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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조망한 유발 하라리가 인류의 현재에 대한
분석과 전망에 대해 쓴 책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다(그 사이에 『대담한 작전』이란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에 대해
이런 설명을 들었을 때 조금 순서가 잘못 된 게 아닌가 생각했다. ‘과거-현재-미래’로 가던가, ‘현재-과거-미래’가 맞는 순서지, ‘과거-미래-현재’는 사고의 흐름과는 다르단 생각이었다. 어쨌든 결론은 미래여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리고 『호모 데우스』를
읽은 기억을 되새기면서 드는 생각은 어쩌면 이 순서가 원래부터 기획했던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의 ‘현재’라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그 ‘현재’가 아니다. 사실, ‘현재’라는 게 참 애매한 개념이긴 하다. 현재는 조금 전까지 미래였으며, 그때 말했던 현재는 바로 지금은
과거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가 현재라고 얘기하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포함한다. 내용도 현재를 분석하지만, 그 현재에서 가까운 미래에 대한 전망이
포함하고 있다. 현재에 대한 분석은 그 가까운 미래를 전망하고 사고하기 위한 전제인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는 오류다. 어쨌든 이 책은 ‘더
나은 내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다양한 측면에서 세계의 현재 모습을 바라본다. 문득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이 박학다식을 어쩌랴, 그 박학다식이 시의적절하게
인용되는 명석함은 어쩌랴,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피력하는 통찰력은 어쩌랴. 유발 하라리를 그저 글쟁이로만 볼 수도 있고, 세상에 떠도는 이러저러한
견해들을 하나로 버무리는 능력으로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의 글은 놀라우리만치 역사적으로나 시사적으로 다양한 근거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아주 잘 이용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제시한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이만큼 글을 잘 읽히도록 쓰는 학자도 드물다.
사실 그의 견해들은 상당히 논쟁적일 수 있다. 이를테면
민족주의에 대한 견해라든가, 인공지능(AI)에 대한 견해
같은 것들이 그렇다. 신에 대한 견해는 더욱 그렇고,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그의
견해에 동의해가는 나의 모습을 본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의
글은 선언적이지 않다. 그러니까 근거도 없이 선언하고 따르라는 식이 아니다.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조금씩 자신의 핵심 견해에 다가가고 있다. 그래서
근거를 읽는 독자는 그 근거에서 나오는 그의 견해를 부정할 수 없게 된다. 또한 글의 흐름은 매우 부드럽지만
결론은 매우 단호하다. 그래서 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헷갈리지 않는다. 책을 읽고, 읽었다는 사실만 남을 뿐 무엇을 읽었는지 흐릿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유발 하라리의 경우엔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는
정보과학과 생명과학이 바꾸어놓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으며,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사고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며, 몸이 느끼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한 복종을 반대한다. 이 견해와 주장에 대해 반대할 수는 있지만, 그가 제시하는 근거를
따라가면 이것을 부인하고 부정하기가 힘들다. 명징한 사고와 유려한 글쓰기의 힘이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우리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에 대해 대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유발 하라리의 책은, 말하자면 발화점에 불과하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도 쓰고 있듯이 내가 생각해야 한다. 그 생각은 온전히 나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것이다. 그래야 ‘무관함(irrelevance)’의 지경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발 하라리의 견해를 따르지 않더라도 그가 제시한 이 방대한 주제에 대해서 하나씩, 가끔씩이라도 생각해 볼 작정이다. 과학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디지털 독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정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작정이다. 그 정도면 나도 꽤 괜찮은 독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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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호모데우스에 이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까지 왔네요. 각 저서의 존재 이유가 명확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세 작품 간의 연결 고리도 튼튼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세계에 대한 사실적인 설명을 기반으로 인류의 미래를 예상하고 이에 대한 조언을 남기는 유발 하라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되시고 취향에 맞으신다면 세 권 모두 읽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매우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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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발달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 어느 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10~20년 후에는 지금 우리가 생계수단으로 종사하고 있는 직업의 50% 이상이 다 사라질 거라고 한다.