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적을 둘 곳이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물론 궁핍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날 괴롭혔다.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 주는 불안감. 그땐 몰랐었는데 지나고 나서 난 깨달았다.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남들과 유사하게 살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었다. 정규 교육 과정을 밟으며 튀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에 눈 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사회가 규정하는 뛰어남과 부족함 또한 일정 정도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비슷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다. 다만 남들과 다른 존재를 사회는 맹렬히 공격했고, 어쩌면 나 또한 알게 모르게 그 공격에 가담했을 것이다. |
|
<그래, 엄마야>는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가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들어있다. 인터뷰어들은 '발달장애인 자녀의 변화와 성장을 중심에 둔 이야기가 아니라, 어머니가 겪은 변화와 갈등을 통해 고유하고 존엄한 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는 결국 자녀와 관련된 이야기로 수렴되었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꿈, 내가 나의 삶에서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 앞에서 그녀들은 생경한 무언가를 만난 듯 머뭇거렸'다고 했다.
그들은 발달장애인 자녀의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집안 내력을 탓하고 산전산후·양육의 태도를 문제 삼아 엄마의 책임을 따져 묻는 사람들 이전에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아빠들은 같은 고민에서 제외되고 여성이 육아를 담당하는 게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엄마에겐 시간이 고르게 흘러가지 않았다. 물론 모든 엄마가 자기 일을 포기하고 온전히 자녀에게만 매여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애만 돌본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물으면서도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장애가 없는 다른 자녀에게는 '힘들면 가족이 아닌 척해도 돼'라고 말을 건넸지만, 그들 스스로도 '지겹게'가 아니라 '기쁘게' 가족들을 만나는 상황을 필요로 했다. 그건 나 역시 매일 바라는 일이기에 돌봄 노동에 대해서 또 한 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끝나는 시점을 알 수 없음을 넘어 끝난다는 약속이 아예 주어지지 삶은 무엇일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이 분리된 사회구조는 최소한의 공감의 가능성조차 지워버린다. 단순히 이야깃거리를 공유할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혼자 아이를 전적으로 돌봐야 하는 부담이 물리적으로 엄마의 몸을 묶기 때문이다(p.25). 한 엄마는 자녀가 세 가지가 이뤄진 삶을 살기를 꿈꾼다. 퇴행하지 않기 위해 꾸준히 배우고, 자기만의 삶의 즐거움을 누리고, 일의 능률이 아니라 노동 그 자체에 대해 평등한 대가를 받고 사는 것.
자녀가 세상에 나갈 수 있을 만큼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은 혼자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들이 홀로 모든 짐을 감당하지 않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알아야 한다. '모르는 사람은 계속 낯설 수밖에 없고,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돼버린 존재는 두려움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5.26. 인문책시렁 357 《그래, 엄마야》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오월의봄 2016.4.22. 《그래, 엄마야》(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오월의봄, 2016)를 읽는 내내 ‘장애·비장애’라는 이름을 곱씹습니다. 아니, 두 이름은 예전부터 늘 곱씹었습니다. 