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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와 나의 이야기 ]
오랫동안 비를 좋아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비보다는 비가 오는 풍경을 좋아한다고 해야 맞아요 후드득 쏟아지는 비의 풍경 속에는 경청할 만한 빗소리가 있지요 그리고 비를 피해 서둘러 뛰어가는 사람들의 젖은 어깨 흙탕물을 간신히 피해 가는 짐차들의 덜컹거리는 불빛과 거리 아이들의 비가 새는 저녁
사실은 비에 젖지 않고도 비가 오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창가 자리가 더 마음에 드는 거지요.
고백하자면 나는 창 밖의 비보다는 창 안의 나를 더 좋아한다고 말해야 옳아요.
[ 낱.말.혼.자 ]
손톱깎이를 찾으려 서랍을 열어놓고는 손은 왜 바싹 마른 만년필에 가닿았을까 긴 편지를 쓰던 날들이 서랍 구석에 쳐박혀 있는 오늘은 하필 이토록 백지 같은 유월이고 뚜껑을 열고 닫는 일들을 지겹게만 여기고는 버려두었던 만년필 가여워하게 될 줄을 몰랐다
만년필에 잉크를 넣고 혼자라고 쓴다 몇 번의 빈 혼자 끝에 까맣게 선명해지는 혼자 혼 자(字)와 자 자(字)를 가깝게 붙여 쓰면서 자 뜻은 사라지고 목소리와 필체로만 남는 혼자는 처음 보는 낯선 자세 같기만 해지다가 만져질 것도 같은 따뜻한 몸들이 된다
종이 한 바닥 낭자한 혼 자와 자 자는 제 몸에는 깊숙이 스미되 끝내 서로 번지지 못하는 수천 년이 가도 변함없는 생의 자세 아무리 붙여 써봐도 결국 혼자가 되는 만년필로 써보는 혼자라는 낱말
[ 시 ]
비가 들이치는 노량진 수산시장 초입에 어물 가게 간판이 가당치 않게 망향수산이다 북해의 고등어와 오호츠크해의 명태와 늘어진 중국산 낙지를 좌대에 내려놓고는 비린내 나는 수사처럼 정말 파리가 날리고 있다 낯선 억양의 여인이 그렇게 앉아 있다
환히 불 밝힌 시장 안쪽에서는 어김없이 간판에 여수나 부산, 주문진을 내걸고 흥정이 한창이고 망향수산 넓은 도마에서는 토막토막 잘려나간 기억들처럼 오래된 냄새를 풍기며 망향의 내력이 말라가고 있다
손님들은 둘러보고 다시 오겠노라고 하지만 돌아오라는 말이나 돌아간다는 말 망향수산에서는 조금은 가슴 아픈 클리세 국내산이라고 써놓은 삐뚜름한 이이러니도 덩달아 비 맞는 초입이다
갔던 길 되짚어 망향수산 앞에 서는 건 바깥에 비가 오기 때문인데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까 망설이다가 그런건 소설가나 하는 짓이다 싶어 손질한 생선 한 손 전해 받는다 가질 수 없는 내장은 남겨두고 출구를 나선다
[ 삼월의 속수무책 ] 초봄날 오전, 내게 오는 볕의 마음은 그 생김이 ㅁ 같기도 하고 ㅇ 지루한 햇살을 입안에 넣고 미음 이응 우물거려보다가 ㅁ과 ㅇ의 안쪽을 기웃거려보다가
기어이 낮술 몇 잔으로 밑이 터진 사람의 마음을 걸치고 사광에 늘어진 그늘 가까이 이르러서야 빛으로 적막한 삼월의 마음에는 들어가는 문이 없다는 것을 안다
서둘러 활짝 핀 산수유 꽃나무가 제 속을 뱉어 어룽대는 그늘을 먼발치에도 오래 드리우는데 그 노란 꽃그늘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가는 사람이 있어 안팎을 드나드는 ㅁ과 ㅇ이 저런 풍경이라면 누구를 위해 그늘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두 발 단 것들은 속수무책이다
[ 몸으로 쓰는 낙서 ]
바람이 불지 않는 봄날에는 온종일 몸으로 낙서나 쓰듯 살고 싶다
유리창 너머 연둣빛들은 눈치 못 채도록 매일 조금씩 낡아서 기어이 초록의 문법이 되고 눈물 속에 반듯이 세운 글자들은 죄다 넘어질 운명이어서 하필 바람에 기댄 삶이었을까 탓하던 날들이 많았다
그러나 오늘은 멀리 있는 산 빛깔보다 유리창에 고여 있는 얄따란 투명을 생각한다 있는데 만져지지 않는 이 쓸쓸한 일기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이야말로 영원히 정든 집이다 바람을 바람대로 모시는 길 긴너 은행나무가 스승인지를 알겠다
몸으로 쓰는 낙서는 바람 없이도 기꺼이 쓰러질 줄 아는 필체여서 그림자를 드리우고 봄날에는 온종일 몸으로 낙서나 쓰듯 살고 싶다
... 소/라/향/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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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나에게만 이로운 일을 하고, 나만 고통에서 가벼워지는 방법을 실천하면서 살아간다. 하루 중 잠깐만이라도 타인을 이롭게 하기 위한 시간을 가진 적이 있나 생각해보면 나의 하루는 참 가볍다.
