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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그 그림을 자꾸 보게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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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각인되기 위해서는 항상 기존의 틀을 깨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것은 미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학이든 음악이든 모든 분야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자본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거기에는 새로운 것을 원하는 예술에 대한 갈망 역시 스며있었다.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 여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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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각인되기 위해서는 항상 기존의 틀을 깨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것은 미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학이든 음악이든 모든 분야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자본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거기에는 새로운 것을 원하는 예술에 대한 갈망 역시 스며있었다.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 여태까지 쌓여진 기반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라면 그 무대를 옮기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예술가들은 과거의 거장들이 만들어왔던 것을 답습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과거의 것을 배울 필요는 있었지만, 그것은 명작에서 더 발전하기 위한 것이 아닌 그런 것들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것은 여러 형태로 등장했다. 모더니즘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더이상 인간의 이성을 믿지 못하는 예술가들은 초현실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형태도 알 수 없고 작가의 의도도 알 수 없는 작품들에 대해 유추하는 것은 오직 작가가 남겨 놓은 작품의 제목에서만 가능했다. 그나마 제목까지 애매하게 써 있다면 그 작품에 대해 해석하는 것은 작가의 입장이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 개별적인 해석으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혐오와 매혹사이'는 그 사이에서 생겨난 인간의 심리적 딜레마를 제대로 포착해 낸 책이다. 금기시 되어왔던 어떤 것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은 예술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을 위한 억지스런 접근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현대미술은 그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 누구도 다루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은 그들이 다루는 다양한 사물에 대해 '이게 대체 왜 예술일까.'라는 질문을 뒤따르게 했다. 이 책은 그러한 주제들이 과연 어디까지 혐오스럽고 어디까지 매혹적인지 이야기 한다.  


저자는 인간이 혐오스러워하는 주제로 '폭력' '죽음' '질병' '피' '배설물' '섹스' '괴물' 등 7가지로 분류해 분석했다. 폭력을 첫 장의 주제로 정한 것은 사실 이 모든 것의 시작에 타자에 대한 폭력이 깔려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오직 자신들의 신념과 목적을 위해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특수한 개인의 일이 아닌 존재 자체의 기본적인 욕망과도 관련되어 있다. 이는 결국 인간의 주변을 항상 배회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감정으로, 폭력을 가하지 않으면 나에게 그 위험이 닥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감정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결국 그것을 마주해야만 피할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이 엄마 품에 얼굴을 묻으면서도 공포스러운 장면에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에 대한 학습이 결국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우리를 죽음까지 몰고갈 지도 모르는 여러 케이스에 대해 자연스레 습득하면서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어떤 폭력에 대해 고발하고 공유하는 것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살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이다.


여러 파트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죽음'이라는 주제였다. 이에 가장 근접한 작가는 데미안 허스트였다. 나역시 좋아하는 예술가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육체적 죽음의 불가능성'이다. 상어르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넣고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박제한 듯한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당장 검색을 해보면 이 상어를 천 만원 정도에 사와서 얼마나 비싸게 팔렸는지에 대해서만 설명하는 것이 전부이다. 저자는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을 통해 인간이 죽음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인간은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는 모순된 결과가 생긴다. 결국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죽음이란 살아 있는 상어의 형상처럼 포악하면서도 결국 의미 없는 것이며 어떤 과정을 통해서도 도달할 수 없음을 데미안 허스트는 설명하고자 했다. 


혐오와 매혹을 설명하는 가장 훌륭한 해석은 크리스테바가 제시한 애브젝트와 애브젝션에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저자는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기발한 발상을 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애브젝트는 주체와 객체의 경계에 존재하는 양쪽 모두에 속하지 않는 어떤 것을 말하며, 애브젝션은 주체가 그것에 대해 느끼는 상징적 감정과 저항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머리카락을 생각할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머리카락의 나(주체)에게 속해 있을 땐 나에게 소중하지만 그것이 내게서 떨어져 나가서 배수구에 뭉쳐 있을 때는 어떤 감정인지를 상상해 보면 된다. 애브젝트는 나에게 속해 있었으면서 이제는 무관한 어떤 것으로 그 감정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것들이다. 한편으로는 나에게 매혹적이면서 어떤 조건이 성립되면 나에게 혐오를 주는 미술적인 감정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소재와 그 주제를 다루는 작가의 의도와 형태를 설명하는 동안 어디까지가 혐오스럽고 어디까지가 매혹적인지에 대해 구분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c****o 2018.09.26. 신고 공감 8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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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러운 것에서 의미를 찾는 순간 매혹으로
"혐오스러운 것에서 의미를 찾는 순간 매혹으로" 내용보기
예술은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어야하는걸까? 이왕이면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싶은 마음이 강했다. 현실에서도 힘든 일, 불쾌한 일이 많은데, 굳이 불편한 작품들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릴 필요는 없으니까. 은연중에 예술 작품은 인간에게 시각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대미술 전시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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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은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어야하는걸까? 이왕이면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싶은 마음이 강했다. 현실에서도 힘든 일, 불쾌한 일이 많은데, 굳이 불편한 작품들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릴 필요는 없으니까. 은연중에 예술 작품은 인간에게 시각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대미술 전시회를 가게 되면 난해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작품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눈에 보이는 대로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고민을 해야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던것 같다.그리고, 뒤샹의 샘처럼 예술작품의 범주에 넣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 되는 작품들도...저자는 '죽은 후에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우연히 던지게 되면서 부터 많은 사람들이 피하고싶어하는 불편한 주제와 재료를 전면에 내세운 미술, 그와 관련된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장 피하고 싶은 주제는 무엇일까? 폭력, 죽음, 질병, 피, 배설물, 섹스, 괴물. 인간이 두려워하고 금기시했던 것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책을 받고 휘리릭 넘기면서 만났던 작품들은 다시 봐야한다는 것이 두려울 정도인 작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가장 먼저 만났던 채프먼 형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름다운 것만 보려하기 보다는 인간 존재의 어두운 면도 봐야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현실이 아름답지 않은데 아름다운 작품만 선보이는 것은 진실성이 결여된 것이며 자신들이 목격하고 경험한 세상이 아름답기만 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작품을 제작할 수 없었다는 그들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들은 고야의 <전쟁의 참화>를 차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고야는 판화집에 귀가 잘 안들리게 되는 개인적 처지와 사회적 절망을 경험하면서 아름다운 세계 대신 처참한 현실을 그림에 담았는데, 채프먼에게도 현대 사회가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이상이었을지도.

