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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진 예수의 모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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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이지만 또한 가장 읽히지 않은 책이라고 한다. 이 같은 상황은 아마 예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예수는 세계 4대 성인중 가장 첫 손가락에 꼽히는 존재이지만 막상 그 존재가 걸어온 삶에 대해 아는 자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것은 그의 생애를 담은 기록이 고작 네 개의 짧은 복음서 밖에는 없어서이기도 하고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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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이지만 또한 가장 읽히지 않은 책이라고 한다. 이 같은 상황은 아마 예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예수는 세계 4대 성인중 가장 첫 손가락에 꼽히는 존재이지만 막상 그 존재가 걸어온 삶에 대해 아는 자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것은 그의 생애를 담은 기록이 고작 네 개의 짧은 복음서 밖에는 없어서이기도 하고 또한 그 복음서가 많은 부분 비유와 암시로 이루어져 있어서이기도 하다. 게다가 공식적인 전기라 할 수 있는 4복음서마저 서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고 또한 모두 생애를 상세히 기록하기 보다는 중요한 사건들만 나열한 것일 뿐이어서 얼른 읽는 이로선 전체적인 줄기를 잡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우리가 아는 것은 유명한 단편적인 사실들 뿐인 경우가 많고 예수의 말 또한 맥락과 상관없는 파편적인 것일 뿐일데가 많다. 게다가 예수가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는데 있어서 주요한 방법들이었던 비유와 암시 때문에 그 말의 알쏭달쏭함으로 총천연색으로 인상이 잡히기도 전에 벌써 흐릿해지고 만다.

 

  아마도 그래서 예수에 대한 전기가 역사에 걸쳐서 그토록 많이 나오고 있는지 모른다. 또한 그토록 다양한 시각으로 예수의 인생이 말해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실 예수의 일생이란 공식적인 주요한 사건들로만 층층히 쌓아올린 탑과도 같은데 사실 그 탑의 이음새가 그리 탄탄하지는 않다. 그나마 4복음서만이라도 일치를 보이면 괜찮을텐데 복음서의 저자들 자체가 자기 시각으로 편중된 서술들을 하고 있어 차이가 보이는 더 헐거워 보인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에게 있어 예수의 생애란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다는 것이다. 장님들도 코끼리를 만지면 대략적인 다리나 몸통 코 상아등은 알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4복음서를 통해 알 수 있는 단편적인 사건들이다. 하지만 코끼리 전체를 알기 위해선 그 사건들만으로는 부족한다. 예수는 무엇보다 메시아이고 그가 메시아답기 위해서는 그 모든 사건들이 그의 온전한 뜻 안에 자리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건 자체가 아니라 왜 그 사건이 하필 거기서 일어나야 했느냐 하는 그 의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이적이나 행위를 믿음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의 바탕이 된 '뜻' 혹은 '신념'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단순히 그 존재만이 아닌 '인격적' 존재를 강조하는 것도, 그 인격에서 발현된 '사랑'을 강조하는 것도 그 까닭이다.

 

 때문에 의미가 중요하다. 하지만 의미란 해석의 문제라서(특히나 주된 방법이 비유와 암시라면 더욱 그렇다.) 결국 저마다 자신이 무슨 색안경을 쓰고 있느냐에 따라 달리 보일 수 밖에 없다. 해서 우리는 아주 많은 다양한 시각의 예수의 생애에 대한 판본을 가지고 있다. 비근한 예로 진보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본 김규향의 '예수전'이 있는가 하면 성인의 색채를 모조리 탈색해 버리고 온전히 인간적으로만 해석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도 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질 때 느꼈던 고통을 가감없이 전해주는데 주력한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있는가 하면 중요한 건 예수의 말과 행위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태도로 본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결단이 중요하다며 오로지 그 결단을 촉구하는 역사적 사실만으로 써내려간 독일의 신학자 불트만의 '예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지나온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예수의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은 예수가 남긴 파편된 진실들이며 우리가 온전한 예수상을 만드는데 있어 필요한 조각들이다. 그러니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으면 많을 수록 더 좋다.(물론 그것들이 타당하고 상식선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더 다양한 시각들로 이루어진 더 많은 블럭들로 더 풍요로운 예수의 상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의미란 언제나 고정되어질 때 문제가 발생했다. 왜냐하면 특히나 종교에 있어 그 고정이란 게 원래 성경의 뜻이 아니라 그 고정을 통해 떡고물을 챙기고 싶은 자들에 의해 행해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재물이든 권력이든 말이다. 그래서 말씀의 해석에 대한 주권 또한 중세의 교부들에서 부터 지금의 목사들에게 이르기까지 소수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들이 진리를 알 수 있어서가 아니라 재물이든 권력이 거기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진짜 예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해석한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예수를 보고 있는 것 뿐이다. 마치 우리는 그들이 의도대로 편집한 예수 전기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나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성경 자체에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들이 권위로서 내세우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고 먼저 자신이 그 의미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일종의 의미의 민주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어차피 예수의 생애와 말씀은 모두 비유와 암시이다. 이 말은 그 어떤 해석도 권위를 가지기가 어렵다는 말도 된다. 모든 건 설득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예수가 한 행동이나 말씀에 대해 저마다 각자가 찾은 의미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서 말이다. 우리는 그러한 가운데 타인의 예수상을 포용하고 더 타당해 보이는 것을 찾아 증축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신앙의 대상에 대한 해석은 사실 증축이며 대화인 것이다.

