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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에 대한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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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 앞서 별점에 대해 먼저 밝힌다. 올해부터 읽은 책 별점은 셋에서 시작한다. 평범했던 작품, 혹은 명성에 비해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 작품들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가 있다. 별 넷은 이를 상회하며 대체로 좋은 책이라 생각한 작품들이다. 별 다섯은 아주 재미있거나 전달력이 뛰어나다고 판단한 책들이다. 그렇다면 별점 둘은 작가/역자의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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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 앞서 별점에 대해 먼저 밝힌다. 올해부터 읽은 책 별점은 셋에서 시작한다. 평범했던 작품, 혹은 명성에 비해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 작품들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가 있다. 별 넷은 이를 상회하며 대체로 좋은 책이라 생각한 작품들이다. 별 다섯은 아주 재미있거나 전달력이 뛰어나다고 판단한 책들이다. 그렇다면 별점 둘은 작가/역자의 노고를 존중하나, 다시 보지 않을 책이다.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샀기 때문에 한 번은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따른,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한 독서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출간 150주년이었던 작년, 무삭제 완역판이 여럿 나왔었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기회가 닿질 않았는데 이 주석이 달린 번역판은 종래 출간된 책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어 눈여겨봤다. 결론적으로는 실망했다. 동화로 쓰인 작품인데 해석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다양하다보니 그 환상에 눈이 가리웠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다른 번역서를 읽지 않아 비교대상이 없어 잘못 판단하고 있나 생각해 보았다. 리뷰는 독서에서 얻은 개인적 체험을 쓰는 것이니 이 번역서를 읽은 감상에 대해 써 본다.


먼저 내가 바랐던 것은 정밀한 분석이었다. 풍부한 주석이라는 말에 『장미의 이름』 급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지만 이 책은 다른 의미로 예상외였다. 일단 한 챕터가 끝나면 주석이 이어진다. 구어체다. 일단 여기서 놀랍다. 친근함을 위해서인가? 주석이 담고 있는 해설도 서문에서 밝혔듯, 빅토리아 시대 문화에 대한 '폭넓은 해설' 이기에 깊이가 없다. 다루는 내용은 많았으나 거의 아는 내용이었고 조금 깊이 들어갈라치면 마무리된다. 편집 과정에서 쳐낸건지 처음부터 그 정도 분량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기준으론 풍부한 해설이 아니었다.


어린이용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아이와 함께 읽을 부모는 염두한 듯 하다) 이래저래 실망이다. 또 자료에 대한 접근성에 대해서는, 주석이 끝나면 참고문헌 출처를 밝혀두었다. 개중엔 위키피디아도 있고, 웹의 PDF파일(예를 들어 마틴 가드너의 『주석 달린 앨리스』 파일)과 국내 번역서들이 있다. 내가 책을 사 보는 이유는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잘 짜여진 글을 읽고 싶어서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자료이지만 좀 더 전문적인, 깊이 있고 참신한 시각을 접하고 싶어서다. 웹에서 볼 수 있는 자료들이라 해도 책으로 나오면 구입하는 이유다.


논문 등 다양한 자료를 참고한 번역가껜 죄송하지만, 해설에 대한 전체적 인상은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는 것이다. 정말 쓸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작업에 쏟은 노력은 존중하나 존경에 이르진 않는다는 얘기다. 조심스럽긴 한데 의아했던 점은 또 있다. ‘번역에서 확인할 수 있는 통약 불가능성’이라는 주석에서 “저의 한국어 번역은 완벽한 자국화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33쪽)”라고 한다. 어떤 책이나 그렇지 않나? 루이스 캐럴의 작품이 말놀이로 유명하다 해도, 자국어로 치환이 안 된다면 주석을 달아 이해를 돕고 최대한 읽히게끔, 유희성이 느껴지는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 번역가의 역량이 아니던가.


기대했던 이러한 '말놀이'에 대한 해설의 부족, 아마도 '재버워키'가 등장하는 후속작 『거울나라의 앨리스』와 헷갈린 나의 착오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대했던 해설보다는 배경 설명에 치중하는 해설... 어쩌면 '참신한 해설'이라 나온 번역서를 선택한 내 잘못인지도... 하여튼 구어체로 진행되는 이 해설이 얼마나 만족스럽지 않았냐면, 분량을 늘리려고 택한 전략인가 싶었을 정도였다. 번역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나는 중역(일본어 중역 제외)이나 아마추어 번역에도 호의적이다. 번역은 창작 예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번역에 대한 역자의 선택을 존중하나, 의아했던 점은 하트 여왕의 대사 “Off with her head!”를 “저 년 목을 잘라라!”고 번역한 것이다. ‘년’이라니? ‘A Mad tea-party’를 ‘횡설수설 다과회’로 번역한 것에 비해 너무 과하지 않은가. 하트여왕을 드라마 사극에 등장하는 악독한 왕이나 왕비로 대체하여 생각해도 거부감이 인다. 대체로 서양 동화의 내용이 잔인함은 인지하고 있고, 동요의 폭력성에 대한 주석(259쪽)도 읽었지만 왜 '년'인가. 하트여왕의 잔인함을 강조하기 위한 번역이 꼭 ‘년’이어야 했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를 때까지도 이 대사가 뇌리에 남아있었다.


미치광이 모자장수를 ‘이상한 모자’로, 애벌레를 ‘털벌레’로 번역하는 등의 해설, 작품에 등장한 사물이나 풍속과 연관된 빅토리아 시대 설명, 수학자 도지슨(루이스 캐럴은 필명), 작가와 라파엘전파와의 관계, 그리고 캐럴이 소아성애자였나 하는 내용을 담은 해설은 타사에서 나온 번역서를 읽지 않아도 참신한 접근이란 것을 알겠다. 또 원문전체와 존 테니얼의 삽화가 일부 실렸다는 점이 특이사항이다. 앨리스의 속마음을 드러낸 대사에서 큰따옴표와 작은따옴표가 혼용되는데 원래 편집이 이러한 건지, 실수인지는 모르겠다. 챕터별로 해설이 있다보니 독서 흐름도 좀 끊기고...


다른 번역서를 읽으면 이 책에 대해서도 재평가할 수 있겠지만 현재는 그럴 마음이 없다. 지금 내 심정은 이렇다. 원래는 문학과 문학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나온 표현이지만... “어떤 책을 읽고 또 읽는 데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면 그건 아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이지.” (오스카 와일드, 『거짓의 쇠락』) 별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인 이유는 역자의 노고를 존중해서다. 진짜로 사서 봤음을 뭐로 증명하나, 책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구매완료된 화면 캡처를 올린다.



e***a 2016.04.12. 신고 공감 3 댓글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