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은 정보를 투입하고 처리하고 산출하는 일련의 모든 현대적 업무기능을 인간보다 훨씬 더 잘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일자리만이 문제가 아니다. 강한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넘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자신을 의식하게 될 터이고, 자신을 의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로봇은 자연스럽게 생존의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되며, 이는 결국 지구에서 가장 암적인 존재인 인간을 제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많은 영화의 소재가 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런 강한 인공지능의 등장이나 특이점에 대해서는 과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다.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라는 의견, 또는 최고의 알고리즘을 가진 인공지능이 그렇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세계를 재해석하지는 않을 거라는 다소 낙관적인 의견도 있다. 하지만, 약한 인공지능의 수준에서도 이미 세상은 뒤바뀌고 있고, 변화의 속도에 낙오된 인간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버트런드 러셀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이미 85년 전에 예측했듯이, 인공지능을 잘만 활용하면, 인간은 지상낙원과 다름없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일주일 20시간 미만의 노동을 넘어, 일을 거의 하지 않고도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상상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거스를 수 없은 흐름이라면, 그 결과물을 전 인류의 행복이 커지는 방향으로 잘 활용하면 된다.
심지어 무지에서 비롯된 도덕적 실수, 인간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판단의 오류 들도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서 알고리즘을 구축하면 오히려 인공지능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의견도 있다.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 의사의 실수, 부모의 잘못된 양육도 오히려 로봇의 도움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중에 저자의 전작인 <사피엔스>에 이어 맥을 같이 하고 있는 논의가 인간이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관한 것들이다. 종교나 민족주의와 같은 정신적이거나 이념적인 것에서부터 화폐와 시장, 은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는 인간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베어 있다. 이로 인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야기와 허구로 온 세상과 제도가 둘러싸여 있지만, 우리 인간은 그것을 좀처럼 인식하지는 않는다. 정신을 똑바로 집중하고, 사안의 본질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한다면, 애국심이 한낱 부질없는 열정이고,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믿기는 어렵다. 몇 백 년 전 인물이 그려져 있는 색상 있는 인쇄 종잇 조각(지폐)에 가치를 부여할 아무 이유도 없다.
부족이 어울려 생활했던 고대 인간의 여러 조상중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믿었던 사람들이 훨씬더 생존에 적합했을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 큰 집단으로 무리를 확장시키고, 부족 차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었던 재난이나 어려운 과제를 극복할 수 있는 결속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허구를 만들어내고 이를 믿는 사람이 살아남아 지금 인간의 유전적 특질을 갖도록 했다.
여기까지는 <사피엔스>에서도 유사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책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허구를 믿도록 만드는 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담겨있다. 허구를 실제로 인식하도록 하는 힘은 바로 ‘의식’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신이 유일하고 초월적인 존재라서 제사를 올리고, 기도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식이 신을 더 굳건히 믿도록 만든다는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동양에서 공자, 맹자가 예를 중시하고, 조선시대 허례허식이라고 치부했던 여러 의식들이 결국 좋건 나쁘건 간에 유교에 대한 그 시대 사람들의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에 더하여 그 믿음을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 자신의 존재이유와 그 믿음 간의 굳은 결속력이 형성 된다. 종교와 민족도 그러한 예일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내용중 하나는 헉슬리가 쓴 소설 ‘멋진 신세계’에 대한 짧은 고찰이다. 미래에 인간의 모든 뇌의 작용과 정서반응에 대한 알고리즘이 다 밝혀지고 이를 인공지능에 태운다면, 인간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들이 사라질 수 있다. 고통은 뇌에서 발생하는 화학적 신호의 일환이고 그 기전을 주사 한방이나 한 알의 약으로 모두 개선할 수 있다면, 이것은 도덕이나 윤리에 위반될까?