 

 

 

 

 오랜만에 예수의 삶에 대한 책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차상엽 신부의 '잊혀진 질문'을 읽고서 새삼 다시 내 신앙의 대상이었던 예수를 더 잘 알고자 하는 바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마침 폴 존슨의 '예수 평전'이 발간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폴 존슨의 예수 평전은 부제가 신자가 쓴 전기다. 폴 존슨은 로마 카톨릭 신자이고 마거릿 대처의 고문으로도 일한 적이 있는 그러니까 보수다. 나는 이 책을 좌파 철학자로도 유명한 알랭 바디우의 책 '사도 바울'의 반대편 입장의 책이라 생각하고 읽었다. 아시다시피 바디우는 바울만이 실존 인물이고 예수는 그가 창조해낸 인물이라 본다. 그러니까 예수의 일대기는 바울이 지향하는 이상적 사회를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이데올로기였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것을 읽으며 그것 또한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바디우의 논리에 설득당하지 않기란 심히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반대의 입장은 어떨까 싶어 온전히 실존으로서 믿는 폴 존슨의 책을 선택했다. 말하자면 나는 그렇게 대척점에 놓인 그 둘의 대화를 통해 나만의 예수의 상을 만들어보려 한 것이다. 다행히 바디우의 책이나 존슨의 책이나 분량이 많지 않았다. 사실 예수의 생애에 대한 책은 그리 분량이 많지 않아서 다행스런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양한 시각으로 보다 더 풍성해지는 예수의 상을 홀로 손쉽게 만들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개인적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두고 싶다.) 존슨도 말하고 있지만 예수는 군중을 상대해도 말씀은 꼭 개개인에게 했다고 한다. 그만큼 사실 신앙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다이렉트한 일대일 관계가 전부인 것이다. 불트만은 그래서 더욱 결단을 강조한다. 나는 그 누구도 아닌 하나님 앞에 있고 그러니 그 누구의 눈치도 아닌 오로지 하나님 앞에 내보일 순전한 결단만이 요구될 뿐이라고 말이다. 날 전도한 이가 내 신앙을 대신해 주는 것도 아니고 목사가 내 신앙을 대신해주는 것도 아니다. 신앙은 오로지 나만의 몫이며 그래서 내가 찾아내는 예수의 모습,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그 외의 것들이란 다 참조가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참조가능한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좀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예수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기로 다가가는데 있어 폴 존슨의 '예수 평전'도 좋은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음을 밝혀두고 싶다.

 

 

 