 

 

 한나 윌케는 림프종 진단을 받은 후, 사망할때까지 점점 죽음에 다가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인트라 - 비너스>라는 프로젝트를 통하여 보여주었다. 사실, 상상만으로도 불편했지만,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더 불편함을 느꼈다. 죽을때까지 크고 작은 질병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삶인데도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윌케는 <인트라 비너스>를 통해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가 젊음과 건강함인지, 또한 아름다운 몸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반문한다. 결과적으로 윌케는 사회가 부과하는 여성성과 현존하는 여성성의 실체를 결합시킬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까지도 보여준다.-p 125~126 

 

 

 하지만, 그녀가 저런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보여주는 용기가 놀라웠고, 예술이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 내가 보고싶지 않은 불편함조차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서서히 일었다.

 

 

 피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피는 삶을 유지하기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몸 밖으로 빠져나온 피를 보는 것은 공포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마크 퀸은 자신의 피를 채혈해서 자신의 얼굴을 주조했다. 보존하기 위해서 냉동고에 넣어진채였다. 그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몸 안에 있을 때는 생명의 상징,몸 밖으로 나오면 죽음의 상징인 피를 재료로 자신의 자화상을 만들었다는 것은 유한한 존재인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위한 것이다. -p 158

 

 

<자아>라는 제목의 작품은 죽은 이를 연상시켰다. 무엇이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한다는 걸까? 피는 개인의 정체성을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일부임을 뜻하고, 신체의 다른 부분이 아닌 두상을 만들었다는 것은 생각의 작용이 일어나는 머리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냉동고의 전원을 빼는 순간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이 작품 자체가 언제 꺼질지 모르는 인간의 삶을 나타낸다고 한다. 피가 가지는 의미, 삶과 죽음의 경계,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헤르만 니취의 살아있는 양을 도살하고,난도질하면서 이때 나온 피를 참가자들에세 뿌려지는 <망아적 신비 의식극>이란 퍼포먼스가 수록되어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희생제의라는 이 퍼포먼스에 대해 헤르만 니취는 이렇게 예술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폭력적 행위는 일상에서의 폭력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자행되는 동물의 학대에 대한 비판도 담겨있고,  도취와 황홀경, 매혹의 철학은 기쁨, 고통, 죽음, 출산을 경험하는 존재들의 집합체를 보여주며 이러한 희생제의는 황홀경이며 삶에 대한 영감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이 퍼포먼스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는 쉽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 꼭 저런 형태의 퍼포먼스를 선택해야만 했을까? 혐오라는 표현만을 생각나게 하는 이런 형태의 퍼포먼스를 예술이란 이름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나의 예술에 대한 이해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럽다고 고개를 돌리는 것이지만, 배설이라는 것이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세라노는 똥 사진을 통하여 우 리가 현재 모두 살아있으며 앞으로 언젠가 죽을거라는 진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을 담아내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말하는 것조차 꺼려지는 섹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채프먼 형제의 말처럼 분명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기에  아름다운 것만을 보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무시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것들을 겸허한 맘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자세가 필요한 것도. 사실,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오락거리로, 아니면 순간적으로 시선을 끌어 인기 한번 끌어보겠다는 마음으로 도발적인 작품을 내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예술가는 분명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겠지만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작품도 있을 것이다. 위의 헤르만 니취의 작품처럼. 하지만 이 책을 읽는동안 분명 얻은 것이 있다. 혐오스럽다고 해서, 공포스럽다고 해서 고개를 먼저 돌리지는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는 자세가 필요할것 같다. 어찌보면 현대미술이라는 영역이 인간의 본질에 가장 가까울 수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책이 독자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불편한 마음을 이해하고 사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더불어 오묘하고 매혹적인 동시에 불편한 동시대 미술이 단순히 예술적인 도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숙고하고 긍정적으로 바꿔나가기 위한 것임을 느끼길 바란다. 진실이란 편안함뿐만 아니라 불편함까지 마주해야 얻어질 수 있다. 우리가 미처 몰랐을 뿐 불편함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 불편함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이 세상이 갑자기 끔직해지거나 슬처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의미 있음을, 아름다울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p 9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j*****3 2018.09.27. 신고 공감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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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혐오와 매혹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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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미술, 혐오와 매혹 사이- 이문정, 『혐오와 매혹 사이』       영화를 본다. 느와르 영화가 좋겠다. 총격전이 벌어진다. 주인공이 쏘는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들. 손가락이 잘린 사람,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사람, 머리에서 피를 쏟는 사람이 여기저기 나뒹군다. 주인공도 총에 맞았는지 팔과 다리에서 피를 흘린다. 현실에서 보면 두 눈 뜨고 못 볼 장면인데, 용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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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미술, 혐오와 매혹 사이

