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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았을 때, 제목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 가장 궁금했다. 다 읽고 난 다음 궁금증이 해소되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목의 의미가 특별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보통 사람들의 심리적 거리를 표시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쉽게 고치지 못하는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그 사람을 피하거나, 또는 동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은 결코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물론 전염성을 지닌 질병이라면, 때로는 다중으로부터 격리가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들을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거나 동정하는 시선이 아닌, 그저 가족이나 이웃 중의 한 사람으로 바라봐주기를 원할 것이다.
이 작품에는 소설의 주인공인 정음이의 병인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직접 겪었던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있다고 한다. 일명 ‘그레이브스병’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희귀병은 아니지만 쉽게 치료할 수도 없는 병에 걸려 살면서 겪었던 다양한 체험과 생각들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프롤로그에서 정음이가 병에 걸리기 전인 초등학생이었을 때, 머리카락이 듬성한 선우를 놀리는 친구들에 관한 일화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변발’ 혹은 ‘아만자(암환자)’라고 놀리는 아이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음이는 선뜻 나서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봤던 것이다.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급작스러운 체중의 변화를 동반하면서, 병원을 찾아 자신이 ‘그레이브스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생 때의 선우처럼 학교에서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자신의 성격과 그 상황을 이해해주는 몇몇 친구들로 인해서 견뎌낼 수 있었다. 정음이의 소원은 자신의 몸에서 병(그레이브스 씨)이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이혼한 엄마와 함께 살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치료조차 마음껏 받을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다. 엄마는 정음이는 물론 동생까지 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야근을 하면서 공장에 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이혼을 했지만 가끔 문자로 소식을 알려주는 아빠 덕택에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정음이는 자신의 병을 알 수 있었다. 비록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다른 가족들로부터 인정을 받지는 못하지만, 작품을 읽어 나가면서 누구보다 정음이를 아끼는 아빠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직장에 다니는 엄마 때문에 정음이는 간혹 친구들과 더불어 병원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방사능 요오드 치료’를 받기로 하고, 그 전에 상세한 안내서를 읽게 되었다. <2미터 그리고 48시간>이란 제목은 방사능 치료를 마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격리되어야 하는 거리와 시간을 가리킨다. 하지만 입원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13평의 좁은 집에서 살고 있기에 그 거리와 시간을 가족들과도 지낼 수 있는 상황은 되지 못한다. 마침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셔서, 정음이는 치료 후 병간호를 하는 아빠가 사는 할머니 집으로 이틀 동안 ‘가출’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순간부터 어떻게 사람들과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정음이의 고민은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의리’를 내세우며 병원에 함께 가기로 했던 친구들은 다른 사정을 내세우며 거절하지만, 뜻밖에도 그동안 친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짝이 몰래 음식과 물을 챙겨 왔던 것이다. 더욱이 방사능 치료 후에 48시간 동안 사람들과 2미터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정음이는 그 친구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었다. 우여곡절 끝에 버스를 타고 할머니의 집에 당도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그 거리와 시간을 격리된 채로 지낼 수가 있게 된다. 그것으로 병이 완치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전 상황보다 조금은 나아졌을 것이라 여겨진다.
자신이 아닌 타인들을 위해, 그 거리와 시간을 혼자서 감당하려는 정음이의 노력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몸은 멀쩡하지만 타인을 향해 증오와 멸시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마음이 병든 자들보다는, 그 ‘약속’을 지키려는 정음이의 마음이 오히려 훨씬 더 건강할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몸의 병은 고칠 가능성이 있지만, 마음이 병든 자는 겉은 멀쩡해도 쉽게 고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힘겹게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낸 작가 덕분에,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고마운 기회였다고 하겠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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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유은실 작가님을 좋아해서 내용도 좋고, 평도 좋아서 구입했는데 아이가 잘 읽네요. 최신작들도 좋지만 발행이 예전에 되었더라도 평이 좋고,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책은 아이가 잘 읽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독서는 간접적인 경험을 해보는거라 확실히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는 면이 아이에게서 많이 보여요. |