어린이한테 그저 ‘어린이’라 하고, 어른한테 그냥 ‘어른’이라 하듯, 서로 바라보는 이름을 이제는 다시 살펴서 처음부터 새롭게 붙일 일이라고 느낍니다. 이쪽을 ‘장애’로 볼 까닭이 없습니다. 저쪽을 ‘비장애’로 볼 까닭이 없습니다. 이쪽이 ‘여성’이라면 저쪽이 ‘비여성’이지 않습니다. 이쪽이 ‘남성’이라면 저쪽이 ‘비남성’이지 않습니다. 한쪽을 ‘장애’라는 이름을 자꾸 붙이면서 가른다면, 또다른 곳에서는 ‘비장애’라는 이름을 자꾸 붙이면서 스스로 가르는 굴레라고 느낍니다. ‘발달장애’나 ‘언어장애’나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나 ‘지체장애’ 같은 이름은 오히려 아이도 어른도 굴레에 가둡니다. 수수하게 ‘어리다’고 할 일이라고 느낍니다. ‘더듬는다’고, ‘눈으로 보지 않는다’고, ‘귀로 듣지 않는다’고, ‘몸을 쓰기 힘들다’고 말하는 길부터 다시 살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그래, 엄마야》는 “나이가 들어도 어린”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 목소리를 귀담아듣는데, 여러 엄마가 들려준 말처럼 ‘아빠도 아이 곁에 있고 싶’습니다. 그런데 엄마아빠 둘이 아이 곁에 있으면 그 집안은 돈이 없습니다. 한 사람은 집밖에 나가야 하고, 더구나 ‘집밖에서 더 오래 일하면서 돈도 더 벌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 아이를 돌보는 집은 돈이 더 들 뿐 아니라, 두 엄마아빠가 늙은 다음에도 아이가 스스로 돈을 못 벌리라 여기기 때문에, 그야말로 “있는 힘껏 돈을 벌어서 모아 놓아야 한다는 짐과 굴레”를 뒤집어씁니다. 책을 엮은 분들은 이런 대목을 알면서도 지나쳤는지 너무 가볍게 스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빠(남성)가 아이한테 너무 등돌린다’고 여기는 쪽으로 자꾸 몰아가려 한다고 느꼈습니다. 책에도 나오는 대목인데, ‘배움(교육)’은 오히려 배움터(학교)가 아닌 집에서 함께 펴고 누리고 나누게 마련입니다. 아이들한테 ‘졸업장’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졸업장은 잔뜩 땄지만, 집안일을 할 줄 모르는 젊은이가 수두룩하고, 아기를 어떻게 낳아서 돌보아야 어버이다운지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 아이들이 나중에 아기를 배면 어떡하나 걱정할 일이 아닌, 이 아이들한테 ‘아기’란 무엇이고 ‘어른·어버이’는 어떤 자리이며, ‘사랑’과 ‘살림’과 ‘삶’이 무엇인지 차분히 짚고 가르치고 새롭게 배우면서, 함께 보금자리를 도란도란 일구는 길을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리고 이런 눈길과 이야기를 더 넓게 펴면서, 이런 이야기를 엄마아빠 모두 듣고 돌아볼 노릇이어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실없지만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동물세계에도 발달장애가 있을까? (14쪽)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정은 가족 간 불화를 겪거나 아예 해체되는 일도 많습니다. 누군가는 장애 아이에게 매달려 있어야 하는데 대개는 엄마가 그 역할을 맡습니다. (23쪽) 아이를 어디로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어떻게 남겨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 닿아 있습니다. (25쪽) 내가 오롯이 짊어지는 이 짐을 사회가 나눠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26쪽) 그이가 자책하며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네 탓’이 아니라고 편이 되어준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 자녀의 장애를 마주한 엄마들이 자책의 늪에서 조금은 헤어날 수 있도록 ‘완벽한 모성’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문화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면 어떨까. (52쪽) 장애아를 둔 부부의 이야기는 비장애아를 키우는 부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를 돌보는 일을 평등하게 나누기보다 온전히 아내에게 맡긴 탓에 부부는 싸운다. (103쪽) 남편을 배려한다고 그녀 혼자 다했는데, 그게 아빠가 설 자리를 뺏은 거 아닐까 싶었다. 남편도 내가 손 내밀어주기를 기다린 게 아니었을까? (104쪽) 승윤이한테는 일상이 곧 교육이에요. (124쪽) 전화 끊고 우리 남편을 봤지. 이 사람도 많이 상하고 늙었더라. 남편이 올해로 대리운전 딱 10년째야. 낮밤 바꾼 지 10년. 내년부턴 당신도 당신 인생을 살라고 했더니 남편이 자기는 괜찮대. 다만 내가 요즘 너무 내 일에만 빠져 있는 것 같다고. 뭘 하든 애와 가정이 먼저지 않겠냐고 하는데, 한 방 먹었지. 남편도 너무 지쳤나 봐. (15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