l****1 2012.03.30. 신고 공감 3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많은 예수평전 중에 가장 신뢰를 느끼며 읽을 책
"많은 예수평전 중에 가장 신뢰를 느끼며 읽을 책" 내용보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으면서도한마디로 정의하고 전달하기 힘든 책들이 있다.그런 면에서 이 책은 최고인거 같다.우선 내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서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예수의 일대기를 따라가고 이해하고 기억하기도 바빴는데작가 폴 존슨의 개인적 의견이 모든 얘기들에 분리되어 들어있는게 아니라액체처럼 녹아들어 씌어 있기에 더욱 간단한 느낌정리는 힘들다.그래도
"많은 예수평전 중에 가장 신뢰를 느끼며 읽을 책" 내용보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으면서도
한마디로 정의하고 전달하기 힘든 책들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최고인거 같다.
우선 내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서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예수의 일대기를
따라가고 이해하고 기억하기도 바빴는데
작가 폴 존슨의 개인적 의견이
모든 얘기들에 분리되어 들어있는게 아니라
액체처럼 녹아들어 씌어 있기에
더욱 간단한 느낌정리는 힘들다.
그래도 좋은 책임을 증명해주는 분명한 이유들은 확연하다.
첫째, 폴 존슨이란 유명 역사가의 가장 최근 역작이고
둘째, 기독교적 역사관에 근거해 쓰여졌지만
같은 음식도 누가 조리하느냐에 따라 다른 맛을 띄듯
많이 듣고 보아 온 어떤 예수의 생애를 담은 책들보다도
전달받는 느낌은 폴 존슨만의 색이 있고 느낌이 분명하다.
신성한 얘기를 내가 맛에 비유한건 다소 송구하다.
그리고 셋째, 예상보다 짧고 간결하다.
정말 많은 얘기가 책속에 흘러가고 있는데
작은 우리에 코끼리도 들어있고 하마도 들어있는거 같다.
부담없는 분량에서 너무 많은 것을 얻는 기분마저 든다.
끝으로 넷째, 서두에서 밝힌 집필방식.
대부분의 자세한 근거나 주석을 생략하기로 했고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에겐 따로 제시할 수 있다며
굳이 보여달라면 보여줄 수도 있다 언급한 부분.
이 부분에 대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믿을 수 밖에 없어서 믿고 읽는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믿어야 하는 것들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는 뜻이
그의 어감에 담겨있는 듯해 그가 쓴 모든 스토리의
핵심을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해 준다.
알았던 얘기들이 대부분인데
지루하지 않고 새롭고
어떤 소설책보다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어쩌면 주기도문 한번 낭송하면
이 책에 핵심 줄거리는 대강 요약도 될 수 있을거 같다.
그렇지만 누가 들려주는 재미난 영화의 스토리가
그걸 직접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경험이다.
이 책을 그런 영화라 생각하고 한번 읽어봤으면 싶다.
종교가 기독교이던 아니던간에.
90살이 다 되어가시는 영국의 한 역사가가
아직 이런 책을 낼 정력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의 재능과 남은 시간을 할애해
여러 사람과의 공유할 뜻으로 한글자씩
이 책을 써내려 갔던 걸 상상했을 때
더 즐겁고 경건하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j******3 2012.03.29.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예수평전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예수평전" 내용보기
저명한 역사학자가 쓴 예수님의 전기라는 소개에 기대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 책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 지 무척이나 고민이 됩니다. 책소개글은 저자가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분이고 리처드 도킨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다고 하지만, 막상 책을 읽어 본 결과 이 분이 정말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분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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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역사학자가 쓴 예수님의 전기라는 소개에 기대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 책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 지 무척이나 고민이 됩니다. 책소개글은 저자가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분이고 리처드 도킨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다고 하지만, 막상 책을 읽어 본 결과 이 분이 정말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분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역자가 믿는 분인지 아닌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마도 역자가 믿지 않는 분이라서 이 책에서 그런 냄새가 느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의 독심술 능력(78쪽)', '회식을 좋아한 예수(136쪽)', '예수의 회식 좋아한 기질(161쪽)', '예수는 군중들의 히스테리와 적들의 신체적 위해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남자들이 필요했다(167쪽)', '예수의 출장사역(170쪽)', '예수는 여성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좋아했다(165쪽), '예수는 여성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171쪽)다'와 같은 표현들을 보면서 이 책의 저자가 안티기독교인 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의 표현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자의 표현을 읽다 보면 예수님이 마치 독심술사요, 피해망상증 환자요, 출장마사지사, 제비인 것처럼 묘사한 것으로 느껴집니다.아주 불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저자 자신의 것인지 역자의 번역에 따른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번역상의 문제점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카톨릭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는 만큼 성경본문을 공동번역 성서에서 취한 것이나 모든 용어들을 카톨릭적인 표현으로 번역한 것은 용납할 수 있다고 쳐도(물론 개신교인인 제가 읽기에는 많이 불편하고 힘들었습니다), '인격'이라고 번역했어야 할 'personality'를 '개성'으로 번역한 것이나, '종교적', 또는 '영적'이라고 번역되었어야 할 것을 모조리 '정신적'이라고 번역한 것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구원 왕'이라는 표현도 생전 처음 접해 보는 아주 이상한 번역이었습니다. 이런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왕'이라고 번역했어야 맞습니다.


또한 신학적인 문제점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은 그 즉시 발동해(36쪽)'라는 표현은 저자가 성령님을 인격이 아닌 어떤 '기관'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님을 인격적인 존재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도 예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물질과 정신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189쪽)'는 표현은 저자가 예수님을 이원론자로 이해하고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이원론은 성경적인 개념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성경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또는 저자의 추론에 근거한 표현들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낡은 외투 속의 새 옷(129쪽)', '신전의 헌금궤에 "동전 한 닢에 해당하는 렙톤 두 개를 넣겠다"고 고집한 가난한 과부133쪽)', '시몬과 쉽게 우애 관계가 형성되지 않자 예수는 시몬에게 게파(혹은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었는데, 이는 단단한 돌이라는 뜻이다(151쪽)'와 같은 표현들은 성경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내용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타도 눈에 띄였습니다. 세웠으고>세웠고(173쪽 아래서 6째줄)', 시미온>시므온(217쪽 아래서 11째쭐).


물론 귀기울일 만한 내용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친인 요셉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목수였다는 주장이나(45-46쪽), 예수님의 기적이 자비심의 발로라는 주장(82쪽), "예수님이 자신이 행한 기적  때문에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을 별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주장(83쪽), "예수님의 가르침을 파악하는 유일한 방법은 복음서를 반복적으로 읽어서 그 가르침의 본질이 마음 속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라"는 주장(103쪽)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마음에 깊이 와 닿았던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의 목적은 새로운 체계를 수립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 방식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의 혁명은 전적으로 내면적인 것이었다. 이기심과 탐욕, 잔인함과 편견, 분노와 욕정을 극복하려는 혁명이었다. 자기에 대한 사랑을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혁명이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방법, 그 세상에 적합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예수를 닮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복음서는 이 완벽한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했는지를 보여준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런 내용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의심은 번역자에게 돌려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들어 일반 출판사에서 기독교 도서를 번역해 출간하는 일이 빈번한데, 가끔 비기독교인이나 신앙이 깊지 않은 기독교인에게 번역을 맡겨 영 이상하게 번역된 책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책도 그런 범주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결론과 동일한 결론을 가지고 있는 분이 한 사람이 더 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지 크게 새로운 것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앞에서 지적한 몇몇 내용들로 인한 불쾌한 느낌과, 공감이 되는 내용으로 인한 호감이 계속해서 교차하는 통에 읽어 내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 수고에 대한 보상을 누구에게 받아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k***r 2012.03.30.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폴 존슨의 예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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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면서 인간인 분이 이 지상에 나타났다는 독특한 사건은 그리스도교 본질이다. 이 특이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21)     예수를 예배하는 사람들은 이 땅에 발 딛고 살았던 그의 '인간적인 모습'도 신성시 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를 종교가 만들어낸 허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가 역사적 실제라는 사실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예수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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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면서 인간인 분이 이 지상에 나타났다는 독특한 사건은 그리스도교 본질이다.