나쁜 감정은 알고리즘이 사전에 모두 차단하고, 행복하고 좋은 감정만 느끼도록 슈퍼 컴퓨터가 우리 뇌의 시냅스를 간단히 조작할 수 있다면, 그 세계는 과연 신세계이며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영화 매트릭스나 트르먼 쇼와 같이 진짜 현실은 암울하고 고통스럽지만 진실이 거기 있기 때문에 그 고통을 감내하고 네오나 트루먼처럼 진짜 현실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실제 우리의 모든 감정과 감각이 뇌의 화학적 반응과 전기적 신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 짜인 컴퓨터의 작동 원리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의 뇌와 감각은 이미 일종의 매트릭스 안에서 정교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좀더 잘하는 기계를 활용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는 윤리적 공감대가 멀지 않은 미래에 형성될지도 모르겠다.
아주 비슷하지는 않은 사례지만, 나는 성형수술을 통해서 한 개인이 자신감을 얻고 과거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권고돼야 하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알약 하나가 사람의 성격을 바꾸거나 능력을 높일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할 사안 아닐까? 그렇다면 좀 더 나아가서 컴퓨터가 인간에게 이런 종류의 혜택을 주는 것도 전혀 다른 이야기는 아닐 거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세상을 가득 채운 이야기와 거리를 두고 빗겨 서서 자신만의 진실한 감각을 깨울 수 있는 방법으로 명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갑자기 명상을 떠올리다 보니 책의 전체적인 이야기가 약간 방향을 잃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실제 저자가 수년 동안 명상을 통해서 깨닫고 느끼게 된 것들을 통해서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고 <사피엔스>와 같은 책까지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명상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눈을 감고 숨이 들고 나는 것에 집중을 한다. 쉬울 것 같지만 몇 초도 되지 않아서 온갖 상념에 휩싸이게 되고, 내가 오로지 명상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집중을 방해하고 만다. 명상을 통해서 본질을 꿰뚫는 능력을 경험해 볼 수 있다면, 시도해 봄 직 하다. 그런데, 이런 쉽지 않은 명상을 통해서 얻는 유익도 결국 먼 훗날에는 알약 한알이나, 인공지능으로 간단히 얻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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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에 구입해서 대충 읽고 놔뒀다가 올해 다시 정독합니다. 이제 마지막 부분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초반부에 내용이 딱딱하고 이해 안되서 몇 번을 덮어놓고 다시 펴기를 반복했습니다. 중반부를 지나니 책이 너무나 재밌고 정말 미래를 내다보고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의 다 읽어가지만 워낙 내용이 방대해서 한 번만 읽고서는 무엇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곤란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략 말하자면 종교, 민족, 가짜뉴스, 자아등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역사적 설명과 함께 풀어낸 것 같지만, 글쎄요. 더 깊게 이해하고 생각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저자 자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하며 이 책은 끝을 맺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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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출간으로 인해 과거 역사에 관한 의식을 새롭게 한 유발 하라리는 후속작 <호모데우스>로 인류 역사의 미래를 다루었다. 작년에 출간된 <21세기의 21가지 제언>은 더 나은 오늘을 위한 21가지로 압축한 제언을 한다. 총 5부에 걸쳐 기술적 도전, 정치적 도전, 진실, 회복력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그걸 작게 나눈 것이 21가지인데 다음과 같다.
