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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간첩이 된 사람들 이야기
"어느날 갑자기 간첩이 된 사람들 이야기" 내용보기
가끔은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를 묻는다. 시장은 가치를 알지 못한다. 개개인의 이기적 욕망이 세상을 평온케 한다던데, 여기서 세상은 극소수의 부유한 이들이 속한 세상을 뜻했다. 똑같이 이기적으로 굴어도 누군가는 뛰어난 전략을 구사했다며 부와 명예를 거머쥔 반면 대다수는 불법을 자행했다는 비난과 함께 처벌 받았다. 국가가 제시하는 법은 이따금 귀에 걸면 귀걸이로, 코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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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를 묻는다. 시장은 가치를 알지 못한다. 개개인의 이기적 욕망이 세상을 평온케 한다던데, 여기서 세상은 극소수의 부유한 이들이 속한 세상을 뜻했다. 똑같이 이기적으로 굴어도 누군가는 뛰어난 전략을 구사했다며 부와 명예를 거머쥔 반면 대다수는 불법을 자행했다는 비난과 함께 처벌 받았다. 국가가 제시하는 법은 이따금 귀에 걸면 귀걸이로, 코에 걸면 코걸이로 돌변했다. 특히 70-80년대에는 그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했다. 국가는 수시로 위기를 조작하며 제 떨어지는 정당성을 은폐하려 노력했다. 그 시절엔 그래서 간첩이 참으로 많았다. 먹고 살기도 힘들다던 북한이 수시로 체제를 뒤흔들고자 사람을 보내 불온한 사상을 퍼뜨렸다. 꺼진 불 다시 보듯 주변을 살펴야만 했던 그 시절, 곳곳에서 억울함이 생성됐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간첩사건으로 과거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훗날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의 목록이 수록돼 있었다. 대체 몇 건인지를 세어보려다가 엄두가 나지 않아 말았을 정도로 그 수가 무지막지했다. 몇몇 이들은 70-80년대를 국가 경제가 부흥했던 시절이라며 그리워하는데, 어쩌다가 이들은 간첩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가 궁금해졌다. 국가가 닥치고 의도했으니 그리 된 것이겠지만 세세한 사정은 저마다 다를 터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연령대가 높았다. 모진 풍파를 겪지 않았더라도 분명 가난에 치이느라 힘겨웠을 삶이 그려졌다. 만약 간첩 조작 사건을 겪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과연 어찌 살았으려나. 조작의 대상으로 전락한 데엔 그들이 불의를 뒤집어 엎을 만큼 충분한 힘을 지니지 못함이 컸다. 그런 걸 감안하면 그들의 삶은 아주 평범했을 것이다. 만선(滿船)을 꿈꾸며 출렁이는 파도 위에서 노를 저었을 것이고, 자신은 한글을 모르지만 자녀는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며 억척스레 돈을 모았을 것이다. 단돈 천 원하는 붕어빵 몇 마리를 사들고 들어가는 걸로 가족 사랑을 실천했을 그들. 국가는 그들로부터 평범함이 선사하는 행복을 앗아갔다.

기록도 이토록 끔찍한데 실제로 고문을 당한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일일이 나열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이 겪었을 공포감이 내게 스미는 듯했다. 간첩 하나를 양성(?)하고자 저들은 물불 가리지 않았다. 그들이 짓밟은 건 하나의 몸뚱아리가 아닌 인간의 존엄성이었다. 하지도 않은 짓을 했다 자백하라 종용하며 그들은 신체를 향해 몹쓸 짓들을 자행했다. 대부분이 거기까지는 그래도 참았다. 결백함을 증명하면 이 지옥과도 같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저들은 가족을 언급했다. 시키는 대로 행하지 않을 시 가족 또한 너와 같은 고초를 겪게 되리라는 협박 앞에서 만큼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실 아닌 것들이 사실로 둔갑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자신의 형편을 탓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역으로 배운 자들의 횡포에 격노하며 자신이 못 배운 걸 한탄 않은 경우도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감옥에서의 삶이 오히려 수월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어쨌건 그들은 사상범이었다. 그 안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고. 억울함과는 별개로 시간은 흘렀고 그들 또한 살아졌다. 무기징역이 20년으로 감해지고, 살아서는 못 나갈 것 같은 철창 밖 세상이 눈 앞에 펼쳐졌을 때 오히려 그들은 혼란을 호소했다. 가족이 변치 않고 기다려준 이들은 그래도 나았다. 수감만 되지 않았다뿐이지 세상의 멸시를 온몸으로 받아온 이들은 차라리 연을 끊자며 등을 보였다. 취업을 하려 해도 사상이 온전치 않다며 배척당했는데, 부모의 조작된 경력에 발목잡힌 자녀들도 있었다. 재심이 이루어져 억울함을 해소한 이들은 저마다 기쁨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이 복잡했을 것이라고 나는 상상한다. 이미 흐른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거액의 보상금은 그저 돈일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국가가 2000년대에도 같은 누를 재차 범해왔다는 점이 경악스럽다. 왜 실수로부터 국가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가!

지난해 정권이 바뀌었다. 그리고 오늘 3시대의 한 축을 이루었다는 거물급 인사 한 명이 사망했다. 하나의 시대가 저물었다. 앞으로는 희망만이 쓰여질 것이다? 역사는 그리 간단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사망한 이의 손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그로 인해 역사가 얼마나 잔인하게 뒤틀렸는지, 언론은 진실을 외면키로 작정이라도 한 듯 풍운아즈음으로 부고(訃告)를 작성했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어마어마한 실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나보다. 죽은 자가 말이 없다 하여 국가의 잘못이 선한 행위로 둔갑하진 않는다. 아니, 오히려 침묵하는 망자를 대신해 우린 역사를 바르게 기억하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이달의 사락 q*****2 2018.06.23. 신고 공감 3 댓글 0