- 이문정, 『혐오와 매혹 사이』

 

 

 

영화를 본다. 느와르 영화가 좋겠다. 총격전이 벌어진다. 주인공이 쏘는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들. 손가락이 잘린 사람,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사람, 머리에서 피를 쏟는 사람이 여기저기 나뒹군다. 주인공도 총에 맞았는지 팔과 다리에서 피를 흘린다. 현실에서 보면 두 눈 뜨고 못 볼 장면인데, 용케 두 눈을 뜨고 우리는 화면을 바라본다. 영화=허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주인공 다리에 흐르는 피가 클로즈업되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가짜 피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고스란히 미술 세계로 옮기면 어떨까? 성인 남성 세 명의 훼손된 시체가 나무에 묶여 있다. 절단된 채 매달린 머리와 손과 다리, 성기가 잘려나간 육체를 마주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충격과 불쾌, 공포와 같은 불편한 감정의 과잉 상태에 빠질 것이다.”(19) 영화로 보면 괜찮은데, 미술로 보면 왜 충격을 받고 불쾌한 것일까 

 

미술 하면 우리는 아름다움을 먼저 생각한다. ()만큼이나 추()가 미적으로 각광받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균형 잡힌 아름다움에 이끌린다. 외모 지상주의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걸 다른 사람들도 예쁘다고 생각하길 원한다. 공동체의 미감은 누구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걸 중시한다. 나 혼자서 아무리 아름답다고 외쳐도 소용없다. 내가 아름답다고 얘기하는 걸 다른 사람들도 아름답다고 얘기해야 공동체는 인정한다. 미와 추는 원래부터 있는 게 아니다. 공동체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정한 게 미이고, 공동체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추하다고 정한 게 추이다. 나무에 묶인 훼손된 시체는 왜 와 연결되는 것일까? 공동체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물의 의미가 정해진다. 우리는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만든 취향을 마치 우리 것인양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미술은 오래전부터 불편한 것들을 마주해왔다. 불변하는 본질이자 질서, 균형과 조화였던 미와 달리 비본질적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 무형식과 기형이었던 추는 분명 피해야 하는 불길한 것이었음에도 미술에서 꾸준히 다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교화를 위한 것에서부터 인간과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또한 예술적으로 표현된 추가 미의 메아리를 받는다고 생각했기에 끔찍한 괴물도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표현된다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추를 독립적인 미학 개념으로 다루었던 최초의 이론가인 카를 로젠크란츠Karl Rosenkranz의 《추의 미학 Aesthetik des Haesslichen》(1853)에 적혀있듯 추는 그저 미에 반대되는 끔찍한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소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추는 미술 작품을 통해 건강한 방식의 즐거움을 생산하고 존재의 필연성을 획득할 수 있기에 미술 안에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다. (34)

    