이 특이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21)

 

 

예수를 예배하는 사람들은 이 땅에 발 딛고 살았던 그의 '인간적인 모습'도 신성시 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를 종교가 만들어낸 허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가 역사적 실제라는 사실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예수를 한 사람의 성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신성을 제거하고 그의 가르침을 윤리적 차원에서 생각하고 싶어 한다. 편견의 눈으로 "예수를 읽는 것"이다. <폴 존슨의 예수 평전>을 읽으면서 '신선하다'는 느낌이 압도적이었던 것은 내게도 그런 편견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오랜 신앙생활 동안 예수를 '교리적'으로 읽는 습관이 어느 새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어릴 때 위인전 읽기를 끝으로 '평전' 읽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예수의 평전이라는 책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저자 폴 존슨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역사가요, 저널리스트이며, 저술가라는 것에 믿음이 갔는데, 무엇보다 역사학을 전공한 저술가라는 사실이 더욱 좋았다. <폴 존슨의 예수 평전>의 역시 세계적인 명성가의 저력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믿을 만한 자료와 증거를 근거로 한 설득력 있는 해석이 역사에 실존했던 예수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되살리고 있다.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주면서도, 전문적인 학술서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마치 예수님이 심오한 진리를 "누구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이해주신 것처럼, 높은 수준의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이해주는 탁월한 교사같다.

 

다만, 하나님이면서도 인간이고, 신비적이면서도 실제인 예수를 한 권의 책으로 전부 이해할 수는 없다. 누군가 성경 읽기를 거대한 건물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에 비유하신 분이 있다. 성경을 읽어내는 접근 방법이 다양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 가지 관점으로만 예수를 다 이해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신학적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 이 책에 실린 몇 가지 해석들도 학술적인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그럼에도, <폴 존슨의 예수 평전>은 "이렇게도 예수를 읽을 수 있구나" 하는 신선함이 우리의 굳은 생각(교리적 도그마)을 환기시켜 주고, 신뢰할 만한 자료를 근거로 2000년 전 유대 땅에 발 딛고 살았던 예수를 생생하게, 그리고 아주 매력적인 인물로 되살려 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폴 존슨의 예수 평전>은 4복음서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는 먼저 예수의 행적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 4복음서의 기록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 자료인지 밝힌다. 그러면서 "예수의 생애를 집필할 때 부딪히게 되는 문제는 자료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너무 많다는 것이며, 텍스트에 나와 있는 말씀과 에피소드의 온전한 의미에 도달하기가 엄청 까다롭다는 것"을 이해시킨다.

 

 

"역사상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이처럼 다양한 문제들에서

이처럼 강력한 영향을 끼친 다른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201).

 

<폴 존슨의 예수 평전>은 내게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예수'처럼 짧은 전기를 남긴 위인도 없는데, 그 짧은 전기가 인류 역사에 어떠한 빛을 던져 주었고,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할수록 벅차 오르는 감동이 있다. <폴 존슨의 예수 평전>은 예수가 탄생한 세계는 가혹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불안정한 세계였다는 시대적 배경을 시작으로 그의 생애를 주제별로 탐구해 나가며, 입체적으로 요약한다.

 

그의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예수가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 아니라, "성공한 목수"의 아들이었다는 주장이다. 요셉이 목수로서 성공을 거두었고, 그의 가족은 비교적 풍요롭게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사실, 사정이 허락하는 한 모든 똑똑한 유대인 아이들은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며 예수는 안락한 가정 출신이었다"(47). 저자는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은 예수의 생애를 "예수의 잃어버린 18년"이라고 표현하며, 그 잃어버린 18년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재구성한다. 저자의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가난한 목수의 아들' 예수의 이미지와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도 일부분 수정되어야 할 듯하다.

 

<폴 존슨의 예수 평전>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장면은 예수가 그의 제자들을 부르는 장면이었다. 4복음서가 다르게 증거하고 있는 이 부분에서 저자는 어떤 결론을 얻었을지가 궁금했다. 저자의 해석은 내가 받아들이고 있는 주장과 다르지 않았다. 간단히 기술되고 있지만, 저자는 2번의 부르심이 있다고 본다. 첫 번째 부르심에서 4명의 제자들(시몬, 안드레아, 세베대오의 두 아들)이 파트타임 사역자로 일했다면, 두 번째 부르심은 종일 사역자로 부르신 것으로 해석된다. "안드레아가 세례자의 제자였다는 사실"은, "이 네 명의 어부들이 이미 종교적 부흥 사업에 관심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안드레아는 세례자 요한을 짬짬이 따라다니는 사람이었뿐이다."  "예수는 그 네 명에게 하루 종일 따라 다니라고 명했고 그들은 복종했다"(69). 이 외에도 저자는 4복음서에 각각 다르게 기술된 증언의 차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본질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 역사 전문가인 그의 결론이다.