기술적 도전 ; 환멸, 일, 자유, 평등 정치적 도전 ; 공동체, 문명, 민족주의, 종교, 이민 절망과 희망 ; 테러리즘, 전쟁, 겸허, 신, 세속주의 진실 ; 무지, 정의, 포스트-트루스, 과학소설 회복력 ; 교육, 의미, 명상
(쓰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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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리자는 흑인과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윤리에 반한다는 것을 알고 동의까지도 할 수는 있지만, 그런 다음에도 흑인 여성이 일자리에 지원했을 때 잠재의식 중에 차별하고는 채용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다. 반면 컴퓨터가 구직자를 평가하도록 허용하면서 인종과 성은 완전히 무시하도록 프로그래밍 한다면, 컴퓨터는 이 요소들을 정말로 수시할 거라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컴퓨터는 잠재의식이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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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유발 하라리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내 자녀는 컴퓨터 코딩을 배우는 대신 재빨리 총을 뽑아 명중시키는 법을 가르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리오넬 메시가 화려한 개인기로 상대 수비수를 돌파하는 모습을 관중석에서 보는 느낌이다. “지금 세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 사건들의 심층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현재 인류가 처한 위기 상황을 유발 하라리의 관점에서 제언하고 있다 자유주의 체계의 한계, 파괴적 기술혁신에 따른 신체와 정신의 혼란, 생태계 파괴, 사회와 무관한 인간, 등 전 지구적 차원의 주제를 다루다 마지막 5부에서는 갑자기 우리는 누구인가?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인생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한다.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인생의 의미가 가벼워서가 아니라 심리학이나 다른 자기계발 서에 전문적으로 다루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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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들은 심리 조종의 대가들이다. 아주 적은 사람을 살해하고도 수십억 인구를 경악하게 하고, 유럽연합과 미국 같은 거대한 정치 구조물까지 뒤흔들 줄 안다."(p.238)라는 저자의 시각이 무척 새로웠다. 그래서 테러리즘에 당황하지 말고, 균형 있고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또 새롭게 와닿았던 부분은,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헤아리는 경우가 드문 이유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로 가득한 반향실과 자기 의견을 강화해주는 뉴스피드 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믿음은 계속해서 공고해질 뿐 도전받는 일이 거의 없다." (p.327)는 점이었다.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고, 나의 경계를 너머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야 함을 깨우치게 되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치유하는 한 가지 해법이 있다면, 그것은 겸허함이다. 민족과 종교, 문화 간의 긴장이 악화되는 원인은 나의 민족, 나의 종교, 나의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며, 따라서 나의 이익이 다른 누구의 이익이나 전체 인류의 이익보다 앞서야 한다는 자만심 때문이다."(p.270)라고 유발 하라리가 주장하는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다. 내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라는 것을 인식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민족과 민족 사이에, 종교와 종교 사이에, 문화와 문화 사이에, 국가와 국가 사이에 분쟁과 다툼이 많은 부분 사라질 것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면 페이스북 계정이나 자기 내면에서 하는 이야기와 자신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몸과 마음의 실제 흐름을 관찰해야 한다. 그러면 이성의 많은 개입 없이도, 그리고 자신의 아무런 지시 없이도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이 스스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마치 이런 저런 바람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바뀌어 불면서 머리칼을 헝클어뜨리는 것과 같다. 당신은 바람이 아닌 것처럼, 당신이 체험하는 생각과 감정과 욕망의 혼합체도 아니다."(p.456)라는 부분에서는, 예전까지 나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진정한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이 글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면의 목소리가 늘 똑같지는 않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었고,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수긍하며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음 안에 작은 울림으로 남아 있는 부분은,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고통의 가장 깊은 원천은 나 자신의 정신 패턴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뭔가를 바라는데 그것이 나타나지 않을 때, 내 정신은 고통을 일으키는 것으로 반응한다. 고통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 조건이 아니다. 나 자신의 정신이 일으키는 정신적 반응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더한 고통의 발생을 그치는 첫걸음이다."(pp.472-473)라는 점이다.