시는 나에게로 더 깊이 향하는 길이면서 다른 사람에게로 가는 길을 하나 더 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허락해준다. 그래서 내가 시를 읽는 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으면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외로움, 아픔, 괴로움은 더 생생해진다. 비록 찰나의 시간에 불과할 지라도 시를 읽을수록 그 특별한 능력을 체감한다. 시만이 할 수 있는 위로와 눈물의 공감 능력!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다다를 수 있는 방법은 직접 시를 읽어야만 알 수 있다. 평론가의 멋들어진 말을 듣는다고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시를 알고 싶으면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고 싶으면 오직 시를 읽는 방법밖엔 없다.
신철규 시인의 시를 한참이나 읽었던 나에게 온 심재휘 시인의 시가 그렇다. 머뭇거렸을, 눈길이 머물렀을, 다시 돌려놓고 싶은 그 찰나의 시간들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누군가와의 이별이 너무나 사무쳤을 그 누군가들을 위해 위로를 눈물을 전하고 싶다.
지금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손 잡고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 산비둘기가 운다 -
엄동설한 어둠 속에서 산비둘기가 운다 희미하다 아직은 모두들 잠들어 있는 새벽 고층 아파트 단지의 어느 잎 진 나뭇가지에 서서 산비둘기 한 마리가 욱욱거리고 있다
누구나 살다보면 산을 버린 산비둘기의 내력이 궁금해지는 미명이 있고 조간신문에 실린 왕따 열일곱 살의 유서를 읽으며 산비둘기 소리를 들어야 하는 새벽이 있다
가족들의 방문을 바라보며 서성거리던 불 꺼진 거실의 몇 분이 있었겠다 새벽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아파트 옥상 철문을 마저 열어야 했던 생전의 마지막 몇 걸음이 있었겠다
신문은 그저 신문이려니 하기에는 흐릿하다가 먹먹하다가 산비둘기가 운다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지저귀는 것도 아니고 산비둘기는 그저 울 뿐 어떤 새벽에는 입을 막고 흐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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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었다. 환경의 지배는 얼마나 혹독(?)한지 이런 핑계 저런 핑계가 끊임없이 밀려와서 자주 새벽에 일어났지만 책을 읽지는 않았고, 더구나 이렇게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일은 몇 해동안 없었다. 새벽에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어젯밤 자기 전에 읽었던 이 시집을 더 읽어보고 싶어서였다.
습관처럼 시집을 사고 시를 읽는다. 산 책들은 뭐라도 써서 읽은 티를 내고 싶지만 시집은 그것이 시집의 특성인 듯 한꺼번에 다 읽지 못하거나 결국 다 못 읽고 책장에 꽂아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지난 밤 늦게 사놓고는 펴보지도 않은 이 시집을 문득 읽게 되면서 오랜 만에 시집 읽은 티를 내게 되었다.