이 책을 읽고 좋았던 점은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치유와 문학이 해줘야 하는 부분을 잘 이해할수 있게 설명해준 책인것 같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가난과 갑자기 찾아온 질병으로 인한 변화와 그로 인한 단절.. 누구도 공감할 수 없다는 아픔은 가장 싫어했던 사람에게서 치유받는다. 라는 글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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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 항진증 진단을 받은 건 정말이지 뜻밖이었다. 살이 몰라볼 만큼 빠진다는데 나는 그런 적도 없었고 목이 튀어나온다는데 그런 증상도 없었다. 다만 정말 미쳐버릴 만큼 피곤하고 고단해서 어딜 제대로 다니지 못했을 뿐이다. 코로나19로 거의 모든 업무를 멈추고 집에 콕 박혀서 지낸 시간이 도리어 나에게는 행운이었을까? 아마 작년과 같은 업무를 그대로 하고 있었다면 진즉에 실려갔을 수도 있다. 항진증 치료약을 먹기 시작한지 두 달째에 접어들면서 몸 컨디션은 많이 나아졌다. 치료되어 가는 과정인지 살도 오르기 시작하고. 만성피로가 나를 짓누를 때는 우울감도 심했는데 확실히 요즘은 마음도 가벼워졌다. 신체의 면역력이 약해져서 병이 드는 게 순서겠지만, 마음이 약해지면 몸도 약해져서 병이 들고 병이 나아가면 즉 몸이 건강해지면서 다시 마음도 강해지는 신체와 정신의 밀접한 관계를 이번에 톡톡하게 체감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이 병증과 함께 하면서 병자로 산다는 것은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사회적 약자로 산다는 문제와는 아주 차원이 다른, 대단히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2미터 그리고 48시간]의 저자는 주인공 정음이처럼 갑상선 항진증을 오래도록 앓아온 소설가다. 병원에 갔을 때 함께 대기실에 앉아 있던 청소년 환자를 보고 이 소설을 떠올렸다고 한다. 어른이 감당하기에도 어려운 이 병증, 병자에 대해 무심하고 혹독하기까지한 이 사회의 냉혹함을 어린 환자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같은 입장이기에 조근조근 그 아이의 속내를 헤아려보는 것에서 이 소설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2미터 그리고 48시간]은 '병자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벗'이라는 판타지를 등장시킨다. 정음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같은 반 아이 인애 그리고 정음이의 할머니는 오랜 병증으로 얼어버린 정음이의 마음을 녹여준다. 그리고 정음이는 항진증과도, 그 병증이 가져온 외로움과 괴로움과도 작별하며 어른이 되어간다.
내 새끼, 아픈 데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아무도 모른다. 아파 보기 전에는 몰라.”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러고는 멍해졌다. 엉덩이뼈가 부서진 채 누워서, 6인실의 소음을 견디며 죽음을 기다리는 할머니, 그 할머니가 단단히 잠겼던 빗장을 열고 내 마음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정음이의 항진증이 차도가 보이지 않자 결국 병원에서는 방사선 약물 투여를 결정한다. 방사선 약을 삼킨 뒤 48시간 동안 그 어떤 인간도 정음이의 2미터 이내로 들어와선 안 된다. 정음이가 먹은 약에 피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 년을 앓아온 항진증보다도, 병이 주는 경제적 그리고 정서적 어려움 보다도 정음이가 두려워한 건 그 '2미터 그리고 48시간'이었다. 약을 먹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친할머니의 집으로 가는 과정에서 정음이는 필사적으로 사람들과 2미터 이상 떨어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2미터를 떨어지기란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 정음이는 '우리가 이렇게 가까웠구나'를 새삼스럽게 느끼며 갖은 고생 끝에 친할머니의 집에 도착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병원에 홀로 다녀오시다가 큰일을 당했던 할머니가 있어 혼자 병원에 다녀오는 정음이가 남같지 않은 인애, 엉덩이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채로 정음이를 위로하는 정음이의 친할머니, 말은 무심하게 해도 정음이가 먹을 수 있는 저요오드식으로 냉장고를 꽉 채워둔 아빠를 차례로 등장시킨다. 아파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병자의 마음은 누구라도 따듯하게 헤아려 줄 수 있다. 오늘 처음 만난 타인조차도 아파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감하게 되고 연민하게 된다. 이 동감과 연민은 병자를 치료하는 또다른 약이자 힘이다. 정음이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로부터 동감과 연민을 받으며 마음을 연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실 우리는 알고 보면 서로를 이해하고, 그 아픔에 동감하고, 그 고통을 연민할 수 있는 그런 존재라고, 작가는 숭늉처럼 고소한 필치로 정음이를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려냈다. 나는 어른이 된 정음이가 편의점에서 친구와 나란히 앉아 컵라면을 먹으며 소박하게 즐겁기를 바란다.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는 엄마와는 든든한 동지가 되고 인애가 정음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주변의 병자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어여쁜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러기를. 정음이의 친할머니가 정음이에게 '아픈 데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고 위로했듯이 나 역시 그렇게 주변의 병자를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작금의 거리두기와 시간두기를 통해 우리 모두가 이 동감과 연대를 체득할 수 있게 되기를,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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