미는 고정된 생각을 표현한다. 미를 먼저 떠올려 보라. 머릿속에 미와 연결된 어떤 이미지가 그려질 것이다. 그와 함께 좀비 시리즈에 나오는 살아있는 사람을 물어뜯는 좀비를 떠올려 보라. 앞서 그린 이미지와 좀비 이미지를 같은가, 다른가? 두 가지 이미지에서 미와 추를 느낀다면 당신은 정상(!)이다. 미와 추를 구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미를 정상에 놓고, 추를 비정상에 놓는다. 똥을 보고 기쁨을 표현하는 사람은 없다. 똥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대상이므로 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농경 사회에서는 똥이 곧 거름이었다. 사람이나 동물이 싼 똥은 땅으로 돌아가 땅을 기름지게 한다. 그 땅에 곡식을 심어 우리는 먹을거리는 얻는다. 땅에서 나온 먹을거리는 똥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농부들에게 똥은 추한 것일까? 미와 추를 나누는 정확한 기준은 사실 없다. 다만 그 기준을 나눈 사람들 생각만이 있을 뿐이다. 미술사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공동체에서 마련한 미의 기준을 따르기만 했다면 우리가 굳이 미술의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은이는 정해진 답만을 추구하던 모더니즘 시기까지의 논리는 자신과 다른 무엇을 배척하는 태도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미학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는 지금 시대라고 다르지 않다. 인간은 여전히 자연을 개발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자연 위에 인간이 있고, 인간 위에 자본이 있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자본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자본은 자기 증식을 원리로 한다. 자본이 자본을 낳는다. 자본 증식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인간이든, 자연이든 파괴 대상이 된다. 전쟁이 왜 그치지 않고 일어나겠는가? 전쟁을 통해 자본가는 자본을 증식한다. 누군가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대가로 누군가는 자본의 이익을 얻는다. 이런 세상을 어떻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판화집 전쟁의 참화에 드러나는 대로, 전쟁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얼마나 공포스러운 세상인지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인간은 동물에게는 없는 이성으로 풍요로운 문명을 이룩했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동물들을 무시한다. 인간 또한 동물에 속하는 데도 말이다. 인간만큼 지독하게 폭력에 맛을 들인 동물이 있을까? 동물은 같은 종족은 죽이지 않는다. 육식 동물도 배가 고플 때만 사냥을 한다.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전쟁이 일어나면 서슴없이 동족을 죽인다. 전쟁에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이성적인 행동인 것처럼 가장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자본을 증식하려는 이기적인 욕망이 숨어 있다. 예술가들은 인간의 이런 욕망을 추의 미학으로 표현한다. 전쟁터에서는 인간 또한 동물처럼 살덩어리가 되어버린다. 제니 사빌이 그린 시프트에 나타나는 대로, 인간은 이성이 없으면 정육점에 걸린 살덩어리와 다르지 않다. 정육점에 걸린 고기들을 생각해 보라. 인간이 연상되는가? 우리는 인간이 동물이라는 걸 애써 외면한다. 인간도 죽으면 다른 동물들처럼 부패하는 살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성과 그 바깥을 나눈다. 이성은 깨끗한 세계를 지향한다. 당연히 더러운 세계는 그 바깥으로 내보내려고 한다. 위생학과 문명이 발달했다는 점을 상기해 보라. 위생학은 더러운 병균을 박멸하는 학문이다. 실제로 문명 세계는 깨끗하다. 동물들이 생활하는 시설과 비교해 봐도 인간이 얼마나 깨끗한 환경에서 사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은 어떨까? 깨끗함에는 늘 더러움이 뒤따른다. 우리는 날마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 비누와 샴푸로 범벅된 분비물들은 하수구로 쓸려내려간다. 보이는 얼굴은 깨끗해졌지만, 그만큼 분비물이 내려간 지하는 더러워졌다. 문명은 더러운 것들을 보이지 않는 지하로 내려 보냈다. 농경 사회에서는 거름으로 쓰였던 똥도 문명사회에서는 반드시 처리해야 할 오물로 변해버렸다. 변기를 타고 내려간 똥은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 문명인들에게 똥은 더러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몸에 있던 게 똥이었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무엇을 더러운 것으로 규정하는가의 문제는 특정한 사회의 질서를 이해하기 위한 바탕이 된다. 오염과 오물로 간주되는 것들은 그 사회의 기준과 규범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고 발전시키면서 종교, 철학, 도덕 등을 바탕으로 사회를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을 불결한 것으로 분류하고 열등한 가치를 부여했다. 따라서 오물과 그것이 가져오는 오염의 공포, 그것을 마주했을 때 경험하는 혐오의 감정은 개인의 문제도, 절대적인 가치의 문제도 아니고 사회와 권력의 문제다.(208)

    

살코기로 만든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있다. 보는 사람은 한없이 불편하다. 인간의 몸과 살코기가 묘하게 어울린다. 지은이 말마따나 인간도 그러한 살덩어리로 이루어진 존재다. 살덩어리는 곧 부패할 것이고 배설물처럼 더러운 점액질로 변할 것이다. 한 번 몸 안으로 들어간 음식은 입으로 다시 나오든, 항문을 통해 나오든 배설물이 된다.”(210) 우리는 인간이 단순한 살덩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성이 있는 존재라는 얘기겠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인간이 살덩어리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건 변함이 없다. 죽으면 인간의 몸 또한 부패할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무언가를 입으로 먹으면 항문으로 배설물을 내보내야 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은 동물과 자꾸만 경계를 세우려 하지만, 예술가들은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경계를 허물려고 한다. 그것을 인간에 대한 혐오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인간을 혐오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하려고 한다. 우리 머릿속에 뿌리박은 인간중심주의를 뿌리부터 뒤흔들려고 하는 셈이다.

 

인간중심주의는 생각하는 인간과는 다른 모든 존재들을 괴물로 생각한다. 거기다 인간중심주의에서 말하는 인간은 서구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로 보면 서구 백인 남성이 아닌 남자들이나, 모든 여자들은 당연히 괴물이다. 남자 기준으로 보면 여자들이 하는 월경만큼 불경스러운 것은 없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통해 자손을 낳으면서도 월경하는 여자들을 극도로 부정한다. 월경하는 여자만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걸 남자들이 모를 리 없다. 지은이는 남자들이 만약 월경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월경은 아마도 남자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생리 현상이 될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자가 지배자이다. 지배자가 생각하는 바가 곧 기준이 된다는 얘기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불편한 미술을 이야기하며 남자=지배자들이 세운 이 기준을 끊임없이 환기한다. 혐오란 감정은 지배자의 감정일 뿐이다. 생각을 바꾸면 혐오스러운 대상은 매혹적인 대상으로 뒤바뀔 수 있다.

 

