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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단단하게 껴안는 힘
"생을 단단하게 껴안는 힘" 내용보기
시집 <소>로 김기택 시와 만나게 되었다. 시집 <껌>으로 다시금 흡입당한 나, 김기택 시인의 시집을 차근차근 읽어야겠다는 야무진 생각으로 그의 첫 시집 <태아의 잠>을 들었다. 1991년 봄에 출간되어 쥐가 비누를 갉아먹는 속도로 야금야금 20여 년간 10쇄(재판 8쇄)를 찍어낸 시집. 2,500원쯤 했을 시집 가격이 7,000원이 될 때까지 야금야금 독자의 사랑을 받은 것이
"생을 단단하게 껴안는 힘" 내용보기

 

 

  시집 <소>로 김기택 시와 만나게 되었다. 시집 <껌>으로 다시금 흡입당한 나, 김기택 시인의 시집을 차근차근 읽어야겠다는 야무진 생각으로 그의 첫 시집 <태아의 잠>을 들었다. 1991년 봄에 출간되어 쥐가 비누를 갉아먹는 속도로 야금야금 20여 년간 10쇄(재판 8쇄)를 찍어낸 시집. 2,500원쯤 했을 시집 가격이 7,000원이 될 때까지 야금야금 독자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몇 달 만에 폭풍처럼 몇 십만 부 팔리고 폭풍의 잔해처럼 사라지는 베스트셀러와는 분명 다른 끈질긴 생명력이 있을 터. 그 생명력을 흡입하고 싶어졌다.

 

번득이는 눈과 의심 많은 귀를 지나

주린 위장을 끌어당기는 냄새를 향하여

걸음은 공기를 밟듯 나아간다

꾸역꾸역 굶주림 속으로 들어오는 비누 조각

비닐 봉지 향기로운 쥐약이 붙어 있는 밥알들

거품을 물고 떨며 죽을 때까지 그칠 줄 모르는

아아 황홀하고 불안한 식욕

- ‘쥐’ 부분

 

  굶주림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갉아댈 수 있는 생존의 욕구를 닮았을까. ‘거품을 물고 떨며 죽을 때까지 그칠 줄 모르는’ 죽기 직전까지 밥 알 하나라도 더 삼키려는 생의 몸부림을 닮았을까. 살아갈수록 죽음이 바투 와있는, 그 간극을 넓히려는 안타까운 우리네 몸짓을 시어로 옮길 수 있었기에 시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걸까.

 

흰 깃털들이 뽑혀져나간 붉은 피가 쏟아져나간

닭의 체온은 놀랍게도 따뜻하다.

아직도 삶을 움켜쥐고 있는 닭발 안에서

뻣뻣하게 굳어져 있는 공기 한줌.

떨어져나가는 목숨을 붙잡으려 근육으로 모였던 힘은

여전히 힘줄을 잡아당긴 채 정지해 있다.

힘이 세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동작인가.

- ‘닭’ 부분

 

아무도 생명과 음식을 구별하지 않는다네

뒤뚱뒤뚱거리던 걸음과 순한 표정들은

게걸스럽던 식용과 평화스럽던 되새김들은

순서 없이 통과 리어카에 포개져 있네

쓰레기처럼 길가에 엎질러져 쌓여 있네

비명과 발버둥만 제거하면 아무리 큰 힘도

여기서는 바로 음식이 된다네

- ‘마장동 도축장에서’ 부분

 

  마지막 울음이 잘리는 순간, 내장이 품은 온기가 식어가기 시작하는 순간, 생명이 음식으로 전환되는 순간까지 허공의 한 지점을 끈질기게 붙잡고 있을 눈빛.

  구석기 인류가 알타미라 동굴에 왜 죽어가는 들소를 벽화로 남겼을까. 잔뜩 몸을 웅크린 채 고개를 파묻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이지만 생의 끈을 놓지 않는 들소를 보며 인류는 음식을 생명으로, 생명은 예술의 원천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강함이 쉽게 박살나고 마는 약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약함은 강함보다 더 겁나는 두려움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그 두려움이란 실은 내 안에도 꿈틀대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네가 약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작은 충격에도 쉬이 깨질 것 같아 불안하다

쨍그랑 큰 울음 한번 울고 나면

박살난 네 몸 하나하나는

끝이 날카로운 무기로 변한다

(생략)

언제고 깨질 것 같은 너를 보면

약하다는 것이 강하다는 것보다 더 두렵다

- ‘유리에게’ 부분

 

  액체인 두려움이 부피를 늘리며 고체인 두려움으로 변모할 때 우리는 생을 ‘단단하게 껴안는 힘’이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야말로 생명력의 근원이지 않을까.

 

저녁에 머리맡에 두었던 냉수가

오늘 아침 그릇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물과 물 사이 추울수록 단단하게 껴안는 힘이

그릇을 쥔 내 손까지 붙들려고 한다

놀란 손이 얼떨결에 뿌리쳐 내던졌으나

그릇에서 떨어지거나 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투명한 강철의 울음 소리를 내고 있다.

- ‘겨울 아침에’ 전문

 

 


 



YES마니아 : 골드 a*****4 2010.07.30. 신고 공감 4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