 

<폴 존슨의 예수 평전>이 보여주는 예수는, "사회 각계각층의 남녀노소와 자연스럽게 어울렸으며, 기도할 때를 제외하고는 혼자 있는 것을 피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연회를 갖는 것을 좋아했고 늘 새로운 친구와 동무를 찾아"다니는 인물이다. 예수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사람들을 독특한 개인으로 사랑했다는 것"이며,열등한 존재, 일종의 재산으로 취급한 여성을 "남성과 동일한 지위에 올려놓으려 애쓴 세계 역사상 최초의 교사"였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치유 기적이 많은 어린아이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173).

 

동시에 예수는 "유대의 종교적 체제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어놓은 혁명가"였으며, 하나님을 "저 먼 산 위에 있는 보이지 않는 신성이 아니라, 단란한 가정의 아버지"로 처음 소개한 인물이다. "예수 가르침의 본질은 하나 됨의 추구"였는데, 그의 가르침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 다시 말해 "구약성경이나 근동의 다른 지혜 문서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가르침"이었다. "인류 전체를 사랑한다는 사상은 그리스인이든 야만인이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생각하지 못한 사상이었다." 특히 요한복음에 기록된 '진리'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은 "아주 심오한 철학적 명제이지만, 동시에 시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교육받지 못한 무식한 사람들도 직감적으로 이해하는 명제이다"(126).

 

 

"그가 말한 것은 언제나 진리인데,

이승의 시간 속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원 속에서도 그러하다.

그것은 서기 1세기 전반기에 로마제국의 조그마한 변방 속주에서 사람들 앞에 제시되었으나,

그 진리는 역사와 지리를 바꾸어놓으며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177).

 

자기(자아)에 대한 사랑을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어놓으려는 예수의 새로운 생활 방식은 오늘날 우리의 세계에서도 하나의 거대한 혁명이며 역설이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예수 운동은 실패한 역사'라고 결론짓는 사람들이 있다. 그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라 사는 제자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G. K. 체스터튼의 말을 빌어 폴 존슨도 말하듯이, "예수가 남겨놓은 그리스도교는 시도해본 결과 실패로 끝난 종교"가 아니라, "너무 어렵다고 판정되어 시도조차 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진리)은 어떤 규칙으로 따를 수 있는 생활 지침이 아니라, "내면의 강력한 충동을 필요로 한다." 마음이 변화를 받지 않으면 결코 따를 수 없는 생활 방식인 것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 그리고 우리 죄의 짐을 지고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을 당하신 예수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춰 서게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는가?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 벗어주며,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면 십 리를 동행하고, 내 것을 달라 하면 손해볼 줄 알면서도 거저 주는 삶. 다시 한 번 내 안에도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강력한 충동이 일기를 기도한다.

 

 

 

 

 

 

 



c***1 2012.03.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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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디까지 알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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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페이스북 종교관에 ‘종교는 철학의 시녀다’라고 써놓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종교의 절대성을 믿지 않는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고 한 아퀴나스가 맞든 나를 포함해 그와 다른 견해를 가진 이가 맞는 여부를 떠나 철학이든 신학이든 사상들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기독교처럼 타 사상에 배타적일 수 있다면 문제가 있긴 하다.  실제로 그 가치는 사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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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페이스북 종교관에 종교는 철학의 시녀다라고 써놓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종교의 절대성을 믿지 않는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고 한 아퀴나스가 맞든 나를 포함해 그와 다른 견해를 가진 이가 맞는 여부를 떠나 철학이든 신학이든 사상들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기독교처럼 타 사상에 배타적일 수 있다면 문제가 있긴 하다.  실제로 그 가치는 사랑과 자비가 되기도 하지만 전쟁으로도 변모했기에 꼭 긍정적이라고 만은 할 수 없다. 물론 이 책의 역자(이종인)저자(폴 존슨)는 지식에 의해서 종교를 파악하려는 것을 하나의 유혹’(8페이지)이라고 규정해 내 생각을 철저히 깔아뭉개지만 지식과 논리가 전제되지 않은 종교를 일방적으로 믿으라는 것도 일종의 폭력으로 생각하기에 이런 전제들은 다양한 생각의 차이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독교에 가장 가까이 간 시간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었던 같다. 사실 수없이 좌절하고 일어나면서 살아야하는 인간으로서 절대적인 존재가 앞에 있을 때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두려운 것은 공포가 수반될 수 밖에 없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막강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 역사를 종교와의 대결의 역사로 보는 이들이 많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사제들의 권한이 막강했다. 하지만 정치권력이 더욱 힘을 얻으면서 종교 권력들은 약해졌다. 최근에는 인간이 가진 DNA의 염기서열까지 분석해 유전의 세밀한 흔적까지도 분석해 내는 상황이니 신의 영역은 그 만큼 축소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기독교가 절대적 역할을 했던 서구는 서서히 종교의 영역이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조금씩 기독교의 영역이 넓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그런 이유가 무엇일까. 이번에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폴 존슨의 예수평전’(알에이치코리아 간)를 읽으면서 그 면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평전의 형식을 빌어쓴 예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다. 조금은 딱딱할 수 있고 혼돈스러울 수 있는 성경과 달리 평전 형태이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쉽다. 물론 저자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는 이라서 사람의 아들식으로 조금 비꼬기거나 하는 경향도 없다.