괴물로 해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인간 능력을 초월하는 사람을 괴물로 부른다. 찬양하는 말이다. 동시에 바깥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를 또한 괴물이라고 부른다. 부정하는 말이다. 같은 괴물인 데도 누구는 찬양하고, 누구는 왜 부정하는 것일까? 인간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해수욕장을 침범하는 거대한 상어는 부정해야 할 괴물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계인 또한 부정해야 할 대상인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에게 길들여진 괴물이라면 판단이 달라진다. 같은 외계인이어도 ET와 같은 존재는 인간화된 외계인이라는 점에서 찬양할 만한 괴물로 바뀐다. 만약 여성이 이 세계를 지배했다면 여성과 관련된 금기가 고스란히 남자에게 적용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회적 금기를 혐오하면서도 거기에 매혹되는 감정을 어쩌지 못한다. 혐오와 매혹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진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이러한 진실을 불편한 사물로 내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불편함을 느낀다는 건 그 속에 우리가 다가가기 힘든 어떤 진실이 내포되어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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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 2018.09.23.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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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혐오와 매혹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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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일부러 불편하게' 전시를 보다가 그만,밖으로 나가 버리고 싶은 기분을 느껴더랬다.전시를 보면서 이런 기분(?)을 경험한 것이 처음이라,당혹스러웠다.다행(?)인 것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나가고 싶었던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는 거다.작품이 혐오스러워서가 아니라,아름답지 못한,아니 불편하게 한 그 본질이 무엇이였는지를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마침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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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일부러 불편하게' 전시를 보다가 그만,밖으로 나가 버리고 싶은 기분을 느껴더랬다.전시를 보면서 이런 기분(?)을 경험한 것이 처음이라,당혹스러웠다.다행(?)인 것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나가고 싶었던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는 거다.작품이 혐오스러워서가 아니라,아름답지 못한,아니 불편하게 한 그 본질이 무엇이였는지를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마침 미투관련 판결을 보면서 기막혀 하던 터라,현주 작가님의 실드로잉(딱히 무어라 표현 하기가..)을 보면서 힘들었던 것 같다. 얼굴의 형체만 있을 뿐,눈과 입이 없는,얼굴 형체만 까만실로 가득 채워져 있는 모습 등등...<혐오와 매혹사이>에 소개된 작품들에 비하면 혐오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혐오의 본질에는 '불편하게'하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가 하면 한동안 극장에서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모카드사 광고가 있었으니,연쇄할인이란 말 속에서 관객이 느낀 연쇄살인이였다.당혹스러워 카드사에 전화까지 하는 용기(?)가 날 만큼 나는 연쇄할인카드..라는 말이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앞선 전시에는 불편함을 통해 본질의 무엇인가를 건드렸다면,후자의 광고는 그냥 불편했을 뿐이다.<혐오와 매혹사이>책이 궁금했던 건 그 미묘한 경계를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에 대한 힌트를 조금이라도 얻고 싶어서였다.

 

프롤로그부터 마음에 들었다.(사실 프롤로그인지도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나서 첫 장의 주제를 보았더니 '프롤로그'였다.그만큼 프롤로그에서 충분히 내가 알고 싶은 만큼은 마주했다고 봐야 겠다.채프먼 형제의 작품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선뜻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작품,그런데 아뿔싸,고야의 그림에서 얻은 힌트란다.신기한 건 고야의 작품을 보면서는 전쟁의 잔혹함을 생각하면서,채프먼 형제의 작품은 왜 마주 응시하지 못했던 걸까? 흉측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하고,잔혹함에 대한 주제라 하더라도,한단계 포장이 된 작품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무의식 속에 있었던 모양이다.'일부러 불편하게'전시를 보면서,저렇게 강력한 이미지로 마주하지 않으면,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으니,조금은 센(?) 표현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모르겠다.고야가 살았던 시대와 채프먼 형제가 사는 지금 전쟁의 잔혹함을 받아들이는 상황은 분명 다를테니까 말이다.그리고 저자는 저들의 혐오스러운 작품이 단지 현대미술의 상징(?)같은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터뷰를 통해 소개해 주고 있었다."우리의 작품은 결코 충격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예술가는 더 이상 작업실에 갇혀 물감 범벅이 된 채 괴로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22쪽 이 부분에 공감한 이유는 일부러불편하게 전시를 보면서,혐오스럽게 느껴지는 본질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부분이 채프먼 형제의 생각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미추로만 미술을 규정한다면 채프먼 형제의 작품은 예술이 아닐수도 있겠으나,예술이란 무엇인가,메세지를 보는 이로 하여금 던질수 있어야 한다면 '죽은 자에게 가해진 위대한 행위'작품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혐오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작품이 고야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고야는 다시 히에로니무스 보스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니,혐오로 비춰지는 예술은 현대미술이 만들어낸 고유양식이 아니였다.단지 시대에 따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인지도 모르겠다.저자의 말처럼 "미술은 오래전부터 불편한 것들을 마주해왔다."/34쪽 그리고 지난해 인가 '예술만큼 추한'전시를 보았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인간은 추함을 통해 보다 본질적인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으며 보다 강한 흡인력으로 사물과 현실의 내면을 순간적이나마 격정적으로 맞이할 수도 있다"(정영목 전시개요중에서) 불편할수록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는 건,적어도 전시장 안에서 만큼은 인정할(?) 밖에 없는 것이 된다.그래서 더 아름다움과 달달한 로맨스를 찾는 지도 모르겠고.'프롤로그'를 읽는 것으로 충분(?)히 혐오와 매혹의 기준 경계 등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기에 다음 섹센의 주제가 어떨지...폭력,죽음,질병,피,배설물,섹스,괴물 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거리를 두게 한다.만약 이런 제목으로 열리는 전시가 있다면 선뜻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을수도 있겠다. 저들은 아무짓도..사람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들 뿐인데 마이다. 질병도 마주할 때,죽음도 마주 할때 우리는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수 있게 되지 않을까? 프롤로그가 워낙 강렬했던 탓에 섹션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수월(?)하게 읽혀지는 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 가운데 공통적으로 눈에 보이는게 있었다면 근본적인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고,질문 하기가 따라 왔다는 점이였다.그냥 불편하다면,혐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지 모르겠다.(질문 자체도 해 볼 필요가 없는) 그러나 혐오스럽다고 느껴지는  작품 앞애서 왜? 를 생각해 보고,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면,그것은 혐오스러움너머의 본질적인 무언가가 있음을 알아내기 위해 질문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지.누군가 농담이라고 한 말이 우습지 않다면,그건 절반의 농담일지도 모른다.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혐오의 경계였다.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혐오와 매혹 그 아슬아슬하고도 모호한 경계에 대해 이제 조금은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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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 2018.09.1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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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경계의 모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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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MoMA에서 뒤샹의 ‘변기’를 봤을 때, 현대미술의 유명한 작가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면 도대체 이게 뭔가 욕이라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이름 때문에 그 ‘변기’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이처럼 작품에 담긴 이야기나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철학적인 내용에 대해 알고 있는지 아니면 무지한지에 따라 예술인지가 주관적으로 결정된다. 작가는 애브젝트와 애브젝션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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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MoMA에서 뒤샹의 변기를 봤을 때, 현대미술의 유명한 작가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면 도대체 이게 뭔가 욕이라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이름 때문에 그 변기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이처럼 작품에 담긴 이야기나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철학적인 내용에 대해 알고 있는지 아니면 무지한지에 따라 예술인지가 주관적으로 결정된다.

