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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문화 예술을 사랑하며 자주 공연장을 찾지만 무용만큼은 음악이나 미술처럼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다. 가끔 현대무용으로 창작 무용 공연을 보기는 하는데, 주로 음악, 미술과 함께 다원예술로서 감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예술가의 일대기를 담은 책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에 이사도라 던컨의 책을 찾게 되었다. 사실 이사도라 던컨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꽤 오래전부터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인물이었다. 20여년전 학창시절에 열심히 TOEFL 시험을 공부할 때 자주 지문 속에서 접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과 에디슨 같은 인물과 함께 이사도라 던컨이 TOEFL 지문에 자주 나올 만큼 대단했다는 것이다. 그 지문에서 이사도라 던컨은 발레와 같은 기존의 무용 형식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몸짓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현대 무용을 창시했다고 나온다. 시중에 이사도라 던컨의 일대기를 서술한 책들이 몇 권 있었는데, 본인이 직접 집필한 자서전이 있는게 아닌가! 아무래도 자기 스스로 자신의 일생을 기록한 책이라 좀 더 특별할 것 같아서 이 책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 책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충격 그 자체였다. 우선 자서전의 서문부터 참 인상적이었다. 단순한 몸짓 하나를 창조하는데 수년 동안 갈등이 필요했던 것처럼, 단순한 하나의 사실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는 데도 수년 동안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또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정확하게 쓸 수 있는 것인가?"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처음 이 자서전의 서문을 읽으면서 글을 참 잘 썼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본문을 읽으면 이사도라 던컨의 풍부한 정서와 교양이 절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 내용, 즉, 이사도라 던컨의 삶을 접하게 되면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로 열정적이고 또 비극적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의 예술은 내 존재의 진실을 오직 몸짓과 율동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는 말로 서문을 끝맺으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아기의 성격 형성은 어머니의 태내에서 이미 이루어진다면서 자신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는 심한 정신적 고통과 비참한 상황 아래 놓여 있었다고 말한다. 아버지와 이혼하고는 차게 얼린 굴과 찬 샴페인 밖에 먹지 않았던 어머니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은 샌프란시스코의 해변 마을이었고, 자신의 생애의 중요한 일들은 모두 바닷가에서 일어났다면서 율동과 무용에 대한 자신의 첫 발상도 분명히 물결의 리듬에서 얻어졌다고 말한다. 게다가 자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가난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어머니는 자기와 형제자매들에게 하인이나 가정교사를 데려다 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었고, 이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잃지 않고 어린이답고 자유스럽게 자랄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준 셈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이 창조해낸 춤의 영감이 어린 시절의 야성적이고 제멋대로 였던 생활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사도라 던컨의 어머니는 음악가로 활동하며 하루 종일 음악을 가르치며 보냈다고 한다. 자신의 진정한 수업 시간은 어머니가 자기와 형제자매들에게 베토벤이나 슈만, 슈베르트, 모차르트, 쇼팽의 음악을 연주해 주거나 셰익스피어, 셸리, 키츠, 번즈의 시를 낭송해 주는 저녁 시간이었다고 한다. 이사도라 던컨은 이미 여섯 살 때 아직 채 걷지도 못하는 이웃 아이들을 마루에 앉혀 놓고 무용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열 살 무렵부터는 무용 교습을 통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고 한다. 10대 시절에 언니 오빠들과 함께 순회 공연을 다니며 연극 무대에 섰고, 학교를 그만두고 공공 도서관에서 많은 책들을 읽었다고 한다. 무용 선생으로서 명성이 높아져 가던 어느 날, 누군가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큰 교습소를 운영하는 유명 무용 선생을 만나보라고 했을 때 거기서 본 발레 동작들을 보면서 추하게 보이고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반박했다는 일화도 나온다. 자신은 머리에 떠오르는 어떤 아름다운 것을 가르칠 때 항상 환상과 즉흥에 따랐다고 한다. 자신은 그게 무용의 새 형태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은 무(無) 형태였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반항적 기질은 청교도적인 횡포에 늘 반항해왔던 아일랜드 핏줄 탓이라고도 언급한다. 