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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4월 16일 -김행숙 나의 생년월일입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서 죽은 친구들을 많이 가진 사람입니다. 죽은 친구들이 나를 홀로 21세기에 남겨두고 떠난 게 아니라 죽은 친구들을 내가 멀리 떠나온 것 같이 느껴집니다. 오늘은 이 세상 끝까지 떠밀려 온 것 같이 2014년 4월 16일입니다. 기억은 자꾸만 흐릿해져 갑니다. 그날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더 살아온 걸까요. 시간을 헤아려 보지만 시간은 그런 나를 비웃듯 멀리 달아나기만 합니다. 아득한 옛날인 것 같기도 어제 일어난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손이 모자라 발가락으로도 날짜를 세어보지만 수는 자꾸 틀립니다. 1914년 1984년 2014년. 4로 끝나는 연도에 일어난 일은 아득합니다. 세기가 바뀌어도 우리는 그날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나를 두고 간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온 시간입니다. 2014년 4월 16일은.
그러나 -김행숙 뒤돌아서는 순간, 그러나 내가 너와 반대 방향으로 계속 걸어갈 수 있을까 너의 등을 볼 수 없는 세계로 발을 떼는 순간, 눈앞에는 아직까지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던 것들로만 이루어진 세상, 네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 그러나 내가 죽은 사람과 거의 다르지 않다면 망자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 모두 망자와 거의 다름없는 세상, 그러나 어렵지 않게 버스를 탔고, 어렵지 않게 식당과 화장실을 찾았고, 어렵지 않게 건널목을 건넜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혹처럼 태양을 등지고 네가 내 앞에서 걸어오고 있다, 내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바로 너라고 생각하며 나는 똑바로 걸어가고 있다 거대한 화농이 터진 듯이 이 세상은 무섭도록 아름답다 세상은 무섭도록 아름답다고 하는 시인의 말을 믿고 싶다. 내가 아는 진실이 진실이었으면 좋겠고 거짓은 거짓대로 숨죽이고 있었으면 한다.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그러나라고 쓸 수밖에 없는 세계에 한 편의 시가 무섭도록 아프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살아가는 것은. 눈을 뜨고 햇빛을 받아들이고 바람을 맞으면 되는 일. 연한 연필 한 자루를 손에 들고 시를 옮겨 적는 일. 그러나 세상은 자꾸 찐득한 눈물을 흘리기만 한다. 불안하다고 말해보지만 나의 슬픔을 보여주는 일 밖에는 소용이 없는 일이라 마음을 묻어 둔다.
초혼招魂 -김행숙 위와 아래를 모르고 메아리처럼 비밀을 모르고 새처럼 현기증을 모르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를 강물에 던졌다 나는 너를 공중에 뿌렸다 앞에는 비, 곧 눈으로 바뀔 거야 뒤에는 눈, 곧 비로 바뀔 거야 앞과 뒤를 모르고 햇빛과 달빛을 모르고 내게로 오는 길을 모르는, 아무 데서나 오고 있는 너를 사랑해 네가 오고 있다면 어디에서 오고 있을까. 나는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까. 미리 연락을 주면 안 될까. 늦지 않게 달려갈게.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며 그중에 몇 가지를 사가지고 갈게. 반갑게 손을 흔들며 웃고 있을게. 네가 어지럽지 않을 정도로 안아줄게. 비가 오고 눈이 내려도 달려 나갈게.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몰라도 반가워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최대한 이곳의 많은 일들을 기억해서 들려줄게. 그러니 너도 그곳의 일을 내게 알려줘. 햇빛 밝은 날 만나도록 하자. 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