 

작가는 애브젝트와 애브젝션의 개념을 통해 불편한 예술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에브젝트 : 더럽고 비천하며 역겨운 어떤 것으로서 주체가 주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억압하고 밀어내야하는 무언가

에브젝션 : 주체가 거리를 두고싶어 하는 외부위협에 대한 주체의 저항

 

 머리카락의 예를 들면 이 개념을 조금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머리카락이 두피에 붙어 있을 때는 몸의 소중한 일부다. 우리는 머리카락을 가꾼다. ... 머리카락을 만질 때 부드러움이 느껴지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와 달리 머리를 감고난 후 배수구에 엉킨 머리카락을 치워야 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두피에 붙어 있던 바로 그 머리카락이 빠져서 배수구에 있을 뿐인데 그것을 치우는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다.... 배설물도 마찬가지 이다. 몸 안의 배설물은 몸 밖을 나오는 순간 더러운 것, 병을 옮길 수도 있는 불결한 것이 된다. 친근한 내 몸의 일부였는데도 말이다.P70

 

이런 예처럼 우리에게 불편함을 주는 대표적인 개념들로 현대미술의 혐오의 대상을 매혹의 대상으로 옮겨온다. 이처럼 예술의 경계는 우리가 현대미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을 아름다운 것만 예술이라고 생각해왔다. 고전 예술작품에서도 물론 그렇지 않은 작품(이를테면 이 책에서도 나왔던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들)도 많이 있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불편한 것들은 예술작품에서 등장하면 적잖히 당황할 소재나 주제로 된 작품들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역겹고 더럽다고 생각 할수 있는 에브젝트들을 크게 7가지(폭력, 죽음, 질병, , 배설물, 섹스, 괴물)로 분류해서 우리에게 익숙하게 만들어준다.

 

이 에브젝트들은 피하고 싶지만 그래서 온전히 기억에 더 남게 되는 소재들이다. 책에서도 표현했던 것인데, 우리가 끔찍한 공포영화를 볼 때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도 실눈을 뜨고 궁금해하고 보고싶게 만드는 그런 소재들에 이미 우리는 매혹이 된 것이다.

 

미술은 죽음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 예술은 삶에 관한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다른 것은 없다. 형식주의를 통해 당신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데미안 허스트 p113)

 

죽음이라는 불편한 소재에 우리가 시나브로 매혹이 되는 이유는 위의 데미안 허스트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소재인 죽음이라는 것은 결국은 삶의 연장선에 있으며, 삶과 결코 떼어낼 수 없다. 이것을 다룬 미술작품에 대한 매혹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에 대한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똥이 들어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의 영향력일 것이다. 이후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가난한 미술이라는 의미의 아르테 포베라가 성행했다....따라서 예술가의 똥은 과거로부터 예술에 부여되었던 권위에 도전하는 상징물로 존재한다.p190

 

또 재미있는 소재는 배설물이다.

피에로 판초니의 예술가의 똥이라는 작품(?, 미술관에도 전시되어 있으니 작품은 맞다.)을 우리에게 소개하는데, 파격적인 소재 때문에 눈길을 끌다가도 이 익숙하지만 낯선(!) 소재가 예술에서 어떤 역할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현대미술이 재미있어진다.

 

이 책에서 소개된 일곱가지 이야기들은 현대미술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하다. 어떤 에브젝트도 지루하지 않다. 처음 접했을 때에는 단순히 소재가 흥미롭고 낯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각각의 소재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고 부터는 그 의미 때문에 현대미술에 더욱더 빠져들게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f*******y 2018.09.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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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혐오와 매혹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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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매혹....이 두 단어은 극과 극이다어찌 현대미술을 이렇게 이야기할까그러나 현대미술세계는 정말 그렇다회화로 잘 그린 세계는 사진기가  등장하고나서부터 바뀌었다 작가의 의도가 중요하기에 작가의 생각과 정신이 작품 속에 담김으로써 작품의 세계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적품들이 의외로 많다아마 불편함 속에서도 작품들  이야기에 끌리기때문이다  <이성이 잠들면 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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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매혹....

