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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답을 찾는 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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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이다.-아인슈타인   예나 지금이나 자식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이럴 때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묘지 근처에서 살았는데 자식의 앞날을 걱정했던 맹모는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가 다시 서당 근처로 옮겼다. 그 결과 맹자는 유명한 학자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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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예나 지금이나 자식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이럴 때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묘지 근처에서 살았는데 자식의 앞날을 걱정했던 맹모는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가 다시 서당 근처로 옮겼다. 그 결과 맹자는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누군가 맹모가 몇 번 이사를 갔는가? 라고 물으면 세 번이라고 자동적으로 답한다. 세 번이 답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맹모? 하면 삼천으로 어렵지 않게 대답하는 것은 맹모삼천지교가 상식이기 때문이다. 상식은 반복적으로 학습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상식을 의심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편으로는 엉뚱한 나머지 동문서답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우려가 없지 않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우리 시대 인문학자 김경집의 이름이 새겨진『김경집의 통찰력 강의』를 들으면서 삶에는 수많은 질문과 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인즉 저자는 인문학과 통찰력이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상식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우리가 알아야 할 교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실제적 의미의 인문학을 추구하면서 “내가 물었던 것에서 물었던 나로 돌아오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답한다. 어떤 사실에 대해 물어보는 것 즉, 질문은 우리가 알고자 하는 욕망이다. 질문을 통해 새로운 앎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질문에게 요구되는 원리는 통찰력이다. 통찰력은 사물의 원리를 넓고 깊게 살펴보는 ‘합리적 의심’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맹모삼천지교를 의심한다. 앞서 말했듯 삼천의 근거는 묘지, 시장, 서당에 있다. 그런데 삼천(三遷)을 의심하면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이천(二遷)’이 된다. 다시 맹모삼천지교를 돌아와 생각하면 묘지는 처음에 그들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이사한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맹모삼천지교가 아니라 맹모이천지교가 되어야 한다. 당시에 사람들은 홀수는 남성의 수, 짝수는 여성의 수로 여겼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묘지, 시장, 서당이라는 세 곳이라는 부분에 집착한 결과 삼천이라는 전체가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좀 더 다른 차원으로, 과연 숭례문이 국보1호일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숭례문의 문화유산의 가치를 의심하는 게 아니다. 숭례문이 문제가 된 까닭은 국보1호로 지정된 배경을 파헤치면 일제의 식민사관 때문이라는 불편한 사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제는 조선을 점령하고 나서 조선의 민족적 정체성을 파괴했다. 한양 도성과 사대문도 조선의 빼앗긴 운명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본의 가토(加籐淸正)가 출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숭례문이 살아남아 오늘날 국보1호가 된 셈이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숭례문이 국보1호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은 어느 한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윤리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숭례문을 문화적으로 자랑하지만 그 내면의 빈곤한 정신세계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에게서 강의를 듣는 것은 지금까지 상식으로 받아들인 삶을 뒤집고 비틀기 때문에 통쾌하다. 한편으로는 이미 상식이 되어버렸는데 그렇게까지 까칠하게 따져야 해야만 하는가라는 마음도 없지 않다.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를 되돌아보면 우리는 점점 삶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상태에 있다. 그런데도 인문학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오히려 속도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이것은 인문학을 ‘아는 힘’으로 충분하게 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인문학의 패러다임은 ‘질문하는 힘’이다. 우리는 질문을 하면서 삶의 다양한 조건들이 어떻게 관계되어 있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는 또 다른 궁금증에 사로잡혀 질문하게 된다. 질문은 끝이 없다.


그러면 질문의 본질은 뭘까? 답을 찾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질문은 답을 찾는 도끼라고 할 수 있다. 답을 찾기 위해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삶을 잘게 쪼갤 수 있는 질문은 삶의 다양한 방식에 대한 사유이다. 우리가 배운 대로 답은 하나다. 답이 여러 개라고 하면 결과적으로 정답을 구할 수 없다. 그러나 질문을 계속하다보면 답은 하나가 될 수 없다. 또한 O. X 문제를 푸는 것처럼 틀린 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틀린 답이 아니라, 저자 말대로 ‘지식의 빅뱅’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맹모삼천이 맹모사천, 맹모구천이 되었을 때 우리 삶이 어떻게 되는지 궁리하는 것이다.

 

p******0 2018.10.05.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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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집의 통찰력 강의 / 김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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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쓴 『나이듦의 즐거움』을 읽을 때는 나이에 상관없이 다가오는 노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요할 때마다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글이 주는 편안함에 매료되었다. 작년에 저자가 안나푸르나를 걸으면서 삶에 대한 질문과 답을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 내용으로 쓴 『생각을 걷다』를 읽고는 전작보다 훨씬 역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 비로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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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쓴 『나이듦의 즐거움』을 읽을 때는 나이에 상관없이 다가오는 노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요할 때마다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글이 주는 편안함에 매료되었다. 작년에 저자가 안나푸르나를 걸으면서 삶에 대한 질문과 답을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 내용으로 쓴 『생각을 걷다』를 읽고는 전작보다 훨씬 역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 비로소 저자의 약력을 살펴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저자의 이름을 제목에 얹은 이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은 어느 매체에 4년 동안 기고한 연재물을 가려 뽑고, 제한 된 지면 때문에 아쉬운 점을 채워 넣은 내용이라고 한다. <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것이기 때문에 "나와 세상,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과 삶에 대한 통찰의 힘을 키"우기 위해 독자들을 이끈 글들이고 그 중에 핵심은 "묻고 따져야"하는 것에 두었다. 그래서 글이 많이 거칠었다.