한편 자신의 어머니는 물질적인 것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집이라든지 가구라든지 그런 물건에 애착을 버리도록 가르쳤다고 하는데, 자신이 이제까지 한 번도 보석을 몸에 걸친 적이 없는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라 설명한다. 어쨌든 더 넓은 세계로 나가기 위해 고향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카고로, 그리고 뉴욕으로 갔는데, 돈이 없어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몇몇 극단에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치욕적인 무용을 했다고 한다. 특히 유명 극단에서 팬터마임을 했다는 게 독특했다. 이렇게 자신의 야망과 이상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공연을 따라다니며 번 돈으로 자신의 집에 무용소를 개설했다고 한다. 물론 집세를 내기 위해 낮에는 웅변이나 음악, 노래 등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시간제로 하나 밖에 없는 방을 빌려주기도 했다고 말한다. 미국의 쇼팽이라는 에들버트 네빈의 음악에 맞춰 창작한 무용이 뉴욕에서 선풍을 일으켜 뉴욕의 사교계에 초대받기도 했지만 예술가들을 하층 계급으로 대하는데 실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무용소로 삼았던 자신의 집이 불타버려 가족이 모두 빈털터리가 되었고, 귀부인들에게 구걸하러 다니며 여비를 마련하여 런던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돈을 아끼기 위해 대서양을 건널 때 조그만 가축 수송선을 타고 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런던에서도 돈이 없어 하숙하던 집에서 쫓겨나 사흘 밤낮 동안 거리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연히 본 신문 속에서 아는 사람의 기사를 찾아내 그 사람을 찾아가 무용 공연을 성사시키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당시 지독하게 고생했던 때를 떠올리면 자신이 가졌던 정신력은 놀라울 정도였다기보다 어이없는 것이라 자평한다. 그러면서 사람이 어떤 일을 하려고 마음 먹고도 왜 그 일을 하지 않는냐고 되묻는다. 자신의 경우에는 원하는 일을 결코 미루지 않았다고 한다. 종종 불행과 재난을 겪기는 했지만 최소한 자신의 길을 걷는 만족은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귀부인 집에 초청을 받아 춤을 추면서 런던의 사교계 인물들과 교류를 시작했고, 런던의 저명인사들의 티 파티나 만찬회에 초대받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초기 런던생활에서 영국이 가진 문화적 자산들에 흠뻑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대영박물관을 계속 방문하면서 자신의 오빠는 그리스 항아리와 조각들을 그림으로 그렸고, 자신은 주신 바쿠스의 머리와 짚고 있는 지팡이를 보면서 다리의 율동과 음악과의 조화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생각했다고 한다. 1900년 파리 국제 만국 박람회에 참석할 때도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그리스 화병을 몇 시간씩 관찰했다고 하며, 박람회에서는 일본의 대 비극 무용가인 사다 야꼬의 춤과 로댕의 조각 작품 속에서 놀랄만한 예술성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이 당시 자신은 신체의 율동이라는 방법으로 인간 정신의 숭고한 표현을 창조해 내기 위해 창작에 몰두했다고 한다. 하나의 중심에 자신의 모든 힘을 집중시킬 수 있게 된 이후로 자신이 음악을 들으면 음악의 빛과 떨림이 자신 속에 있는 그 집중점으로 물결쳐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물리적인 틀이나 머리로 만들어 낸 움직임은 없어지고 영혼의 힘과 우아함을 가지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리스 예술에 기초를 둔 것이라 말한다. 경탄할만한 아름다운 부조의 조각들에서 영감을 얻어 그리스 무용을 묘사하고 부활시킨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자신의 춤이 유명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인정 받게 되었지만 가난함은 여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유럽 여러 곳으로 공연을 다녔다고 한다. 특히 독일에서의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매일 밤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화가와 철학가, 음악가들과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유명 조각가 로댕과의 썸싱도 있었고, 독일에서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아들 지그프리드 바그너와도 어울렸다고 한다. 책 후반부에 또 언급되고 있지만 리하르트 바그너의 미망인은 자신의 아들과 이사도라 던컨이 결혼했으면 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방문해서는 우피치 미술관에 걸려 있는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앞에서 며칠 동안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춤을 창조해내기도 했으며, 베니스를 거쳐 예술의 가장 성스러운 고향으로 생각하는 아테네까지 갔다. 아테네 신전에서 감화를 받고 아테네 근교에 땅을 사서 자신의 가족들만의 신전을 건축하려 했다고 한다. 아테네에서 고대 그리스의 코러스를 부르는 소년들을 모집하여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노래를 부르게 만들었고, 그리스 정교 음악의 가락에서 얻은 영감에 맞는 동작과 몸짓을 연구했다고 한다. 뒤이어 바이로이트 공연에 올릴 "탄호이저" 공연에서도 자신이 초대되어 춤을 추었으며,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그도 방문해 스나티슬랍스키와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러시아에 있는 왕립발레학교가 자연과 예술의 적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는 와중에 이사도라 던컨 무용학교를 정식으로 개설했다고 한다. 