이 두 단어은 극과 극이다

어찌 현대미술을 이렇게 이야기할까

그러나 현대미술세계는 정말 그렇다

회화로 잘 그린 세계는 사진기가  등장하고나서부터 바뀌었다

 

작가의 의도가 중요하기에 작가의 생각과 정신이 작품 속에 담김으로써 작품의 세계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적품들이 의외로 많다

아마 불편함 속에서도 작품들  이야기에 끌리기때문이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

인간의 본성인 양가적 존재로 프란시스코 고야은 숨겨진 폭력의 미학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예술에 삶과 죽음이라는 새로운 혁신을 불러일으킨 괴짜 예술가’데미안 허스트’, 

다이아몬드를 박은 해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 적품은 데미안허스튼의 대표적이며 영원한 죽음의 승리를 내포되어있다  


 

 

생명과 죽음의 상징인 피로 자신의 피를 얼려 자아 두상으로 초상화를 만든 <자아> ‘마크 퀸’, 

피를 그림 화가는 의외로 많다



 

 

시체안치소에서 시체 사진을 시리즈로 찍은 ‘안드레 세라노’, 작가이기전에 대단한 강심장인 화가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변을 깡통에 담아 <예술가의 똥> 를 전시한 ‘피에로 만초니’,  이 작품을 산 간 누군가가 있다는 이야기가 더 의심스러웠다


 

 

음식의 탐욕을 피가 흐르는 쇠고기로 옷을 지어 표현한 ‘야나 스테르박 ‘

과연 예술세계의 상상은 어디까지인가

 

 

투병과정이 예술이 되는 질병을 극복한 예술가들도 많다
<부서진 기둥>을 그린 ‘프리다 칼로’,
강박신경증을 물방울무늬로 표현한 ‘쿠사마아요이’ 작가를 만나면서 그림에 빠진적도 있었다
질병과 미술이 만나는 미술치료....
그림이 위로가 된다 

 

예술인가 외설인가...

금기를 깬 작가들의 작업은 성 역시 평범함이라 이야기하고 거리낌없이 재현한다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아티스트의 작품이지만 책에 나오는 작품들은 불편함에 가까울수도 있다

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선 작가의 세계에 작가의 삶에 마주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삶이 아름답다 하더라도 추함도 삶이기에 인간의 가장 밑바닥인 속성과 본성을 여과없이 작품에 마주한 불편한 진실 속 <혐오와 매혹사이>이다

 

 

 

m******8 2019.04.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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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매혹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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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분리된 예술을 강조했던 추상 미술도 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전문화, 분업화, 세분화가 필요해진 시대적 상황에 영향 받은 것이다. 이런 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오늘날의 미술가들은 실재하는 우리의 삶을 담아내는 작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선보인다. 우리가 무시하거나 잊고 싶어하는 불편한 현실에 주목해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하거나 문재의 해결책을 고민하기도 한다.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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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분리된 예술을 강조했던 추상 미술도 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전문화, 분업화, 세분화가 필요해진 시대적 상황에 영향 받은 것이다. 이런 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오늘날의 미술가들은 실재하는 우리의 삶을 담아내는 작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선보인다. 우리가 무시하거나 잊고 싶어하는 불편한 현실에 주목해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하거나 문재의 해결책을 고민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의 평범한 삶이 아름답지 않음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미술이 독립적으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든가, 미술은 미술만을 위한 또 하나의 순수한 세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힘을 잃게 되었다. (p64)


언제부터 한국에서 혐오라는 단어가 부각되고 잇다. 혐오스럽다, 혐오스럽지 않다. 이 두가지 기준은 대중매체를 움직이고, 생산자와 소비자,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가거나 소비자의 기호를 창출한다. 그 과정에서 야생적인 것들, 혐오스러운 것들은 점점 더 사라지고 은폐되고 있다. 미디어 속에서 혐오스러운 모습들은 모자이크 되거나 간접적인 모습으로 실체를, 진실을 가리려 한다. 동물의 사체, 피가 미디어 속에 들어가면 모자이크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잇다. 여기서 모자이크에는 사람도 포함되고 있으며, 유명 연예인이 혐오스러운 범죄를 저지르면 얼굴을 가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이런 과정은 미디어에서 예술로 옮겨가고 있으며, 미디어 안에서 괴기 스럽고 혐오감 느끼는 것들이 점점 더 사라지게 되고, 균형과 조화를 강조한 이상적인 미를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이 부각되고 찬양된다.


하지만 이 책에는 우리가 소비하고 생산하는 그런 예술이 아닌, 실험적이면서 때로는 도발적인 예술들을 보여주고 있다. 매혹적이거나 혐오스러운 예술 작품들, 그 안에 보여지는 작품들은 어느새 내 눈에 어색하고 불편하다는 걸 감지하게 된다. 삶의 끝자락에는 분명 죽음이 존재하지만, 죽음에 대해서 감춰 버리려 하고, 불편함 모습을 숨기지 않고 있다. 사람의 몸 중 하나가 사라진 형태의 예술 작품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회피하려는 것 그 안에 내 안의 감춰진 불안과 공포가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어있는 생명체와 그 생명체를 부패시키는 매개체를 같이 등장시킴으로서, 그것이 점점 더 부패하는 과정들이 예술작품으로 나온다면 느낌이 어떨까 생각해 보자면 오싹하고 소름끼칠 때가 있다. 괴물에 대해 형상화하고, 반인반수의 그림을 보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균형과 조화로움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에서 벗어난 것들에 대해 이질적이고 때로는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하는 또다른 이유이다.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추구하고 소비하는 것들 중에는 심리적인 안정도 포함된다. 죽음, 괴물, 폭력, 피, 배설물, 섹스, 괴물에 대해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심리적 안정을 저해하고 벗어나게 해 주기 때문이다. 

k*******2 2018.10.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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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매혹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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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에 앞서 작가의 '들어가는 말'을 주의깊게 읽어보았다.  '나는 왜 불편한 미술에 끌리는가?' 작가의 생각을 읽기 전에, 나는 미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부터 생각해 보았다. 미술은 생각이나 감정의 표현이다. 그림, 조형, 사물들을 이용하여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표현 결과물은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게 된다. 따라서 미술작품은 좀더 화려하고, 예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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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에 앞서 작가의 '들어가는 말'을 주의깊게 읽어보았다. 