시집의 첫 시 <기적>을 무심히 읽다가, 매일 지나가는 하루가 바로 '기적'이라고 '집집마다 불이 들어오고/ 점자를 읽듯/아직 불빛을 만질 수 있는 사람들이/ 한집으로 모여든다'는 마지막 연을 읽은 후 다시 제목을 보다가 이 익숙한 느낌은 뭐지 싶었다. 한 편 한 편 더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마음 속으로만 쓴 시들이 눈앞에 나타났다는 거였다. 내게는 잠시 눈에 비쳤다 사라진 구름의 모습을 시인은 이렇게 활자로 붙들었다는 느낌. 그만큼 수록된 시들이 친근하고 친절했다.
아직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이 열정 하나 만으로 무대 위에 선 것처럼 강릉과 아버지, 골목길과 바다, 나무와 꽃들이 바쁘게 옷을 갈아입으며 자신이 맡은 다역을 적절히 소화해내고 있었다. 무대 뒤는 무척 부산스러웠겠지만 무대 위에는 오직 소명을 받을 뿐이라는 배우의 침착함이 관객을 압도하고 감동시키는 그런 연극 한편 같은 시집, 이라는 느낌은 새벽에 자판을 두드리는 어느 독자의 지극히 개인적 느낌.
또 다르게 말한다면 시집을 읽는 동안 경력이 오래 된 선장의 배를 탄 것처럼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어디에도 덜컹대는 부분 없이 일정하게 고른 수위로 배는 흔들거린다. 배가 흔들리는 만큼 나도 흔들린다. 이 정도의 자극은 금요일 밤의 느긋한 불안에 불과하다. 아직 좋은 것은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 끝나버릴 것을 예감하는 것 같은. 격심한 자극을 견디기에는 이미 너무 무른 내 마음 탓인지 오늘은 이렇게 탄탄한 시집이 좋다.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며 경치가 좋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도착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길. 감탄하며 마음에 담으려면 길 이외에 주변 풍경이 한몫을 해야한다. 이 시집에 탄탄함만 있다면 몇 장을 읽다가 책장에 꽂혔겠지. '모난 데가 없어서 온몸이 얼굴인 돌', '돌멩이는 늙을 대로 늙어서 가족이 없다', '희미한 파도소리를 주머니에 넣고', '나의 추억염은 유일한 불치병이라', '가슴 아니면 등을 보여주어야 하는 골목길', '또 꽃을 여윈 나무야' 등등의 내 눈에 좋은 풍경들이 있어서 한 번 지나온 길을 다시 가보는 것처럼 또 읽어보고 새벽에 낯설게 자판도 두들겨 보는 것이다.
굳이 시의 전문을 소개하지 않는 까닭을 말하자면 몇편 되지도 않는 이 얇은 시집이 한권이라도 더 독자의 손에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더 찾아보자면 내게는 어떤 시가 더 마음을 끄는 것없이 다 비슷비슷하게 시인의 순정한 마음 속을 들여다 본 것 같았다. 이러고 있는 동안 날이 밝아 시심도 조금 옅어지는 듯하니 간사한 사람은 이제 책을 덮고 '거푸집으로 찍어' 낸 것 같은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그 전에 시인이 자신의 시에 바라는 마음 한 자락을 옮겨본다. 나는 이 시집이 달았습니다.
시는 어쩔라나
배고픈 날 잘 익어 푸르스름한 보리알은 오래 씹을수록 달았었는데
-잘 익은 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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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 너의 뒤가 보고싶어 그곳으로 가서 너의 창밖에 사는 한 마리 무심한 풍경이 되고 싶다고 부탁해보는거야 누군가의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풍경으로 살아간다는 거, 그러니까 나는 너무 오랫동안 풍경을 보기만 하며 살았던거지 * 서점에서 서고를 뒤적거리던 날 포기하고 아쉽게 돌아왔던 책인데, 영화 칠드런 액트를 보는 내내 이 구절이 떠나지않았어요 미안한 마음에 얼른 구입했습니다 글쎄 평생이 걸려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을 평생이 걸려서라도 용서하고싶다고 마음 먹게 되는 순간의 기분을 아시나요 ~ ? 그 놈을 용서해야만 당신을 사랑할 수 있고 그 놈을 용서해서라도 당신을 사랑하고싶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