"개인들은 통계적인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날 때가 많다."(p.234)라고 저자는 말하는데, 나 또한 내 안에서 때때로 그런 충동을 느낄 때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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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명작 ‘사피엔스’, 그리고 후속 ‘호모데우스’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중간에 저자 전공으로 소개된 ‘대담한 작전’이 출간되긴 했으나, 사피엔스 시리즈의 감동으로 책을 구입한 많은 사람은 실망감이 컸으리라 생각된다)
전작 2편에서 연속으로 인류의 기원과 발전, 현시대의 점검을 통한 미래사회의 예측과 현명한 대비를 주문했었고, 이 책에서는 기술적, 정치적 도전에 직면한 현시대에 우리 인류가 대처해야할 미래를 5부 21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반복해서 수시로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다. 이야기, 생명기술, 정보기술, AI, 알고리즘 등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란, 인류가 현재 지구를 지배하기 까지 작은 집단에서부터 국가, 나아가 전 세계를 지구촌으로 묶을 수 있었던 허구적 신념을 말한다. 돈, 국가, 법, 정의, 종교, 이념 등의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존재한다고 우리가 믿는 것들 말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이야기들은 시대에 맞게 대체되어 가며, 현대는 자유주의가 세계 정치를 지배해 왔으나, 이 또한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의 융합으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현 상황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깔고 시작한다.
1부. 기술적 도전
1부에서 말하는 기술적 도전은 크게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을 말한다. 여기서 저자는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을 발전의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고, 생태학적 붕괴, 기술적 파괴라는 공포스럽고 암울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나아가 다가올 수십년 동안 이 두가지 공포가 합쳐져 젊은 세대는 현상유지 조차도 어려움을, 수십억 인구가 고용시장에서 밀려나 無用(무용) 계급이 형성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과거 기계는 ‘순수 육체적 능력’분야에서만 인간과 경쟁하였기에, 인간에게만 있는 ‘인지적 기술’이 필요한 새로운 서비스직을 만들어 인간의 영역이 확대, 이동되었다. 그러나 이제 AI는 인지적 기술 분야에서까지 인간을 뛰어넘고, 인간이 갖지 못한 연결성과 업데이트 가능성까지 보유하여 인간과의 격차를 끊없이 벌려나가고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영역에서도,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의 융합이 만들어낼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우리 감정까지 개입하고 조작하게 됨으로써 인간의 의지는 결국 컴퓨터의 의지가 될 것이다.
불평등 사회 강화의 위험성- 인간 종의 분화
저자는 빅데이터 알고리즘에 의해 인간의 감정, 사상까지 개입되는 순간, 모든 부와 권력이 극소수 엘리트의 손에 집중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대다수는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와의 관련성을 완전히 잃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 놓일 수 있고, 이러한 상황이 심화되어 인간은 수직적으로 ‘종의 분화’를 겪고, 다양하게 분화된 인간집단은 서로 완전히 다른 미래를 맞게 될 수도 있는 공포가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부. 정치적 도전
여기서는 지구 공동체 건설의 필요성과 페이스북의 역할을 강조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저크 버그’의 선언문을 소개하며 정치적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융합으로 인한 1부에서의 기술적 도전들을 해결하려면 전 지구적 차원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나, 민족주의와 종교는 인류를 적대적 진영으로 나누고 지구적 차원의 협력을 어렵게 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도전을 받는 정치란 바로 인류 협력을 가로막는 민족주의, 종교를 말한다. 인류는 현재까지 발전해 오며 지구의 지배자가 되기까지 대규모 협력에 의존하며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구축해 왔고, 또한 종교라는 공통된 허구의 믿음을 만들어 각각의 종교아래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역설적이게도 인류의 협력을 위한 민족주의와 종교는, 핵전쟁과 생태붕괴, 기술적 파괴의 인류 위협에 직면하여 여전히 우리를 다양한 진영들로 사분오열 시키고, 상호 적대감을 조장하고 있다. 현재 유럽연합 국가의 이민 찬반을 둘러싼 갈등으로 분열하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을 들려준다.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불안정해지는 일없이 이민자에게 문호를 계속 개방하는 중도 노선을 찾는 것. 이에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 테러리즘에 대한 히스테리를 낮추는 것을 제시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인류가 이 공포를 잘 제어하고, 인류 자신들의 견해에 좀 더 겸허할 수 있다면 현재의 도전을 전화위복으로 삼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역사가 아무리 전쟁이 실속없는 사업임을 증명해 줘도, 그러한 역사적 사실이 평화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치유해주는 한 가지 해법으로 여기서 저자는 인간의 겸허함을 제시한다. 어떻게 하면 민족과 종교와 문화의 실제 위치를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겸허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인류의 미래의 희망을 추구하는 우리의 짐일 것이다. 여기에서는 현실세계의 진실을 제대로 알고 거짓정보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제 세상은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무지한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무지 속에 남아 있고, 정작 알려고 애쓰는 사람은 진실을 알기가 대단히 어려운 현실. 어떤 가짜 뉴스는 영원히 남아 진실로 기록되기도 한다. 첫째, 믿을 만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합당한 돈을 지불하라 둘째, 어떤 이슈가 중요해 보인다면 그것에 관련된 과학 문헌을 찾아 읽으려고 노력하라.