 

'나는 왜 불편한 미술에 끌리는가?'

 

작가의 생각을 읽기 전에, 나는 미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부터 생각해 보았다.

미술은 생각이나 감정의 표현이다. 그림, 조형, 사물들을 이용하여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표현 결과물은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게 된다. 따라서 미술작품은 좀더 화려하고, 예쁘고, 계속 보고싶도록 만들게 된다.

 

작가는 나와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반문을 던진다.

 

-미술은 더 이상 아름다운 꽃밭에 머무르길 원하지 않는다. 우리를 고뇌하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들도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한번쯤 진지하게 마주봐야 하는 불편한 것들이 많다.......

 

작가의 생각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삶은 더러운 것, 흉측한 상황, 공포스러운 것 들이 혼재하고 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삶이 항상 밝은 면만 있지 않기 때문에.

 

 

모두 7가지의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소개해 준다. 차례를 나타내고 있는 페이지의 색깔부터 심상치 않다. 쨍한 파란색. 눈이 피로하고 불편함이 느껴진다.

 

프롤로그. 불편한 미술의 시작

 

잘려신 시신이 나무에 걸려있는 작품이 먼저 펼펴진다. 채프먼 형제의 '죽은 자에게 가해진 위대한 행위'.

작품의 사진을 보고 처음에는 '헉'하는 숨막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곧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잘려진 시신의 모습은 어떤가? 절단된 부위는 어떤 모습으로 보여질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잘렸을까? 작가는 누구를 떠올리면 저런 작품을 만든것일까?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p.45

...예술가는 자신이 축적해놓은 경험을 어떠한 형식으로든 작품에 반영하는 사람이다. 자신들이 목격하고 경험한 세상이 아름답기만 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작품을 제작할 수 없었다는 채프먼 형제의 말을 흘려들어서는 안된다.....

 

미술가들은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그 철학을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철학들을 접하면서 나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가고 잡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미술작품을 접하고, 느끼고, 생각하나보다. 그것이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본문의 내용들은 여러 미술가들의 작품을을 바탕으로 삶의 여러 감정들을 건드려주고 있다.

 

-파편화된 몸이 전면에 나서다 '폭력'

 

-삶과 죽음은 운명적인 커플이다. '죽음'

 

-투병 과정이 예술이 되다. '질병'

 

-피,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다. '피'

 

-절대적 더러움은 없다. '배설물'

 

-포르노그래피인가, 예술인가? '섹스'

 

-우리는 모두 잡종이다. '괴물'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글을 읽다가도 과도한 몰입이 필요한 작품도 군데군데 보였다.

 

나는 미술을 좋아하는 그냥 일반인이다. 조금은 어렵긴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겪어보지 못한 작품들을 만나보고, 내가 느끼지 못한 감정들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미술의 다양화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YES마니아 : 플래티넘 g*******l 2018.09.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혐오와 매혹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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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매혹은 어떤 상관 관계에 있을까...? 별로 이 둘을 연결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나마 제가 생각한 현대 미술에서의 불편함은 뒤샹의 샘 정도를 떠올렸던 것 같아요. 처음엔 굉장히 어색하고 이것이 예술인가 싶더니 자주 책에서 언급되고 접해서 그런지 이제는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예술로 느껴지더라구요. 이 책도 그 정도 수준에서의 불편함인가보
"혐오와 매혹 사이" 내용보기

혐오와 매혹은 어떤 상관 관계에 있을까...? 별로 이 둘을 연결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나마 제가 생각한 현대 미술에서의 불편함은 뒤샹의 샘 정도를 떠올렸던 것 같아요. 처음엔 굉장히 어색하고 이것이 예술인가 싶더니 자주 책에서 언급되고 접해서 그런지 이제는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예술로 느껴지더라구요. 이 책도 그 정도 수준에서의 불편함인가보다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다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답니다.

 



저자의 의도를 다 이해하기란 너무 힘들지만 피, 죽음, 배설물 등 인간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소재들에 대한 이야기임은 분명하더라구요. 하지만 끔찍함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저자의 의도를 떠나서 불편함이 먼저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구요. 책에서는 이렇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한편으로 그것에 끌린다고 하는데 저는 미술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설명을 보면서 이해가 가는 부분들도 있긴 했지만 끌린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그동안 이런 내용을 다룬 책을 접한 적이 없기에 호기심으로 다가오면서도 놀라움도 함께 수반되더라구요. 어쩌면 우리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도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머리로는 이성적으로 끔찍하다는 편견에 앞서서 궁금하고 매혹적으로 끌리는 것도 의식적으로 외면하게 될 때도 있는데 혹시 그런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저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

 

아무튼 예술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다양하고 독특한 예술가들이 남들과 다른 발상과 생각으로 사람들에게 기상천외한 작품들을 선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예술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d****h 2018.09.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