 

페미니즘을 '꼴 같지 않은 암컷들의 반란'쯤으로  이해하는 남성들은 과연 입장 바꿔 생각 해본 적이 있을까? '한남충'발언 하나에 발칵 뒤집어지는 습속은 여전하다. 메갈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인데 홍대 모델 누드 사진 유출 사건을 계기로 워마드의 강한 비판과 격렬한 행동에 뜨악해하는 건 비단 기성세대뿐 아니라 동년배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257

 

평소에 언행이 거친 사람을 감당하는 일에 자신이 없는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나이듦의 즐거움』을 펴냈을 때의 저자의 글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를 생각하느라 마음이 분주했다. 세월이 흐른 만큼 생각은 느긋해지고 사물에 대해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보통 사람의 행동이다. 그러나 이번 저자의 글에서는 세상사에 분노를 감추지 않고 오히려 날을 세운다. 왜 아직도 우리 곁에는 독립투사보다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의 자손들이 당당하게 권세를 누리고 있는지 분통을 터트린다. 프랑스의 경우 함락된 3년 동안 독일에 부역한 사람들 7,000명을 처형함으로써 미래에 있을 지도 모를 같은 경우에 어떤 행동을 해야 되는지를 못 박았다고 한다. 그에 비해 우리는 아직도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편의나 음모에 의해 만든 일들이-가령 그들이 정한 보물 1호, 2호가 현재까지 그대로 국보 1호, 2호가 된 점 등-고쳐지지 않고 있음을 한탄한다. 그 배경으로 우리의 현대 정치인들이 일제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 많기 때문으로 보고 있고, 이것은 사실이다.

 

조선의 수재들이 경성제국대학에서 일본인들에게 식민사관으로 배웠고 똑똑하고 말 잘 듣는 자들을 제국대학의 교원으로 임용하거나 총독부의 역사편수관으로 보냈다. 해방 이후 그들은 국립서울대학교의 교수와 대한민국의 역사편수관으로 변신했다. (......)그것을 왜곡해서 분탕질한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이 식민사관을 지금까지 그대로 답습한 역사계의 탓이다. 그러나 그걸 아무 의문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에게도 무관심과 순응이라는 허물이 없는 건 아니다. 159

 

왜곡된 역사로 자국과 자신의 정체성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볼 수 있을까. 저자가 매체에 연재했던 지난 4년 동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던 마음이 많이 덜어졌다. 저자는 우리나라를 중심에 두고 세계사를 봐야하지만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것처럼 갇혀있는 시선은 버려야한다고 말한다. 중국 역사를 길게 언급하면서 한 나라가 망하고 일어서는 와중에 일어나는 일들을 오늘에 견주어 보는 것이 구태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시간이 돌고 도는 것처럼 사람이 하는 일들이 그리 느닷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하나의 돌이 모이고 쌓여 마을 경계가 되는 것처럼 현재의 시간이 모여 지난 역사가 되었다. 그 역사의 한 시절에 불과한 현재를 어떻게 잘 살아가야하는가? 이 커다란 질문을 갖고 각자의 역량에 따라 답을 찾게 하는 것이 저자의 바람 같았다.

 

'묻고 따지는'일에 불편을 느끼는 것은 안주하려는 내 마음이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 '묻고 따지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배운 것은 그대로 머리에 스며들어 바꿔나가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포석정' 하면 황음을 일삼던 망국의 왕의 놀이터 정도가 먼저 떠오르고, 맹모삼천지교의 맹모를 교육의 어머니로, 햄릿을 우유부단함의 전형으로 생각하며 내 생각인 듯 말 속에 넣어서 대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고정된 시선을 자신의 잣대로 다시 한 번 고쳐 생각하기를 바랐다. 개인이 모든 현상을 일일이 따져 묻고 답을 찾기는 힘들겠지만 이런 책읽기를 통해 편향된 시선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서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정보의 바다에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면서 거기에 힘을 싣기 위해 갖은 억측과 과장, 거짓을 근거로 내세운다. 여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사회적 정의가 뿌리 깊어야하고 개인도 소신이 있어야한다. 저자는 개인의 힘을 기를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책'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인식에 기대 나이와 관계없이 젊은 생각으로 다가올 세상을 맞이할 수 있는 '시대정신'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예수와 부처의 언행은 당시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담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시대정신이고 인간해방을 위한 영원한 미래 의제 자체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복음과 불법의 실체다. 약자와 빈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 불의에 대한 비판과 허위에 대한 질타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281

 

 

 

 

 

 

t******e 2018.10.09. 신고 공감 2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