21세기에 필요한 진정한 생존기술은 자아를 규정하는 협소한 틀을 벗어나는 것이라 강조한다. 저자는 여기서 불확실성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항구적인 세계에서 살아남고 번성하기 위해 강한 정신적 탄력성과 풍부한 감정적 균형감을 요구하고 있다.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은 이제 학교는 기술적 기량의 비중을 낮추고 종합적인 목적의 삶의 기술을 강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며 낯선 곳에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일 것이다. 우리가 매일 얼굴을 붙인 채 보고 만지고 있는 스마트 폰을 통해 대기업, 정부 등은 우리의 행태와 의식을 들여다보고 있다. 빅데이터와 기계학습을 통해 알고리즘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우리 존재와 삶의 미래에 대한 통제권은 알고리즘에게 넘어갈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업, 정부 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실체를 알기가 불가능해지고 자신을 알기위해서 알고리즘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를 피하기 위해, 알고리즘이 우리의 정신마저 결정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우리의 정신을 이해할 시간이 남아 있다고 한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노력을 기울인다면 아직은 우리가 자신을 탐사할 시간이 남아있고, 그럴 의향이 있다면 바로 지금 실행하라고 주문하며 이야기를 맺는다.
評 저자의 책들은 모두 분량이 꽤 된다. 양적인 분량도 그렇지만, 내용이 주는 분량은 그 몇 배의 두께로 느껴진다. 그래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유익한 책이다. AI와 알고리즘이 인류의 생각과 감정, 행복까지 지배하는 세상을 눈앞에 두고 난 무엇을 해야 하며, 나의 자녀들은 어떤 교육을 통해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만으로 두려움을 준다.
하지만 행복한 무지 속에 갇힌 것보다는 두려움을 품고 미래를 고민하고 대비하는 이 시간들이 더 값진 것임은 분명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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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리는 역시 하라리네요~! ? '환멸'로 시작되는 제언이 '명상'이라는 마지막 21번째 제언에 도달하기까지, ? 모든 제언이 각자 다음 주제로 연결되는 화두로써 결론을 맺고, ? 그러면 다음주제는 자연스럽게 그 앞주제의 꼬리를 물고 연결되는 독특하고도 흥미로운 전개방식을 보여주는군요~ ? ? 하라리는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그 본질을, 어마무시한(?) 통찰력과 경계없는 사고로 들여다보고 대응법까지 도출해냅니다. ? 심지어 본인의 정체성이랄수도 있는 유대인 문화의 그늘에 대해서도 봐주는(?)거 없이 통찰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데, 저래도 괜찮을지 걱정될 정도.. ? ? 마지막엔 우리 자신을 탐구하는 방법으로 명상의 효용성을 강조하는데, 최근 명상을 처음 접한 저로써는 상당히 반가웠고, 조금씩 멀어져가던 명상을 다시금 제 앞으로 바짝 당길수 있어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