십년도 전에 할아버지 댁에서 몰래 챙겨온 양우당 <동양의 사상> 전집의 책 맨 뒷편을 보면 인지 도장과 함께 1983년에 발행된 걸로 나온다. 전집의 세번째 책이 <당시>인데, 현암사의 2002년판 <당시>를 우연히 보고서 이 책이 그 책이란 걸 알았다. 2002년판 서문을 보니 초판은 196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단순한 어구 풀이가 아닌 문학적 향기를 살리는 번역에 도전했던 37년 전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패기 넘치던 그 시절의 번역에 굳이 다시 손 대지 않았다는 역자의 말에 깊은 감회가 엿보였다. 당시를 역자의 번역으로 처음 접한 나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이원섭의 번역이 표준이 되어 버렸는데, 이십년 전 어린 시절에도 그의 번역시와 해설이 좋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당시> 자체만이 아니라 역자의 시간, 나 자신의 시간이 모두 뒤엉켜 나에게 이 책은 단순한 시집 그 이상이 되어 버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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