물론 적절한 사전 계획이나 자금 및 기구, 조직도 없이 마음만 가진 아주 급작스러운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아이들을 선별하고, 학교를 조직하고 지도하고, 그 아이들의 일상생활을 돌보느라고 모든 시간을 다 바쳤다고 한다. 또한 조그만 흰 튜닉 외에는 입은 것이 없이 맨발에 샌들 차림으로 무대에 오르는 그녀의 모습으로 인해 "맨발의 이사도라"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 시대에 가장 뛰어난 천재 중 한 사람으로 현대 무대 예술에 전반적인 영감을 준 고든 크레이그가 등장한다. 감성의 촉수를 항상 뻗치고 있는 보기 드문 사람이라 고든 크레이그를 소개하면서 결국 이사도라 던컨은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그 당시 고든 크레이그는 이미 결혼했으며 다섯 아이의 아버지였다고 한다. 물론 이사도라 던컨은 모든 지성적인 힘을 총동원해서 결혼 제도에 저항했던 인물이다. 또한 아기를 분만할 때도 다른 수술과 마찬가지로 고통 없이, 견딜 수 있게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출산 이후에도 여러 도시로 공연을 다닌 이사도라 던컨은 크레이그와의 이별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예술, 자신의 개성, 자신의 인생, 자신의 존재 이유마저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한편 독일, 러시아, 그 어느 쪽에서도 자신의 무용 학교 운영을 위한 지원을 얻어낼 수 없게 되자 영국으로 갔다고 한다. 물론 거기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없었기에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학교 운영에 자신의 생활비 마저 쪼들리면서 파산 직전에 이르게 되자 백만장자 하나쯤은 구해야 할까 보다고 농담을 하다 진짜 백만장자인 로엥그린을 만났다. 그와 3년간 생활하며 부자들의 즐거움을 같이 누리지만 자신의 예술을 희생시키는 일이라 생각했고, 만인에게 통하는 보편적인 표현에서만 진정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고 한다. 물론 그와의 사이에서 둘째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그 무렵부터 자신의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전조를 계속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갑자기 무서운 재난을 만나 거꾸러지는 인간을, 잔인한 운명을 넘어 새로운 희망을 향해 일어서는 상처받은 사람을 춤으로 재현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거의 후반부에 자신의 아이들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죽었는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나는 책을 내려놓고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고, 이사도라 던컨의 두 아이들이 어떤 사고로 죽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검색 내용을 끝까지 읽고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이사도라 던컨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현대의 결혼 의식이나 규범에 반대하고 장례식이란 것에 대한 관념도 야만적이라 할 만큼 소름 끼치고 흉측한 것이라 생각했기에, 상복도 입지 않고 아이들을 기독교식 장례 대신 화장했다고 한다. 인생의 정력과 기운이 최고도로 솟던 그 순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그것은 완전히 자신의 힘과 기운을 부수어 버렸다고 한다. 아이들의 죽음 이후 그녀의 인생은 유럽 일대를 방랑하며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그녀의 정신적 멘토였던 엘레오노라 두제가 자신을 붙잡아 주기는 했지만 새로운 연인들을 계속 사귀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했고, 누군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젊은 미켈란젤로라 불리는 조각가와 사귀다가 아이를 임신한 뒤에 출산하지만 바로 아이가 죽게 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1차 세계대전 와중에 자신이 세운 무용학교가 야전 병원으로 활용되고 유럽이 전쟁터로 변하자 미국과 남미로 건너가 공연 여행을 펼친다. 그 당시 돈도 한푼 없었고 홀로 병들어 있었기에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다시 유럽으로 건너갈 때도 돈을 겨우 구해서 이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폭격으로 파괴된 자신의 집은 정부에 팔고 아테네로 가서 다시 무용학교를 설립했지만 1920년 그리스 혁명의 소용돌이로 그 학교마저 빼앗겼다고 한다. 하지만 1921년, 소비에트 정부가 자신에게 러시아에 오면 무용학교를 만들어주겠다고 전보를 쳤다고 한다. 그리고 러시아로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장면에서 이 책이 마무리된다. 이후 역자의 후기는 그녀의 나머지 삶에 대해 서술한다. 러시아로 가서 젊은 시인 세르게이 에세닌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에세닌은 자살로 생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사도라 던컨은 1927년 프랑스 니스에서 새로 사귀게 된 남자 친구와 스포츠카로 드라이브를 떠나려고 할 때 막 출발한 자동차 바퀴에 자신의 긴 숄이 걸리면서 그 자리에서 척추가 꺾여 죽게 된다. 정말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이 책도 그녀의 사후에 나오게 된 것이라 한다. 한국어판 역시 수십년 전에 절판된 것을 2018년에 다시 내놓게 된 것이다. 고전 발레는 인간의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면서 발레 음악을 배척하고 바그너, 모차르트 등의 소나타 등 무용과는 전혀 관계없는 순수 음악을 사용해 현대 무용을 이끌어낸 이사도라 던컨의 생애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