 

골수 기독교인이라면 이보다 더 강한 예수 전기를 원할지 모르지만 일반인이든 신자든 이 정도면 예수에 대한 이해가 충분할 듯 하다. 예수의 생평을 비교적 상세히 적은 4복음서를 기초해 풀어낸 예수의 생애는 상당히 아름답고 숭고한 모습이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갖는 의문일텐데 이 책에서도 예수의 12살부터 30살까지의 생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사실 이 시기에 동양으로 여행와 불교 등 동양철학을 공부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든 예수 스스로도 그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기에 이런 판단이 내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못 신기하다.

 

어떻든 예수는 30살에 어디선가 돌아와 공생애로 불리는 3년 동안을 지내다가 죽음을 막는다.(물론 다시 부활하지만)

 

어떻든 공생애로 불리는 시간에 예수는 자신이 선지자임을 밝히고 이적을 행하면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편으로 다가갔다. 특히나 어린이, 여자, 약자 등 사회적 소외계층에 다양한 도움을 준 점은 그의 행동 중에 빛나는 부분이다. 어떻든 이 책을 보면 예수가 스스로 얼마나 확고한 신념을 가졌고, 다양한 이적으로 그것을 보여줬는지 잘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 꼭 챙겨야 할 것은 저자가 정리한 새로운 십계명일 듯하다. 여기에는 참된 개성을 계발하라는 것을 시작으로 보편성, 사랑, 자비, 균형, 열린 마음, 진리, 배려, 용기 등이다. 사실 기독교를 믿고 말고를 떠나서 여기에 정리하는 내용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사실 저자가 보듯 예수는 올바른 사람들의 선량함 보다는 참회하는 자의 귀환이 천상에 더 큰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135페이지)고 말했고, 그의 등장 목적이 세상의 주민들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적합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181페이지)라고 했기에 나처럼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돼지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사실 당대에 누리는 민주주의의 가치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중요하다. 동양에도 민본주의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민주주의 가치가 급속히 공감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순작용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독교의 근본을 알기에 좋은 저작이다.

 

 

YES마니아 : 로얄 c*****i 2012.03.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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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존슨의 예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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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자기에게 맡겨진 생애의 시간을 정리하면서 일어났던 일들과 그사건의 의미심장했던바를 돌이켜보며 기록한책을 회고록이라 하고, 후대사람이 어떤사람을 롤모델로 삼고자 지난 발자취를 정리하여 기록한글들을 전기라고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온인류의 죄악을 대신 십자가에 지심으로 대속하시기 위하여 이땅에 오셨고, 이땅에 머무는동안 많은 한없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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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자기에게 맡겨진 생애의 시간을 정리하면서 일어났던 일들과 그사건의 의미심장했던바를 돌이켜보며 기록한책을 회고록이라 하고, 후대사람이 어떤사람을 롤모델로 삼고자 지난 발자취를 정리하여 기록한글들을 전기라고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온인류의 죄악을 대신 십자가에 지심으로 대속하시기 위하여 이땅에 오셨고, 이땅에 머무는동안 많은 한없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기에 2,000년이 지난 오늘날 인종을 불문하고 전세계의 많은사람들이 찬양을 돌릴수 있으나 정작 예수님 자신에 대한 회고록이나 전기는 이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볼수있다.

단지 예수님의 이야기인 예수이야기, 다시 말해서 예수평전만이 있을뿐이다.

그것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보고 기록된 원본이 아니라 그것을 되풀이해 쓴 사본인것이다.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일대기에 관련된 사본이 많다보니 예수님이 나타내시고자 했던 의중있는 행동과 말을 잡아내기가 쉬운것이 아니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개신교에서는 66권의 성경으로 최종정리하고는 있지만 이런관계로 신학적인 안목이 다양해졌고 세월이 지나가면서 성경의 예수님이야기도 재해석되어왔다.

책제목을 처음 접했을때 먼저 생각하게 되는것은 예수님을 어떠한 신학적인 견지에서 서술하고 있을까 하는것 이였다.

역사학자 폴존슨이 지은 "예수평전"을 읽기시작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또는 인간으로써 인류에게 보여주신 사역을 신학과 성서이야기를 동시에 일반사람들의 눈높이로 접근하여 복음서의 역사적인 상황과 배경을 이해하게끔 실어놓고 있다.

그러한면이 에세이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어 기존 예수전과 달리 예수이야기를 풀어나가는점 (특히 제자들의 사역) 은 성경말씀을 근거로 비그리스도인이 읽기에도 부담을 느끼지 않게 엮어 나가고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예수이야기가 어떠한 의미를 남기게 하여주는지 신경쓰며 펴낸것을 느낄수 있었다.

내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 개신교인 이라서 그런지 읽어가는중 책제목등에서 카톨릭식의 명칭들로 어색한점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복잡하지 않게 예수님의 일대기를 통하여 예수님주변에 어떠한 인물들이 있었으며 그인물들중 하나가 내자신이라면 하는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신선함을 갖게해주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었다.

p*******0 2012.03.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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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존슨의 예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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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곁에서 보고 직접 겪어 본 사람이 썼거나 겪은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4복음서. 그들의 시각이 아닌, 현재에 이르러 4복음서를 비롯하여 예수에 관한 여러 자료를 연구한 폴 존슨이라는 역사가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예수님의 전기가 '예수 평전'이다. 성경에서 만나는 예수님이 아닌 인문학자의 시각으로 재탄생시킨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에 그 둘의 차이를 느끼며 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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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곁에서 보고 직접 겪어 본 사람이 썼거나 겪은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4복음서.

그들의 시각이 아닌, 현재에 이르러 4복음서를 비롯하여 예수에 관한 여러 자료를 연구한 폴 존슨이라는 역사가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예수님의 전기가 '예수 평전'이다. 성경에서 만나는 예수님이 아닌 인문학자의 시각으로 재탄생시킨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에 그 둘의 차이를 느끼며 읽는 것이 이 책의 묘미일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는 예수님이 탄생할 당시의 유대의 지리적, 정치적 위치며 시대적 분위기, 위정자들간의 관계와 그들의 성정 등이 자세히 묘사돼 있어 그 시대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일과 말씀 등이 4 복음서 중에서 중복되어 제시되거나 한 부분에만 나타나 있어 스스로 정리하며 이해하기에 혼란스러운 부분이 없잖아 있는데, 이 책에서는 예수님의 생애(1장 탄생, 유년, 청년, 8장 예수의 재판과 십자가형) 예수님이 가르친 내용의 핵심(4장 예수가 가르친 것), 예수님의 화법상 특징(5장 시가와 비유, 질문과 침묵), 예수님이 만난 사람들(6장 사람들과의 만남 :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 노인들) 등으로 구획을 지어 설명하고 있어 예수님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명쾌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서장에서 지은이가 미리 언급하고 있듯이 이 책은 명확하고 간결한 서술이 특징이며, 그의 말씀을 사색하는 데서 얻은 즐거움과 자양을 함께 누릴 수 있어 좋다.

 

읽는 내내 참 신이시면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와 인간이 겪는 배고픔과 피로함, 많은 슬픔과 고통에 함께 동참하시고 스스로 고난 당하기를 자처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죄악으로 일그러진 모습을 바로 잡고자 말씀으로 깨우치시고, 육체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자신에게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면 언제든지 아픔을 치유해 주시고, 결국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온갖 수모와 배신, 억울함, 불법, 부조리를 애써 참으시고 십자가형까지 묵묵히 받아들이셨던 예수님의 사랑이 새삼 뜨겁게 느껴졌다. 마침 사순절 기간인데 예수님의 생애를 한 몫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다시금 깨닫고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번역자께서 크리스천이 아닌 듯 몇 가지 번역상의 오류도 보이고 특히, 성경이나 명칭을 천주교식으로 한 것인지 하느님, 마태오, 마르코, 루가 복음, 바리사이파 등으로 번역 돼 있어 기독교도인 나로서는 읽는 내내 '내가 아는 사람이 이 사람이 맞는가' 하며 이질감을 느끼며 읽어야 했다. 종교서가 아닌 인문서로 나온 것이긴 하지만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대한성서공회에서 발간된 성경을 읽을 것이므로 '예수 평전'을 많은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끼고 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느끼기 위해서 개역개정판 성경 용어로 번역한 번역본이 새로 나왔으면 한다.

s*******7 2012.03.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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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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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예수님은 과연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요?우리의 죄를 대신해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저자인 폴 존슨은 영국의 역사학자로서 역사와 인문, 그리고 종교 분야에서 수많은 책을 저술했어요.바로 이런 거장인 저자가 저술한 예수 평전.오랜 과거의 이야기이기에 어쩌면 우리들은 모를 수 있는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이지만 그것은 성경 속 복음서에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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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예수님은 과연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요?
우리의 죄를 대신해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
저자인 폴 존슨은 영국의 역사학자로서 역사와 인문, 그리고 종교 분야에서 수많은 책을 저술했어요.
바로 이런 거장인 저자가 저술한 예수 평전.
오랜 과거의 이야기이기에 어쩌면 우리들은 모를 수 있는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이지만 그것은 성경 속 복음서에 담겨 있어요.
그런 복음서를 토대로 해서 예수를 재조명해 보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제목은 예수 평전이지만 부제로 그리스도교 신자의 입장에서 저술한 전기라고 하네요.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지은 저자의 신앙적 믿음도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성경을 읽다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정작 그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참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자칫 잘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죠.
하나님과 예수님의 생각이 아닌 바로 나 자신, 사람의 생각으로 말이죠.
그렇기에 성경을 나름의 생각으로 풀어놓은 책들이 많은데, 정작 문제는 서로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거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온전한 역사를 재현해낸다는 것이 어쩌면 말도 안되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남겨진 이야기들을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그것이 결코 어렵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특히 저자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찾아가는 여정에 복음서를 토대로 해서 풀어내는 것은 바로 복음서가 가장 최근에 쓰여진 문서이기 때문이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만큼 객관성이 보장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오랜 역사의 시간 속에 묻혀 있던 이야기를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살려내는 과정.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많이 읽혀지는 책이 바로 성경이라고 하죠?
그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로 나사렛 예수라는 것을 의심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에게는 당연히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은 중요하고 알고 싶을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어쩌면 자칫 잘 못 알려졌을 예수님의 모습을 알려줄 수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복음서는 바로 우리들에게 누군가의 신앙고백이고 생생한 경험이고 믿음이라는 것을 말이죠.
처음에는 그저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하나의 사건일 뿐이지만 또 한 번 더 읽으면 그 속에 담긴 진리를 어렴풋이 찾을 수가 있고 또 읽다보면 그 속에서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
지금은 함께 할 수 없지만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 복음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처럼 생생한 체험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예수님에 대한 친절한 해설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참 모습.
과장하지 않은 솔직한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n******s 2012.04.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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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존슨의 예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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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약성경의 4복음서를 현대인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본 책이다.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예수의 공생애기간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점에서는 읽어볼만한 책이다.   폴 존슨은 예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방법으로 복음서를 반복적으로 읽으라고 권하고 있다. 마태오복음, 마르코복음, 루가복음, 요한복음(저자는 천주교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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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약성경의 4복음서를 현대인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본 책이다.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예수의 공생애기간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점에서는 읽어볼만한 책이다.

 

폴 존슨은 예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방법으로 복음서를 반복적으로 읽으라고 권하고 있다.

마태오복음, 마르코복음, 루가복음, 요한복음(저자는 천주교인인 것 같다.)의 4복음서를 그 시대의 역사와 연결하여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막연하게 성경을 읽기만 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것을 역사와 연결하여 설명해주니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또한 그 동안 모르고 있었던 예수에 대한 새로운 내용도 알 수 있었다.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그 당시 주변정세나 역사적 상황을 알려고 하지 않았었다. 

마음 한 구석에는 신약성경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무의식적으로 반복했던 사도신경의 본디오 빌라도 또한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정말로 예수가 존재했다는 사실들을 역사를 통해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다.

또한 그 동안 4복음서에 나타났던 수많은 비유의 표현들에 대해 저자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왜 그 기적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는지, 성경에 나타난 많은

비유들, 탕자의 비유, 열명의 처녀와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예수가 진정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

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수의 새로운 십계명 또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내용이었다.

 

하지만 성경공부를 그리 많이 하지 못한 내게는 조금 어려운 내용이었다.  

k*****7 2012.03.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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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예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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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이라는 단어가 예수라는 인물에 붙는다는 것도 사실 좀 이채롭다. 사실 ‘평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평범한 ‘인간’인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써 놓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빈치 코드’가 국내에서 상영되는 데 큰 논란이 된 것도 예수가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았다고 묘사했다는 이유에서였지 않은가. 물론 이 책은 그처럼 도발적인 내용은 아니고 예수가 인간으
"인간 '예수'의 이야기" 내용보기

'평전'이라는 단어가 예수라는 인물에 붙는다는 것도 사실 좀 이채롭다. 사실 ‘평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평범한 ‘인간’인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써 놓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빈치 코드’가 국내에서 상영되는 데 큰 논란이 된 것도 예수가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았다고 묘사했다는 이유에서였지 않은가. 물론 이 책은 그처럼 도발적인 내용은 아니고 예수가 인간으로 살았던 33년의 기간을 그려 놓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종교보다는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했으므로 이 책을 선택해 보았다.


얼마 전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는 책을 읽고, 다시 ‘예수 평전’을 읽자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전혀 독립적인 이야기는 아닌 것이 나는 알랭드 보 보통의 책을 읽고 예수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종교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멀리 하려 했던 종교적이지 않은 것들을 이야기 한다.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자체로서 이미 완벽한 미술작품이나, 건축적으로 완벽한 성당 같은 유형물에서 도덕적이면서도 거역할 수 없게 만드는 성경의 가르침 등이 그렇다. 나는 이 책을 보는 내내 종교적이지 않은 종교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예수에 대한 기록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실제로 작가가 가장 어려워 했던 부분은 2천 년 전의 역사라서 자료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료가 너무 많아서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상대적으로 얇은 것은 참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책 마저도 두껍다면 사실 우리가 실제 예수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것은 두꺼운 책의 일부 페이지에 국한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예수의 생애를 가능한 자세히 복원해 내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이 곳곳에 보이는 책이다. 그 당시 지리적 위치나, 정치적 분위기, 사회적 물결 등을 나름의 객관적 시선으로 저술하였다. 특히, 예수가 지상에 머물렀던 순간을 인간의 모습 그 자체로 그려낸 부분이 비종교인이 보기에 큰 부담이 없었다.

 

예수 가르침의 본질은 하느님을 네 목숨처럼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수가 말하고자 했던 것들, 내가 하는 것 처럼 너희들도 하라는 말은 우리에게 사실 진리이다. 우리가 도덕책을 읽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처럼, 예수의 말씀도 실천하기 어렵지만 행해야 하는 것들로 이뤄져 있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종교의 가르침에 호의를 갖는다. 그러한 가르침의 배경이 되는 상황과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실천의 모습은 책을 덮을 때까지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한다. 그것이 단순히 종교적일 뿐이지, 무언가 확고한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은 언제든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예수를 소재한 글 중에서 신으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 소설보다는 인간적 고뇌와 한계를 보여준 글이 훨씬 와 닿았던 것 같다. 신의 아들로서의 고난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고뇌를 더 담아낼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을 선택할 때 인문학적으로 그려낸 예수의 모습에 흥미가 당겼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냥 성경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 써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남았다.

YES마니아 : 로얄 c****o 2012.03.29.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